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부자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6
존 업다이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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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1980년의 해리 래빗 앵스트롬. 40대 후반, 인생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래빗에게도 이런 날이 온다. 전작 30대 후반의 래빗이, 마누라는 다른 놈하고 눈 맞아 도망가고, 해고도 당하고, 집은 불에 홀랑 타버린 상태였는데 그새 부자가 됐다고? 로또 한 방 맞은 거 아니냐고? 미국 로또는 우리와 달라 한 번 당첨되면 1조원이 넘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데. 아니면 인생의 위기를 맞아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대오각성을 하고 빨간 손에 쥔 것도 없이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려진 100달러짜리 지폐를 라면 박스로 몇 박스 모았냐고? 에이, 그럴 리가. 엉망진창으로 살지만 그나마 착한 루저, 해리와 극적으로 화해한 아내 재니스. 때마침 잰의 아버지 프레드 스프링어 씨가 이제 나이가 들어 자기 재산을 자연스럽게 물려 받을 후계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하나밖에 없는 딸 재니스가 물려 받아야 하겠지만 스프링어 모터스를 운영하기에는 예쁜 얼굴에 비해 너무 돌대가리라서 마음에 차지 않는 사위, 해리 앵스트롬한테 수석 판매원의 자리를 주어 경영을 전담하게 했다.

  근데 사위 역시 문제가 있다. 딸 재니스의 바람 상대가 바로 중고차 수석판매원인 그리스 남자 찰리 스태브로스였던 거다. 이제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딸 내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정리가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사위를 수석 판매원 자리에 앉혔는데, 이게 웬일, 해리 래빗과 찰리는 일본차 도요타의 판매와 중고차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스프링어 모터스에서 그렇게 쿵짝이 잘 맞는 파트너가 될 줄이야. 사위 입장에서는 바람직하게 장인 스프링어 씨가 5년 전에 의자에 앉은 채 곱게 세상 하직해서(해리의 두 부모도 지난 10년 동안 차례로 세상 떴다), 유언장에 나온 대로, 스프링어 모터스의 지분 50퍼센트는 스프링어 부인이 차지하고, 나머지의 절반씩 뚝 떼어 딸 재니스와 사위 해리가 소유하게 된 거다. 경영은 당연히 세상물정 좀 알고, 사는 것도 좀 배웠다고 주장하는 해리 래빗 앵스트롬이 가졌다. 아무리 사위라도 사위 명의로 25퍼센트의 주권을 건네기는 쉽지 않았을 듯. 물론 래빗이 애초에 원하지 않았지만 살던 집이 불에 홀랑 타버리는 바람에 아내와 화해하자마자 곧바로 처가집에 들어가 늙은 장인, 장모와 함께 살았거든. 그동안 귀염을 받은 모양이지. 래빗 주제에 무슨 대오각성. 하긴 대오각성을 했더라도 작심삼일이었을 터, 칫. (부러워서 그런다, 부러워서!)


  <돌아온 토끼>에서 가출한 동북부의 귀한 집 처자 질의 죽음 때문에 극적으로 사이가 갈라져 “내가 아빠를 죽이고야 말겠어!”라는 악담까지 남긴 래빗의 아들 넬슨은, 그 사이에 10년이 지났으니 이제 대학생이다. 오하이오 주 켄트에 있는 켄트주립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아빠를 닮았으면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스포츠, 특히 농구도 잘 할 텐데 하필이면 외탁을 하는 바람에 키도 작고, 생기기는 귀엽지만 별로 내세울 것 없이 내성적인 외골수 성격의 넬슨은 잠깐 히피들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20대 초반인데, 폭발할 지경의 리비도의 명령으로 연애를 하기는 했는데, 주립대학의 그저 그런 학생들 가운데 한 명을 고르는 대신, 서무과의 타이피스트 프루 양과 교제를 해 프루 양의 뱃속에 자기 씨를 착상시켜버리고 만다. 학교에서도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넬슨은 이제 일년만 더 공부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살기 위하여는 전혀 필요 없을 학사 학위를 딸 수 있는 마지막 학년에, 프루와 사람들이 참하다고 오해하는 맬러니라는 이름의 히피 아가씨와 함께 콜로라도에 놀러가 행글라이딩 같은 걸 즐기다가 돈이 다 떨어질 즈음, 프루 대신 맬러니와 함께 집에 도착하면서 사사건건 서로 얼굴만 보면 복장이 터지는 부자관계의 막을 올린다.

  넬슨은 질의 죽음 이후에 아버지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부자간에 서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데 대화는 무슨 대화. 그렇다고 이들이 십년 전 넬슨의 말대로 아빠를, 아들을 진짜로 죽이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둘 나름대로 아빠한테, 아들한테 인정받고, 될 수 있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 그렇게 보이기만 해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집에 오면서 왜 넬슨은 자기 아이를 임신한 프루 대신 맬러니와 함께 왔을까? 집에 있는 할머니, 부모는 당연히 맬러니가 넬슨의 애인인 줄 안다. 심지어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할머니는 자기 집 안에서 넬슨과 맬러니의 육체적 교접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지하실 또는 봉제실에서 머물게 하겠다고 각오가 대단하다. 아직 모르니까. 넬슨과 맬러니는 그냥 친구.

