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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의 사랑 ㅣ 거장의 클래식 6
딩옌 지음, 오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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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간쑤성 티베트족 자치구 린탄현에서 난 딩옌은 이슬람을 신봉하는 둥샹족東鄕族 출신이다. 그러니까 문학사 상 누구와 비슷한 혈족인가 하면, 당신도 알고 있는 요술램프의 주인 알라딘. 알라딘이 티베트에서 북동쪽 사막지대에 살던 회족回族이었다. 앙투안 갈랑이 쓴 《천일야화》에 의하면 그렇다.
2019년에 데뷔했고 이 책이 두번째 작품집으로 ‘화성문학상花城文學賞’ 중편소설상을 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 신예 작가 딩옌. 출판사 글항아리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소설집이 《설산의 사랑》이다. 글항아리의 중국어 소설 시리즈 제목이 거창하게도 “거장의 클래식.” 아직 발표 작품과 저작 등을 보아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은 것은 틀림없지만, 앞으로 “거장”이란 타이틀을 달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이 엿보인다.
나도 이 책 한 권으로 딩옌, 이 티베트 이슬람 여성에게 홀딱 반했다.
본문이 417페이지에서 끝난다. 그런데 일곱 작품밖에 싣지 않았다. 전부 중편소설이라 봐도 좋을 정도의 분량. 촌스러운 제목의 첫 작품 <속세의 괴로움>을 읽으면서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이렇게 소설을 쓸 수 있구나.”
사랑. 사랑? 21세기 들어 사랑은 언제나 대형 마트에서 세일 중이며, 가끔 재래시장에 가 보아도 이제는 저울에 근으로 달아 파는 경우도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고인 흙탕물처럼 첨벙거리기도 하며, 어쩌다가 그저 휙 지나가는 바람처럼 한 번 슬쩍 훑어 지나갈 수도 있다. 목이 메는 건 이미 구닥다리 취급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절실한 사랑은 낡은 거다. 그저 쿨한 게 좋다. 쿨하게 사랑하고, 쿨하게 불타오르다가 쿨하게 헤어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저 북쪽 산악지역,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원 지대인 티베트. 도시보다 더 유명하고, 더 크지는 않지만 더 큰 위용을 과시하는 오랜 불교 사원이 있는 곳. 자연을 닮아 거친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는 지금에서야 21세기가 폭격을 시작한 것 같다. 그리하여 그곳 또는 그 지방 사람들의 사랑은 아직도 마음 속에서 함부로 내놓지 못하고, 눈짓이나 “손끝 하나 만으로도 너무 충분”하고, 특히 단어로 발음하기 쉽지 않다.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더 미어지고, 애잔하고, 쓸쓸해서 아름답다. 아직도 이렇게 소설을 써도 유효한 세월이구나. 그걸 오래 모르고 살았구나.
일곱 편의 중편소설이 전부 사랑을 노래한다. 모두 티베트 지역의 이슬람을 신봉하는 회족 집안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모든 여성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혼인한 여자들은 대개 히잡을 쓴다. 나이든 여성은 검정 히잡을 착용하지만 젊은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많은 핀으로 고정시키고 분홍색이나 하늘색 같은 예쁜 히잡을 골라 쓴다. 중동의 거친 이슬람이 아니다. 고립되어 오히려 더 원래의 이슬람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랑과 용서와 배려의 종교.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장사속이 밝았던 이들의 후예.
자신이 이슬람 회족 출신인 줄도 모르고 어려서 버려져 티베트 불교의 비구니 절에 들어가 열여덟 살이 된 여성 샤오줘. 이이는 정식 비구니 계를 받기 원하지만 같은 절의 최고 비구니로 있는 할머니가 샤오줘의 엄마가 죽기 전에 유언한 대로 계를 받기 전에 아버지를 만나 허락을 받으라며 도시로 보낸다. 세밑의 엄혹한 추위 속에서 도시로 향한 샤오줘는 이복의 이슬람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친절에 힘입어 아버지의 행적을 추적한 후에 다시 비구니 절로 돌아와 계를 받으려 하지만, 이미 속세에서 이슬람의 인연을 발견한 후였다.
이 작품이 책의 제일 앞에 배치한 <속세의 괴로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이미 당신의 심장은 한 번 쿵, 하고 떨어지고 말 것이다. 세상에. 저 먼 먼 고원지대에서 진홍색 승복을 입고 다닌 짧은 머리의 비구니가 닳고 닳은 현대인의 심사를 이리도 심란하게 만들 수 있다니.
심란함은 계속된다.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이 표제작 <설산의 사랑>.
명성이 자자한 샤허夏河현 지방의 티베트 골동품 상점을 운영하는 마씨 집안의 막내아들 마전. 사는 살림집은 린탄에 있다. 전형적인 옛 상인인 아버지가 이란의 대리석과 옥 광산을 개발해볼 생각으로 마전을 테헤란에 유학시켜 무역을 공부하게 했다. 아랍어를 배우고, 인맥을 쌓고 돌아와 이란과의 무역을 시킬 목적이었지만 마전은 그곳에서 이슬람 세밀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곧 관심의 범위가 넓어져 나름대로 옛 회화에 일가견이 생겼다. 어려서부터 보살핌 속에서 여유롭게 지내던 도련님. 회족이라 곱슬머리에 움푹 팬 눈과 얼핏 푸른 색처럼 보이는 눈을 가진 큰 몸집의 남자지만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 험한 일은 해보지 않아서 할 줄 모른다.
