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애로우스미스 上 의사과학자 애로우스미스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유진홍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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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년에 출간해 퓰리처 상을 받은 작품. 출간 백년을 맞아 가톨릭대학 감염내과 교수 유진홍의 번역으로 군자출판사에서 나왔다. 군자출판사는 의학서적 출판을 주로 하는 회사인데 의학, 약학, 치의학, 한의학, 보건학, 간호학 등등 가리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의사과학자 애로우스미스> 역시 의학 관련 서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예일대를 졸업한 문과생이 쓴 완전한 소설책이다.


  주인공 마틴 애로우스미스는 미국의 가상의 주State인 위네멕Winnemac주에서도 시골인 엘크 밀스에서 태어나 자랐다. 소설은 마틴의 소년 시절부터 순서대로 시계바늘 따라 착착 흘러간다. 쓸데없이 과거 회상에 몇 십페이지를 할애하는 잔 수는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읽다가 아리송한 기분이 들어 다시 앞 페이지로 넘겨 확인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착한 책이다.

  엘크 밀스에는 단 한 명의 의사가 있었으니 닥터 비커슨. 지저분하고 통제가 안 되는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어린 마틴에게 의학은 비즈니스 같은 돈벌이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어서 마틴에게 의사 공부를 하라고 독려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의사의 서가에 있어야 하는 세 종류의 책으로 그레이 씨가 쓴 해부학, 성경,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꼽았다. 비커슨 선생은 화학과 생물학을 공부하고, 대학 학부를 거쳐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가라고 충고했다. 애초에 의과대학에 입학하지 말고 학부에서 수학, 물리, 화학, 생물학을 충분히 공부한 후에 비로소 의학을 전공하라는 취지였다. 이건 후에 당대 최고의 의과학자이자 마틴의 평생 스승인 유대계 독일인 막스 고틀립 박사의 가르침과 합치한다.

  마틴 애로우스미스는 ‘뉴욕의류바자’를 운영하는 J.J. 애로우스미스 씨의 아들로 14세인 1897년에 비공식 무급 조수 일을 해주던 닥터 비커슨의 가르침을 새겨 위네멕 대학에 입학해 육상선수 겸 농구팀 센터, 맹렬한 하키선수 경력으로 졸업했다. 가상의 웨네멕주는 미시간, 오하이오, 일리노이, 인디애나와 경계를 하고 있다니 중서부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주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드디어 의예과에 입학했을 때는 고향의 부모와 비커슨 선생 모두 생을 접었다. 부모는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쓸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남겼다. 즉, 의사가 되는 순간 마틴은 주머니가 텅 빈 상태가 되어 개업할 돈이 없으니 무조건 취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의대에 진학해 마틴의 전 생애를 걸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칠 진정한 스승이자 세균학 교수인 막스 고틀립의 강의에 수강신청을 한다. 그러나 장렬한 퇴짜. 어두운 분위기에 냉담한 인상, 그리고 인간미 없는 인물로 이름이 난 고틀립 교수는 먼저 화학과 물리학을 더 배우고 1년 후에 자기 수업을 들으라고 지시한다. 고틀롭 교수는 면역학, 세균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것은 맞지만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직업에 관심이 별로 없고, 의사라는 돈벌이에는 더욱 관심이 없다. 오직 세균과 면역에 관한 연구만 하고 싶어하는 말 그대로 과학자. 딱 연구와 실험에만 몰두한다. 그것도 아주 고집스럽게. 완전한 논문이 아니면 발표도 하지 않아 다른 교수들과 비교하면 약 1/5 수준의 논문만 의학지에 게재할 뿐이다.

  마틴은 의과대학에서 여러 의대생을 사귀고 고급 친목 동아리 디감마 파이Digamma Pi라는 클럽에도 가입한다. 이 가운데 포츠버그 기독교 대학 졸업생 아이라 힝클리는 기독교 광신도로 서인도제도에 의료선교를 갔다가 페스트 구제에 나선 마틴과 상봉한다. 학교에 몇 안 되는 학부 졸업생이자 장차 의대를 수석졸업하고 훗날 부자들을 위한 과도한 처치와 과도한 시술을 특기로 떼돈을 벌고 출세도 할 애어스 듀어, 괜찮은 산부인과 개업의가 될 찌질한 뚱보 파프, 살집이 많고 가난한 익살꾼이자 의사 공부를 중도 작파하고 승용차딜러를 거쳐 사기꾼으로 입신양명할 절친 중의 절친이자 기숙사 룸메이트 클리프 클로슨 등이 있다. 뚱보 파프를 제외하고 훗날 다시 만나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다. 과학자 입장에서 그냥 그런, 잊어도 별로 특별할 거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연이라서.


  고틀롭 교수의 실험 시간에 마틴 애로우스미스가 단연 두각을 보인다. 두 사람은 큰 키에 마른 체격, 그리 잘 생기지 못한 얼굴 같은 것이 서로 비슷하다. 이건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도 마찬가지다. 고틀롭 교수가 마틴, 그리고 싱클레어 루이스와 다른 점은 술이 과하지 않다는 거. 주인공과 작가는 둘 다 술고래이고, 특히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는 생의 중반 이후, 특히 193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에 급격하게 술이 늘어 메사추세츠 정신병원에 입원해 “술 없이 살 것인지, 술로 인해 죽을 것인지” 결정을 강요당하는 수준에 이른다. 마틴도 주종을 묻지 않고 모든 술을 벌컥벌컥 잘 마시지만 자청해서 몇 주 동안 술을 딱 안 마시고 실험에 몰두할 수 있을 정도의 자제력을 갖고 있으니 의존증 수준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여간 마틴, 애칭 마트는 과학을 접근하는 법, 실험 현상을 과학적,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법, 이렇게 나온 결론을 수학적 수식으로 정리하는 법을 교수로부터 배우거나 따로 공부하게 된다. 물론 이런 단계에 이르기까지 두 사제는 납이 끓을 만큼 열을 내 싸우기도 하고, 액체질소만큼 냉랭한 사이가 되기도 하고, 급기야 십수년 동안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지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로가, 얼마나 위대한 과학자 스승인지, 과학자가 되기 위한 얼마나 위대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제자인지 충분히 알고 지냈으니, 그것 참.