  왜 맬러니와 함께 왔을까? 맬러니는 콜로라도에서 잠깐 몸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것. 당시 청춘답게 코카인을 코로 흡입하고, 대마초를 열심히 피우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순한 복용자라서 큰 문제는 아니었을 걸로 보인다. 하여간 어떤 문제인지 책이 끝나지 않을 때까지 이야기가 없으니 우리도 그냥 넘어가자. 두번째로, 넬슨은 자기가 학생이 아닌 서무계 타이피스트와 연애를 하고, 그 아가씨를 임신시켰다는 걸 가족, 특히 아버지한테는 숨기고 싶었다. 세번째로, 임신한 프루 입장에서 넬슨 혼자 집에 보냈다가는 마음이 바뀌어 배째라고 나설 수도 있어서 자기의 절친이며 넬슨하고는 사랑하는 관계가 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맬러니를, 넬슨 감시역으로 동반시키고자 했던 거였다. 이렇게 되면 세 명의 청춘들 입장이 다 정리가 된다. 맬러니는 채식주의자이며, 선불교나 요가 같은 신비주의적 입장을 취하지만 스프링어 집에서는 어른들 눈에 세상 깔끔하고, 화단 가꾸기도 능숙하고, 육류를 제외한 조리와 설거지를 자발적으로 할 줄 아는 참한 아가씨이다. 완고한 할머니조차 며칠이 지나자 맬러니가 넬슨의 짝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길 정도. 그러나 아직 이 집의 할머니와 부모는 여자와 남자가 친구 상태로 머무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연애-섹스-결혼-출산과 출산 이후 이혼은 옵션이라는 하이웨이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전통과 경험 위에서만 존재하니까.

  하지만 넬슨과 맬러니는 정말로 친구다. 연애와 결혼 같은 생각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서로 마리화나를 하고 코카인을 약하게라도 흡입해서 분위기가 삼삼해지면 뭐 그냥 자연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구태여 참지 않고 한 번 한다. 이때 얘네들의 나이 23세가량. 때는 1978, 79년이니까 1950년 후반 출생 세대이다. 한국전과 베트남전에 반대하여 대 정부 투쟁을 하다가 둘의 모교인 켄트주립대학에서는 총에 맞아 죽는 학생까지 생겼던 시기와 근 10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아직 당시를 풍미하던 히피와 자유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던 시기.


  <토끼는 부자다>에서 해리 래빗이 부자가 된 사연을 말했고, 가장 큰 주제는, 이제 아들 넬슨이 토끼 시리즈의 첫 작품 <달려라 토끼> 당시의 해리 나이가 되었으며, 아버지한테 당당하게는 아닐지언정 자기 생각을 과격하게 도전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해, 본격적인 갈등의 시절을 맞았다는 것. 넬슨도 아빠 해리와 비슷하게 젊음의 혼돈과 폭풍과 방황의 시절을 보낸다. 물론 조금 다르게.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준으로. 딱 그만큼.

  넬슨은 아버지의 사업체인 스프링어 모터스를 언젠가는 물려받고 싶다. 중고자동차 판매와 도요타 자동차 대리점 사장을 하기 위하여 켄트대학 지리학과 학사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넬슨은 이제 한 여자의 남편과 한 아이의 아빠 역할, 즉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하여 학교를 때려 치우고 어차피 물려받을 스프링어 모터스에 취직하여 일을 배우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할머니와 엄마, 외갓집 식구들이 동의하는 반면, 아빠는 아들 넬슨이 이깟 대리점 말고 더 큰 무대에서 날개를 피웠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학위를 얻기 바란다. 넬슨을 채용하여 상당한 급여를 지불하려면 10년 전부터 최상의 파트너였던 아내의 전 불륜상대 찰리 스태브로스를 해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친해졌고, 찰리의 인맥과 판매 실력 없이 대리점을 꾸려가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스프링어 가문의 힘, 75퍼센트의 주권은 기어이 웃으면서 스태브로스를 해고하기에 이르고, 넬슨이 그 자리에 들어와, 기발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프로젝트만 펼쳐 놓은 채, 이미 찰리 스태브로스와 함께 플로리다와 아이오와 여행을 떠난 적 있는 맬러니를 데리고 켄트주립대학에 복학해버린다. 즉 계획에 실패하고 다시 학교로 도망했다. 프루가 병원에서 딸을 순산하고 넬슨이 얼른 돌아와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기를 바라는 동안에. 어째 하는 짓이 해리 래빗 앵스트롬, 아비를 그렇게 빼 박았는지 원.

  여기에 하나 더. <달려라 토끼>에서 두세달 간 래빗과 동거하던 커다란 몸집의 여자 루스라고 있다. 초장에 한 젊은 커플이 매장에 와서 차를 보고 간다. 저 뒤에 가면 남자가 도요타 차 한 대를 구입한다. 이때 같이 온 아가씨가 아무리 봐도 루스를 닮은 거 아니냐는 말이다. 나이든 정도를 보니 어머나, 해리는 머리칼이 쭈볏 선다.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뭐랄까, 그래, 사랑의 감정. 이 아가씨가 혹시 루스와 해리 사이에서 나온 자기 딸 아닐까? 이별 당시 루스는 분명히 임신 상태였고, 헤어졌으며, 곧 나이든 괜찮은 남자와 결혼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낳았다거나 임신 중단을 했다는 다른 말은 들어본 적 없다. 물론 신경을 쓰지도 않았지만. 근데 갑자기 나타난, 옛 시절 루스를 꼭 닮은 아가씨를 보니 영낙없이 자기를 닮지 않느냐는 말이지. 그리하여 괜히 이 이야기를 아내 재니스한테 했다가 얻어 터지기만 해서 이름을 모르는 자기 딸과 옛 애인 루스를 찾아 시골지역을 헤매는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아가씨도 왠지 해리가 좋아 다른 차를 사고자 하는 남친을 설득해 결국 도요타를 샀기에 이르고.


  하나만 더?

  이제 중산층 계급에 진입해 안정적으로 정착한 해리와 재니스 부부는, 골프 회원권을 보유해 남편은 골프를 아내는 테니스와 야외 수영을 하며 계급간 우정을 돈독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당연히 서로 조금씩이나마 좋고 싫고는 있지만 중산층답게 그런 건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당연히 드러내지 않더라도 서로 모르는 이는 한 명도 없지만.

