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 2024 부커상 수상작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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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작가 서맨사 하비Samantha Harvey는 1975년 켄트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열 살 부근에 부모가 이혼을 했는지 어땠는지 어머니는 아일랜드로 이사했다. <궤도>에서도 지구 저궤도를 도는 우주 정거장 탑승 우주인 넬이 영국 여자인데 결혼생활 5년 여 동안 우주인 훈련과 궤도 생활로 결혼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편이 방세 비싼 런던 대신 아일랜드의 농가로 옮겨 간 이야기가 나온다. 이게 괜한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 이후 하비는 요크 대학과 셰필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일본에서도 조금 학교를 다닌 모양이다. 졸업 후 세계적 온천 휴양도시에 있는 바스 스파 Bath Spa대학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 박사를 했다. 소설 쓰는 일에도 가방끈이 중요한 세월이 됐다. 이이 홀로 열라 공부한 거 아니다. 요즘 왠만한 소설가들은 거의 문예창작 석사는 가지고 있더라.

  <궤도>는 2023년에 발표해서 2024년에 부커 상을 받은 책. 우리나라에는 2025년에 번역 출판되어, 나온 즉시 나도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했지만 5분 먼저 신청한 같은 도서관 이용객이 있어 이제야 읽었다. 시내 도서관마다 늘 대출중이었던지라 당분간 읽기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시 외곽의 도서관에 여유분이 있길래 상호대차서비스 신청해 받았더니, 이게 웬일, 거의 새책이다.


  미국의 우주인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처음으로 달 위에 인간의 발자국을 남긴 것이 1969년. 그리고 50년이 넘게 달에 가지 않았다고 하니 작품의 시간적 공간은 2019년 이후의 어느 날 하루. 장소는 17개의 모듈을 연결한 우주 정거장. 시속 1만7,500km 속도로 지구 저궤도를 돌고 있다. 정거장 안에는 미국, 일본, 영국, 이탈리아 우주비행사(astronaut)와 두 명의 러시아 우주비행사(cosmonaut)가 타고 있는데, 러시아제 모듈이 30년 정도 묵은 가장 오래된 비행체라 낡은 고물이지만 이 러시아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근데 하비는 우주인의 순서를 미국, 일본, 영국, 이탈리아로 줄을 세웠다. 왜 그랬을까? 알파벳 순서라면 이탈리아가 제일 앞에 나와야 하고, 앵글로색슨 위주라면 영국, 미국 또는 미국, 영국일 터인데 일본이 가운데 끼었다. 우주 개발 공헌도에 따른다 해도 미국, 영국 아닌가? 암만해도 나라 금고에 든 돈이 많은 순서 같다. 별 걸 가지고 다 염병을 하지? 그런 나도 내가 싫다. 그냥 궁금해서.

  자부심이 강한 러시아 우주국에서는 자기네 구식 모듈의 화장실을 오직 자국 우주인에게만 사용하라고 지시가 떨어진다. 그래서 러시아인 안톤과 로만은 화장실 문에 “러시아인 외에는 사용을 금함.” 비슷하게 문패를 달았고, 이에 미, 일, 영, 이 모듈이 사용하는 화장실 문에는 보복 조치로 “미, 일, 영. 이 인 외의 사용을 금함.”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온통 추운 어둠 속에서 달랑 여섯 명이 깡통 속에 갇혀 공간에 떠 있는 상태로 무서운 속도로 지구를 돌고 있는데 어찌 땅 위에서 국제적 정치 놀음에 몰두하는 사람들과 같을 수 있을까? 이들은 일종의 가족애 같은 감정으로 서로 먹을 것과 작업 같은 일을 공유하며 서로의 오줌을 식수로 정화해 꿀꺽꿀꺽 마시면서 임무기간 9개월을 보낸다. 그러니까 일본 여성 치에의 오줌을 이탈리아 남자 피에트로나 미국 남자 숀이 마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거꾸로도 마찬가지고.