  교수와 결별하기 전에 마틴은 위네멕의 주도 제니스에 있는 대형병원인 제니스병원에 수막알균 균주를 가지러 갔다가 병원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 수습간호사를 만나 다투고, 호감을 갖고, 데이트 신청을 하더니 결국 사랑하는 마음까지 품었는데, 아뿔싸, 이때 마틴은 약혼녀가 있었다. 장차 의사가 될 신분인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의사 아내가 되기만 하면 의사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펑펑 써대는 희망으로 가슴을 부풀린 아가씨 매들린 폭스. 곡절을 겪은 끝에 수습간호사였던 리오라 토저 양과 결혼을 하고, 인턴 시절을 보낸 후에 리오라의 친정이 있는 시골 윗실베니아에서 개업의로 몇 년을 보낸다. 시골 사람들의 고집스러움과 완강한 보수적 사고방식과 경쟁 의사들의 잘난 척에 데어 다시 제니스로 컴백해 노틸러스 시의 공중보건 담당의가 되고, 윗실베니아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도시인 노틸러스에서도 실패한 마틴은 이제 대학시절 최우등생 애어스 듀어가 파트너로 있는 병원을 거쳐 드디어 뉴욕에 위치한 세계적인 의학 연구소 맥거크 연구소에 입소하는데, 맥거크 연구소의 재단 이사장이 제일 흠모하는 과학자 막스 고틀립 박사가 마틴을 추천했던 거였다.

  이 연구소에서도 고틀립 박사는 엄격한 과학자로 일체의 양보도 없이 연구에 매진한 결과 숱한 적들을 만들어냈다. 잘난 사람의 꼴을 못 보는 거, 이게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다. 연구소에서 다시 마틴을 만난 교수는 이번에도 역시 마틴에게 수학과 물리학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라고 핀잔을 주면서 자기 조수이자 마틴의 망나니 절친 클리프 클로슨에 필적하는 냉소적 외골수이며 진정한 연구자인 테리 윅켓을 소개한다. 성격을 마틴과 달라도 과학과 실험에 몰두하는 진정에 관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죽이 맞는 윅켓. 그는 조연답게 주인공인 마틴에게 수학과 물리학 등을 가르쳐주고, 몇 년이 흐른 후 마틴은 주인공답게 수학과 물리학에 있어 윅켓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성장한다. 그리하여 그의 중요한 연구 결과를 로갈리즘과 시그마 등을 사용한 일목요연한 식으로 풀어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 센셰이션은 그의 이름을 뉴욕과 런던과 파리에 휘날리게 할 뻔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프랑스 과학자가 먼저 논문을 발표하는 바람에 휘리릭 날아갔고, 대신 때마침 서인도제도 세인트휴버트 섬에서 창궐한 페스트를 구제하러 나이 들었지만 열성적 공중보건 활동가 구스타프 손델리우스와 마틴 부부가 현지에 도착한다. 부부가? 그렇다. 이건 암만 생각해도 작가 의도상 그런 거 같다. 합법적으로 마틴의 첫번째 아내 리오라를 호적에서 파내고 재혼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리오라가 거기서 죽어 마틴이 홀아비가 되느냐고? 그렇다. 죽는다. 죽어서 관에 들지도 못하고 적도 하늘아래 묻힌다. 열성적인 공중보건 활동가 손델리우스도 영웅적인 죽음을 맞고, 대학 동기동창 아이라 힝클리도 죽어 한줌 재가 된다. 다 죽고 페스트를 진압하고 돌아온 마틴 혼자 영웅이 된다.

  이 동안 아빠 같았던 스승 막스 고틀립 박사는 급성 치매에 걸려 어둔 골방에 앉아 눈만 껌벅껌벅거리고, 연구소에서는 친절한 악당인 리플튼 홀리버드가 고틀립 박사에 이어 소장 자리에 앉아 마틴이 싫어하고 기피하는 지시만 죽어라 내린다. 그리고 마틴은 세인트휴버트 섬에서 잠깐 만나 함께 해변을 걸었던 기억이 있는 백만장자이자 젊고 예쁜 과부 조이스 레니언과 결혼해 아들 존을 낳는다.

  이게 끝이냐고? 아니, 아니. 아직 남았다. 이제 백만장자 아내와 아들, 그리고 거대 연구소에서 기계적이고 광 파는 작업만 수행하게 된 높은 연봉의 연구자 마틴 애로우스미스가 책의 제목대로 의사과학자, 이걸 넘어 위대한 의과학자가 되려면 뭔가 남은 게 있다. 여기까지 열라 썼지만 하여튼 좀 밍밍하다. 이 밍밍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는 결론을 말해야 하는데, 그러기 싫다. 좀 올드 스타일이지만 재미있는 책이니 도서관을 이용하시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늘 그렇듯이 결론은 “안 알려줌.”


  싱클레어 루이스가 쓴 작품답게 곳곳에 유머 코드를 담고 있다. 그걸 전부 알아채기는 같은 언어 사용자가 아니라 당연히 불가능하고, 작품 속에 눈에 띄는 등장인물이 두 명 있다는 건 그냥 뱀다리로 적어본다. 한 명은 베빗 씨. 이이가 살던 곳이 가상의 위네맥 주라서 루이스가 특별출연을 시켰고, 역자 유진홍도 알았겠지만 그냥 말없이 넘어간 도즈워스 씨도 만찬의 한 장면에 등장한다. 이런 걸 알아차리는 것도 책을 읽는 소소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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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9-04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은 들어 본 것 같은데 미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니 읽어보고 싶긴하네요. 의학 전문 출판사에서 소설도 내다니, 뭐 관련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발상도 재밌는 거 같고요. 의학 소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중고샵에 좀 흘러 나왔으려나 모르겠어요. ㅎ

Falstaff 2025-09-04 16:02   좋아요 1 | URL
이 책, 명색이 신간입니다. ㅎㅎㅎ 아직 중고샵까진 ^^;;
<모비딕>이 책방 해양 수산물 코너에 꽂혀 있었다는 전설을 생각하면 ㅋㅋㅋ

