문 뒤에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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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개가실에서 바사니 선집을 발견한 순간, 이 시리즈는 금방 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이제 선집의 4권 <문 뒤에서>까지 왔다. 이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한 권 남았다. 아껴가며 읽어야겠다. 마음에 든다고 한 번에 확 읽어 치우기엔 참 쓸쓸한 작가이고 문장들이다.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는, “바사니 문학의 원천은 ‘페라라’와 ‘유대인’이다.” 라고 쓰여있다. 실제로는 바사니가 그랬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기는 하지만, <금테 안경>과 <문 뒤에서>의 주인공이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다고 암시하는 걸 봐서, ‘동성애’ 특히 남성 동성애자인 ‘게이’도 바사니 문학의 한 원천으로 생각해 봄 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바사니는 반파시스트 저항운동을 하다가 1943년 5월에 체포당했는데, 무소리니가 정권을 빼앗긴 7월 26일에 바로 석방이 되고, 이로부터 1주일 후에 발레리아 시니갈리아와 결혼해 딸, 아들 각 하나씩 두었다. 발레리아와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살 줄 알았지만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죽음 대신 서류에 인감도장 찍는 걸로 갈라서고 예순한 살이던 1977년에 새로운 동반자 포르티아 프레비스와 여생을 같이 한 것으로 보아 이이한테는 동성애적 성향은 없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뭐 그렇다는 거다.


​  1인칭 시점이다. 화자 ‘나’는 유년, 소년, 청소년, 청년, 성인 시절을 둘러보아도 여러 번 절망의 바닥을 찍었다고 엄살을 부리면서 시작한다. 물론 그렇기는 했다. ‘나’는 1913년 정도에, 유럽에서 그나마 유대인 차별이 덜 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이후, 페라라Ferrara에서 보낸 고등학교 1학년, 서기 1929년 10월에서 1930년 6월까지가 유독 암울했던 기억이 있다면서, 이 시기의 학창시절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나’가 쉰 살도 넘긴 다음에 생각해보니 이 시절 이후에 흐른 세월은 결국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그 정도로 온전히 비밀한 상처로 남은 아픔이었고 결코 시간마저 치료해주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아예 치료가 불가능한 상처.

  처음부터 직진하자. 유대 디아스포라로 몇 천 년을 지내다가 할아버지 대에 와서 많은 돈을 벌어 이제 노동할 필요 없이 사는 유대 부르주아가 있고, 공부를 많이 해 의사가 되었지만 큰 도시에서 잘 나가는 의원을 차릴 돈이 없어 박봉만 받으며 산골 마을 보건소에서 왕진을 다니는 가난한 의사가 있다면 어느 것을 택할 터인가. 사는 게 다 그렇다. 유대 부르주아라고 해서, 가난한 유럽인 의사라고 해서, 아니 보통 인종 가운데 어찌 아픈 상처, 그것도 더럽게 아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하나 없는 인간이 세상 70억 인구 가운데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은가? 만일 당신이 이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세 명만 나한테 소개시켜달라. 십만 원 줄게. 돈이 있건, 권력이 있건, 하다못해 돈도 없고 권력도 없지만 가방 끈이 길어 머리에 든 것이 많건, 아니건 간에 다 자기 나름대로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고 우리는 그걸 트라우마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지.

  그럼 이 책 <문 뒤에서>는? 1920년대에 극심한 사춘기를 겪던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후일담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지만, 이렇게 책임 없게 이야기하는 것은, <안나 카레리나>가 “유부녀 바람나서 인생 조지는 소설”이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바사니나 톨백작이나 문제는 이야기를 꾸리는 재료인 문장과 서사구조, 그리고 호소, 이런 것들을 다 합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문학”이다.

  대개 이 시절을 그린 작품들은 학교, 교실이라는 정글에서 벌어지는 생존기가 대부분이라, 나도 바사니 표 고등학교 교실의 폭력적 만화경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 갓 태동하기 시작한 파시즘 시절, ‘심각한’ 유대인 차별 역시 막 싹이 돋기 시작할 무렵, 아직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종교 수업을 면제해주는 관용의 시절이 유지되고 있을 시기였는데, 리차노인벨베데레 산골마을에서 박봉에 시달리며 십 년간 보건소 진료의사를 하는, 왕왕 심심풀이로 아내와 아이들을 때려잡던 풀가 씨가 솔가해 페라라로 이사, 아들 루차노 풀가를 ‘나’와 같은 학교, 학년, 반으로 전학시키면서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한 달에 천오백 리라 가웃의 비용을 내야 하지만, 3류 선술집에 더 가까운 싸구려 호텔에 일단 짐을 풀자마자 풀가 씨는 아들 루차노를 책도, 공책도 없이 달랑 펜과 잉크만 쥐어 학교로 보내버렸다.

  화자 ‘나’는 루차노를 위해 과제를 할 때 써야 할 필기용지도 주고 당분간 옆에 앉는 ‘짝’도 해주었는데, 루차노 풀가, 얘 좀 봐라,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과제를 슥슥 베끼는 거다. 교실에는 페라라 최고 부자의 아들이자 중1 때부터 모든 과목에서 8~9점을 받아 언제나 모두 인정하는 우등생 카를로 카톨리카가 부동의 최고 권력을 누리고 있었고, 바로 밑에 화자 ‘나’가 어려서부터 인생무상의 참뜻을 숙고하느라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꼬나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즉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 늦되게 사춘기를 시작했다는 말이다. 열여섯 살이 되어 아직도 자위를 시작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학급 남학생. 이 학교는 남녀 공학이라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작품 내내 존재감이 없기는 하지만) 학급에 여학생도 몇 명 함께 수업을 받고 있다. 카를로 주위에는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이 둘러싸고, ‘나’는 소위 독립군이었는데, 이제 루차노 풀가가 전학해 옴으로 해서 ‘나’의 집에 와서 숙제도 함께 하고, 등하교도 같이 하는 작은 또래를 이룬 것.