  원래 속물인 해리는 이 가운데 웹의 젊은 아내 신디한테 미쳐있다. 젊었을 때처럼 무작정 달려들 정도는 아니고 손바닥 만한 삼각형 세 개로 만든 비키니에 싸인 몸을 언젠가는 한 번 이상 해체시켜 관계를 갖겠다는 비 범죄적 희망사항이다. 그런데 그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때는 1970년대가 막 끝난 1980년. 저 변방 극동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몇 백 명이 죽어가던 해, 미국 중산층 세 부부는 비행기를 타고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에 도착해 시간을 죽이다가 자연스럽게 짝 바꾸기, 소위 스와핑을 시전하는 것. 그러나 순서는 해리의 속셈과 달리 첫날 셀마, 다음날 꿈에도 그리던 젊은 신디로 정해졌지만, 셀마와 잊지못할 의미를 지닌 하룻밤을 지내고 이제 날만 어두워지면 드디어 신디와 어제와는 비교하지 못할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건만, 그러나 아뿔싸, 몇 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또다시 넬슨이, 진통을 시작한 프루를 보고 겁을 덜컥 먹었는지 맬리사를 불러 둘이 함께 켄트대학으로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기겁을 한 장모의 호출을 받고 만다.


  이런 내용이다. 시작은 70년대 석유파동부터 달러화 폭락, 일본차의 세계정복, 엔화 강세의 경제현장. 곧이어 변해버린 세대간의 갈등과 단계적으로 속화되는 미국 문화 같은 것.

  매우 재미있다. 그러나 순전히 재미 측면으로 보면 <돌아온 토끼>보다 덜하다. 암만해도 그만큼 드라마틱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리하여 오히려 긴박한 사고와 죽음의 장면이 없어서 좋을 수도 있다. 사실 <돌아온 토끼>에서는 갑자기 집에 들어온 흑인 약물남용자 스키터의 행위가 너무 거칠어 알러지 현상이 생길 정도이지 않았나 싶었거든.

  읽어보실 분은 조심하기 바람. 점잖은 분들은 특히 더. 아주 적나라한 장면이 필터 없이 가끔 쏟아진다. 외설과 예술 사이? 아니, 아니. 외설을 포함한 예술 수준. 읽어보시면 안다. 집 책장에 꽂아놓으면 언젠가는 호기심 넘치는 귀댁의 자녀들이 뽑아 읽고 터져버릴 것 같은 리비도를 이기지 못해 얼굴을 붉히고 있을 수 있다. 그런 일이 닥쳐도 너무 걱정 마시라. 사는 일이 다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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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11-09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설과 예술 사이? 아니, 아니. 외설을 포함한 예술 수준. <- 이렇게 눈에 확 들어오는 멋진 평에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Falstaff 2025-11-10 04:25   좋아요 1 | URL
전형적인 미국 속물 백인 쁘띠 부르주아의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페미니즘과 가까운 분들은 틀림없이 열 받을 만한 책인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ㅎㅎㅎ
가능하면 1부 <달려라 토끼>부터 <토끼 돌아오다>을 읽은 다음에 3부 시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부는 뭐 그냥 읽어 치운다고 해도 4부 <토끼 잠들다>는 전작 독서가 없으면 확실히 곤란하니 애초에 1부부터 읽어두시는 게 깔끔할 듯합니다.
다시 강조해요! 주인공 해리는 한 작품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속물, 이기주의에 자기만 알고, 여자에 환장을 한 바람둥이, 뭐 그런 잡놈 비슷합니다.
 
버지니아 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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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버지니아 울프와 친하지 못하다. 전형적인 영국 상위 중산층 또는 하위 부르주아 계급인 울프. 이 집단 안에서 이탈하지 않고 정착해 사는 동류들의 의식. 그것이 흐르거나 말거나. 이이의 작품을 읽고 이이의 소설에 동감하고 감동도 하면서 울프를 찬양하는 독자를 나는 부러워한다. 간혹 이이의 내면 묘사가 썩 인상깊기는 한데 여차하면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어려운 글쓰기를 양보하지 않는 작가. <올랜도>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페미니즘적 성취와 표현 방식은 놀라웠지만 <등대로>는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 평론가들은 <등대로>를 더 높게 평가하는 모양이지만. 근데 양보하고 싶지 않은 건, 나하고 안 맞는 작품을 좋다고 말하기 싫다는 거. 이런 의미에서 한껏 기대하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은 《버지니아 울프 단편선》은 좋지 않다.


  무려 스물세 편의 단편소설을 실었다. 본문이 표지를 포함해 250쪽에서 끝나니까 한 작품당 대강 열 페이지 정도 분량이다. 앞에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하고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안 읽지는 않는다. 그런 책 가운데서도 배울 게 있고, 배울 게 있으면 배운다. 놀랄 만한 것이 있으면 당연히 놀라고, 감탄할 만하면 감탄한다. 근데 이 책에서는 배울 것도, 놀랄 만한 것도, 감탄할 것도 없더군.

  그나마 덜 어렵게 읽어서 마음 편했던 <델러웨이 부인>.

  작가가 장편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에 일필휘지로 쓰는 건 아닐 터. 숱한 에피소드와 장면과 등장인물을 설정하거나, 작품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질 터인데, 먼저 초안이 나오고 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들어내고, 첨가하면서 소설을 완성시키겠지. 근데 특정 에피소드나 장면, 등장인물 같은 것들 이 마치 닭의 갈비뼈 같아서, 버리자니 무지하게 아깝고, 넣자니 마음에 걸리는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집 속에 “델러웨이 부인 댁의 파티”를 위한 단편이 네 편 정도 들어 있다. 이것들이 혹시 이런 닭갈비뼈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왜 자꾸 들지?

  당연히 출판사 책 소개글에는 “<델러웨이 부인>의 단초가 되는” 단편들, 즉 델러웨이 가의 파티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소설 몇 편을 몇 개 썼고, 이것들을 쓰다보니 장편도 하나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장편 <델러웨이 부인>을 쓰게 됐다고 읽히게 표현했는데, 장편을 쓰게 되는 단초인지, 아니면 닭 갈비뼈인지, 만 원은 모르겠고, 오천 원 내기라면 닭갈비뼈에 걸겠다. 오천 원이면 얼마야, 꽉 찬 로또가 한 장이다.