꼬마요정 2025-09-04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오라를 보니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엘렌이 급사했다는 내용이 생각나네요. 그런데 그 수습간호사가 아니라 백만장자이자 예쁜 과부랑 결혼을 한다구요? 이 사람 뭔가 연구만 할 것처럼 보였는데 인생살이 스킬이 장난 아니로군요. ㅎㅎㅎ

Falstaff 2025-09-04 16:04   좋아요 1 | URL
앗, 수습 간호사하고 결혼하고 애 없이 사는 데요, 미쳤다고 페스트가 창궐하는 데 부부 동반으로 가느냐고요. 아니나 다를까, 거기서 조강지처 첫 마누라 죽고 다시 장가들어 아들 낳아 사는 여자님이 백만장자 상속인이었다는....
아이구,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정확하게 쓰지 않어서 오해하시게 만들었습니다.

꼬마요정 2025-09-04 18:08   좋아요 1 | URL
아 제가 잘못 읽었나봐요. 약혼녀는 매들리 폭스네요. ㅎㅎㅎ 여튼 연애는 잘 하는 남자였어요. ㅎㅎㅎㅎ
 
질투의 끝 쏜살 문고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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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년 반 만에 프루스트를 읽는다. 9년 반 전에 읽은 책? 김창석 번역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감명 깊었냐고? 그럼. 감명 깊고말고.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만일 신이 있다면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신님, 나로 하여금 이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찿아서>를 읽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미 대가리라고는 1도 없으면서 길기는 더럽게 길어, 읽는 내내 청화집의 오소리감투에 쐬줏잔 기울이는 딴 생각을 품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활자만 11권 4천8백페이지를 읽는 인내심을 함양할 기회를 주신 신님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그래, 그래. 나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한 페이지도 빼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별로 안 되는 독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건 맞지만 조금도 자랑하고 싶지 않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철저하게 활자만 읽었을 뿐이라서. 아무 생각나지 않는다. 이 작품을 감명 깊게 읽은 분들께도 진심어린 존경과 질투를 보낸다. 천성이 고귀하지 않은 나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이 고평가된 작품 가운데 저 위, 꼭대기에 혹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지 않을까, 하고 심통부리는 많고 많은 덜 떨어진 독자 가운데 한 명이다. 요즘 들어 이 생각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오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단편집 《질투의 끝》은 2년 전부터 도서관 홈페이지에 “관심도서” 목록에 올려놓았던 책이다. 아무리 <잃어버린…>을 그리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프루스트인지라 무시무시한 11권, 4천8백쪽짜리 장편이 아닌 얇은 문고판 단편집이 나왔다는데 어찌 그냥 넘어가겠느냐는 말이지. 그런데 읽으려면 동네 도서관에서 다른 도서관으로 상호대차 서비스 신청을 해야 해서, 차일피일하다가 날들만 날리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주로 비밀댓글을 주시는 동네 서재 쥔께서 이 책을 거론하시기에 이르러, 아차, 맞아, 《질투의 끝》이 있었어, 기억이 새로워 서비스 신청을 해, 책을 받고,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는 걸 여태 게을렀구나, 싶었다.


  네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책 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이 네 단편은 1896년, 스물다섯 살의 프루스트가 출간한 첫 작품집 『쾌락과 나날』의 수록작 가운데 네 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독후감을 쓰기 직전에, 도무지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들임에도 문장이 매력적이라,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궁리하던 중이었다. 25세 이전의 젊은 프루스트가 쓴 단편. 소년시절부터 허약체질에다 꽃가루 알러지 즉 건초열과 만성 천식으로 고생하던 작가는 여기에 세기말적 분위기까지 보태 죽음 혹은 죽음에 이르는 단계에 천착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럼에도 20대 초반의 남성으로 넘치는 리비도는 또한 쾌락에 집착하게 만들었겠지. 평생 노동하지 않고도 전업작가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부르주아의 일원으로 일찌감치 사교계 문턱을 넘은 병약한 도련님. 이이의 작품은 그리하여 바로 앞 시절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선배들과 완전히 맥을 달리해, 귀족계급과 사교계와 불륜과 관능을 포함한 사랑에 대해 몰두하고 있다.

  사랑하는 공작부인 피아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무도회에서 코티용 춤을 추리라는 상상을 하며 최후를 맞는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이고, 마지막에 실린 <질투의 끝> 역시 사고를 당해 죽어가며 자신이 정리하고자 했던 손느 부인 프랑수아즈의 손을 잡을 다른 남자를 질투하는 내용이다.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은 시골 스티리아 출신의 매력적인 아가씨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파리의 사교계에 진출해 보헤미아의 공작부인이 되는 이야기이며, <어느 아가씨의 고백>은 결혼을 앞두고 집에서 연 파티 도중에 한 방에서 외간남자와 진한 페팅을 하다 벽난로 거울을 통해 관능에 절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어머니에게 들켰다고 생각한 아가씨가 심장에 권총을 발사하는 이야기. 어떻게 보면 세기말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퇴폐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세기말이나 퇴폐를 이미 졸업한 젊은 부르주아 작가가 실제로 체험해보지는 않은 채 머리속에서 상정한 인물들의 심리를 탐색해 글로 써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설명하기 힘든데, 책을 읽는 내내 마르셀 프루스트가 작품 속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앞에서 작품의 내용을 죽 써 놓으니 정말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단연 문장이었다. 근데 이게 프루스트의 문장인지, 책을 번역한 윤진의 문장인지 나는 모른다. 프루스트보다 훨씬 긴 문장을 장황하면서도 아름답게 구사했던 알베르 꼬엔의 <주군의 여인>을 읽을 때도 《질투의 끝》의 인상깊은 길고 유려한 문장을 경험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군의 여인> 역시 이 책의 역자 윤진 번역이다. 단편소설을 읽으면서는 메모를 하지 않아 어느 문장을 특정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비교하기 위해 프루스트의 <게르망트 쪽> 몇 페이지를 읽어봤다. 흠. 그렇군. 프루스트의 문체였네. 스물한 살 때 문장이 죽을 때까지 갔네 그려.

