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아이 이야기 ㅣ 암실문고
김안나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유럽계 백인만 사는 동네,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에서 유일한 흑백 혼혈로 살아간 남자 대니와 그의 아내 조앤의 삶을 오스트리아에서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남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동양인에 더 가까운 외모를 갖고 살아가는 프란치스카가 들여다본 이야기. 인종 이야기에 무게를 깊이 둔 디아스포라 소설이자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대니의 어머니 캐럴은 낳자마자 그를 포기했고 입양기관의 집요한 추적에도 친부가 누구인지 끝끝내 밝히지 않는다. 대니는 자신감에 넘치고 사람들의 관심 한몸에 받는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조앤은 그가 외로운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모종의 이유로 집을 비운 상태이며 남는 방에 프란치스카가 잠시 세를 들어 살러 왔다. 조앤과 부부의 이웃집에 사는 에이다, 그리고 책의 절반을 차지한 사회복지사 NW의 (우생학적 영향이 짙은) 보고서를 통해 대니의 삶이 프란치스카에게도 전해진다.
조앤은 프란치스카의 첫 만남에서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인종에 대한 단정적 언사를 쏟아낸다. 그린베이 유일의 흑백 혼혈인의 아내라는 지위가 그런 질문을 할 '자격' 주는 것은 아니지 않나? 처음 만난 순간부터 외모와 뿌리는 뗄 수 없는 관계라 단언하는 조앤의 말들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프란치스카는 결국 입을 연다.
"나는 가시성은 하나의 멍에라고 말했다."
화자인 프란치스카는 심한 근시로 안경이 없으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시각보다 촉각과 후각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초면부터 조앤과는 상극이지만 불쾌감에는 방어적으로 대처한다. 그건 성장과정에서 늘 하던 방식이었다. 프란치스카는 어린 시절 자신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엄마의 탓으로 돌리며 엄마를 부정하고 내몰았던 경험이 있다. 엄마의 부재는 결국 뿌리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니와 프란치스카 사이의 어떤 연결고리가 된다고 느꼈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NW와 그의 딸 질비아의 관계에서도 대니와 프란치스카가 그들의 엄마와 갖는 관계와 겹쳐 보이는 장면들이 그려진다.
가시성, 외모와 뿌리에 대한 조앤과 프란치스카의 견해는 사실상 좁혀지지 않는다. 조앤은 이 문제에 있어 당사자도 아니면서 강퍅하게 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다음 조앤의 말을 통해 결국 두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서로를 거리를 두고서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어느 정도 부정적으로 묘사되던 조앤에 대한 인상도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점점 누그러져간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한다는 건 온전히 사랑에 몰두하겠다는 다짐 그 이상이야. 최종적으로 이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는 걸 의미하는 거야. 예전의 안전했던 세상은 그의 가시성 아래에서 무너져 내리게 되거든."
겉으로 보면 중심 서사와 보고서, 두 겹의 형식이 겹쳐져 조금 딱딱하게 읽히는 소설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중심인물을 파악해나가는 방식에서 약간은 미스터리 소설 같은 재미도 느꼈고, 층층이 쌓인 여러 겹의 감정을 하나씩 풀어내며 읽어낼 필요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밀려드는 감정에 여러 차례 탄성을 질렀고 밑줄도 많이 그으며 읽었다.
매년 꼽는 올해의 책 후보에 올려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