  천성이 상것인 내 눈에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집에서 열리는 파티를 위하여 새 드레스를 맞춰 입고, 파티에 누가 참석하고, 초대를 받았느니 받지 못했느니, 제공한 에피타이저와 정찬과 디저트와 리큐어와 와인과 상파뉴,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이, 도무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거다. 원래 델러웨이 부인과 측근들이 부르주아, 귀족 계급일지는 몰라도 속물 덩어리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속물 아닌 인간 있으면 세 명만 데려와 보라, 하는 심정으로, 그래도 썩 잘 쓴 소설 같아서, 읽기는 읽었는데, 또다시 비슷한 게 자꾸 나타나니까, 멀미나 읽느라 고생했다.


  내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렇다고 버지니아 울프 읽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이이의 단편소설이 그리 좋지 않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지, 위에서 말한 <등대로>를 빼놓고 사실은 모두 그럴 듯하게 읽었다. 그중에서 <파도>를 아직까지 읽은 울프 가운데 제일 멋있는 작품으로 꼽기도 한다. 그래도 울프 한테 여전히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다. 바로 이 책 《버지니아 울프 단편선》 같은 경우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속으로 나는 이렇게 지껄였다는 거 아냐.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버지니아 울프의 저작을 포함해서 가끔 어려운 책도 읽어야 하겠지. 만날 쉽고 재미있는 책만 읽을 수는 없다. 굳이 찾아서 고통을 당할 필요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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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11-06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staff 님, 영국 여자 작가 중에선 누구를 좋아하세요?

Falstaff 2025-11-06 08:02   좋아요 1 | URL
조지 엘리엇이요!

잠자냥 2025-11-06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안 친한데.. 그것참.... 재미가 없어서 손이 안 가요;;ㅎㅎ

Falstaff 2025-11-06 15:33   좋아요 1 | URL
울프 읽으면서 재미 기대하는 인간은 자냥 님하고 쇤네밖에 없을 듯. ㅋㅋㅋ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문학동네포에지 83
강기원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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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강기원의 《바다로 가득찬 책》을 읽고 필이 팍 꽂혀서 곧바로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를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다. 이 시집은 2023년에 문학동네에서 찍었다. 당연히 2020년 이후에 쓴 시를 모은 시집인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 이미 출간되었으나 이젠 폐간된 시집을 다시 찍는 출판사의 프로젝트로 18년만에 새로 나온 옛 시집이었다. 그러니까 초판은 2023 – 18 = 2005년, 시인이 마흔여덟 살 무렵에 낸, 아마도 첫 시집일 텐데, 문학동네는 염치도 좋지, 판권지에 자기네 책에 초판 1쇄라고 타이틀을 박았다. 중판 아냐? 적어도 개정판이라고 해야지 말이야.

  첫 시집이었다는 걸 알았으면 내가 희망도서 신청을 했을까? 아무래도 아닌 거 같다. 그러느니 차라리 다른 도서관에 상호대차서비스 신청을 해서 시인의 초판본을 읽는 편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확실히 사람은 게으르면 못쓴다.

  이렇게 타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시집이 전에 읽은 강기원보다 마음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사에서 2005년에 낸 초판을 찍을 당시 강기원이 시인 짬밥으로 치면 8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마흔여덟, 시인으로 인생의 절정기를 구가하던 시기라서, 내 주제에 시가 이러하니 저러하니 건방을 떨 수는 없다. 그래서 단지 시들이 어째 내 입맛에 덜 맞았다고만 말할 수밖에.


  시집의 제목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가 좀 그로테스크하다. 살아 있는 고양이의 힘줄을 뽑아 그걸로 하프를 만들었을까? 왜 이리 엽기적인 이야기를 하느냐면, 사마천이 쓴 <사기 세가>의 장면 때문이다. ‘요치’라는 작자가 제나라에서 권력을 잡자 제나라 임금 민왕을 죽이는데, “민왕의 힘줄을 뽑고 종묘의 대들보에 하룻밤을 그대로 매달아 죽게 하였다.” 그러니까 사람도 살아있는 채로 힘줄을 뽑아 대들보에 매다는데, 고양이를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사람이라면 재미나 여흥을 위해 능히 그런 짓도 할 수 있는 생명체라서 말이지. 이러저러한 말만 늘어놓지 말고 표제시를 한 번 읽어보자.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내 머리채 휘어잡고 일필휘지 할 분 안 계시나


  뼈의 구멍에 입술을 대고 날숨 불어넣을 이


  방광 가득 바람을 넣어 힘껏 차도 좋을 일


  무늬 없는 등판에 지도를 그려 넣어

  벽에 거는 일은 어때

  오대양 육대주 까맣게 문질러

  밤의 지도를 만들지

  찾을 수 없던 별자리 돋아오르게


  비스듬히 품에 안고 핏줄의 현을 튕기면

  숨겨진 노래 흘러나올까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처럼 말야


  하지만 다 쓸모없다 여기실 땐

  빈 몸통만으로 토르소를 만드시죠

  사라진 목, 부서진 팔다리로 웃는 토르소를   (전문. p.99)



  어떠셔? 시인이 참 시가 써지지 않았던 모양이지? 오죽하면 자기 머리채를 틀어잡고 시인의 몸을 붓인 양 일필휘지로 시 한 수 써보라 했을까? 그러게 누가 시인더러 시인 하랬나? 자기 좋아 시 쓰기 시작해놓고 괜히 엄살이셔, 그지? 근데 엽기 그로테스크인 건 맞다. 부서진 팔다리로 웃는 토르소라니, 거 참 심했다. 오래전 최승자도 그랬지. 내 팔 다리를 분질러 네 꽃병에 꽂아달라고. 이런 표현은 먼저 쓴 사람이 장땡이다. 그래서 강기원, 1패. 아니면 말고.

  근데 진짜 그로테스크는 시집의 2부에 집중되어 있다. 여성을 주제로 쓴 시들이 밀집해 있지만 그렇다고 구태여 페미니즘 시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 낙태와 어린 자식의 죽음 같은 여성으로의 참담함을 그렸다. 임신중단도 말만 임신중단이 아니라 낙태 수술의 장면을 그린다.

