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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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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난 작가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는 반유대주의법인 뉘른베르크 법이 통과되자 1935년에 스칸디나비아로 이주했다. 3년 후인 1938년 11월 7일부터 13일까지 베를린을 필두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 서기관 에른스트 에두아르트 폼 라트만이 열일곱 살의 폴란드 유대인 헤르셸 그린스판에게 저격당해 사망한 사건을 빌미로 ‘수정의 밤’이라 불릴 유대인에 대한 포그롬이 벌어진다. 보슈비츠 일가는 아마도 독일을 그나마 쉽게 탈출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잡았던 듯하다. 실제로 수정의 밤이 있던 1938년에는 대거 주변국으로 탈출하는 독일 지역의 유대인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인접국들이 국경 경비를 강화해 독일 탈출이 거의 불가능했다. 독일 거주 유대인들은 집단 폭행과 체포에 이은 수용소 수감의 공포에 시달리고 그렇다고 해서 국외 탈출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23세의 유대인 작가 보슈비츠는 아마도 가장 먼저 수정의 밤을 주제로 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다.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다. 누이클라리사는 이미 스위스를 거쳐 가족 누구보다 먼저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후였다. 이렇게 작품은 1939년에 영국에서, 40년에 미국에서 출간한다. 그러나 저자 자신은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 다른 독일인과 함께 영국 내 수용소에 수감되고, 1940년에 오스트레일리아 포로수용소로 이송된다. 독일인, 독일군과 함께 수용된 유대인 보슈비츠는 수용소에서 다시 당할 수밖에 없던 차별과 멸시 속에서 <여행자>를 고쳐 쓰는 작업을 하며 견뎌낸다. 이렇게 고쳐 쓴 앞부분을 어머니에게 우편으로 보냈고, 뒷부분은 자기 품에 품은 채 1942년 10월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탔으나, 배가 독일군 U-보트가 쏜 어뢰를 맞아 작가는 원고와 함께 침몰해버린다. 세월이 흐르고 독일의 한 출판사 편집자 페터 그라프는 <여행자>를 뒤늦게 읽고 이를 독일에서도 출간하고자 노력을 기울여 팔레스타인으로 간 누이 클라리사의 딸과 연락이 닿고, 작품의 초고가 프랑크푸르트 소재 독일국립도서관 망명 기록 문서실에 있다는 걸 알고, 그것을 타이프로 쳐서, 유족과 합의 하에 작품을 편집해 2017년 세상에 내놓았으니, 유대인, 독일 유대인 포로, 작품 <여행자>에 어울리는 내력일 수 있을까?
작품의 주인공 오토 질버만. ‘질버만’이라는 유대식 이름만 빼고 그를 관찰해보면 어느 한 구석 아리아 인이 아닌 구석을 발견하기 어렵다. 금발, 장신과 건장한 몸, 결코 매부리를 닮지 않은 코, 파란 눈까지, 인종학에 따른 유대인의 외모적 특징을 1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도 살아생전 한 번도 독일인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업가이자 부르주아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해 마른 전투, 이제르 전투, 솜 전투 등 서부전선에서 가장 악명을 떨쳤던 치열한 전투를 전부 경험했으며, 전쟁 후에는 아버지에게 5만 마르크를 빌어 사업을 시작해, 물론 절세할 수 있는 한 절세하면서, 간혹 꼭 내야 하는 세금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이유로 기피하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많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며 살았다. 아내 엘프리데는 당연히 전통 아리안 족이며, 아들 에두아르트는 파리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부모의 입국 허가증을 받아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위협을 당하기는 하지만 재산도 있고 아직은 권리를 침해받지 않는 시민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스스로도 믿고, 방 여섯 개짜리 현대식 아파트에 사는 입주자들도 그들과 완전히 똑같은 부류로 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1938년 11월 7일 저녁 때까지는.