  갑자기 파박, 떠오르는 생각 하나. 그렇다면, 활자만 겨우 읽어냈을 뿐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시간을 무지하게 길게 잡고 《질투의 끝》을 읽는 식으로 조금씩, 하루에 몇 십 쪽씩 읽을 수 있기만 하면 그것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까? 아오, 프루스트는 내 스타일이 확실하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을 때가 됐을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요새 왜 자주 할까, 주책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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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9-03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으면 주책 있습니다.🤣

Falstaff 2025-09-03 16:12   좋아요 0 | URL
에휴, 안 읽으렵니다. ㅎㅎ

stella.K 2025-09-03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저주받은 명작 압축판이 있어 작년인가 올초에 사 놓고 아직도 안 읽고 있습니다. 압축판이어도 9백 페이지쯤되는데 이거 읽어보고 괜찮으면 진짜 번역본 읽어보려고. 근데 제가 하는 꼬락서니로봐선 이번 생은 이 책과 인연이 없지 싶기도 합니다. ㅠ 그래도 단편은 읽을만한가 봅니다. 그 저주받은 명작을 다시 읽을 생각을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Falstaff 2025-09-03 16:14   좋아요 1 | URL
압축판 읽지 마셔요. 암만해도 덜 만족스럽고, 읽고 난 다음에 어디서 읽었다고 뽐내기에도 뭔가 좀 찝찝하고 그렇더라고요.
더 늙어 도가니에 힘 빠져서 도서관 못 다니면 혹시 다시 읽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그냥 말로만 그러는 거예요. ㅋㅋㅋ

stella.K 2025-09-03 17:04   좋아요 1 | URL
ㅎㅎㅎ 도가니! ㅎㅎ
아, 그런가요? 그럼 페페님도 그러시고, 문장이 좋다고하시니 딱 1권만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ㅋㅋ
근데 번역본은 누구게 좋을까요? 이제 김화영 교수건 너무 올드하다고 젊은 사람들은 안 읽으려고 하는가 보더라고요.

2025-09-03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3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5-09-03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프루스트의 문장은 좋습니다. 비유도 그렇고요.
길어서 문제이긴 하지만요.

Falstaff 2025-09-03 16:15   좋아요 1 | URL
아이고, 프루스트 문장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그냥 껌벅 넘어가지요.

바람돌이 2025-09-03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은퇴하면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서 마들렌 한 개를 곁들여 잃어버린 시간을 펴고 하루에 딱 50페이지만 읽는 상상을 합니다. 그런 날이 오긴 할까요? ㅎㅎ

Falstaff 2025-09-03 20:57   좋아요 1 | URL
아이고... 그럼요, 그런 시절이 꼭 올 겁니다. 정말 괜찮더라고요. ㅎㅎ

stella.K 2025-09-03 21:38   좋아요 2 | URL
오, 그 방법도 좋으네요. 매일 50 페이지! 근데 전 매일 모닝 커피는 가능하지만 마들렌은 글쎄요. 제가 선호하는 음식이 아니라 매일 먹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해요.ㅎㅎ

바람돌이 2025-09-03 21:41   좋아요 1 | URL
마들렌이 아니면 다른 것도 상관없겠죠
중요한건 매일 50페이지요. ㅎㅎ
 
왕은 죽어 가다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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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억하는 이오네스코는 반反연극을 주창한 부조리극 집단의 일원이다. 그의 소설 <외로운 남자>는 우리나라 독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나와의 사이에는 너무도 깊고 넓은 강이 흘러 도무지 가까이할 수 없었다. <대머리 여가수>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것도 벌써 9년 전의 일이라 어슴푸레한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대개 부조리극이 그렇더라. 읽을 때는 뭔가 근사한 거 같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내가 왜 공감을 했는지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것들. 줄거리도 그렇고. 주로 프랑스 극작가들 사이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부조리극은 내가 읽어본 극작가에 국한해 말하자면 이오네스코, <타란느 교수>를 쓴 아르튀르 아다모프,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 내 20대 초반 시절에 희곡의 맛을 알게 해준 소품 <촛불>의 페르난도 아라발, <어느 여인의 초상>을 쓴 미셸 비나베르 정도. “부조리극의 반동에 대한 반동”이라고 불리는 미셸 도이치까지 포함하면 좀 오버일 수도 있겠지? 이게 가까우니까 독일로 넘어가 귄터 그라스와 막스 프리쉬로, 영어권에서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에드워드 올비까지 이어진다. 해롤드 핀터도 알아주는 영국의 부조리극 극작가라는데 아쉽게도 읽어보지 못했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극작품은 딱 하나 <대머리 여가수>만 읽어봤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희곡 작품 수에 비하면 말 그대로 일천한 독서지만, 하여간 <대머리 여가수>를 읽으면서,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은 어째 다른 극작가들과는 달리 말장난에 치우친다는 기분, 그래서 재미는 있지만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농담도 이미 촌스러워진 개그 콘서트를 보는 기분이었다. 예를 들어:


  스미스: (신문을 읽으며) 쯧쯧. 바비 와트슨이 죽었어.

  스미스 부인: 어머. 어째, 언제 그랬대요?

  스미스: 뭘 그렇게 놀라요? 다 알면서. 이 년 전에 죽었잖아요. 장례식 갔던 거 생각 안 나요? 일년 반 전에.


  2년 전에 죽은 사람을 6개월씩이나 보존했다가 1년 반 전에 장례식을 했단다. 그게 지금 읽는 신문에 실리 게 아니라, 그저 신문을 읽으면서 바비 와트슨이 죽었다는 생각이 나서 말해본 거다. 이런 말장난이 도무지 조리에 맞지 않아서 부조리극. 하여간 별의 별것이 다 있다니까? 참고로 <대머리 여가수>에서 대머리 여가수는 출연하지 않는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발꿈치도 볼 수 없는 것처럼. 근데 <왕은 죽어가다>에는 진짜로 죽어가는 왕이 나온다. 정말 왕이 죽어가느냐고? 그렇다. 그런데 그건 나도, 당신도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과 같다. 다만 나와 당신은 한 나라의 왕하고 비교하면 따라지 인생이라 죽어가고 있는 것이 조금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뿐.