  종이를 찢는다 / 낙태수술중이다 // 아주 잘게, 되도록 잘게 / 마취약이 듣지 않는다 … 사지가 뜯겨나간다 / 작은 손가락, 발가락이 핀셋에 들려 있다 // 주어 동사가 멋대로 섞인다 / 살점 하나라도 남겨선 안 된다 … (<퍼즐> p.45)

  말로만 듣던 장면이다. 연령층에 따라 학교 수업시간에 비슷한 영상을 보여주던 시기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시를 읽으며 연상하는 것이 그렇다고 그나마 ‘검열’ 후의 영상보다 덜 충격적인 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가 죽어 화장을 하고 따끈한 골분을 든 채 러시아워의 서울을 지나오는 이야기보다 바로 앞 페이지에 실린 이런 시를 읽는 편이 좀 나을 거 같다.



  딸꾹질



  삽날에 물컹한 것이 걸려든다. 썩은 연못을 메우려 마당을 파는 중. 구덩이 안에서 오글거리는 새끼 쥐 여섯 마리. 팔뚝만한 어미가 나무 뒤에서 노려보고 있다. 인부는 우선 그놈을 때려잡는다, 망설임 없이. 삽 뒷등에 터져버린 배에서 흐르는 찐득한 것들. 새끼들의 오디 같은 눈알들 위로 큰 돌이 쿵 던져진다. 마당 한구석 홈통 붙들고 구경하던 아이가 딸꾹질을 시작한다.


  삽날과 바위에 찍히는 꿈에서 겨우 깨어난 아이. 흠뻑 젖은 채 새벽 마당으로 나간다. 돌은 어느새 치워져 있고 연못 있던 자리엔 뒤집힌 흙의 속살이 덮여 있다. 묽은 핏빛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꼼짝 않고 아이는 지켜본다.  (전문. p.39)



  흠. 괜히 소개한 것 같군. 새끼 쥐 보셨나? 아주 오래 전 군불 때던 시절, 불 때지 않는 아궁이가 따듯하니까 겨울이 되면 가끔 쥐가 거기에 새끼를 낳는다. 털도 제대로 돋지 않고 눈도 못 뜨는 분홍색 작고 “귀여운” 생명체.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은 아무리 미물이고, 밤마다 천장을 뛰어다니는 시끄러운 병원균 매개체로 성장할지언정 정말 마음에 쏙 차는 생명체인 것을, 그걸 큰 돌을 쿵 던져 납짝 짜부려뜨려 죽인다고? 아이가 딸꾹질할 만하다. 그걸 보는 어미 쥐는 또 어땠을까? 그러니까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삽등조차 피하지 않고 새끼들하고 한날 한시에 죽는 편을 택했겠지. 에휴, 인용할 생각이 없던 시인데 어떻게 독후감 쓰다 보니 이렇게 됐네 그려.

  원래는 이 시를 제일 먼저 인용할 생각이었다.



  경(經)



  벗은 허물

  뒤돌아보지 않고


  없는 발과

  없는 날개로

  사라진 푸른 뱀아


  내 화사한

  경전아


  봄날

  갈라진

  숲길에 서서


  허물뿐인

  탈피할 수 없는 내가


  너를 읽는다   (전문. p.13)



  경經. 들실 말고 날실. 글. 책. 도리. 불경. 그리고 여성들의 월경. 이 가운데 어느 경을 말하는 것일까? 단, 이 시에서 경이 명사일 경우에 그렇다는 말. 마지막에 “너를 읽는다” 했으니까 명사가 맞다. “너”라고 의인화했으니 월경일 수도 있어서 굳이 선택에 포함시켰다. 시인에게 물어보라고? 물어봤자다. 99퍼센트의 시인은 “당신이 생각하는 경이 맞습니다.”라고 답변할 테니까. 그러니까 어떤 경인지는 독자 마음대로인데, 내 생각엔 글과 책, 그리하여 “시” 아닐까? 만일 이 시집이 시인이 처음 낸 책이라면, 첫 시집의 첫 시의 주제가 자기가 쓰는 것이든, 다른 사람이 쓴 것이든 시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아서 의견을 내본다. 불자가 불경을 대하듯 시인이 시를 읽고 쓰겠다는 초심이라 여기면 그럴 듯하다.

  그런데 이 시를 한 번 보자. 조금 불만이 있어서.



  선짓국



  선혈로 공양케 하시다니


  이건 피로 끓인 국이 아니다

  피로만 끓인 것이 아니다

  진흙과 눈물, 짚과 서리, 햇살과 구름, 들판이

  녹아든 한 그릇의 늪


  받아먹어라

  받아마셔라

  들리는 말씀 없어도


  쓰리고 아린 속내 앞에

  침묵으로 엉긴

  뜨겁고 생생한 적신(赤身)


  그 속에 쇠붙이 찌를 수 없어

  함부로 휘저을 수 없어


  두 손으로 뚝배기 받쳐들고

  고개 수그려

  메마른 입술을 댄다


  찬 이마 위로 훅, 끼쳐오는 입김   (전문. p.16)



  선짓국 한 뚝배기 하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고? 그래서 시인 아니냐! 한 목숨, 뜨겁고 생생한 붉은 몸의 공양에 흠을 낼 수 없어 시인은 차마 쇠 젓가락으로 선지 덩이를 찔러 자를 수 없단다. 그래서 두 손으로 받쳐들고, 고개도 수그려, 내 생명의 숨결 훅훅 불어가며 뚝배기를 비우자 훅, 끼치는 입김. 바로 내가 준 입김이 다시 나한테 비릿한 냄새와 더불어 끼쳐온다. 시인이 차마 시로 쓰지 않았지만 이 다음에는 뭐? 그려, 깊은 트림 한 번 끄윽, 해야 제 맛이지. 내 생명의 입김을 주었더니 다시 그게 끼쳐온다고? 그럼 또다시 돌려준다는 의미에서 깊게, 그윽하게, 끄윽.