  보잘것없는 외모에 변변치 않는 의복, 그리고 가난이 뚝뚝 떨어지는 머릿기름이 흐르는 목덜미 냄새 등을 장착한 루차노 풀가는 파시스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점을 기억해두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루차노 또한 그 시절을 치유하지 못할 상처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을 듯) ‘나’는 루차노를 보자마자 그가 ‘나’에게 “우리 가족의 부르주아적 안정감과 경제적 안전, 사회적 신분”을 질투하면서 동시에 경멸하는 인상을 받았다. 유대인이라서. 유대인은 돈이 아무리 많을지언정 근본이 천하고, 성격도 막 돼먹었으면서 천성이 사기꾼이라 절대 가까이하면 안 될 인종, 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안 알려드린다. 이 짧은 장편소설에서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라도 여차하면 스포일러로 작용할 것을 알고 있어서 조심스럽다. 그리고 만일 그렇더라도,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얘기하면 당신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게 방해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아픈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쯤은 알게 모르게 겪게 되는 소외와 단절의 이야기. 그걸 조르조 바사니는 이렇게 산뜻한 문장으로, 마치 수채화처럼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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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5-18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었는데 써주신 내용까지는 다 기억나는데, 안 알려주시는 그 결정적 부분이 기억이 안납니다. 도대체 문 뒤에서 뭘 듣고 봤는지...참 저도 읽으면서 안스러웠는데...집에 가서 찾아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3-05-18 17:31   좋아요 2 | URL
음하하하... 기억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뒷 이야기, 클라이맥스가 아리송하게 만드는 것이 제 독후감이 제일 바라는 거거든요. ㅋㅋㅋㅋ
답글이 늦었습니다. 이제 일과 끝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쐬주 한 병 했답니다. ^^

그레이스 2023-05-18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을 털고 계시군요?^^
제가 조르조 바사니 무슨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찾아봐야 할듯요.

Falstaff 2023-05-19 08:09   좋아요 1 | URL
ㅋㅋ 그렇게 됐습니다. 작년 초에 사 놓고 안 읽은 책도 한 60cm 되는데 올해도 넘길 거 같아요. 지금 도서관 가기 전에 그레이스 님 댓글 달려고 잠깐 로그 인 했습니다. ^^
 
눈사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빅토리야 토카레바 지음, 김서연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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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빅토리아 토카레바는 어린 시절부터 두 가지 방면에 뛰어났으니 하나는 공부요, 다른 하나는 피아노 연주였다. 근데 왕년에, 초등학교 시절에 반에서 일등 한 번 못해본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시라. 토카레바가 공부를 잘 하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의 희망인 의사가 될 수준은 아니었다. 두 번째 재주인 피아노 연주로 림스키-코르사코프 페테르부르크 음악학교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했지만 피아노 연주자로 성공할 재목까지도 아니었단다. 그래도 배운 것이 피아노, 밥벌이를 위해 모스크바 근교의 음악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 일부를 <눈사태>에서 써먹었으니 이 책의 주인공 이고리 니콜라예비치 메샤체프의 아내, 이리나 메샤체브나의 직업이 피아노 교습 선생이다.

  이리나 메샤체브나는 남편 이고리와 함께 모스크바 음악원 피아노 동기생이다.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예술 행위는 점진적으로 우상향하는 완만한 곡선이 아니라, 곡선을 따라 올라가다가 갑자기 난데없이 높은 계단이 하나 나타나 이 계단을 오르느냐 마느냐가 문제인데, 오른 사람은 유명 연주자/예술가, 또 고액 연봉의 프로 운동선수, 못 오르면 그저 보통의 예술가가 되든지, 조기 축구단에서 눈썹을 휘날리는 스타가 되든지, 가리봉동 기원의 동네 챔피언 바둑 기사가 되든지 하는 거다. 이리나가 보기에 자신은 아무리 용을 써도 마지막 높은 계단을 오르기는 텄고, 대신 남편(이 될) 이고리는 그걸 어렵지 않게 성큼 올라가버린 단계였다. 하지만 당시는 소비에트 시절. 스탈린이 죽고 뒤를 이어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등등이 철권을 휘두를 때라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이고리라 할지라도 소비에트 연방, 소련 각지를 떠돌며 시끌벅적한 군중을 대상으로 거의 무료의 공연료를 받고 연주를 해야 했다. 이리나는 남편을 향한 사랑과, 언젠가는 이고리의 성공을 확신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 동안에 적어도 딸, 아들, 장모를 먹여 살리기 위한 노심초사에서 벗어나 레퍼토리를 늘이고 음악적 성취에만 신경 쓰라는 뜻에서 자신이 열심히 피아노 학원을 하며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다.

  어느덧 세상이 바뀌어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에 올라 대한민국 제주도를 방문해 노태우 대통령한테 30억 달러의 차관을 얻어 오기도 하는 새 시대, 소위 페레스트로이카 시대가 열려, 철의 장막을 친 소련 영토 안에서 철저하게 실력이 가려지긴 했으나 연주 녹음은 아니더라도 이름이 서방에까지 알려진 이고리 메샤체프가 서유럽 연주단체로부터 초청을 받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 비행기 타고 한 번 가서 연주를 해주었더니 아메리카를 포함한 서구세계가 이고리한테 환장을 하기 시작했고, 이고리는 유럽으로 연주여행을 하든지 아니면 모스크바의 집에서 새 레퍼토리를 연구하든지 하는, 어찌 보면 단조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이게 피아니스트 자신의 성격에도 딱 맞아 떨어져, 별로 불만 없는 세상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알고 보면 이고리 메샤체프의 내력도 조금 그렇다. <황산벌>의 계백장군 말투로 말하자면 초년 신세가 거시기했다는 말씀. 아버지는 아코디언 연주실력이 뛰어나고 그것만큼 손으로 하는 일, 뭘 고치고, 수리하고, 보수하고, 이게 다 비슷한 말 같지만 규모에서 차이가 나는 것들인데, 작은 시계 같은 것은 고치고, 좀 큰 기계는 수리하고, 집이나 하수 시설 같이 덩치가 큰 것들을 보수하는 모든 일에도 동네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재주도 좋았으나, 불행하게도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당연히 미주알이 째지게 가난한 가정의 명목상 가장이었다. 이런 아빠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거나 고치고, 수리하고, 보수하는 일로 번 돈으로 유일하게 하는 일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올리는 것뿐이었다. 새끼들 입에 거미줄만 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엄마가 아빠를 대신해 청소부 일을 해 그나마 쑥을 뜯어 미음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었다. 이때 어린 이고리가 아빠한테 얻어 터져가며 배운 것이 아코디언 연주. 이를 유심히 지켜본 흰 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산신령처럼 생긴 노 신사가 이고리를 거두어 음악학교에 보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건 뭐 믿거나 말거나.

