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화자 ‘나’는 몸집이 크지 않고 조밀한 체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체형을 종종 ‘단단하다’고 하듯이 성격과 입맛에 까다롭지 않으며, 위의 크기, 팔 근육, 폐, 콩팥과 췌장, 간, 시력, 복부대동맥, 방광기능 등 모든 신체조건이 정상수치로 어떤 약도 복용하지 않으며, 여행용 비상키트 품목에 생리대를 지워버린 나이지만 호르몬 주사 같은 것도 맞을 필요가 없고, 건강한 이를 가지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석 달에 한 번씩 바리캉으로 밀어버리고 다닌다. 애초에 어딘가 일정기간 머물다보면 금방그곳에 뿌리내릴 수 있게 만드는 유전자를 갖고 있지 못해 저 아시아 동쪽 끝의 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나’같은 사람더러 사주에 일컬어 역마살이 끼었느니 어쨌느니 한다고 들었다.
  물론 ‘나’는 작가 자신이 아니라 작가가 만든 화자일 뿐이라서, ‘나’가 작가처럼 바르샤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지부가 있던 건물에서 전공인 심리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공산주의 정권을 견디지 못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지금은 결혼해 자식들 낳아 다 독립시키고 뉴욕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 뉴질랜드에서 난데없이 첫사랑으로부터 이 메일을 받고 주저하지 않고 그를 만나보기 위해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바르샤바 행을 결행하기도 한다. 뉴욕과 뉴질랜드에 사는 장년의 여인이 같은 사람이냐고? 아니. 그러나 폴란드 출생 이민자인 건 같다. 이런 의미에서 화자 ‘나’이기도 하고 작가 토카르추크이기도 하다.
  인간은 정착민인가 유목민인가. 유목민이었다가 농사법을 발견한 이래 정착민으로 진화했다. 농사를 짓고부터 ‘저장’이란 개념이 생겨 ‘무한정 저장’,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개념에 충실하기 위해 이웃들과의 ‘대규모’ 약탈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큰’ 권력이 생겼으며 이리하여 국가가 탄생했던 거 아닌가. 그러니 인간은 정착지향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목, 또는 이전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호모 사피엔스가 빙하기라 수심이 낮아진 아라비아 해를 건너 유럽으로, 아시아의 끝 베링해협을 건너 저 칠레 남부까지 이동한 것이 증거이리라.
  나는 책을 읽으며 난데없이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생각났다. 거기서 한비야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평생 새장 속에서 살면서 안전과 먹이를 담보로 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할 것인지, 새장 밖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창공으로 비상할 것인지.”
  한비야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힘없는 자와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 기회의 불균형과 맞서 싸우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한비야처럼 월드비전에 속해 사는 것이나, 토카르추크의 화자 ‘나’처럼 그냥 길을 떠나 돈이 떨어지면 현지에서 잠깐, 다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여비를 벌기까지 짧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방랑을 하든지 하여튼 길을 떠날 각오를 해야 무엇이든 간에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독자들이여, 한비야나 토카르추크의 비상 또는 방랑에 주눅 들지 말자. 정착해서 착실하게 사람의 한 살이를 해내는 것도 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힘들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일지어니.
