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제국 쇠망사 4권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인재도 없고, 온갖 두억시니같은 야만족들만 득시글거리는 한심한 나라. 그러나 부잣집 망하는 데도 3년은 간다고 아직 영웅적인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로마의 영원한 곡창이었던 아프리카를 평정하고 동쪽의 페르시아와 한 바탕 싸움을 해 어느 정도 기틀을 잡는 것처럼 보이는 가짜 평화시대. 이동안 온갖 야만인들은 과거 로마의 국경을 넘어 자기들만의 세력을 키우기도 하고 옆 종족과 본격적인 땅따먹기 싸움도 시작하던 시기.........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의 원래 구상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만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이 열심히 하던 일을 갑자기 뚝 그쳐버렸을 때 쏟아지는 현타를 가뿐하게 극복할 수 없게시리 디자인되어 있다. 그리하여 기번은 애초의 마음을 바꿔 동로마제국의 멸망까지 몽땅 다 저술에 포함시키기로 마음먹는다. 내가 뭐 기번 전문가라서 아는 게 아니고, 이 책의 1권 시작할 때 기번의 서문에 작자가 그랬다고 써 놓았다.
서로마제국이 셔터를 내리는 직접 원인은 어디에 있다? 아마추어 역사 애호가로 말하자면 통일 중국의 한나라, 그것도 전한 시대에 있다. 유방이 죽고 여씨 황후가 패권을 잡았을 당시 북쪽에 있던 흉노가 쳐들어와 실제로 과부가 된 여씨 황후에게 못된 말(나한테 남는 걸로 너의 빈 곳을 운운)로 히야까시를 거는 등 오만방자한 짓거리도 서슴지 않을 정도의 힘을 과시했던 흉노족. 원제 때에는 선우라고 불린 흉노의 족장이 한나라를 방문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녀 가운데 한 명인 왕소군을 얻어 가 첩을 삼기도 했을 정도다. 한나라는 왕조를 접을 때까지 흉노족 이야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도질 정도로 질색을 했는데, 이리하여 서역 지역에 최고의 명장군과 군대를 파견하여 야만인 족속이 눈에 띄는 족족 잡아죽이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이때 발생한 사건이 이릉의 난, 결과로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다), 처음엔 전과 다름없이 약탈을 서슴지 않던 흉노족의 기세도 점점 눅어져 그만 자신들의 사는 터를 포기하고 서쪽 초원, 벌판으로 이동해가며 현지인들의 세를 규합해 점점 규모가 커져, 타슈켄트, 사마르칸트를 거쳐 시베리아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심지어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일차 왕림하셨다가 거기 바로 아래 게르만 족들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버리기 시작한 거다. 훈족으로 변한 흉노족에 당시에 어띨라 라는 영웅이 나타나 서로마 제국 성문 앞에서 직접 로마 제국의 문을 닫아주려 할 때, 제국에선 일설에 의하면 공주, 다른 일설에 의하면 궁녀 한 명을 어띨러에게 주는 걸로 타협을 봤고, 기분이 좋아진 어띨러는 부하들과 음주가무를 즐긴 후 황녀(또는 궁녀)와의 첫날 밤에 복상사를 해버려 거위의 꿈은 그냥 물거품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때 훈족의 대 이동에 밀려 엉겁결에 서쪽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숱한 야만인들이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남의 땅에서 뭐 할 게 없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월등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로마 제국의 국경을 넘어 노략질을 시작하게 됐고, 로마 제국이 이미 힘이 빠졌다는 걸 눈치챈 야만인들이 계속해서 집요하게 괴롭히는 바람에 정식 이름대신 멸칭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라고 불리는 마지막 황제 때 결국 망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어떻게 됐겠는가. 로마 제국 북쪽의 광활한 식민지가. 당연하지. 지금은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으로 불리는 나라들의 조상들이 땅을 점령해 노상 접경지역에서 땅 따먹기 싸움을 해가면서 국가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탈리아 땅은? 고트 족이라고, 염소를 뜻하는 goat가 아니라 원래는 스칸디나비아 남쪽에 있던 고트Goths 족으로 이 야만인이 세를 불리더니 이탈리아에 들어와 살았다. 세월이 흘러 고트 족에 테오도리크라는 영웅적인 왕이 등장해 이탈리아 반도 전부를 잡숴버렸다. 이민족이라 인구가 별로 없지만 월등한 무력으로 이탈리아 지역 원주민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원래 서로마 제국의 원주민이잖은가. 그래 아직도 왕조를 이어가고 있던 동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명권을 지켜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부채감이 있었고,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채택된 것도 벌써 2백년이 넘어, 그래봐야 6세기 말, 7세기 초까지도 교황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아직 장가도 들고, 홀아비가 되면 새장가도 들고, 아이들도 다스dozen로 낳고 그랬던 시기이긴 하지만, 로마 시내에 교황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일부는 여전히 ‘왕 대주교’라고 불리기도 하던 성직자와 그의 일당들도 보호해야 해서 고트 족과의 일전은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트 족의 왕 테오도리크는 어려서부터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비잔티움에 가서 교육을 받아 로마 적的 정치술과 처세에 능한 능구렁이라 이리저리 비위를 잘 맞추면서 동로마 제국과 별로 문제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 동쪽과는 사이를 좋게 해 놓은 테오도리크는 힘을 모아 북쪽에서 쉴 새 없이 이탈리아 영토에 껄떡거리는 다른 야만족의 침략을 분쇄하기도 하고 그들과 연합하는 대신 공물을 받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었다. 이런 자가 로마 제국의 황제였으면 함포고복의 태평성대를 맞았을 텐데. 이때 동로마의 황제는 제논이었으며, 제논이 이름 낸 분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게으름이었다던가 뭐라던가 하여간 그랬다.