  하여튼 음악학교에 진학한 이고리는 열세 살에 같은 반에 있던 아가씨 이리나를 만나, 열네 살에 처음 키스를 하고, 야매로는 언제 했는지 몰라도 법적 결혼은 열여덟 살 때 해서, 딸 아냐, 아들 알리크를 낳았다. 이제 아냐는 학교를 다 마치고 애인 유라와 약혼한 상태지만 유라의 재정 건전성 확보기간 동안 결혼을 미루고 있고, 아들은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옛 병명으로는 정신분열, 요즘 말로 조현병을 위장해 신경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아들 알리크는 부모에게 대단히 아픈 존재다. 서로 지독하게 사랑하면서도 지독하게 괴롭히며 살아온. 도무지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군인으로 2년을 지내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심지어 살아서 제대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어 불법인지 알고 있음에도 이런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다 부모 마음이지. 걱정도 팔자인 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이고리는 세상 도처로 연주여행을 다니며 상당한 액수의 달러를 수집하기에 이르렀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경제 몰락을 맞은 모스크바에서 역설적으로 부자들을 위한 피아노 강습료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바람에 떼돈을 벌기 시작한 이 가족은, 아니,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굳게 신뢰하는 사이로 아무 걱정도, 별 관심도 없이 마흔여덟 살이 됐다. 이제 부부는 살을 맞대기엔 어딘지 너무 친한 사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으며, 같은 핏줄이라서 서로의 몸을 만지는 것이 마치 천벌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 단계에 왔는데, 실제로 그런 상태였다고 빅토리아 토카레바가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자기 입으로 말했거니와, 이런 현상이 서로 너무도 덤덤한 사이, 소 닭 보는 듯 무심한 상태가 되어 그랬던 것이 아니고, 굳은 신뢰와 당연히 변하지 않는 관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공고한 부부관계. 이들의 삶엔 딱 하나의 문제만 공유했다. 아들 알리크의 반 사회적 성향.


​  솔직히 말하자면 여태까지 이야기는 다 헛소리다. 서론이 길고 길었다.

  이제 이 공고한 가족에 눈사태가 나고 만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기 그지없는 설산. 지표를 두텁게 덮고 있는 눈덩이의 한 면에 마찰이 생겨 거대한 눈 뭉치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여 한 번 슬라이딩을 시작하면, 아무도 멈추지 못하고, 눈덩이조차 어느 방향으로 미끄러질 지 모르는 속수무책의 단계에 접어들어,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킨 연후에 저절로, 할 수 없이 멈출 시간이 와야지만 운동을 그만두는, 눈사태.

  이 가정의 눈사태는 이고리 메샤체프에서 시작한다. 연주여행을 다녀와 피곤한 심신을 모스크바 근교의 요양원에서 회복할 생각으로 한 주를 묵었다가, 그곳에서 서른네 살의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데다가 요염하고, 탐스럽지만 너무도 세속적인 여성, 일명 률랴, 성姓도 모르는 옐레나 겐나디예브나를 만나 불륜이라는 눈덩이의 움직임을 시작한다. 이제 남은 것은 어느 방향으로 가는 지도 모른 채 오직 하나,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일뿐.

  이리하여 이 작품 <눈사태>는 연애소설. 박완서의 말대로 읽거나 구경하기에 가장 재미나다는 연애 소설 가운데 ‘불륜’을 다루고 있다. 하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연애소설에는 두 당사자의 연애를 가로막는 장벽이 적어도 하나 이상은 존재해야 한다. 그게 카풀렛 가와 몬테규 가의 대를 잇는 복수심일 수도 있고, 두 당사자한테 교수형과 화형의 축복을 골고루 하사하는 종교 갈등일 수도 있지만,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작가들은 가문의 복수심이나 원한관계, 종교갈등의 소재를, 벌써 하도 많이 써먹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었고 이젠 더 이상 가문이나 종교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상대방 중의 한 명 또는 둘 다 혼인관계를 유지한 연인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내 말과 다른 현대 연애소설 있으면 두 작품만 예를 들어 보시라. 그러다 보니까 또한 연애소설은 날이 갈수록 분량을 늘이기가 쉽지 않게 된다. 물론 최인호의 두 권짜리 연애소설 <겨울 나그네>는 예외로 하고. 세월이 갈수록 연애소설 쓰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토카레바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는데, 그건 절대로 아쉬운 바가 아니다. 어차피 연애소설은 스토리 전개가 뻔한 거니까 굳이 길게 쓸 필요도 없다.

  그러면 연애소설의 성패는 무엇이 가르는가?