  한 배에 남자 네 명과 두 명의 여자가 탔으니 서로 눈이 맞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독자가 관심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뻔한 코스니까. 그런데 아니었네? 일단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상태가 되면, 체중을 아래에서 끌어당기는 것이 없어서 뼈와 뼈 사이의 관절이 이완되고, 혈류 흐름도 전과 같지 않아 이게 뇌와 호르몬에도 영향을 주어 그렇게 되는지 도무지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탈리아 남자 피에트로도 넬, 숀과 함께 카자흐스탄의 우주기지에서 쏘아 올린 비행선을 타고 도착했는데 첫날 밤에만 꿈에 여성인 넬을 보았을 뿐 이후에는 전혀 성적인 끌림, 끌림은커녕 관심도 생기지 않아 이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장면도 나온다. 10대 시절 이후에 여자에 관한 생각을 안 하는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그래서 여섯 명의 우주인들은 젠더를 불문하고 정말 동지애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다. 웃기다. 뭉치는 게 아니라, 뭉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의 하루? 24시간을 말한다. 우주는 우주인들의 날짜 감각을 없애 버리려 한다. 이들은 몇 십 년간 해가 뜨고, 지고 다시 뜨는 순간까지의 스물네 시간을 하루로 인식하고 살았다. 근데 우주정거장에서는 24시간 동안 열여섯 번의 낮과 밤이 지나간다. 지구를 16회 왔다갔다, 오르락내리락 한다. 하비의 표현대로 하자면 시속 1만7,500마일의 속도로 추락하고 있고, 이게 우연히 지구가 움직이는 속도와 같아 항상 지구의 저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거다. 비록 속도감은 느끼지 못하지만 엄청난 속도와 극미한 중력으로 시간이 갈수록 근육은 급속도로 손실되고, 혈류 이상으로 얼굴이 퉁퉁 붓는 일도 발생하고, 특히 콩팥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콩팥이야말로 핏줄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기관이니까.

  우주인들에게 발생하는 근손실과 관련한 연구를 위하여 데리고 온 실험쥐 40마리를 관리하는 담당은 일본인 치에. 바닷가 옛집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가, 치에가 우주정거장에 있는 동안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우주공간에 있더라도 지상과 연락이 닿아 비보를 접한 치에는, 지구 복귀한 이후에 장례를 치루겠다는 친척들을 만류해 그대로 장례 절차를 진행하라 한다. 숀은 열다섯 살 때 학교에서 배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이 난데없이 생각이 났고, 넬, 안톤, 피에트로는 근손실을 줄이기 위하여 트레드밀과 프레스에 열심이다.

  정거장 아래 서태평양에서는 거대 태풍이 발생해 조만간 필리핀이 거덜이 날 단계이고, 여섯 명의 우주인들은 태풍의 눈을 촬영해 각자 본국에 보내기 위해 촬영에 열심이다. 저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 행성은 이곳에서 보면 아무도 살지 않는 별. 오직 밤이 되어야 전기로 밝힌 인공 광선으로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활동을 미루어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표면의 주름은 에베레스트 같은 산맥이고, 하얀 색이 칠해진 곳은 북극과 남극 지대. 미시시피와 나일강은 그저 푸른 색이 도는 한 줄기 흰 줄에 불과하다.