작은 관광도시 샤허의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비단 가게와 마씨의 골동품 가게. 비단 가게 종업원 양진의 남편이 부주의로 불을 냈고, 불이 골동품 가게까지 번져 두 가게가 완전히 타버렸다. 이때 골동품 가게에서 잠을 자던 티베트 청년 자시가 죽었다. 가게에 강도가 드는 걸 막기 위해서 가게 안에 자시가 있음에도 바깥에서 문을 걸어 닫았고, 창문마다 철근으로 방범창을 만들어 불이 났어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래 오랫동안 가게를 위해 일하던 자시 청년이 죽어 마씨는 거액의 보상금과 벌금을 지불해야 할 터.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시의 집에 붙어 있던 골동품 창고를 담보로 융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러면 마씨 집안이 다시 일어날 동력인 골동품을 팔 수 없어서, 일단 돈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창고를 지키기 위하여 막내 아들 마전을 보내기로 했다. 마씨의 셈을 마전도 알았다. 사실상 자기가 부채 지불의 인질로 가는 것임을.
춥고 추운 겨울날 린탄에서 샤허로 가, 티베트 가옥에서 귀가 달린 것처럼 생겼다고 귀의 방, 즉 이방耳房에서 살게 된 마전. 말이 방이지 도무지 사람 사는 곳 같지 않다. 집에는 지리의 할머니와 여동생 융춰만 살고 있다. 융춰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적 세밀화 그림을 그린다. 취미 정도가 아니라 샤허의 유명한 거대 절, 리브랑 사원에서 낡은 세밀화 복원작업을 하는 수준이다. 마전이 일가견을 지닌 분야. 하지만 할머니와 융춰는 자신들의 손자이자 오빠를 죽게 만든 집안의 아들이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 마전은 그래도 인사를 나눈다고 매일 가게에서 과일을 사 봉지에 담아 방문 앞에 내려 놓고.
과일 봉지는 열어보지도 않은 상태로 다음날 새벽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다. 마전의 마음이 몹씨 좋지 않지만, 이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 식구였던 젊은 자시가 죽었으니 할 말도 없다. 마전은 현에 하나 있는 모스크에 찾아가 새벽과 밤마다 예배를 하는 걸 위안으로 삼으며 라마단 시기를 보낸다.
낮에는 거대한 리브랑 사원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높은 승려와 안면을 트고 사원의 세밀 벽화를 보면서 깊은 대화를 하는 걸 마침 그 방에 들른 융춰가 듣고 마원이 얼마나 예술을 진지하게 알고 있는지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둘이 말이라도 나누기 시작한 건 아니다.
이렇게 날들이 지나간다. 무심하게.
그러다 샤허의 불탄 가게 앞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양진, 전에 자기 아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고 마전의 얼굴에 침을 뱉았던 여자가 폐허가 된 비단가게 앞에 앉아 있다가 비단 가게 주인 비슷하게 생긴 아무 남자를 칼로 찔러 죽여버렸다. 이 일이 있자마자 집의 문이 부서져라 벌컥 열고 뛰어 들어온 융춰. 이이가 할머니를 부여잡고 목놓아 통곡을 하면서, 이걸 어떻게 하느냐고, 양진이 마전을 죽여버렸으니 이걸 어떻게 하며, 어찌 사느냐고 울부짖는 것을 마전이 보고 말았다. 눈이 마주친 융춰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저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소식을 들은 마씨 집안에서는 행여 막내아들이 어느 날 비슷하게 일을 당할 줄 몰라 서둘러 마전의 형을 보내 데리러 오고, 그날로 짐을 싸 트럭에 오른 마전은 그저 융춰와 눈을 마주치기만 한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이 시대에 소설을 이렇게 쓰다니. 한 편으로 보아 낡고 낡은 것 같지만, 지금 세상엔 둘도 없을 신파가 사람 마음을 이리도 후비다니, 이게 말이 된다는 것이지? 요즘에도 사람의 심정을 손짓 하나로 묘사해 독자의 심사를 쑤석이는 작가가 있구나. 아직도 그럴 수 있구나.
이 두 편만 좋은 게 아니다. <잿물>이란 중편도 아리다. 다른 작품 모두 좋다. 세상에나.
놀라운 건식 사랑들.
동북쪽 다싱안링 산맥에 츠쯔젠이 있다면, 서북쪽 티베트 고원에는 딩옌이 있었다. 딩옌의 빼어난 심리묘사를 읽을 수 있게 소개해준 출판사와 역자에게 고마움이 들 정도였으니 얼마나 좋게 읽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터. 아무쪼록 계속 좋은 글, 그리고 쓰는 김에 장편소설도 발표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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