  책의 제목을 <방랑자들>이라 해놓았으니 독자는 당연히 세계각지를 여행하는 내용이리라 생각하겠지만, 정말 재미있던 건, 토카르추크의 방랑은 한 인간의 밖에 있는 공간으로의 세계와 더불어, 인체 내부의 마이크로 공간도 포함한다는 것. 이것을 위하여 작가는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이란 학문을 정의한다. 인간은 방패와 갑옷, 무기로 지어진 존재로 일종의 도시이며, 도시 안의 모든 건축물은 성벽, 방어막, 요새를 갖추어야 하듯이 인간은 기본적으로 벙커로 세워진 나라라고. 실제로 어떤 객관적인 경험을 하더라도 인간은 해당 경험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방어기재가 될 수 있는 재료로 사용하는데, 그러기 위해 사실조차도 왜곡시키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존재다. 대표적인 것이 1950년대 바야흐로 대홍수가 닥쳐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키기 바로 전에, 우주선을 타고 하느님이 내려와 선택받은 몇 명의 신도들을 데리고 극락왕생, 휴거를 약속했다고 주장하던 인간들이, 약속한 그날 자정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더니 맑은 밤하늘에 별만 총총하게 빛나면서 새벽이 다가오자 몇 시간동안 회의를 하다가, 우리의 선한 믿음으로 하느님께서 멸망을 늦추셨다고 했다는, ‘인지 부조화 이론’ 아닌가.
  이 책에선 실제로 서적 영업을 하는 폴란드 사람 쿠니츠키 씨 가족이 크로아티아의 비스 섬으로 여름휴가를 갖다가, 아내와 세 살 난 아들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온갖 생체실험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발견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동안 처자식을 찾기 위해 크로아티아 당국에선 헬리콥터를 동원해 비스 섬을 샅샅이 뒤지는 난리를 겪었는데 사흘 후, 아내와 아들이 멀쩡한 얼굴로 나타났으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남편이자 아빠 마음에 당연히, 아내를 닦달하지 않겠는가 말이지. 그래서 밝혀낸 사실. 정말로 외계인에게 납치됐었느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내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하여튼 심리학자이기도 한 토카르추크가 인간 내면, 영적 내면 말고 진짜 육신의 내면에 관심을 쏟은 건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하여간 모든 인지부조화를 겪고도 인간은 자신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 참으로 오랜 세월을 궁리해왔다. 기형인의 기형부위와 심지어 천재의 뇌, 쇼팽의 심장까지 인간들은 보존을 해서 두고두고 봐야 했는데, 이젠 ‘프라스티네이션’이란 최첨단 방식으로 신경줄기 하나, 세밀한 모세혈관까지 보관, 전시할 수 있을 수준이라고 하는데, 토카르추크는 참으로 집요하게 해부학과 보존의 역사를 정리해놓기도 했다. 이를 나는 인체 내부로의 방랑이라 하고 싶다. 세계 각지로 떠나는 방랑이 나중에 해부학적 내부 탐색과 조화를 이르는 건 물론이다.
  무수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리하여 제목을 ‘방랑자들’이라고 복수형을 선택했을 것. 모든 출연진들의 방랑, 여행길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촘촘하게 박아 넣어 6백 쪽에 이르는 한 권의 장편소설을 만들었다. 길 떠난 이야기, 그들은 서로 만나면 반드시 물어보는 것이 세 가지 있단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어디서 왔나요? 어디로 갈 거지요? 그러나 모든 순례자들의 목적은 다른 순례자란다. 길을 떠나도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사람을 향한다는 의미. 사는 게 다 그렇다.