이날 오후, 오토 질버만은 1차 세계대전에 함께 참전한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친구이자 자금을 대지 않은 유한책임 동업자로 동고동락한 구스타프 베커와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시작한다. 질버만에게 베커는 점점 난감한 동업자가 되고 있다. 베커가 도박에 빠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무슨 돈이 있어 도박장에 드나들겠는가? 아니, 그럴 수 있다고 치고, 만일 도박장에서 돈을 잃는다면 틀림없이 회사의 돈을 잃는 것일 터인데, 그건 어느 의미에서 질버만 자신의 돈이다. 자금을 대지 않은 동업자는 말이 좋아 동업자이지 사실상 피고용인, 대리인의 신분 이상이 아니다. 질버만은 베커에게 이 사실을 마음 상하지 않게 이야기하려 애쓴다. 그런데 오늘 오후, 베커가 하는 말이 좀 야릇하다.
“나는 국가사회주의자야. 내가 자네에게 사실을 숨긴 적은 한 번도 없어. 자네가 다른 유대인들처럼 진짜 유대인이었다면 나는 아마 자네의 대리인이었겠지. 동업자는 절대 하지 않았을 걸세! 나는 유대인 사회에 끼어들어 유대인 노릇하는 이방인이 아니야. 한 번도 그런 적 없네. (중략) 내가 반유대주의자라면 이런 (질버만이 한 이야기) 명령 투를 용납하지 않았을 걸세. 안 하고말고! 아무도 나에게 명령하지 못해! 자네만 빼고 말이지. (껄걸 웃으며) 그런데 이런 자가 유대인이라니!”
이런 말을 남기고 구스트프 베커는 출장지인 함부르크 기차를 타러 떠났다.
자기 집이 있는 “현대식 건물”에 도착해 이웃인 고문관 쳉켈 부인을 현관 앞에서 만난다. 쳉켈 부인이 따뜻한 시선으로 질버만에게 말한다.
“당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공정하고 현명하게 생각해야 해요.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누가 물어봤나? 왜 사업가 질버만에게 부당한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고 하지? 아무리 사업만 아는 질버만 사장이라고 해도 눈귀가 막힌 것은 아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어떤 극한 상황에 몰리기 시작한 지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파리에 있는 아들 에두아르트에게 부부의 입국허가를 서둘러 받으라고 독촉을 하고 있는 거다.
집에 들어가니 손님이 와 있다. 테오 핀들러. 벌써부터 질버만에게 집을 팔라고 권하던 이다. 당연히 얼토당토않게 싼 가격을 제시하면서. 질버만이 생각하기를 자기 집의 적정한 가격은 아무리 싸게 보더라도 20만 마르크 아래로는 매길 수 없다. 유대인들로부터 그들의 재산을 헐값에 빼앗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향유하고자 하는 소수의, 그러나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닌 독일인 가운데 한 명인 핀들러는 사실 별로 틀리지 않은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유대인 질버만은 그걸 선뜻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질버만은 9만 마르크, 대금 중 3만 마르크는 현금, 나머지는 저당권 2순위로 지불하라고 요구한다. 핀들러는 제의에 코웃음을 치며 처음엔 그냥 인수를 해주겠다고 한다. 어차피 국경을 넘을 때 현금을 다 빼앗길 것이니 뭐하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려 하느냐면서. 그러다가 1만5천을 제안한다.