  왕의 나이는 4백살이 넘었다. 결혼하고 283년이 흘렀고 277년 3개월 전에 왕좌에 올랐다. 283년 전에 결혼한 왕비는 마르그리트로 첫번째 왕비. 1988년 한국불어불문학회지에 실린 소논문을 발췌 요약한 “해설”을 보면 마르그리트 왕비는 “왕이라는 인물의 이성적 판단 능력과 죽음에 대한 욕구, 또는 마지막 순간 스스로 길잡이로 삼는 내면적 기능의 구현된 실체”라고 했다. 하여간 먹물들 말버릇하고는. 쯧쯧. 쉬운 얘기를 될 수 있는 대로 어렵게 하려 기를 쓴다. 한 마디로 하자면 죽어가는 왕에게 찍소리 하지 말고 천리를 따라 얼른 죽어라, 라고 입 바른 소리만 줄창 해대는, 그러나 겉으로는 한 마디도 왕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진정으로 왕을 사랑하는 조강지처 본마누라이다.

  왕비가 한 명 더 있다. 마리. 왕비가 한 ‘마리’ 더 있다는 얘기 아니고, 두번째 왕비의 이름이 ‘마리’다. 두 왕비가 서로에게 존칭을 쓰는 걸로 보아 왕이 직접 귀밑머리 풀어준 정식 혼인한 왕비다. 마리는 마르그리트와 반대로 죽어가는 왕의 살고자 하는 본성, 자연, 감정을 대변하는 역할. 당연히 조금의 시간만 나도 왕한테 사랑을 고백하고, 죽지 않을 거라는 거짓 암시라도 주어 희망을 갖게 하려 한다. 왕 입장에서 누가 더 예쁘겠어? 당연히 마리겠지? 그렇다. 게다가 마리가 훨씬 젊을 터이니 말 하면 뭐해.


  왕이 4백년을 넘게 살고, 277년하고 석달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무엇을 했느냐고? 180차례 전쟁을 치루었으며 이 가운데 스스로 선봉에 선 전투만 해도 2천번이다. 처음 왕이 됐을 때는 화려한 붉고 흰 깃발을 꽂은 백마를 타고 장창을 옆구리에 들었으나 나중엔 탱크나 전투기 날개 위에 서서 군대를 지휘했다. 화약을 발명했고, 신들로부터 훔쳐온 불을 화약에 붙여 적을 물리쳤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제철소를 지어 철기시대의 도래를 고했으며, 최초의 풍선과 비행선과 최초의 비행기까지 손수 제작했다. 물론 단번에 성공하지는 못해서 이카로스 등 숱한 조종사가 목숨을 버렸지만 결국 왕이 직접 비행체를 운전하기로 결심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세자 시절엔 바퀴와 수레를 만들었으며, 놀라지 마시라, 낫과 쟁기, 트랙터는 물론이거니와 에펠탑도 설계했다는 거 아니냐.

  종교를 창시한 후에 이를 개혁, 재개혁한 것은 물론이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도 썼다. 호메로스와 그 시대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를 집필했으며 빌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여러 편의 비극과 희극도 써서 공연한 건 비밀도 아니다. 전신과 전화는 물론이고 얼마 전에는 핵분열법도 발명한 천재 가운데 천재, 그가 바로 베랑제 왕이다. 그래, 왕 이름이 베랑제. 베랑제 1세다.

  그러나 그건 왕의 재임 시기 가운데 영광의 순간만 모은 것. 왕으로 등극할 당시 왕국의 인구가 무려 90억 명에 달했건만 이후 나날이 쇠퇴일로를 걸어 지금은 늙은이들만 천명 살고 있다. 청년은 없냐고? 있다. 무려 45명. 다른 나라로 갔다가 그 나라에서 강제 소환시킨 지체/정신 장애인들. 스물다섯 살에 송환되어 돌아오니까 불과 이틀만에 여든 살 먹은 노인이 되어버린다. 궁전은 폐허가 되고, 국토는 황무지가 되고, 산은 내려앉고, 바다가 제방을 부숴 전국이 물바다. 나라 전체에 벌집 또는 치즈처럼 구멍투성이가 되어 그나마 남은 국토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한다. 이게 다 이웃나라들이 국경을 밀어붙여 영토가 줄어드는데 한 시절 워낙 강국이어서 군인이라는 것들이 싸울 생각은 않고 밤낮 먹고 마시고 취해서 잠만 자 그렇게 된 결과이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화성과 토성이 충돌해 둘 다 폭발해 사라졌고, 태양도 50내지 75퍼센트 기능을 상실해 태양의 북극에선 눈이 내리고, 은하수는 얼어붙었으며 기력이 빠진 혜성은 자기 꼬리에 휘말린 개처럼 한 자리에서 맴만 돌고 있다. 어제 저녁은 봄이었건만 두시간 삼십분 전에 갑자기 봄이 사라지고 지금은 11월이다. 국경 너머에선 초목에 싹이 돋고 암소들이 아침에 한 번, 정확히 오후 다섯시 25분에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 송아지를 낳는데 이 나라에선 하늘에 번개가 멈춰 섰고, 구름은 개구리 비를 퍼부으며, 벙어리 천둥이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으니 정말 망쪼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왕이 언제 태어났느냐고? 이 작품이 연극 공연을 기본 목표로 하는 희곡이지? 왕은 인간이 연극을 처음 공연했을 때 태어났다. “왕은 죽어가다.” 그러면 언제 죽느냐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연극이 끝나는 순간 왕은 죽는다. 그러니까 미래. 하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 <왕은 죽어가다>를 공연하는 연극일 경우에는 이 <왕은 죽어가다>가 끝나는 시점에 왕은 죽는다. 그래서 마르그리트 왕비는 한시간 반이 지나면 왕, 베랑제 1세가 죽을 것이라고 알려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시간 25분, 58분 30초, 뭐 이런 순서로 시간이 줄어든다. 또는 죽을 시간이 가까이 다가온다.