  문장이다. 토카레바의 무심한 듯 툭, 툭 던지는 절묘한 산뜻함과 감각적 단어, 구절의 사용. 내가 읽은 최초의 토카레바였던 작품집 《티끌 같은 나》에서도 그랬듯이 정말 쿨하다. 쿨하고 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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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5-16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해 한 적이 있는 책인데 리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Falstaff 2023-05-16 15:53   좋아요 1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coolcat329 2023-05-16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 문장이 쿨한게 매력이군요.
<티끌 같은 나>를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3-05-16 15:54   좋아요 1 | URL
티끌,좋습니다. 그 책 읽고 한 방에 반해버렸습니다. ㅋㅋㅋ

stella.K 2023-05-16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장을 많이 해 보셨군요. 그럼 회장도...?
저는 줄반장 딱 한 번 해 봤습니다. 그것도 한 달인가 두 달짜리.ㅎㅎ
연애소설은 환히 꿰뚫으셨군요.
문장이 관건이군요. 알겠슴다.^^

Falstaff 2023-05-16 15:54   좋아요 1 | URL
왕년에 한 번 해봤습지요. 원래 권력에 관심이 없어서 재미 없더구먼요.
연애 소설은 한 번 써보고 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로마제국 쇠망사 4권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인재도 없고, 온갖 두억시니같은 야만족들만 득시글거리는 한심한 나라. 그러나 부잣집 망하는 데도 3년은 간다고 아직 영웅적인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로마의 영원한 곡창이었던 아프리카를 평정하고 동쪽의 페르시아와 한 바탕 싸움을 해 어느 정도 기틀을 잡는 것처럼 보이는 가짜 평화시대. 이동안 온갖 야만인들은 과거 로마의 국경을 넘어 자기들만의 세력을 키우기도 하고 옆 종족과 본격적인 땅따먹기 싸움도 시작하던 시기.........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의 원래 구상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만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이 열심히 하던 일을 갑자기 뚝 그쳐버렸을 때 쏟아지는 현타를 가뿐하게 극복할 수 없게시리 디자인되어 있다. 그리하여 기번은 애초의 마음을 바꿔 동로마제국의 멸망까지 몽땅 다 저술에 포함시키기로 마음먹는다. 내가 뭐 기번 전문가라서 아는 게 아니고, 이 책의 1권 시작할 때 기번의 서문에 작자가 그랬다고 써 놓았다.

  서로마제국이 셔터를 내리는 직접 원인은 어디에 있다? 아마추어 역사 애호가로 말하자면 통일 중국의 한나라, 그것도 전한 시대에 있다. 유방이 죽고 여씨 황후가 패권을 잡았을 당시 북쪽에 있던 흉노가 쳐들어와 실제로 과부가 된 여씨 황후에게 못된 말(나한테 남는 걸로 너의 빈 곳을 운운)로 히야까시를 거는 등 오만방자한 짓거리도 서슴지 않을 정도의 힘을 과시했던 흉노족. 원제 때에는 선우라고 불린 흉노의 족장이 한나라를 방문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녀 가운데 한 명인 왕소군을 얻어 가 첩을 삼기도 했을 정도다. 한나라는 왕조를 접을 때까지 흉노족 이야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도질 정도로 질색을 했는데, 이리하여 서역 지역에 최고의 명장군과 군대를 파견하여 야만인 족속이 눈에 띄는 족족 잡아죽이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이때 발생한 사건이 이릉의 난, 결과로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다), 처음엔 전과 다름없이 약탈을 서슴지 않던 흉노족의 기세도 점점 눅어져 그만 자신들의 사는 터를 포기하고 서쪽 초원, 벌판으로 이동해가며 현지인들의 세를 규합해 점점 규모가 커져, 타슈켄트, 사마르칸트를 거쳐 시베리아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심지어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일차 왕림하셨다가 거기 바로 아래 게르만 족들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버리기 시작한 거다. 훈족으로 변한 흉노족에 당시에 어띨라 라는 영웅이 나타나 서로마 제국 성문 앞에서 직접 로마 제국의 문을 닫아주려 할 때, 제국에선 일설에 의하면 공주, 다른 일설에 의하면 궁녀 한 명을 어띨러에게 주는 걸로 타협을 봤고, 기분이 좋아진 어띨러는 부하들과 음주가무를 즐긴 후 황녀(또는 궁녀)와의 첫날 밤에 복상사를 해버려 거위의 꿈은 그냥 물거품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때 훈족의 대 이동에 밀려 엉겁결에 서쪽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숱한 야만인들이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남의 땅에서 뭐 할 게 없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월등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로마 제국의 국경을 넘어 노략질을 시작하게 됐고, 로마 제국이 이미 힘이 빠졌다는 걸 눈치챈 야만인들이 계속해서 집요하게 괴롭히는 바람에 정식 이름대신 멸칭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라고 불리는 마지막 황제 때 결국 망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어떻게 됐겠는가. 로마 제국 북쪽의 광활한 식민지가. 당연하지. 지금은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으로 불리는 나라들의 조상들이 땅을 점령해 노상 접경지역에서 땅 따먹기 싸움을 해가면서 국가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탈리아 땅은? 고트 족이라고, 염소를 뜻하는 goat가 아니라 원래는 스칸디나비아 남쪽에 있던 고트Goths 족으로 이 야만인이 세를 불리더니 이탈리아에 들어와 살았다. 세월이 흘러 고트 족에 테오도리크라는 영웅적인 왕이 등장해 이탈리아 반도 전부를 잡숴버렸다. 이민족이라 인구가 별로 없지만 월등한 무력으로 이탈리아 지역 원주민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원래 서로마 제국의 원주민이잖은가. 그래 아직도 왕조를 이어가고 있던 동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명권을 지켜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부채감이 있었고,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채택된 것도 벌써 2백년이 넘어, 그래봐야 6세기 말, 7세기 초까지도 교황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아직 장가도 들고, 홀아비가 되면 새장가도 들고, 아이들도 다스dozen로 낳고 그랬던 시기이긴 하지만, 로마 시내에 교황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일부는 여전히 ‘왕 대주교’라고 불리기도 하던 성직자와 그의 일당들도 보호해야 해서 고트 족과의 일전은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트 족의 왕 테오도리크는 어려서부터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비잔티움에 가서 교육을 받아 로마 적的 정치술과 처세에 능한 능구렁이라 이리저리 비위를 잘 맞추면서 동로마 제국과 별로 문제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 동쪽과는 사이를 좋게 해 놓은 테오도리크는 힘을 모아 북쪽에서 쉴 새 없이 이탈리아 영토에 껄떡거리는 다른 야만족의 침략을 분쇄하기도 하고 그들과 연합하는 대신 공물을 받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었다. 이런 자가 로마 제국의 황제였으면 함포고복의 태평성대를 맞았을 텐데. 이때 동로마의 황제는 제논이었으며, 제논이 이름 낸 분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게으름이었다던가 뭐라던가 하여간 그랬다.