  * 민음사. 참 나. 책에는 모두 13장의 지도가 실려 있다. 본문이 끝나면 색인에 각 지도가 어떤 지도인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색인에 표시된 페이지를 열면, 어이없게도, 단 한 장의 지도도 발견할 수 없다. 책 교정하고나서, 당연히 지도가 실린 페이지가 바뀌었을 텐데 그걸 교정하지 않고 그냥 찍은 거다. 얘네, 책은 발가락으로 만드나보다. 욕을 다 먹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멀었어. 민음사 편집부 직원 두 명이 등장해서 <방랑자들> 어땠어? 좋지? 좋지? 아 좋아, 좋아, 하면서 광고 비슷하게도 찍은 거 같은데, 책이나 좀 잘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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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3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도 ㅋㅋㅋㅋ ㅋ 제 책만 파본인가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10-30 13:45   좋아요 0 | URL
진짜 요새 민음사 책 만드는 거, 고고 마운틴, 갈수록 태산입니다. ㅋㅋㅋㅋㅋ
개전의 정이 없어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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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어쩌다가 함민복의 시집을 두 권이나 샀다고 했다. 원래 계획은 한 권 사서 읽어보고 좋으면 더 사 읽으려고 했는데, 한 권 사고 시간이 지나 벌써 함민복 한 권이 책꽂이 읽을 책 칸에 꽂혀있는 걸 깜박 하는 바람에 다른 시집을 더 산 거다. 인생이지 뭐.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 관해서는 할 말 다 해 보탤 건 없지만,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과 연관해서 몇 마디 하면, 이제 쉰두 살이 된 시인이 아직도 여전히 강화도에 살고 있다는 거, 실제는 모르지만 하여튼 시 속에선 장가든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 그리고 이젠 어머니의 품속에서 (완전히는 아니지만)거의 떠났다는 거.
  이 시집의 초판 간행이 2013년. 이명박 씨가 2013년 2월 24일 자정부로 대통령 직의 만기를 채웠으니, 시집 속의 시는 반은 이명박의 전봇대 정부 시절에 쓴 거겠다. 그리하여 노무현 씨의 자살, 이명박 씨의 4대강 사업 또는 대운하, 후쿠시마 원전 사고, 구제역 돼지 생매장 등 실제 상황이 드디어 등장을 한다. 물론 함민복은 진보 진영 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난데없이 <방울>에서 1970년에 죽은 전태일과 무려 24년 후에 생을 마감한 시인 김남주, 2010년에 세상을 뜬 (내가 존경해마지않는)리영희, 2011년의 김근태를 소환하기에 이르는데, 좀 생뚱맞다. 이들을 한데 묶어 “사람 길 지키려 치열했던 방울들 / 작아 큰 울림”을 냈다고 노래한다. 어찌 네 명 뿐일까. 이 사람들에게 ‘작아 큰 울림’을 냈다고 하는 건 물론 시인 마음이지만 글쎄 우리 현대사에서 이들은 ‘크고 커서 큰 울림’을 내지 않았을까? 물론 시적 표현이라면 할 말 없지만. 이왕 이런 이야기 나왔으니까 하는 얘긴데 이젠 더 이상 이미 죽은 네 명 같은 희생자 또는 자연사한 선각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을, 어느 시인이 있어 노래해줄까. 희생자나 선각자들을 요구하지 않는 세상이 그리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누가 선언할 수 있을지 못내 궁금하다.
  이외에 이제 농촌을 무대로 한 시들과, 살고 있는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161번지 양철집 근방의, 바다와 뻘을 포함한 자연을 그린 시들이 많이 등장한다. 시는 연애와 비슷하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연애할 확률이 높은 것처럼, 가까운 곳을 노래하는 것이 편하니까 이런 모습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특히 시에 관해선 완전 초보인 내가 생각하기에, 함민복이 보다 실제 삶의 시에 천착을 했더라도 섣부른 참여시보다 좋았을 것 같지만, 시인이 시를 쓰는 소재나 제재를 선택하는 건 전적으로 시인 마음대로이니 불만은 없다. 뭐 다행이긴 하다.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한테 대학교수이자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동화작가이자, 삼국지 번역자이자, 교과서 편찬위원인 박상률처럼 ‘쥐박이’니 뭐니 하지 않아서. 하긴 함민복이 일단 시만 보자면 박 씨처럼 몰상식하게 거친 말을 함부로 입에 담을 인격이 전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시집이 나온 2013년, 함민복처럼 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효용이 있을 것인지에 관해 나는 회의having doubt했다. 그냥 예를 들기 위해 두 번째 실린 시 <달>의 전문을 인용해보자.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
  그믐달에 상담하면 움푹 비워진다