  이 시에 뭐가 불만이 있느냐고? 2연과 3연. 구태여 그걸 설명을 해야 했나? 한 번 빼 버리고 읽어보시라. 좀 더 독자를 대우해주는 거 같지 않아? 이게 피로(만) 끓인 국이 아니라는 걸 누가 몰라? 적어도 시집을 사 읽던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독자가? 시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내가 읽기로는 2연과 3연은 뱀 다리 같다. 물론 아니겠지. 그러나 그렇게 읽힌다는 말씀.

  아이고, 오늘도 내가 기원 언니한테 함부로, 심하게 말해버렸네. 그래도 시인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의미가 있는 시집이다. 이대로 끝내기 섭섭해서 재미있게 읽은 시 하나 달고 독후감 마친다.



  미하(米蝦)



  눈물이 짠 걸 보면

  나는 소금

  아니, 절여진 무엇


  허공의 항아리

  짜디짠 그

  어둠 속에서


  덜 삭은 눈알로

  바다를 읽는


  굽어진 등도 없이

  모든 다리를 오그리고

  사라져 갈


  쌀새우   (전문. p.59)



  미하, 쌀새우가 뭔지 아시지? 서해, 남해에서 주로 나는 옅은 붉은 색 작은 새우인데 말리면 하얗게 색이 바뀐다. 강기원이 본 쌀새우는 새우젓을 담근 모양이다. 아직 덜 삭아서 그렇지. 새우젓 말고 곤쟁이젓은 아시나? 아주 작은 새우만 골라 곰삭여 만든 젓갈. 인천사람이자 가수인 송창식이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나 어렸을 때도 자주, 즐겨 먹던, 없어서, 안 줘서 못 먹던 젓갈이다. 민물새우로 만든 토하젓도 일품이고. 이 쌀새우를 보고 다른 건 그리 생각하지 않고 지은 시.

  아휴, 근데 나는 이런 종류의 시는 박백남이 쓴 <홍어>의 두번째 연이 제일 좋다.


  “쏴아쏴아 바닷물 밀려드는 곰소항에서 나는 곰삭은 홍어를 겨자에 찍어먹고 있다 오늘, 묵혀서 썩히면 썩힐수록 제 맛이 살아나는, 때론 몰래 맛보고 싶은 그대, 첫사랑처럼 코 끝이 싸한 맛, 한때 그대가 살았던 수심 깊은 내 가슴의 바다에서 쏴아아 눈물 끌어올려 내 눈자위를 적시고 바삐 사라지는 가오리과의 홍어, 내 어찌 그대 잊고 어디로 가오리까”  (《석류꽃엔 눈물생이 있다》 현대시. 1998.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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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1-05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동에서도 시집 복간본 시리즈가 나오는군요. 문지에서도 ‘시인선R ’이라고 복간본이 종종 나오던데요.
선짓국 먹으면서도 시 생각나는 게 시인 맞습죠… 홍어에 막걸리 먹고 싶네요…(라지만 삭힌 홍어는 아직 못 먹어봤습니다! ㅋㅋ)

Falstaff 2025-11-06 03:46   좋아요 0 | URL
저도 전라도 결혼식에 가서 처음 삭힌 홍어 먹어봤는데요, 질겁을 할 거 같은데 자꾸 거기에 젓가락이 가더라고요. 질색을 하면서도 먹는 게 홍어더랍니다.

얄리얄리 2025-11-05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들이 뭔가 섬찟하네요. [딸꾹질]은 저라도 그런 광경보면 속이 안좋았을 것 같고(아무리 쥐가 유해동물이라지만..), ˝선혈로 공양˝이나 ˝모든 다리를 오그리고 사라져 갈 쌀새우˝ 같은 부분도 카프카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에요.

Falstaff 2025-11-06 03:49   좋아요 0 | URL
죽은 쥐새끼들은 그렇다 치고, 어미쥐는 그리 쉽게 때려죽이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시인의 머리속에서 그랬을 겁니다. 사람이 휘두르는 삽에 쉽게 맞을 정도의 짐승이 아니거든요. 강기원 어린/젊은 시절에는 흔한 장면이었을 겁니다.
먹는 걸로 치면 뭐든지, 하물며 산나물일지라도 다른 생명일 터이니 그걸 어쩌겠습니까. 에휴...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
핑크 지저인 3호 지음, 곽윤미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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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작가 이름이 핑크 지저인 3호라고? 그렇다. 1982년생이니까 우리나라 김지영씨하고 동갑이다. 일본 교토에서 출생해 교토의 대표적인 학교 도시샤대학 미학예술과를 졸업하고, 흥미롭게도 장례지도사 직업에 종사, 천 명 이상의 죽은 자들 장례를 도왔다. 연극판에서 뜻이 맞는 핑크 지저인 3남매를 조직해 이 가운데 3호를 맡아 지금까지 극작가와 연출가로 활약하고 있다. 본명은? 밝히지 않았다.

  근데 지저인? 지저地底. 땅 아래, 땅 속, 땅 밑이라는 뜻. 거기에 있는 건 저승 또는 관, 아니면 시신. 크게 말해 죽음의 영역이다. 지저인 3호야 전직이 장례지도사, 속칭으로 ‘염쟁이’였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다른 핑크 지저인 두 명도 같은 직업이었을까? 그건 모르겠고, 하여간 이들이 몰두하는 작업이 “삶과 죽음에 육박하는 작품”이라고 작가 소개에 나와 있다. 이걸 매년 두 편 정도 만들어 공연한다고.

  전년에 이미 센다이 단편 희곡상 대상을 단독 수상한 이력이 있는 핑크 지저인 3호는 이 작품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었다>로 2019년에 극작가협회 신인 희곡상을 받았다. 출판사 지만지드라마가 이 책을 출간한 건 아마도 작년, 2024년 늦봄에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핑크 지저인 3호도 한국에서 공연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직접 서울에 와 무대를 보고 꿈이 이루어진 기분이 들 정도로 감동했다고 이 책의 ‘작가의 말’에 썼다.