  문제는 이렇게 현명한 지도자가 죽은 후. 동로마에서는 제논에 이어 아나스타시우스, 유스티누스 1세에 이어 유스티아누스가 등극했고, 이탈리아에서도 테오도리크가 딸 하나만 남긴 채 숨을 거두어 이제 본격적인 이탈리아 전쟁에 돌입했다. (동)고트족은 이베리아 반도 산악지역에 자리잡은 서고트족을 규합하고, 동로마는 위대하지만 더러운 팔자의 장군 벨리사리우스를 대장군으로 임명해 한 바탕 큰 전쟁을 치룬다. 결과는? 동로마 제국의 상처뿐인 승리. 황제 유스티아누스는 동로마의 현제 테오도시우스와는 달리 오금이 저려서 전선엔 나가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벨리사리우스를 총대장을 삼아 아프리카 점령, 동쪽 속지 정리, 페르시아 전쟁 수행을 하게 해 놓고, 이제 또 이탈리아를 공격하게 만든다.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이미 동로마는 국가의 부와 규모가 대규모 전쟁을 연속해서 치룰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 군수품, 군인들에게 줄 임금, 식량, 무기 등 모든 병참과 인력이 태 부족이면서도 전쟁을 벌여 반드시 승리할 것을 주문했다. 누가? 당연히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그러니 충성스럽고, 전쟁지능에 관한 한 거의 제갈량 수준이지만, 공처가에다가 반골기질이 전혀 없는 용감한 벨리사리우스 대장만 죽어났던 거다. 그런데 희한하지.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전쟁을 했음에도 벨리사리우스가 떴다 하면, 적은 병력과 조악한 병참, 허약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장군을 따르는 전사들이,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한 노병들은 절대 질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고, 정말로 늙었지만 아직도 힘이 철철 나는 장군의 신묘한 용병, 놀라운 지형지물의 사용으로 딱 한 번 이기지 못한 것(절대 지지 않았다. 이기지 못했던 뿐)만 빼면 싸운 족족 승리를 거두었는데, 황제 유스티아누스, 이게 또 못난 군주의 전형이라서, 꼴에 황제라고, 장군의 승리를 축하하지는 못할 망정, 질투에 싸여 콧김만 뿜어대다가 나중에는 지휘권을 또다른 영웅인 환관 나르세스에게 넘겼고, 나르세스가 최종적으로 이탈리아를 완전 정복하게 된다.

  그럼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콘스탄티노플로 불러들여 이모저모로 꼬투리 잡을 거 없나, 샅샅이 뒤져본다. 그러다가 전리품의 일부를 장군이 착복했다는 걸 발견하고, 이를 트집잡아 재산 거의 다를 압수해버리고 죽일까, 말까, 죽일까, 살릴까, 고민하다 워낙 유명한 영웅이자 장군이니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저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집 하나를 주고 거의 위리안치 시켜 버린다. 내가 벨리사리우스 장군이라면 속이 다 시원했을 거 같다. 원래 노는 여자였던 아내 안토니나는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동안 트라키아의 젊은이 테오도시우스를 만나 밤드리 노니다가 오고는 했는데, 전쟁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백치와 비슷했던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두 남녀가 노닥거리는 걸 자기의 눈으로 보고도, 아이, 우린 그냥 친구 사이야, 하는 안토니나의 말 한 마디에 그런가 보다, 했단다.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다음으로 치고 말이지. 결국 전리품 일부의 개인 사용도 기번은 부정한 아내 안토니나 때문이었던 것처럼 몰고가기도 하는데, 역사책 읽으면서는 역사가의 말은 그대로 믿지 않는 편이 좋다.

  하여간 <로마제국 쇠망사 4>에서는 동로마 제국이 황황하게 스러져가는 모습이 하도 짠해서 개운하게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잘 읽었다. 에드워드 기번이 글 하나는 재미있게 써서 큰 판형에 6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기독교에 관한 챕터만 빼고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왜 그리스도 교 관련한 글은 아예 읽기가 싫은 건지 모르겠다. 명색이 모태신앙이면서. 열 살 이후에 예배당 가본 적은 없지만. 우리 집에선 나 때문에 추도식 안 하고 제사 지낸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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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5-13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스티아누스가 동로마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훌륭한 황제라는 시각
은 아마도 그의 밑에서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며 제국의 영토를 회복
한 벨리사리우스라는 존재 덕분이
지 싶습니다.

안토니아가 벨리사리우스의 약점
이었다면, 유스티아누스의 와이프
인 테오도라도 못지 않았다는 일
설이...