  달은
  마음의 숫돌


  모난 맘
  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


  달


  그림자 내가 만난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  (전문)


  읽는 순간 그림이 딱 그려진다. 착한 시. 시인 스스로가 말하듯 서정성이 깊은 시를 21세기에도 쓰는 것이 과연 필요하고 바람직할까. 이런 시들이 몇 편 연속적으로 주로 1부에 등장한다. 그래 시들을 읽다가 처음엔 과연 효용이 있나, 의심했고, 이어서 조금씩 마음이 바뀌어, 누군가가 소위 ‘착한 서정시’를 그래도 이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라고 결정했다.
  이런 시를 몇 편 읽다가 갑자기 <동막리 161번지 양철집>이란 시가 눈에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시인 자신의 집 아니었을까. 번지수까지는 몰라도 시인이 사는 곳이 동막리니까, 그렇게 유추했고, 저 앞에서도 그냥 시인이 이 집에서 산다고 한 번 해본 것인데, 또 아니면 어때, 일개 서생의 잡스런 독후감일 뿐이니. 하여간 이 시에 재미난 장면이 나온다.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사내가 개를 한 마리 키우면서 산다. 사내가 먹는 것이 개가 먹는 것하고 같지만 단지 먹는 때와 장소가 다를 뿐이다. 어느 날, 시인은 전화를 받고 외출을 하면서 개 목줄을 풀어주고, 집 잘 보고 있어, 타이른 다음 몇 날을 지내고 왔다. 그랬더니 문득 드는 생각.


  전화기 속 세상을 떠돌다 온 사내가 놀란다
  기다림에 지친 개가 제 밥을 놓아
  새를 기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제
  바다가 보이는 그 집의 주인은 사내가 아니다  (부분)


  이것 역시 그림이 딱 그려지는 편안한 시. 아마 서울이겠지. 하여간 외출을 해서 며칠 만에 집에 와보니 개밥그릇, 흠. ‘개밥그릇’은 고등학교 시절 영어선생 별명이라 함부로 쓰기 좀 캥기는 바지만, 하여간 개밥그릇에 남은 밥알을 먹기 위해 새들이 모여 있었나보다. 그걸 시인이 보니까, 하긴 그래서 시인이겠지만, 개가 제 밥으로 새를 기르고 있다고, 그래서 진짜 집주인은 시인이 아니라 개라고 한다. 재미있는 시다.
  기본적으로 함민복의 시는 ‘가난의 시’ 범주에 든다고 한다. 어디서 읽었더라. 시집의 해설인가, 아니면 인터넷 서핑 중에 읽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 돈이 뭔가. 숫자. 지갑과 호주머니를 채우는 지폐뭉치가 아니라 통장에 기입되어 있는 숫자. 그럼 지구의 무게는? 그것도 숫자? 여기 한 저울이 있어 감히 지구의 무게를 재고 있는 게 있다. 정말로 있다. 재미있는 역설. 일부를 인용하며 독후감을 끝낸다.



  앉은뱅이저울


  물고기 잡는 집에서 버려진 저울 하나를 얻어왔다


  저울도 자신의 무게를 달아보고 싶지 않았을까
  양 옆구리 삭은 저울을 조심 뒤집는다


  삼 점 칠 킬로그램
  무한천공 우주의 무게는
  0이더니
  거뜬히 저울판에 지구를 담은
  네 무게가 지구의 무게냐
  배짱 크다
  지구에 대한 이해 담백하다


  몸집 커 토막 낸 물고기 달 때보다
  한 마을 바지락들 단체로 달릴 때 더 서러웠더냐
  목숨의 증발 비린내의 처소
  검사필증, 정밀계기, 딱지 붙은 기계밀정아
  생명을 파는 자와 사는 자
  시선의 무게에서도 비린내가 계량되더냐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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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10-27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함시인, 남들보다 늦었지만 결혼을 한걸로 알아요. 어머니 품을 떠났겠죠? ^^
이승희 시인은 달 표면의 명암을 보고 눈물 얼룩이라고 했던데, 시인들은 참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동막리 161번지 양철집>의 인용해주신 부분은 가슴 찡하게 하네요. 개를 보고 기다리다 지쳤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 새와 개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굳이 개가 새를 기르고 있다고 표현한 마음, 절정은 그 집 주인은 이제 사내가 아니라고 한 것이요.