문제는 이렇게 현명한 지도자가 죽은 후. 동로마에서는 제논에 이어 아나스타시우스, 유스티누스 1세에 이어 유스티아누스가 등극했고, 이탈리아에서도 테오도리크가 딸 하나만 남긴 채 숨을 거두어 이제 본격적인 이탈리아 전쟁에 돌입했다. (동)고트족은 이베리아 반도 산악지역에 자리잡은 서고트족을 규합하고, 동로마는 위대하지만 더러운 팔자의 장군 벨리사리우스를 대장군으로 임명해 한 바탕 큰 전쟁을 치룬다. 결과는? 동로마 제국의 상처뿐인 승리. 황제 유스티아누스는 동로마의 현제 테오도시우스와는 달리 오금이 저려서 전선엔 나가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벨리사리우스를 총대장을 삼아 아프리카 점령, 동쪽 속지 정리, 페르시아 전쟁 수행을 하게 해 놓고, 이제 또 이탈리아를 공격하게 만든다.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이미 동로마는 국가의 부와 규모가 대규모 전쟁을 연속해서 치룰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 군수품, 군인들에게 줄 임금, 식량, 무기 등 모든 병참과 인력이 태 부족이면서도 전쟁을 벌여 반드시 승리할 것을 주문했다. 누가? 당연히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그러니 충성스럽고, 전쟁지능에 관한 한 거의 제갈량 수준이지만, 공처가에다가 반골기질이 전혀 없는 용감한 벨리사리우스 대장만 죽어났던 거다. 그런데 희한하지.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전쟁을 했음에도 벨리사리우스가 떴다 하면, 적은 병력과 조악한 병참, 허약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장군을 따르는 전사들이,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한 노병들은 절대 질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고, 정말로 늙었지만 아직도 힘이 철철 나는 장군의 신묘한 용병, 놀라운 지형지물의 사용으로 딱 한 번 이기지 못한 것(절대 지지 않았다. 이기지 못했던 뿐)만 빼면 싸운 족족 승리를 거두었는데, 황제 유스티아누스, 이게 또 못난 군주의 전형이라서, 꼴에 황제라고, 장군의 승리를 축하하지는 못할 망정, 질투에 싸여 콧김만 뿜어대다가 나중에는 지휘권을 또다른 영웅인 환관 나르세스에게 넘겼고, 나르세스가 최종적으로 이탈리아를 완전 정복하게 된다.
그럼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콘스탄티노플로 불러들여 이모저모로 꼬투리 잡을 거 없나, 샅샅이 뒤져본다. 그러다가 전리품의 일부를 장군이 착복했다는 걸 발견하고, 이를 트집잡아 재산 거의 다를 압수해버리고 죽일까, 말까, 죽일까, 살릴까, 고민하다 워낙 유명한 영웅이자 장군이니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저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집 하나를 주고 거의 위리안치 시켜 버린다. 내가 벨리사리우스 장군이라면 속이 다 시원했을 거 같다. 원래 노는 여자였던 아내 안토니나는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동안 트라키아의 젊은이 테오도시우스를 만나 밤드리 노니다가 오고는 했는데, 전쟁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백치와 비슷했던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두 남녀가 노닥거리는 걸 자기의 눈으로 보고도, 아이, 우린 그냥 친구 사이야, 하는 안토니나의 말 한 마디에 그런가 보다, 했단다.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다음으로 치고 말이지. 결국 전리품 일부의 개인 사용도 기번은 부정한 아내 안토니나 때문이었던 것처럼 몰고가기도 하는데, 역사책 읽으면서는 역사가의 말은 그대로 믿지 않는 편이 좋다.
하여간 <로마제국 쇠망사 4>에서는 동로마 제국이 황황하게 스러져가는 모습이 하도 짠해서 개운하게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잘 읽었다. 에드워드 기번이 글 하나는 재미있게 써서 큰 판형에 6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기독교에 관한 챕터만 빼고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왜 그리스도 교 관련한 글은 아예 읽기가 싫은 건지 모르겠다. 명색이 모태신앙이면서. 열 살 이후에 예배당 가본 적은 없지만. 우리 집에선 나 때문에 추도식 안 하고 제사 지낸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