  근데 정말 죽느냐고? 그건 연극이 끝날 때까지 모르지. 연극이 끝날 1시간 30분 이전에 여의도만 한 위성이 지구에 충돌해 지구 자체가 멸망해버릴 지 누가 아느냐고? 연극의 결말 장면을 보면 정말 죽기는 죽는 것 같다. 왕도 처음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고, 부정하고, 저항하다가, 나중엔 죽은 자 가운데 사흘만에 다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겠다고 쥐랄을 하시다가, 결국 마르그리트 왕비의 말씀을 좇아 죽음을 인정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지구의 어느 한 극장에서는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베랑제 1세는 이 연극을 공연하는 내내 죽어가다가 끝나는 순간 죽겠지만, 다른 어느 극장에서 다시 생명을 가질 수 있다. 맞지? 여기에 동의하시더라도 어디 가서 입 밖에 내지 마시라. 전적으로 아마추어인 내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 하는 순간 왕창 쪽팔릴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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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타 T.에 대한 추억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크리스타 볼프 지음, 양혜영 옮김 / 마르코폴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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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내가 읽는 크리스타 볼프의 세번째 책인데, 참 낯설었다. <나누어진 하늘>과 <카산드라>를 기억하면, 사실 읽은 지 꽤 되어 정확하지 않겠지만,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쓴 문장 같았다. 아마도 이 독후감을 2025년 9월 1일, 올 가을의 첫날, 그것도 월요일 아침에 업로드할 거 같은데, 첫 아침부터 김 새게 이런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말 문장을 읽기가 편하지 않았다. 새삼스레 번역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지 않겠다. 하여간 읽기 불편했다. 이제 역서를 읽으며 이런 이야기하는 거에 질렸다.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크리스타 T. 길쭉한 팔과 다리, 어색한 걸음걸이, 목덜미까지 내려온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 여기에 어둡고 다소 거친 목소리를 가볍게 내는 혀 짧은 소리로 발음하면 그렇게 좋은 인상을 받기는 힘들겠지? 여기에 열의도 열정도 없는 눈빛까지 가졌다니, 한 마디로 외모로 보면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나’와 반 친구들보다 한 살이 더 많다. 유급을 당해 한 학년을 반복한 기록이 있다. 프리데베르크 지역에 있는 아이히홀츠에서 살아서 그런지 숲에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한단다. 베를린에서는 여관에서 지내고, 주말에 집에 다니러 간다. 집에서는 크리스타 대신 ‘크리샨’이라 부른다고.

  크리스타 T.를 처음 본 ‘나’는 생각한다. 싫어. 친하게 지내지 않을 거야. 친구로 받아주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처음에는 크리스타 T.를 무시해버린다.

  때는 1944년. 전쟁 중이라 멀리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러나 크리스타 T.는 여름에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이제부터 독자인 나는 헛갈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질투를 느꼈다. 그녀는 베를린 아파트의 텅 빈 음악실에서 촛불을 켜놓고 크리스타 T.에게 베토벤 곡을 연주해 주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촛불을 끄고 창가에 몸을 기댔다. 그녀가 불행과 죽음과 우정을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 방식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때 그녀는 어찌 되었든 성은 볼 수 없었다.”  (p.22~23)


  크리스타 T.에게 피아노를 연주해 준 게 첫번째 “그녀.” 공습경보가 울리면 창가에 몸을 기댄 것도 피아노를 연주해 준 그녀, 즉 크리스타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 불행과 죽음과 우정을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 방식을 갖고 있는 그녀는 또 누구? 크리스타 T? 아니면 함께 여행을 간 친구? 어찌 되었는 성을 보지 못한 그녀는? 너무 세밀하게 읽으려 한다고? 젠장. 작품을 읽으면서 주어가 정확하게 누군지 알고 싶어 하는 게 글러먹은 거야, 아니면 독자로 하여금 주어가 정확하게 누군지 몰라서 염병할 주어를 찾느라고 문장을 뒤적뒤적, 뒤적거리게 만든 작가 및/또는 역자가 잘못이야? 죄송하지만 주어가 누구신지 아시면 좀 가르쳐 주실래요? 하면서

  물론 이 작품을 번역한 사람은 알겠지. 근데 독자는 오리무중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2백쪽 더 계속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천천히, 느긋하게, 여유롭게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 그러다가 250쪽을 넘으면 읽기가 조금 나아지고, 3백쪽에 육박하면 그래, 읽힌다. 결국 돌아버리지는 않았다. 돌아버릴 거 같아서 책 읽기를 때려 치우려고 했다. 책 읽다 죽기 싫어서.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작가도 아니고 크리스타 볼프가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동네 도서관에 책 사달라고 희망도서 신청해, 시민과 자영업자들과 지역 기업들이 낸 지방세로 구입한 책이라서, 내 돈 주고 산 소위 내돈내산이라면 벌써 때려치웠을 것을, 농도와 성분이 피와 매우 유사한 세금으로 샀으니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다 읽었다. 역자 양혜영이 이 글을 보면 매우 불쾌하겠지만 초보 역자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이렇게 처음에는 크리스타 T.를 경원했던 ‘나’가 점점 크리스타와 우정을 쌓고, 7년만에 다시 만나 더 깊은 우정을 쌓아가다 30대에 혈액암에 걸려 일찍 생을 마감하는 크리스타 T.를 추억하는 스토리다.  동부 독일에서 소련군의 점령을 고스란히 당해 피란을 떠나는 민간인, 특히 10대 후반의 여성이 겪는 이야기를, 어느 익명의 여성이 쓴 <함락된 도시의 여자들: 1945년 봄의 기록>하고 연계해서 조금 보태려 했다가, 치과 가야 한다. 차라리 잘 됐다. 즐겁게 읽지 않은 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게 해도 재미있을 턱이 없다. 가서 고문당하고 오겠다. (갔다 왔다. 치과, 정말 싫다.)