  2015년에 이슬람국가 ISIL이 일본인 민간군사회사 사장, 즉 무기판매상 유카와 하루나를 인질로 잡은 사건이 있었(단)다. 일본에서는 유카와라는 사람이 자기 이익을 위하여 정부에서 극구 만류하는 시리아 지역에 들어가 인질로 잡힌 일을, 개인이 일본 전체에 큰 “폐를 끼친” 인물로 여겼다. 이때 그를 구하기 위해 저널리스트인 고토 겐지라는 사람이 또 시리아에 갔다가 두 명 다 처형된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한참일 때 들어가지 말라는 무슬림 극단주의 지역에 제 발로 기어 들어가 포교활동 하다 참수당한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있었다. 이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하면 많이 다르지 않겠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개인 자격으로 구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들어간 사람도 없었고, 같은 교회 신자/관계자/책임자/목사/전도사/장로/권사/집사도 한 명 없었지만.

  이때 핑크 지저인 3호는 장례지도사 경험이 제법 있는 작가로 처형당한 유카와를 연상하면서, 마치 납관 작업을 하듯 이 작품을 썼을 것이다.


  무대는 농구선수 출신이자 전직 체육교사였던 기리노 겐토 씨 집의 마당이다. 시기는 2015년 한여름인 7월 30일 밤과 10년 전 2005년 6월과 7월 두 달 사이. 두 시기를 왔다갔다 한다.

  현재 시점에는 집주인 기리노 겐토 씨가 죽어 장례식을 마치고 참례를 했던 사람들이 기리노 씨 댁의 집에 모여 애도를 겸한 식사를 하고 있다. 물론 조문객들은 집 안에 있을 뿐, 이 가운데 마당으로 나와 극에 참여하는 사람은 고인의 아내 기리노 교코 한 명이다. 겐토가 죽어 염을 하고 입관을 했을 때, 입관, 일본말로 납관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납관을 한 이는 장례지도사 초년병인 사카모토 도루. 죽은 기리노 씨의 외아들 요시오의 하나밖에 없는 절친이다. 요시오는 현재 행방불명. 그가 사라지기 전, 그러니까 10년 전에, 아버지가 죽으면 납관은 네가 해달라고 부탁해, 그걸 들어주었다. 물론 부탁을 하고 곧장 우정에 금이 가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랬다는 거다.


  요시오의 누나가 한 명 있다. 기리노 가즈에. 도루가 짝사랑했던 사람. 가즈에의 친구 유카는 장례지도사. 극의 성격이 확고해지는 데 유카의 역할이 작지 않다.

  무대인 기리노 댁이 있는 곳은 교토부 우지시 마키시마 동쪽 우지가와강변의 주택가. 새로 넓직한 도로가 뚫렸다. 촌에 큰 길이 뚫리면 제일 먼저 동네 술꾼들이 결딴난다. 술에 잔뜩 취해 전에 늘 다니던 길 생각만 하고 그저 터덜터덜 갈 길 가다가, 시속 80km 규정속도로 달리는 차에 치어 염라대왕 전에 서게 되는 것. 예전에는 술 취해 집에 가다 죽을 일은 정말 잔뜩 취해 돌다리를 건너다 동네 누렁이가 푸짐하게 싸놓은 개똥을 밟아 미끈덩, 다리 아래 거꾸로 처박혀 죽는 일 말고는 없었는데 이게 웬 일이니?

  아, 그렇다고 겐토가 개똥 밟아 다리에 떨어져 죽었거나 차에 치어 죽은 건 아니다. 그냥 죽었다. 우지가와 강변의 수풀을 터전 삼아 살던 고양이들이 사달이 났다. 고양이들은 길 건너다 뒤돌아 가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하루에도 한 두 마리씩 로드 킬을 당했는데, 험한 꼴로 죽은 고양이의 뒤처리를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하는 유일한 사람이 장례지도사 유카였다. 험한 죽음과 이의 뒤처리. 고양이와 유카. 책의 제일 앞에 실은 ‘작가의 말’에서 ISIL에 의하여 인질로 잡혔다가 처형당한 무기판매상 유카와와 그를 구하러 갔다가 같이 죽임을 당한 저널리스트 고토. 원혼을 달래는 의미를 포함해 이 일을 희곡으로 만든 핑크 지저인 3호. 이렇게 연극이 만들어진다.

  이걸 알아챘다면, 이야기는 어쨌든 행방불명된 유시오 역시 비슷한 부류의 일원이 될 것임도 눈치챌 수 있다. 그러면 애초 배경인 기리노 댁의 지붕에 여러 색의 페인트가 흉하게 뿌려져 있으며, 담장엔 “죽어!”, “자업자득”이라거나 심지어 “일본의 치부”를 비롯한 욕설이 가득한 낙서가 쓰여 있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무기판매상 유키와와 고토를 국가에 큰 폐를 끼친 인물로 지탄했던 사람들이니까.

  “죽어!”가 욕이라고? 전 스케이트 국가대표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의 남편 강남이 그러는데, 일본에서 제일 세고 거친 욕이 “죽어!”란다.


  요시오. 크로스드레서. 여자의 옷에 집착하고 메이크업까지 한 채 학교에 갔다가 왕따를 당했다. 이건 그냥 취향이지 신경정신적 병이거나 동성애 등 성 소수자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하여간 학교 성적도 좋지 않아 체육교사로 근무한 아버지 겐토한테도 인정받지 못한 그냥 보통의 남자. 요시오한테 접근한, 좋은 의도로 가까이 지내게 된 미도리카와 다쿠지. 이이의 직업이 전쟁 저널리스트이다. 다쿠지는 직업상 숱하게 사진을 찍어댄다. 요시오하고 친해지자 한참 어린 요시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선물하면서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고, 어느날 다쿠지는 전쟁 취재를 위해 사라진다. 요시오도 함께 사라지고 행방불명, 사실상 죽었다.