이때 56세 먹은 누이동생 힐데한테 온 전화를 받는다. 거의 십대 소년들로 구성된 돌격대원, 친위대원이 집안에 난입해 남편 귄터를 구타하고 체포해 갔다고. 아마 포로수용소로 보낸 거 같다며 거의 히스테리 상태로, 오빠도 몸 조심하고 그 사람들이 언제 자기 집에 또 올 줄 모르니 자기한테 들를 생각도 하지 말라 한다. 사태가 긴박해진 것을 느낀 질버만이 다시 응접실로 돌아오자, 핀들러의 수정 제안이 기다리고 있다. 1만5천에서 1만4천으로. 흥분한 질버만. 아니 이럴 수도 있나? 그러나 질버만을 호출하는 초인종이 긴박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이곳에도 돌격대원, 친위대원이 몰려온 거다. 핀들러가 이때 말한다. 뒷문으로 피하라고. 엘프리데는 아리아 인이니 별 문제가 없을 터, 질버만 당신만 피하면 된다고. 그러면서 한 번 더 제안을 수정한다. 1만. 질버만이 생각하는 최하 적정가 20만 마르크의 5퍼센트에 불과한 1만. 질버만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빨리 떠나십시오. 여기는 독일인인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공증 받을 때까지 당신은 살아 있어야 하니까.”
질버만은 그렇게 도주하고, 대신 미소를 머금고 활짝 열어준 현관문을 벌컥 밀고 들어온 돌격대와 친위대 청소년들은, 유대인의 집이니 앞에 선 핀들러가 당연히 이 집의 주인인 유대인이라고 여겨 단호한 동작으로 폭행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집에서 쫓겨난 오토 질버만. 지갑에는 겨우 180마르크가 들었을 뿐이다. 책상 서랍에 훨씬 많은 돈이 있었는데 그걸 챙길 시간이 없었다. 어디를 갈 수 있을까? 아내 말대로 호텔에 가본들 ‘질버만’이라는 이름으로 숙박계를 쓸 수나 있을까? 아니나 달라, 혹시나 해서 가 본 호텔의 매니저 로제는 질버만을 보자 난처한 표정으로 질버만의 악수하려는 손을 거절하고 호텔리어다운 온화한 말투로 숙박을 거절한다. 선생께서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어디로 가지? 다른 호텔 앞에서 만난 프리츠 슈타인. 슈타인 회사의 소유자였던 인물이다. 역시 집에서 도망나와 먹을 것이 없어 거리를 배회중이다. 질버만은 그에게 50마르크를 건네준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디로 가지? 궁리하다 떠오른 인물 한 명. 거의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20년이 넘는 우정을 닦은 친구. 구스타프 베커. 그가 있는 함부르크로 가자. 이 순간, 갑자기 떠오른 의문, 의문, 또 의문.
“오늘 도대체 베커가 왜 알려주지 않았지? 뭐든 미리 아는 사람 아닌가?” 소름끼치는 의구심이 솟는다. “베커가 기회를 잡은 거야. 내가 그의 손에 있잖아. 내 재산을 전부 순식간에 빼앗을 수 있어. 베커는 나치고, 그것을 숨긴 적도 없어. (경제적)기반(현금)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없다고 하던 동료. 반평생이나 알고 지내던 사이라도 지금은 무엇이든 의심하는 시대. 흔들리면 안 돼!”
이 유대인, 곤경에 처한 유대인은 국가사회주의자들의 공동체에 대고 이렇게 외친다.
“그보다 더 나쁘고, 더 멍청하고, 더 잔인한 공동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선량한 소수는 사악한 다수보다 여전히 나은 법이지요.”
오토 질버만을 포함한 당시에 희생당한 숱한 유대인들이 진정으로 안타깝고, 그들을 애도하지만, 질버만 선생, 당신이 틀렸어. 문제는 국가사회주의 공동체가 아니라 권력. 언제나처럼 문제는 권력이라니까. 선생이 곤욕을 당하고 불과 십년도 되지 않아 유대인 공동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하기 시작한 폭력을 생각해봐. 지금 내 머리엔 군인이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소이탄이 저절로 떠올라, 당신이 당하고 있는 애타는 광경에 그렇게 깊게 감정을 몰입시킬 수 없더라고. 유대인들도 권력, 무력이 생기자마자 독일 국가사회주의자들과 흡사한 폭력을 구사해. 언제나 문제는 권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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