  올해 가을의 첫날부터 이렇게 부실한 독후감을 올려서 미안하다. 뭐 사는 게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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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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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포 투》도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열어보니 여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을 실은 소설집. 전에 읽은 토울스 세 편이 거의 이 비슷한 분량의 장편소설이어서 이 책도 그러려니 했었다. 여섯 단편은 이제 막 뉴욕에 도착한 이민자 이야기부터 뉴욕을 무대로 사는 사람들 이야기. 2부 격인 중편 <할리우드의 이브>는 토울스의 데뷔작인 <우아한 연인>의 등장인물 이브가 뉴욕에서 시카고로 가는 기차를 탄 것으로 마감을 하는데, 시카고에 거의 도착할 무렵 이브가 돌연 LA까지 가기로 마음을 바꾸어 기념비적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촬영 속 이야기로 들어간다.

  나는 <우아한 연인>을 그리 즐겁게 읽지 못해서 <할리우드의 이브> 역시 즐기지 못했다. 아무래도 추리, 범죄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그렇지 이쪽 장르 좋아하는 분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여섯 단편은 흥미롭게 읽었다.

  작품은 에이모 토울스가 차라리 자신의 고유 영역이라고 점 찍어 놓은 듯한 20세기 초기를 무대로 한다. 러시아 혁명 시대의 초기 소비에트 시절에 모스크바로 이주해 특유의 선함으로 남을 위한 배려의 대신 줄서기를 하다 우연한 기회에 ‘대신 줄서기’를 했다가 미국으로 이민 온 부부 이야기 <줄 서기>와, 공원에서 젊은이들 무리와 어울려 롤러 브레이드가 아닌 20세기에 유행했던 롤러 스케이팅을 할 때 삶의 진정하고도 절정의 행복을 만나는 68세의 노인이 이 사실을 배우자에게 이야기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배신과 거짓말을 한 죄목으로 이혼을 당하는 <나는 살아남으리라>가 매우 인상깊었다. 물론 다른 단편도 재미있게 읽었다.

  <할리우드의 이브>는 일단 다음으로 하고, 모든 단편을 흥미롭게 읽었으면서도 머뭇거리는 것은,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그렇게 흥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가지 않아 책을 읽을 때의 공감과 격렬한 감동이 금세 휘리릭 휘발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그럴까? 아니기를 바라고, 아닐 것 같다. 단편 <줄 서기>를 이야기해보자.


  1916년, 모스크바에서 100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에 푸시킨과 그의 아내 이리나가 작지만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다. 부부사이에 아이는 없었어도 서로 살뜰한 애정 속에서 살았다. 혁명이 성공한 다음 해 1918년에 수도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이리나의 바람대로 살림을 마차에 싣고 무작정 모스크바로 길을 떠났다. 닷새 동안 마차를 몬 10월 8일. 붉은 광장에 도착한 부부. 이리나는 남편 푸시킨 씨에게 이 자리에 꼼짝도 하지 말고 서 있으라 다짐을 받고 사라지더니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방 하나짜리 아파트를 구했다. 당연히 레닌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바람벽 높은 곳에 붙였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붉은 별 비스킷 집단공장에 남편과 자신의 일자리를 구한 이리나는 5만 제곱 피트와 5백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 금세 노동자 위원으로 선출된 반면, 농사 말고는 도무지 무슨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남편 푸시킨 씨는 얼마 가지 못해 해고당하고 말았다.

  혁명 후 노동자 시대에 해고를 당해?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집단 회의에서 공산당 선언을 적절하게 인용해가며 동지들의 사리를 고양시키는 데 각광을 드러내는 노동자 위원도 남편의 해고를 무효로 할 수는 없어서 푸시킨 씨는 체스판의 공깃돌처럼 모스크바 시내를 굴러다니기만 했다. 시계는 계속 흘러 1921년이 왔고, 다른 집 같으면 당연히 아내인 이리나가 해야 할 배급품을 받기 위하여 상점/배급소에 길게 줄을 서야 했다. 이리나가 출근하면서 설탕, 기름, 밀가루를 받아오라고 지시하면, 줄이 하도 길어서 이 가운데 둘 정도만 받아올 수 있었다. 그때는 다 그랬나 보다. 그래도 푸시킨 씨가 워낙 온화한 성품이라 이 줄서기에 차라리 ‘최적화된 인물’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았다. 푸시킨 씨는 온통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줄의 맨 뒤에서 모자를 벗고 친절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하고, 앞 뒤의 주부들과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할 줄 알았다. 이게 대단한 능력인 줄은 몰랐지만. 이렇게 금세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여성들과 친하게 된 푸시킨 씨.

  일상이 줄 서기인 모스크바 사람들에게 줄을 한 번 섰다가 사정이 있어 줄에서 이탈할 경우에 다시 돌아오면 어김없이 줄의 제일 뒤에 서야 했던 것 같다. 하여간 이랬는데, 하루는 어느 주부가 푸시킨 씨에게 아이가 아파 약국에 가서 약을 사 오는 동안 자기 자리에 대신 서 있어달라고 했다. 이 여성이 다시 돌아오면 당연히 제일 뒷자리로 옮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줄의 앞뒤 모든 주부들이 푸시킨 씨에게 푸근한 호감을 갖고 있어서, 이 여성이 약을 받아와 그냥 푸시킨 씨가 지키던 자리에 들어와도 아무 항의를 하지 않았다. 여성은 감사의 표시로 푸시킨 씨에게 막대 사탕 하나를 선물했다.