Falstaff 2020-10-27 13:28   좋아요 1 | URL
아, 늦장가를 들었구먼요. 다 늦어서 뭔 장가를 드나 그래. 깨끗하니 혼자 살지, 말이예요. ㅋㅋㅋㅋ
정말 시 만드는 사람들 보면, 그건 이미 어머니 태중에 기질이 정해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시 쓰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산문은 구양수처럼 책 열라 읽으면 흉내는 내는데요. ^^
 
제로 K
돈 드릴로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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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드릴로. <화이트 노이즈>를 읽고 이런 작가를 모르고 있었다는 걸 잠깐 억울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던 작가. 평생 뉴욕에서 낳고 살면서 토머스 핀천과 더불어 미국의 포스트 모던 소설의 양대 축을 형성한다는 말을 들으며, 올해도 영국의 베팅업체에 의하여, 물론 미역국을 먹긴 했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었다. 이이의 작품 중에 읽어본 것이 <화이트 노이즈>, <마오 Ⅱ>, 그리고 케네디 암살범 리 오스월드를 그린 <리브라>, 이렇게 세 권인데, 어느 것 하나 빠뜨릴 수 없이 하나 같이 재미있었다. 흥미진진하고. 이번에 읽은 <제로 K>를 굳이 한 바운더리로 말하자면 <화이트 노이즈>와 가까운 곳에 두어야 할 듯. 현대인의 삶에 깊이 개입한 첨단 문명. 호모 사피엔스는 자발적으로 인공지능과 데이터화 속에 함몰되어 버리고, 심지어 지난 1960년대 말부터 이 문명 가운데 하나로, 백만장자 또는 그 근처를 향유하던 불치병 환자들의 영생을 위해 그들이 앓고 있는 불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과학 또는 의술이 발달된 시점에 해동시켜 치료하고자 대기하기 시작했다 한다. 역자 황가한이 해설에 썼듯이, 현재 이런 냉동보존 회사가 미국에 세 곳, 러시아에 한 곳이 있다고 하며, 2017년 기준으로 미국 앨코어의 냉동 보관자가 152명, 대기자가 1,151명. 전신 보관 비용이 20만 달러, 머리만 보관하면 8만 달러라고 한다. 반면에 러시아의 크리오루스에서는 전신 보관이 3만6천 달러, 머리만 보관하면 1만2천 달러로 비용 면에서 미국에 비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니, 배우이자 가수인 신신애의 노랫말처럼 참으로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머리만 보관한다고? 그렇다. 언젠가는 뇌를 포함한 머리통을 건강한 상태에서 죽은 젊은이의 몸통과 연결시킬 수 있는 이식수술에 성공할지 누가 아는가. 이 책 <제로 K>는 내놓고 처음부터 우즈베키스탄 아니면 타지키스탄의 황무지 지하에 건설해놓고, 지각변동을 제외한 세상의 웬만한 재앙들, 그러니까 지름이 여의도만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한다든지, 큰 지진이나 화산폭발이 일어나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놓고 그걸 냉동 보관 시술 및 보존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딱 정해버렸다. 이 가운데 앞 문단에서 보다시피 머리만 보관하는 신청자가 있을 거 아닌가. 그럼 몸통은 처리해야 하는 폐기물이 되어,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황무지에 그냥 내다 버리면 새들의 먹이가 되거나, 모래바람에 파묻혀 바싹 말라 목 없는 미라가 되기 십상일 터. 여기에 신소재도 아니고 20세기 들어 오래 사용해온 소재, ‘리넨에 제소’ 즉 석고와 아교의 혼합물이 등장한다. 몸통에서 혈액과 장기를 제거하고, 피와 수분 대신 글리세린 및/또는 유사한 액체로 채워 부피의 손실이 없게 한 후, 몸통의 부패를 막기 위해 석고와 아교의 혼합물을 발라 근사한 포즈를 취하게 해, 시설 곳곳에 손색없는 예술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참으로 엽기만장한 아이디어다.
  그럼 제목 ‘제로 K’가 무엇인가. 중1 수준 정도의 생 기초 물리학 가운데 ‘샤를의 법칙’이라고 있다.
  Vt = Vo + Vo * t/273
  말로 풀어 설명하면, 온도가 t일 때 기체의 부피는 o도 일 때의 부피 곱하기 (1+t/273)이란 뜻. 즉 온도를 273도까지 가열하면 ‘섭씨 영도일 때의 부피 곱하기 (1+273/273)’이니까 영도 때 부피의 두 배가 된다. 무슨 뜻인지 헷갈리는 문과 출신들을 위해 그래프를 볼까?