흉노-훈의 민족대이동으로 서구
지형이 바뀌게 된 점은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Falstaff 2023-05-13 09:55   좋아요 1 | URL
에드워드 기번은 유스티아누스 황제를 아주 바보로 만들어버립니다. 태평성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편안한 시절에 임기를 마친 운 좋은 황제이며, 사람들이 별로 기억하지 않아도 무관한 그저 그런 황제라고 따끔한 일침을 날립니다.
이런 황제가 악처를 얻었으니 죽은 다음에 동로마는 다시 한 번 광풍이 몰아칩니다만, 다행스럽게 거의 마지막 순번으로 괜찮은 군인 황제가 등극해 동로마의 명줄을 조금 늘이더군요.

stella.K 2023-05-13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모태신앙요? 그러시군요.
나중에 바울처럼되시지 않을까요? ㅋㅋ

Falstaff 2023-05-13 12:2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럴 일 없을 거 같긴 합니다만 세상일은 단정하지 못하는 것이니 또 모르긴 합니다. 하여간 지금 저는 사막에서 발현한 종교들 모두하고 친하지 못합니다. ^^

yamoo 2023-05-13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분량때문에 기번의 쇠망사 1권으로 된 까치본 요약본을 읽었지요...ㅎㅎㅎ
것두 엔날이라 이억이 가물가물...그래두 300쪽이 가뿐히 넘었던 걸루 기억하네요..ㅎㅎ

Falstaff 2023-05-13 12:24   좋아요 0 | URL
원래 예정이 서로마 제국 멸망까지 였다니 뭐 그리 읽으셔도 나쁘지 않을 거 같긴 합니다. ^^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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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즈 콩데.  카리브 해에 올망졸망하게 늘어서 있는 열도 가운데 프랑스령 과들루프에서 작은 은행을 설립한 오귀스트 부콜롱과 여학교 교사 잔느 퀴달 부부가 낳은 여덟 남매의 막내로 1937년에 태어났다. 나름대로 유복한 가정에서 낳고 자라 파리 3대학, 이이의 학창시절에는 소르본이라고 일컫던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과 비평, 그리고 극작품을 꾸준하게 발표하여 이제는 단골 노벨 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올릴 정도의 필명을 자랑한다. 콩데는 카리브 해역의 농장 인력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아프리카인을 대상으로 하는 노예제도, 식민주의,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페미니즘에 몰두한 것처럼 보인다.


​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콩데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고 하는데, <티투바>의 첫 머리도 주인공 티투바의 어머니 아베나가 부족간의 전쟁에서 패한 아샨티 족으로,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 (배 이름도 참…)“크라이스트 더 킹”호에 실려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 항으로 오는 도중에 갑판 위에서, 모든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한 남자에게 겁탈을 당해 억지로 임신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때가 1660년대 말 정도. 당시 아베나는 열여섯 살이 넘지 않았고, 흑옥 같은 피부에 높이 솟은 광대, 얼굴엔 부족을 나타내는 섬세한 상흔 문신을 지닌 예쁜 소녀로, 어느 백인 농장주가 안 그랬겠느냐만, 잔혹한 농장주 다넬 데이비스의 아내 제니퍼를 위한 몸종으로 팔린다. 제니퍼는 거친 성격의 남편을 증오해, 이제 입 무거운 흑인 노예를 맞아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어 아베나에게는 기댈 수 있는 착한 벗이 되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티투바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데이비스는 비싼 값을 치루고 데려온 노예를, 엔틸리스 제도에서 노예들에게 행했던 관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신했다는 이유 때문에 아베나와 함께 구입한 또 다른 아샨티족 출신의 노예 야오와 짝을 지어준다. 야오는 진심으로 아베나를 사랑했고, 화자 ‘나’가 태어나자 야오가 직접 ‘티투바’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자신의 핏줄 이상으로 극진하게 돌본다. 반면에 어머니는 티투바를 볼 때마다 갑판에서 만인이 보는 와중에 겁탈을 당한 장면이 생각나 진심은 어떤 지 모르겠으나, 티투바를 바라보는 눈길에 사랑은 끼어 있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티투바가 유년시절을 벗어나 일곱 살이 됐을 때, 농장에 나타난 주인 다넬 데이비스의 눈에 아직도 여전한 아름다움을 지닌 흑옥의 아베나가 들어왔고, 주인은 여러 눈치 볼 것 없이 아베나 앞에서 셔츠 단추를 풀고 동시에 바지를 내렸으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갑판 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던 아베나는 옆에 있던 딸 티투바에게 빨리 칼을 달라고 소리쳤고, 티투바는 손에 잡히는 대로 제일 큰 마체테를 집어주었는데, 아베나는 아무 생각없이 즉각 마체테를 들어 다넬 데이비스 ‘주인님’의 목을 겨눠 내리찍어버렸다. 그러나 목을 베는 대신 왼쪽 어깨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끝났지만 백인, 그것도 노예가 노예의 주인에게 칼을 휘두른 대가는 교수형이었으며, 아베나는 ‘나’ 티투바가 보는 앞에서 붉은 솜나무 가지에 낮게 목이 매여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눈이 튀어나오기 시작함과 동시에 혀를 조금 빼물고 다리 사이에선 분뇨를 놓치고 말았다. 아내를 잃은 힘 좋은 노예를 그냥 둘 수 없다. 그렇다고 죽여버릴 수도 없다. 농장주는 야오를 산 너머 사는 농장주 존 잉글우드에게 팔아 넘겼지만 야오는 가는 길에 자신의 혀를 잘라 삼켜버려 스스로의 목숨을 정리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혼자 남은 티투바. 농장주 다넬 데이비스는 티투바를 데리고 있을 수 없어 그냥 쫓아내 버렸다. 흑인 노예 공동체는 절대 어려운 검둥이를 내치는 법이 없어서 아프리카 해안 쪽에 사는 나고족 출신으로 원래 이름이 예툰데이지만 크리올식 이름인 ‘만 야야’라고 불리는 과부가 거두었다. 만 야야는 남편과 두 아들이 바베이도스에서 흔하던 반란 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당한 후 살짝 제정신을 놓아버렸는데, 정신이 나간 그곳에 아프리카 주술의 염력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하여 만 야야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티투바에게 치료와 주술에 관하여 알려주고, 이를 위한 약초와 동식물과 그것들의 배합 및 의식의 세부 사항을 모두 물려주었다. 티투바의 초년 시절에 주위에 벌어진 세 명의 죽음. 만 야야, 엄마 아베나, 그리고 의붓 아버지 야오. 이들의 영혼은 저 먼 강을 건너 안식하는 대신 티투바가 훗날 생을 마감해 스스로도 여전히 세상에 머무를 때까지 아이의 주위에서 끊임없이 애정을 가지고 조언하고, 격려하고, 위안한다. 이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영혼은 당연히 만 야야. 만 야야 할머니는 티투바에게 속삭인다.


