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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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즈 콩데.  카리브 해에 올망졸망하게 늘어서 있는 열도 가운데 프랑스령 과들루프에서 작은 은행을 설립한 오귀스트 부콜롱과 여학교 교사 잔느 퀴달 부부가 낳은 여덟 남매의 막내로 1937년에 태어났다. 나름대로 유복한 가정에서 낳고 자라 파리 3대학, 이이의 학창시절에는 소르본이라고 일컫던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과 비평, 그리고 극작품을 꾸준하게 발표하여 이제는 단골 노벨 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올릴 정도의 필명을 자랑한다. 콩데는 카리브 해역의 농장 인력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아프리카인을 대상으로 하는 노예제도, 식민주의,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페미니즘에 몰두한 것처럼 보인다.


​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콩데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고 하는데, <티투바>의 첫 머리도 주인공 티투바의 어머니 아베나가 부족간의 전쟁에서 패한 아샨티 족으로,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 (배 이름도 참…)“크라이스트 더 킹”호에 실려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 항으로 오는 도중에 갑판 위에서, 모든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한 남자에게 겁탈을 당해 억지로 임신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때가 1660년대 말 정도. 당시 아베나는 열여섯 살이 넘지 않았고, 흑옥 같은 피부에 높이 솟은 광대, 얼굴엔 부족을 나타내는 섬세한 상흔 문신을 지닌 예쁜 소녀로, 어느 백인 농장주가 안 그랬겠느냐만, 잔혹한 농장주 다넬 데이비스의 아내 제니퍼를 위한 몸종으로 팔린다. 제니퍼는 거친 성격의 남편을 증오해, 이제 입 무거운 흑인 노예를 맞아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어 아베나에게는 기댈 수 있는 착한 벗이 되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티투바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데이비스는 비싼 값을 치루고 데려온 노예를, 엔틸리스 제도에서 노예들에게 행했던 관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신했다는 이유 때문에 아베나와 함께 구입한 또 다른 아샨티족 출신의 노예 야오와 짝을 지어준다. 야오는 진심으로 아베나를 사랑했고, 화자 ‘나’가 태어나자 야오가 직접 ‘티투바’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자신의 핏줄 이상으로 극진하게 돌본다. 반면에 어머니는 티투바를 볼 때마다 갑판에서 만인이 보는 와중에 겁탈을 당한 장면이 생각나 진심은 어떤 지 모르겠으나, 티투바를 바라보는 눈길에 사랑은 끼어 있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티투바가 유년시절을 벗어나 일곱 살이 됐을 때, 농장에 나타난 주인 다넬 데이비스의 눈에 아직도 여전한 아름다움을 지닌 흑옥의 아베나가 들어왔고, 주인은 여러 눈치 볼 것 없이 아베나 앞에서 셔츠 단추를 풀고 동시에 바지를 내렸으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갑판 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던 아베나는 옆에 있던 딸 티투바에게 빨리 칼을 달라고 소리쳤고, 티투바는 손에 잡히는 대로 제일 큰 마체테를 집어주었는데, 아베나는 아무 생각없이 즉각 마체테를 들어 다넬 데이비스 ‘주인님’의 목을 겨눠 내리찍어버렸다. 그러나 목을 베는 대신 왼쪽 어깨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끝났지만 백인, 그것도 노예가 노예의 주인에게 칼을 휘두른 대가는 교수형이었으며, 아베나는 ‘나’ 티투바가 보는 앞에서 붉은 솜나무 가지에 낮게 목이 매여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눈이 튀어나오기 시작함과 동시에 혀를 조금 빼물고 다리 사이에선 분뇨를 놓치고 말았다. 아내를 잃은 힘 좋은 노예를 그냥 둘 수 없다. 그렇다고 죽여버릴 수도 없다. 농장주는 야오를 산 너머 사는 농장주 존 잉글우드에게 팔아 넘겼지만 야오는 가는 길에 자신의 혀를 잘라 삼켜버려 스스로의 목숨을 정리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혼자 남은 티투바. 농장주 다넬 데이비스는 티투바를 데리고 있을 수 없어 그냥 쫓아내 버렸다. 흑인 노예 공동체는 절대 어려운 검둥이를 내치는 법이 없어서 아프리카 해안 쪽에 사는 나고족 출신으로 원래 이름이 예툰데이지만 크리올식 이름인 ‘만 야야’라고 불리는 과부가 거두었다. 만 야야는 남편과 두 아들이 바베이도스에서 흔하던 반란 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당한 후 살짝 제정신을 놓아버렸는데, 정신이 나간 그곳에 아프리카 주술의 염력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하여 만 야야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티투바에게 치료와 주술에 관하여 알려주고, 이를 위한 약초와 동식물과 그것들의 배합 및 의식의 세부 사항을 모두 물려주었다. 티투바의 초년 시절에 주위에 벌어진 세 명의 죽음. 만 야야, 엄마 아베나, 그리고 의붓 아버지 야오. 이들의 영혼은 저 먼 강을 건너 안식하는 대신 티투바가 훗날 생을 마감해 스스로도 여전히 세상에 머무를 때까지 아이의 주위에서 끊임없이 애정을 가지고 조언하고, 격려하고, 위안한다. 이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영혼은 당연히 만 야야. 만 야야 할머니는 티투바에게 속삭인다.


​  “넌 살면서 고통을 받을 거다. 많이, 많이. 하지만 넌 살아남을 거다.”