  푸시킨 씨가 이 막대 사탕을 원했던 건 전혀 아니다. 그저 자기한테 남아도는 시간 동안 친절, 아주 가벼운 친절을 베풀었을 뿐. 그런데 이후부터 이 여성 말고도 다른 많은 주부들이 대신 줄 서기를 부탁했고, 부탁을 들어줄 때마다 감사의 표시로 건네던 막대사탕이 작은 소시지로, 작은 소시지에서 제법 큰 소시지로, 이윽고 외투로 커졌다가 급기야 현금을 건네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쯤 되니까 공장의 노동자 위원인 이리나도 남편 푸시킨 씨의 소득 창출을 “공산주의의 또다른 성취”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26년에는 모스크바 주택부 국장 크라코비츠 동지가 푸시킨에게 프랑스산 샴페인 한 상자를 구하는 줄을 대신 서 달라는 부탁을 했다. 시간이 남아도는 푸시킨 씨가 구태여 힘있는 윗분의 부탁을 거절할 필요도 없어서 그렇게 했고, 감사의 선물로 자기의 샴페인 한 병을 건네주기 싫었던 크라코비츠 동지는 샴페인 대신 나키츠키 타워스의 널찍한 아파트 한 채를 배정해 주었는데, 이게 또 모스크바 강변을 바라보는 최신 주택이었다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1929년 5월에는 내무인민위원부가 지식인 다섯 명을 체포해 신속하게 유죄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는데, 이때 지식인들의 집을 수색해 책과 유인물을 잔뜩 압수해 싣고 가던 차량에서 잡지 한 권이 마침 지나가던 푸시킨 씨 앞에 툭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독자는,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하여간 나는, 이 일이 마침내 푸시킨 씨가 맞을 비극을 여는 일이겠거니 생각했으나, 푸시킨 씨가 잡지를 열어보고 한 눈에 마음에 들어 북 찢어 얼른 호주머니에 넣은 건 하얀색 긴 드레스를 입은 뉴욕 여자와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턱시도 입은 젊은 남자의 사진이 실린 페이지였다. 남자를 향한 여자의 미소가 너무 부러워서. 얼마 후 모스크바의 청소부를 만난다. 전직 초상화 화가. 다른 화가들이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파리로 망명했을 때 조국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머물렀다가 부르주아의 초상을 그려주던 화가라서 화가 자격을 빼앗기고 청소부로 전락한 인물이다. 그의 소원은 성바실리 대성당 그림의 국외여행국 스탬프가 찍힌 밝은 노란색 바탕의 여행허가증. 푸시킨은 화가를 위하여 또다시 몇 주가 걸리는 국외여행국의 줄을 대신 서주기로 한다.

  국외여행국의 줄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손에 잡히지 않고, 가장 힘들고, 가장 넘볼 수 없는 줄이었다. 이곳에서 사흘을 지내다가 순전히 심심해서, 오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 심심해서 국외여행 신청서를 작성한, 아니지, 작성해본 푸시킨 씨. 그는 질문지의 모든 질문 사항에 과거 시골에서의 따뜻한 일을 되새겨보라는 초대장이라도 되는 듯한 생각을 했는지, 어린 시절 고향 고골리츠키에서의 토끼 잡이부터 온갖 추억을 서류 뒷면까지 빽빽하게 채웠다. 두툼한 서류의 마지막 질문. “왜 소련을 떠나려 하는가?”에 대한 푸시킨 씨의 진심과 답변은 이러했다. “그럴 생각 없음.”

  줄을 서고 18일이 지나 드디어 접수 창구에 도착할 수 있었던 푸시킨 씨는 즉각 전직 초상화가 리트비노프에게 알렸고, 화가는 아침 8시에 도착하겠다고 말했음에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푸시킨 씨. 드디어 11시 35분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서류를 제출해야 했던 푸시킨 씨는 화가 대신 자기가 심심풀이로 작성한 서류를 디밀었다. 이윽고 서류심사. 딱 한 칸이 비어 있었다. 110번 질문. “가고 싶은 나라.” 시골뜨기 푸시킨 씨는 얼른 생각나는 장소가 없었다. 잠시 끙끙거리던 그는 갑자기 지갑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여자가 생각나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뉴욕시요!”

  결과적으로 거의 1백대 1을 넘는 합격률을 뚫고 푸시킨 씨는 성바실리대성당 모양의 국외여행국 스탬프가 찍힌 여행 허가증을 받았고, 집에 가져가자마자 이리나는 1918년에 고골리츠키에서 모스크바로 향할 때 그러했듯이 세계의 수도에서 살고자 하는 동경을 이루기 위하여 즉각 여행가방을 챙겼고, 그동안 모스크바에서 주로 푸시킨 씨가 줄을 서서 번 자산을 현금으로 바꾸어 눈썹이 휘날리는 속도로 레닌그라드로 가서(또 어디 한 군데를 거쳐), 뉴욕행 배에 오른다. 세상을 법 없이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푸시킨 씨는 배의 1등실에 머물며 승객과 각급 선원들에게 온갖 호구짓을 해 드디어 뉴욕에 첫 발을 딛는 순간, 그의 달러가 잔뜩 들었던 트렁크에는 단 한 장의 지폐도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완벽한 빈 손으로 뉴욕 광장에 선 그를 두고 이리나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와 달리 아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뉴욕의 주식시장이 가파른 추락을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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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5-08-29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제일 부럽고 대단하고 귀한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 아닙니까?
이리나는 참 바보네요. 푸쉬킨만큼 운좋은 남자는 뉴욕시 전체를 뒤져도 흔치 않을텐데.
뒷 이야기가 참 궁금하지만 푸쉬킨씨는 성품도 성품이지만 일단 그 모든 것에 앞서 운이 무지하게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뉴욕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것 같아요.

금요일이라 다른 날보다 조금 신나는 근무시간에 팔스타프님 리뷰 언제나처럼 즐겁게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P.S 기한이 거의 다가온 서류를 검토하지 않는 상사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ㅋㅋㅋ 요즘에는 챗gpt 에 이런 거 문의하면 메일 문장까지 써준다는데. 거참.아... 말하기 전에 좀 해달란 말이야!!!ㅋㅋㅋㅋ

Falstaff 2025-08-30 04:08   좋아요 0 | URL
문제는 푸시킨 씨의 행운이 아메리카에 도착하자마자 끝난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읽히는 건 쇤네가 평생 행운하고 좀 거리가 있는 인간이라서 그럴까요? ㅎㅎㅎㅎ 어제 댓글을 달지 못하고 이제야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가브리살에 쐬주가 장해서....
상사한테, 그냥, 서류 좀 검토해달라고 딱 직선으로 얘기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상사가 만일 남자라면 그렇게 얘기해야 알아듣는 사람일 확률이 높더라고요. 오히려 그렇게 얘기해주는 걸 좋아할 수도 있고요. 뭐 세상 일 그저 복골복입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