​  “넌 살면서 고통을 받을 거다. 많이, 많이. 하지만 넌 살아남을 거다.”


​  농장에서 쫓겨나 저절로 자유를 얻은 티투바는 바베이도스 섬의 외진 곳에서 혼자 움집을 짓고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수호 영혼과 교감하는 생활을 한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어찌하리. 아이의 눈에 들어온 남자. 스무 살 아래로는 보이지 않는 존 인디언. 키가 커서 휘청이고 피부색은 연한 데다가 머리카락이 곱슬거리지 않는 사내. 존의 아버지는 영국인이 학살하지 못한 극소수의 원주민 가운데 한 명으로 8키에(240cm, 과장이겠지)의 장신이었단다. 이이가 아프리카 나고족 여인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만들어서 이름을 존이라 했고, 아버지가 원주민이라는 것만 알아, 이름 뒤에 성姓 비슷하게 ‘인디언’을 덧붙였다. 난데없이 티투바에게 몰아치기 시작한 갈증. 아이는 끓어오르는 갈증을 견디다 못해 만 야야를 불러낸다.

  “만 야야, 그 남자가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만 야야는 안타까이 티투바를 내려보다가 대답한다.

  “남자들은 사랑하지 않아. 소유하지. 노예로 만든다고.”

  아베나의 영혼도 옆에 선다.

  “왜 여자들은 남자 없이 살 수 없는 걸까? 이제 네가 물 저편으로 끌려가게 생겼구나.”


​  물 저편? 그렇다. 존 인디언은 과부 농장주 수재나 엔디콧의 가장 총애하는 노예였다. 검둥이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강퍅한 늙은이이지만 어울리지 않게 완강하게 노예제도를 반대해서 남편이 죽자마자 집안의 모든 노예한테, 존 인디언 한 명만 남기고 전부 자유를 주기도 했다. 수재나 엔디콧은 티투바에게 주술의 힘이 있는 것을 알고, 물론 몰라도 그랬겠지만,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혹독함을 보여주었다. 티투바 역시 여주인을 미워한 것이 당연하고. 누구를 함부로 미워하지 마시라. 미움을 받는 사람 역시 저이가 나를 미워한다는 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같이 미워하게 될 터이니, 티투바는 마음 속으로 주인을 저주했다.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만 야야가 기겁을 해 티투바 앞에 나타나 티투바를 진정시킨다.

  “불편하고 창피한 병에 걸리는 정도만 해.”

  이틀 뒤, 수재나 엔디콧은 목사 부인과 티 타임을 갖던 중 다량의 오줌을 흘리기 시작하고 이후 침대에 누워 극심한 경련을 동반한 악취의 오줌으로 엉덩이를 적시다가 죽고 만다.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기는데, 노예제도 반대자답지 않게 존 인디언을 극도로 교조적인 칼뱅주의 목사 새뮤얼 패리스에게 팔아버린다. 자신의 전 재산을 구호단체에 기부한 반면에. 새뮤얼 패리스 목사는 바베이도스에서 장사를 해 한몫 쥐려 했지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약간의 재산만 늘린 채 이제 고향 보스턴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리하여 자유인 검둥이 티투바도 남편 존 인디언을 따라 날씨도, 사람들 성격도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갑디 차가운 북미 보스턴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


​  <나, 티투바, 세일럼의 마녀>는 처음 읽은 콩데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만 작품의 2부에 접어들어 무대가 바베이도스에서 보스톤을 거쳐 세일럼 마을로 넘어가자마자 다른 두 작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니 하나는 아서 밀러의 <시련>이었고, 다른 하나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였다.

  이 작품은 1692년에서 93년까지 정말로 있었던 마녀 재판을 토대로 쓴 픽션이다. 이 재판을 통해 열아홉 명이 교수형에 처해졌고, 남자 한 명은 누운 상태에서 가슴 위에 차츰 무거운 돌을 올려 놓아 죽게 만드는 압사형을 당했다. 정말로 마녀가 있어서? 그건 안 알려드린다. 마녀의 마법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의 음모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마녀로 몰아 기꺼이 죽게 만드는 연극을 한 단위의 공동체에서 벌이는 일. 여기에 기꺼이 큰 역할을 맡는 소녀, 처녀들. 아서 밀러가 이미 이 주제로 <시련>을 쓴 바 있다. <시련>이 사실에 더 가까운지, 마리즈 콩데의 <…티투바…>가 더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두 작품 다 픽션이라는 점.

  재미있지만 읽기에 불편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아프리칸 디아스포라, 노예제도, 식민주의, 페미니즘, 인종주의까지는 좋은데, 표현이 내 수준에 과하게 직설적이라서. 그래도 이이의 대표작 <세구: 흙의 장벽>은 꼭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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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5-11 0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리뷰 처음 읽어봐요. 저 <시련>은 연극으로 봤는데 이 소설도 그 시대 배경, 비슷한 주제군요.

Falstaff 2023-05-11 15:26   좋아요 1 | URL
연극 보셨군요. 전 희곡만... 그래도 충격이던걸요.