​  농장에서 쫓겨나 저절로 자유를 얻은 티투바는 바베이도스 섬의 외진 곳에서 혼자 움집을 짓고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수호 영혼과 교감하는 생활을 한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어찌하리. 아이의 눈에 들어온 남자. 스무 살 아래로는 보이지 않는 존 인디언. 키가 커서 휘청이고 피부색은 연한 데다가 머리카락이 곱슬거리지 않는 사내. 존의 아버지는 영국인이 학살하지 못한 극소수의 원주민 가운데 한 명으로 8키에(240cm, 과장이겠지)의 장신이었단다. 이이가 아프리카 나고족 여인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만들어서 이름을 존이라 했고, 아버지가 원주민이라는 것만 알아, 이름 뒤에 성姓 비슷하게 ‘인디언’을 덧붙였다. 난데없이 티투바에게 몰아치기 시작한 갈증. 아이는 끓어오르는 갈증을 견디다 못해 만 야야를 불러낸다.

  “만 야야, 그 남자가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만 야야는 안타까이 티투바를 내려보다가 대답한다.

  “남자들은 사랑하지 않아. 소유하지. 노예로 만든다고.”

  아베나의 영혼도 옆에 선다.

  “왜 여자들은 남자 없이 살 수 없는 걸까? 이제 네가 물 저편으로 끌려가게 생겼구나.”


​  물 저편? 그렇다. 존 인디언은 과부 농장주 수재나 엔디콧의 가장 총애하는 노예였다. 검둥이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강퍅한 늙은이이지만 어울리지 않게 완강하게 노예제도를 반대해서 남편이 죽자마자 집안의 모든 노예한테, 존 인디언 한 명만 남기고 전부 자유를 주기도 했다. 수재나 엔디콧은 티투바에게 주술의 힘이 있는 것을 알고, 물론 몰라도 그랬겠지만,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혹독함을 보여주었다. 티투바 역시 여주인을 미워한 것이 당연하고. 누구를 함부로 미워하지 마시라. 미움을 받는 사람 역시 저이가 나를 미워한다는 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같이 미워하게 될 터이니, 티투바는 마음 속으로 주인을 저주했다.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만 야야가 기겁을 해 티투바 앞에 나타나 티투바를 진정시킨다.

  “불편하고 창피한 병에 걸리는 정도만 해.”

  이틀 뒤, 수재나 엔디콧은 목사 부인과 티 타임을 갖던 중 다량의 오줌을 흘리기 시작하고 이후 침대에 누워 극심한 경련을 동반한 악취의 오줌으로 엉덩이를 적시다가 죽고 만다.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기는데, 노예제도 반대자답지 않게 존 인디언을 극도로 교조적인 칼뱅주의 목사 새뮤얼 패리스에게 팔아버린다. 자신의 전 재산을 구호단체에 기부한 반면에. 새뮤얼 패리스 목사는 바베이도스에서 장사를 해 한몫 쥐려 했지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약간의 재산만 늘린 채 이제 고향 보스턴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리하여 자유인 검둥이 티투바도 남편 존 인디언을 따라 날씨도, 사람들 성격도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갑디 차가운 북미 보스턴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


​  <나, 티투바, 세일럼의 마녀>는 처음 읽은 콩데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만 작품의 2부에 접어들어 무대가 바베이도스에서 보스톤을 거쳐 세일럼 마을로 넘어가자마자 다른 두 작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니 하나는 아서 밀러의 <시련>이었고, 다른 하나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였다.

  이 작품은 1692년에서 93년까지 정말로 있었던 마녀 재판을 토대로 쓴 픽션이다. 이 재판을 통해 열아홉 명이 교수형에 처해졌고, 남자 한 명은 누운 상태에서 가슴 위에 차츰 무거운 돌을 올려 놓아 죽게 만드는 압사형을 당했다. 정말로 마녀가 있어서? 그건 안 알려드린다. 마녀의 마법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의 음모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마녀로 몰아 기꺼이 죽게 만드는 연극을 한 단위의 공동체에서 벌이는 일. 여기에 기꺼이 큰 역할을 맡는 소녀, 처녀들. 아서 밀러가 이미 이 주제로 <시련>을 쓴 바 있다. <시련>이 사실에 더 가까운지, 마리즈 콩데의 <…티투바…>가 더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두 작품 다 픽션이라는 점.

  재미있지만 읽기에 불편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아프리칸 디아스포라, 노예제도, 식민주의, 페미니즘, 인종주의까지는 좋은데, 표현이 내 수준에 과하게 직설적이라서. 그래도 이이의 대표작 <세구: 흙의 장벽>은 꼭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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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5-11 0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리뷰 처음 읽어봐요. 저 <시련>은 연극으로 봤는데 이 소설도 그 시대 배경, 비슷한 주제군요.

Falstaff 2023-05-11 15:26   좋아요 1 | URL
연극 보셨군요. 전 희곡만... 그래도 충격이던걸요.

잠자냥 2023-05-11 1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의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 읽고서 골드문트 님처럼 재미는 있지만 좀 불편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저 또한 <세구>는 꼭 읽어야지! 하고 아직 결심만 하고 있는 상태로 멈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5-11 15:26   좋아요 1 | URL
아, 그럼 다른 작품도 그렇다는 말씀이네요.
세구... 좀 걱정되네요. 뭐 인생이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