  요시오 죽기 전에 먼저 죽은 사람이, 주인공의 한 명인 도루의 짝사랑 상대인 요시오의 누나 가즈에. 차에 치어 죽어가는 고양이를 구하기 위하여 달려갔다가, 더 빨리 달려오는 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죽는다. 가즈에가 더 불쌍하지만, 가즈에를 짝사랑한 도루의 상실도 대단했다. 이때 도루에게 다가와 위로의 말을 해준 이가 선배 장례지도사가 될 유카. 유카가 도루의 목과 어깨 사이의 뼈, 쇄골에 움푹 파인곳을 손가락으로 살짝 찌르면 말한다.

  “너의, 쇄골에, 가즈에가, 잠들고, 있습니다.”


  가즈에가 도루의 쇄골에서 잠들고 있었듯, 10년 후 이미 죽어 혼령이 된 요시오 역시 도루의 쇄골에 잠들어 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민간군사회사 사장 유카와 하루나와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 역시 핑크 지저인 3호의 쇄골에서 잠들고 있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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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1-04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제목도 일단 좀 그렇고 ㅋㅋㅋㅋ 내용 살펴보니까 장례지도사, 고양이 이런 키워드가 등장해서 에이... 뻔한다 싶어서 패스했는데요. 이런 내용이군요. ㅎㅎ

Falstaff 2025-11-04 11:26   좋아요 1 | URL
그래도 네 췌장을 먹을래 보다 낫지 않나요? ㅋㅋㅋ
 
경세통언 3 - 어리석은 세상을 깨우치는 이야기
풍몽룡 지음, 김진곤 옮김 / 아모르문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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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40편이 실린 《경세통언》 세 권을 다 읽었다.

  명말청초 17세기 사람이다.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도 아닌 17세기 전반부에 쓴 작품. 풍몽룡의 3언, 즉 《유세명언》, 《경세통언》, 《성세항언》 120편의 단편을 세 책으로 나눈 것 가운데 제2 언. 풍몽룡이란 이름만 듣고 누군지 잘 모르시겠지? <동주열국지>를 쓴 사람이라면 이해가 빠를 듯.

  풍몽룡의 3언, 120편의 단편 ‘소설’ 모두 다 저자가 직접 만들어낸 허구는 아니다. 중국, 특히 장강을 중심으로 한 현 장쑤성과 장강 주변의 민담을 발굴, 평생 과거 시험에 응시했다가 미역국만 착실하게 자신 문인으로의 저자가 시詩, 사詞, 그리고 곡曲을 보태 소설의 형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즉, 소설화한 옛날 이야기 모음집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풍몽룡의 출생지가 강소성 소주부, 즉 소주. 일찍이 위진魏晉, 즉 조조의 후예 조씨의 나라 위와 조씨의 씨를 말리고 황제 자리에 오른 사마 씨의 나라 진晉. 이 사마씨의 진나라에서는 역설적으로 사마 성을 가진 사마 씨들이 서로 눈빛만 마주쳤다하면 도륙을 내는 바람에 금세 멸망해 동쪽으로 도망가 다시 세운 나라를 동진東晉이라 일컫는데, 한 백 년 정도 유지하던 사마씨의 나라였다. 소주가 이 동진 부근에 있어서, 《경세통언》의 이야기들도 이 시기부터 당, 송, 원, 명대를 배경으로 전해온 민담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전 즉 동주東周시대의 것도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


  《경세통언》 세 권을 다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1권은 제법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 재미라는 것이 2권에 와서 확실하게 반감되는 것을 느꼈다. 비슷한 내용과 플롯을 연달아 읽으면서 재미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3권까지 가면 확실하게 재미 적다.

  책은 민담에서 시작한 것 답게, 남자가 첩을 얻거나 바람을 피우는 건 마땅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는 법인 반면 혼인한 여성의 경우에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큰일날 일이라서, 주로 유부녀의 혼외정사와, 남자의 편력에 의한 패가망신 같은 사건으로 “세상을 깨우치는 이야기”가 흔하다. 남녀상열지사의 표현도 17세기 시각에서는 대단히 선정적이었겠다. 물론 지금은 중딩들도 안 읽을 수준이지만.

  다들 읽어보셨을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것도 오래 전 번역에서는 다분히 도교적 시각으로 쓰인 것이 많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던 <봉신연의> 같은 건 애초 주인공 격인 강태공이 신선 가운데서도 대단한 공력을 지닌 신선이고, 악역인 달기는 꼬랑지 아홉 개 달린 백여우로 그렸으며, 강태공이 사용하는 무기들도 네이팜탄과 다연장포를 연상시킨다. 《경세통언》, 특히 3권에서는 유달리 이 신선과 요괴들이 많이 등장하고, 심지어 동진 시대를 무대로 하는 작품에 나오는 요괴의 개과천선한 아들 하나는 몇 백 년 후에 서쪽 천축국으로 경전을 가지러 떠나는 중 삼장법사를 등 위에 태워 함께 다녀오면 곱게 하늘로 오를 수 있다는 것까지 나온다. 이런 것이 책 한 권에 한두 편이면 흥미 있을 지 모르겠지만, 억울하게 죽어 귀신이 되어 복수하는 거, 신선이 꿈에 나타나 누가 범인일지 가르쳐 주는 거, 신선 팀과 요괴 팀이 맞짱을 떠 당연히 착한 신선이 백대 영으로 이기는 거, 이런 것들이 잦아 나중엔 질리게 되더라는 말씀.


  그렇다고 이 《경세통언》을 포함한 풍몽룡의 3언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당시에도 아마 이 책은 “어리석은 세상을 깨우치는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단 흥미 위주의 소설이었을 듯하다. 그러니 후세인들도 풍선생의 유지를 좇아 바쁜 세상 살면서 조금 한갓진 시간을 보내려 할 때, 책장에서 이 책을 뽑아 들고 한 편, 또는 두 편 정도 읽고 난 다음, 훗날을 기약하면서 책갈피를 꽂고 다시 책장에 올려 놓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터. 즉,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에 맞춤하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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