  이렇게 우주정거장에서의 24시간. 지구 저궤도를 열여섯 번 도는 동안 늘 생기는 일을 적은 것이 부커상을 받은 소설 <궤도>. 우주정거장에서 교대 없이 아홉 달을 지내는 우주인 여섯 명. 이들은 그냥 보통의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어려서부터 우주비행사, 아니면 적어도 전투기 조종사의 꿈을 꾸고, 그걸 기어이 이룬 성취자들. 가족들의 존경을 받기도 하고, 여느 부부처럼 날이 갈수록 부부사이에 금이 생기다가 본격적인 균열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 동안에도 지구인들은 다시 달에 사람을 보내기 위해 우주선을 쏘아 올렸고, 천생 우주비행사인 이들은 월행 우주선에 자신이 타지 못한 것을 조금 아쉽게 여긴다. 이 깡통 속에 갇힌 궤도 운행이 아니라 한 목표지점, 목표 위성이나 다른 행성으로의 탐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이렇게 우주 비행과 비행선에 타서 바라보는 지구, 그리고 우주의 암흑. 인간과 오염과 기타 등등에 관한 명상. 평소 우주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환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품. 자기 파티션에 화성 표면 사진을 붙여 놓았던 김부장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지만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닿아도 전처럼 또다시 관계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 굳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전화나 문자도 하지 않겠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나도 이제는 우주 정거장 모듈 속 우주인들처럼 점점 관계를 좁혀 나가고 있는 중이라서.

  24시간 동안의 16회 지구 궤도 운행. 그리하여 이 책은 궤도 1 부터 궤도 16까지 순서로 되어 있다. 마치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지구와 우주와 사람에 관한 명상인 듯. 진지하고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내가 좋아하는 쪽은 아니다. 그렇지만 읽어볼 만하다. 이런 사색도 있다는 걸 아는 일도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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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1-09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4년 부커상에 빛나는 작품.
2024년 공쿠르상에 빛나는 카멜 다우드의 <후리>에 비하면, 물론 비교하면 안 되지만 만일 비교한다면 이건 소설도... 아오, 역시 비교하지 말아야겠다.

stella.K 2026-01-09 14:35   좋아요 1 | URL
<후리>가 더 좋으신가 봅니다. 궤도하니까 우리나라 과학 일타강사인 줄 알았습니다. 이 사람 강의 정말 잘 하던데. 외모도 그 정도면 잘 생겼고. 저 같은 과포자도 혹할 정도죠. 이 책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억하겠슴다. 근데 후리는 작년 12월에 나왔는데 벌써 읽으셨네요.

Falstaff 2026-01-09 15:04   좋아요 1 | URL
학원 강사도 가명을 쓰는 모양이군요. 아, 예전에도 그랬습니다. ‘궤도‘ 이런 건 아니었지만요.
<후리>는 도서관에 구입 신청해서 첫빠따로 읽었습죠. ㅋㅋ

yamoo 2026-01-0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소설도 있군요. 부커상 받은 작품들 모으고 있는데, 이 작품은 왜 몰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리뷰 쓰신거 보니 딱 제 취향같아 요것도 구매할 요량입니다. 뽈님 때문에 무려 소설 신간을 족족 구입하게 되네요..ㅎㅎ

Falstaff 2026-01-09 15:05   좋아요 0 | URL
부커상 수집가시면 당연히 읽어보셔얍지요. 제가 은근히 낚시한다고요? ㅋㅋ

딸기홀릭 2026-01-09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있는 중인데 우주인의 순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봐야겠어요 ㅎㅎ

Falstaff 2026-01-09 15:06   좋아요 0 | URL
에고, 그거 농담입니다. 다 아시면서요. ㅋㅋㅋ

coolcat329 2026-01-09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기 힘들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고 완전히 제쳐뒀었는데...폴스타프님 글 읽어보니 어렵긴 할 거 같아요. ㅎㅎ 홍보글에 ‘이 시대의 버지니아 울프‘라고 한 것만 봐도 어떤 글일지 감이 오긴합니다. 근데 작가가 저랑 동갑이라 조금 마음이 열렸습니다. 😃

Falstaff 2026-01-10 15:25   좋아요 1 | URL
댓글이 넘 늦었습니다. 어제 이른 시간에 꽐라가 돼서리.... ㅋㅋㅋ 늘 있는 일이라 뭐 그냥 그렇기는 합니다. ^^;;
뭔 버지니아 울프.... 걍 무시하시고요,
독자에 따라 좋고 덜 좋고가 가릴 작가니까 제 말을 믿으실 필요 없습니다. 걍 확 읽어버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