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판시선 71
서정춘 지음 / 비(도서출판b)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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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도 무심하지. 서정춘. 벌써 여든다섯. 등단하고 스무 여덟 해 만에 낸 첫 시집 《죽편》으로 그때까지 붕어빵 찍어내듯이 시를 쓴 시 생산업자한테 면목없게 만들던 기억. 여전히 언어의 구두쇠. 이번 시집 《랑》은 표지까지 39쪽의 짧은 분량에 서른세 편의 시를 실었다. 서정춘의 시는 그냥 읽으면 된다. 척, 읽으면 탁, 와 부딪는다. 예컨대:



  홍매설紅梅說



  첫, 보시기에

  꽃도

  불이시니

  불티 먹은

  꽃가지에

  불이시라

  남의 님

  넘보듯

  불콰하시니

  지난 날

  물불 없이

  사르다 간

  불이시라  (전문. p.10)



  아후, 세상에나. 아직도 이렇게 시를 쓰는 것이 유효할 줄 누가 알았을까? 붉은 매화 한 송이 또는 한 그루를 보고 “지난 날을 물불 없이 사르다 간 불”이라 노래하면, 노랠 듣는 사람은 어찌하라고. 제일 첫 마디 좀 봐. “첫, 보시기에” 저 쉼표의 절묘함이라니. 일찍이 쉼표의 단애斷崖는 송기원의 단편 <월행>에서 유감없이 표현된 바, “구름 사이로 달이 빠져나오자 반짝, 개천이 드러났다.” 이후 무단 없이 쉼표를 사용한 글쟁이들은 누구나 송기원에게 빚진 바 있다 하겠으나, 같은 40년대생 송기원이나 서정춘이나, 보성이나 순천이나 거기서 거기니까 두 양반이 알아서들 하시압고, 하여간 잡소리 없는 절창이라 아니 할 수가 없네 그려.

  꽃도 불이니, 불티를 먹은 꽃가지에 매달린 불이러라. 크. 낮에 마신 소주가 지금 다시 취한다. 이런 시 한 수는 외워두어야 마땅하건만 이젠 외우는 것보다 잊는 게 더 많아져 도무지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 게 한이라면 한이랄까. 이런 시 쓰는 서정춘 시인이 미울 지경이다.

  아무리 서 시인이라 하더라도 39페이지 얇은 책 속에 좋은 시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시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차지 않는 건 굳이 소개할 필요 없으니, 딱 들어온 시만 하나 더 골라보자.



  아픈 꽃



  어린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랬는데, 맞고도 틀렸다

  그 꽃도 아플 터라  (전문. p.14)



  맞아, 맞아. 어린 아이라도 골밀도 촘촘한 두골이 있을 터. 거기에 부딪는 꽃이라도 어찌 아프지 않을소냐. 아이를 보면서도 한 눈으로 꽃도 보는 이, 그게 시인일 터.

  이 시집에는 예전에 자기가 쓴 시를 새로 쓴 시도 있다. 2010년에 <흘림>이었다가 2013년에 <飛白비백>으로 제목을 바꾸고 다시 내용을 고쳐 쓴 <비백>.



  비백

  ― 은어잡이 황갑철



  저것이냐

  자네 흘림체 먹물에서 보았던 흰점박이 飛白

  내리내리 섬진강 내린 물을 은장도 빛깔의 은어 떼가 차오를 때 보이는 飛白

  저 역류의 힘!  (전문. p.17)



  원래 시는 이렇다.



  흘림



  저것이냐 飛白 어느 흘림체 먹물에서 보았던 飛白 오늘 섬진강 여울에서 시린 니쏘리로 여러 번씩 보인다 飛白 돌자갈에 몸을 갈며 여울물 차오를 때 보이는 飛白 은장도 빛깔의 은어 떼가 보인다 飛白 저 역류(逆流)의 힘!  (《귀》 시와시학사 2005. 전문 p.27)



  내 읽기로는 둘 다 좋은데, 시인은 암만해도 <흘림>이 뭔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홍매설> 첫행에서 본 절묘한 쉼표를 이 <흘림>에선 “시린 니쏘리”가 역할을 하건만, 독자는 그게 빠진 모양이 암만해도 섭섭하다. 뭐 그렇다고 구시렁거릴 입장은 아니긴 한데….

  또 재미있는 시가 있으니:



  乭과 새 1



  돌에 눌린 새라니요

  한글박이 시인의 눈에

  저러한 뽄새가 서름해설랑

  돌은 들내놓고

  새를 건드려

  한글 나라 소리로 훨

  날려 버릴까를 궁리중입니다요  (전문. p.19)



  乭의 우리말 음가는 “돌”이니 갑돌이 할 때 甲乭이 이 돌이다. 생김새가 돌石 아래 새乙이 눌려 있어 새가 날지 못할 것이 시인 보기에 서름해설랑, 돌을 들어내고 새 옆구리를 찔러 하늘 멀리 날려보내려 궁리중이란다. 어디로 날려보낼까? “꽃 그려 새 울려놓고 /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 소식” <봄, 파르티잔>처럼 지리산 빨치산 한테? 참 “봄봄하다.”

  하나만 더 소개하자.



 



  전라도 순천 어머니가 서울 사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아가 온 나라가 난리통이다잉 밥은 집에서만 묵고 다녀라잉 마스크는 꼭꼭 눌러쓰고 다녀라잉 사람들 모닥거린 데는 쳐다보지도 마라잉 이래잉 저래잉 잉잉대는 꽃벌의 날짓 소리 같은,  (전문. p.27)


  남도 사투리 끝에 “잉” 붙이는 건 다 아시지? 비슷하게 시집의 제목을 《랑》이라 한 건, 이음새가 좋아서이다. “너랑 나랑 또랑물 소리로 만나서 / 사랑하기 좋은 말”이라서인 것처럼 <잉>도 마찬가지. 근데 감염병이 2019년인데 이때 서정춘의 연치가 78세. 순천 사는 어머니는 적어도 오메, 90대 후반 아녀? 장수하셨네. 이이의 아버지가 마차를 모는 마부였다. 당연히 가난하고 어려운 세월을 살았겠지. 그런 살림을 꾸린 아버지는 속으로 애간장이 녹아났을 터. 이제 시인은 아버지 제사를 지낸다.



  향불 앞에서



  오늘따라 아버지 제상의 향불 타는 연기가 나에게는 마른 말똥 타는 냄새로 싫을 것이 없는 것은 차마 아버지의 한 평생인 마부의 몸 냄새라 우겨보는 데 있다  (전문. p. 36)



  한 수만 더 인용한다 해놓고 또 한 수를 보태면 반칙 아니냐고? 꽃별의 날짓 같은 어머니의 잉 소리를 한 바에 아버지 제상 향불 하나 보탠다고 어찌 흉이랴. 그냥 곱게 봐주시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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