잠자냥 2023-05-11 1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의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 읽고서 골드문트 님처럼 재미는 있지만 좀 불편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저 또한 <세구>는 꼭 읽어야지! 하고 아직 결심만 하고 있는 상태로 멈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5-11 15:26   좋아요 1 | URL
아, 그럼 다른 작품도 그렇다는 말씀이네요.
세구... 좀 걱정되네요. 뭐 인생이죠. ㅋㅋㅋ
 
왕은 없다 대산세계문학총서 183
응우옌후이티엡 지음, 김주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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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소설은 처음 읽는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  작가 응우옌후이티엡은 1950년 4월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이이의 출생시기와 장소, 이 두 가지만 가지고 생각해보면 도무지 응우옌후이티엡이 《왕은 없다》 같은 소설집을 냈다는 게 의아할 수 있다. 1950년 하노이 출생. 유년시대에는 프랑스 군의 잔인한 학살 전쟁을 거쳤고, 이어서 미국과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5년엔 스물다섯 살의 혈기방장한 청년이었을 텐데, 놀랍게도 근세 베트남의 가장 곤고하고 처절한 시기를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집 《왕은 없다》 안에서 독자는 전쟁의 참화와 후유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찾아볼 수 없다. 베트남 현대사에 베트남 전쟁이 마지막 전쟁은 아니었다. 베트남 통일이 정식으로 이루어진 1976년의 바로 다음 해인 1977년엔 캄보디아와의 국경 전쟁이, 1978년부터는 캄보디아와 동맹을 맺은 중국과도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이이가 소설가로 등단한 시기가 1986년임에도 소설은 격변하는 시대상을 산문에 담기 위하여는 일정한 숙성기가 필요하다. 반면에 시는 시인의 감상과 감정이 즉각적으로 터져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시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소설가들은 심지어 70년대까지도 줄기차게 전쟁과 관련한 작품을 쏟아냈다. 21세기에 와서도 5공화국의 독재와 폭력, 그리고 광주항쟁을 소재, 주제로 소설가들은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이런 폭력에 노출된 유년, 소년, 청년기를 거친 작가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자신도 모르게 음각된 상처를 여전히 문자화 할 수밖에 없어서, 베트남에서 딱 이런 시기를 거친 응우옌후이티엡의 작품집에 자신이 겪은 현대사의 상처가 드러나지 않은 것과, 현대사에 관한 숱하게 많을 작품과 작가를 뒤로 하고 딱 이 작가를 선택해 세계문학총서 시리즈의 한 자리를 내준 문학과지성사의 선택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다 아니다를 떠나 감탄과 찬사를 표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이라고 해서 모든 작가가 항 프랑스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만 쓰라는 법은 없다. 지금은 없다. 하지만 응우옌후이티엡이 등단할 무렵인 1986년엔 여전히 소비에트가 건재할 당시라서 성문법은 아니더라도 혁명과 공산주의 체제에 복무하지 않는 문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이랄 것은 연이은 전쟁의 참화와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미국 등의 고립정책, 그리고 자연재해까지 삼중고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그나마 현명했던) 베트남의 지도부는 응우옌후이티엡이 등단한 1986년에 드디어 개혁개방을 통한 발전을 목표로 도이머우 정책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작가의 등단시점이 절묘하게 이때와 맞물려 있는 것이 우연일까, 작가의 의도(서른여섯 살의 늦은 나이에 등단한 것이 혹시 기다림)일까? 어떤 경우라도 일단 《왕은 없다》 안에 실존주의, 리얼리즘, 그것도 아니라면 전쟁문학이 끼어들지 않았던 것은 독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  작품은 상당 부분 중국의 현대소설과 많이 다르고, 적게는 비슷하다. 작가는 전쟁중이던 1970년에 하노이 사범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하노이 출생, 그러니까 대도시인 하노이 토박이다. 그러나 유년 시절엔 프랑스 식민군대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와 함께 북부 평야 지대의 농촌 마을에 유랑을 하며 살았고, 외조부로부터 한학과 한시를 배웠으며, 이때 천주교 마을에서 지내면서 천주교 교리와 성경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작품집 《왕은 없다》의 무대는 하노이를 비롯해 대도시, 중소도시, 시골, 산골, 소수민족이 거주지인 고산지대, 강변 등 거침이 없고 등장인물 역시 인텔리, 부자, 지주, 퇴역군인, 거지, 사냥꾼, 농부, 어부, 소수민족, 벌목꾼, 사기꾼 등을 망라할 수 있었다. 역자 김주영은 해설에서 “심지어”라는 부사까지 보태 말하기를 똥 시장 주인까지 등장시킨다고 했다. 똥 시장은 정말로 사람의 똥, 인분, 발효하지 않아서 “생 인분”이라 표시한 막 눈 똥을 거름용으로 판매하는 시장을 일컬으며, 똥 시장의 주인 혹은 매니저 또는 지배인은 아무리 자신이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쉽게 자신의 직업을 밝히지 못하는 일종의 열등감이랄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을 터, 이런 직업인까지 통틀어 집합시켰다. 불과 열다섯 편의 단편 소설을 실은 책 한 권에. 등장하는 종교도 베트남의 토속신앙, 불교, 유교, 천주교, 심지어 샤머니즘까지 뭐 하나 더 보탤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 사는 맛이 나고 사람 냄새가 난다. 중국 소설처럼 악착같고 복수 같은 거 좋아하는 점도 있지만 그들처럼 과하지 않으며, 한 사건이 있으면 그것이 어차피 그렇게 마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다 그런 것이지, 라는 식으로 맺어지는 것이 많다. 굴곡 많은 시절을 누구 하나 징글징글하게 살지 않은 이가 있었겠는가만 응우옌후이티엡은 “사는 건 참 쉽지.”라고 말해버리고 만다. 지금, 21세기의 우리나라 독자들이 읽기엔 작품이 세련되었다고는 도저히 할 수 없지만 세상의 모든 소설이 세련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세련 대신에 뭔가 독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세련보다 더 바람직할 수도 있는 바, 읽어보시라. 간혹 이이의 작품은 따듯하기도 하다. 따듯해서 해피엔드? 천만의 말씀. 전도연과 최민식 커플의 영화 <헤피 엔드>가 정말 해피했나? 해피하게 끝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따듯할 수도 있고, 해탈할 수도 있고, 초월할 수도 있다.

  “투박한 온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은 다만 조심하시라고 얘기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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