 

 

  546도로 더 가열을 하면 영도일 때 부피의 세 곱이 된다.
  그런데 온도라는 것이 참. 끓이면 끓일수록 올라간다. 태양의 표면 온도가 5,860K도. 섭씨로는 5,860 - 273 = 5,587도. 여기서 나오는 K가, 책의 제목 <제로 K>의 K다. 절대온도. 제로 K는 영하 273도. 유효수자를 늘이면 영하 273.15도. 이게 아래로 내릴 수 있는 온도의 최저치다. 즉 태양의 표면 온도도 은하계 어떤 행성의 온도에 비하면 그저 따끈한 정도이지만, 아래로는 영하 273도 밑으로는 내릴 수 없다. 적어도 유클리드 물리학적으로는. -273도가 되면 그 때 기체의 부피는 영도 때의 부피 곱하기 (1-273/273) = 영도 때의 부피 곱하기 ‘0’이니까 말 그대로 영(zero), 부피가 없어지게 된다. 놀랍지? 나도 이거 처음 배우고 엄청 놀랐다. 소년 폴스타프가 이과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 중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결과는 비극으로 마감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건 아니고 한 1950년 생 정도의 남자가 있었다. 이름을 니컬러스 새터스웨이트 Nicholas Satterswaite라고 하는 미국 남자가 살았다. 이이가 젊어서 한 여자를 숙명처럼 사랑하고 그래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는데, 정작 살면서 보니까 숙명이 아니라 악몽이었던 거였다. 물론 부부사이에 있었던 일은 당사자 둘 다에게 직접 들어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정확한 사실 가운데 하나가 스카르피아를 찔러 죽인 토스카처럼 어느 날, 남편의 성姓을 따르지 않은 젊은 아내 매들린 시버트가 스테이크 나이프로 남편의 어깨를 푹, 찔렀다는 사실이다. 남편은 하다못해 파출소에도 알리지 않고, 병원에도 가지 않은 채 그저 퍼스트에이드를 꺼내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는 것으로 처치를 하고 소염진통제를 꿀꺽 삼킨 다음, 이날도 다른 날처럼 한 침대에서 잤고 평상시처럼 아무 말도 혹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다. 그러고는 이름을 로스 록하트로 개명을 하는 가 했더니 그길로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로스 록하트의 아들 제프리 록하트도 다 성장해 어느 날 외출을 했다가 가판대에서 뉴스위크 표지를 힐끗 내려다보니, 세상에나, ‘세계 3대 금융의 신’이란 제목으로 로스 록하트 특집이 실려 있던 거 아닌가 말이지. 그래 뉴스위크를 뒷주머니에 꼽고 엄마 매들린에게 전화를 하니까 엄마 대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옆집 할머니가 전화를 받더니 방금 전에 엄마한테 뇌졸중이 닥쳐 쓰러졌으니 빨리 집에 오라고 불같이 재촉을 했다. 이후 3일 동안 엄마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옆에 앉아 손을 잡고 있는 남자가 자기가 낳은 친아들인지도 모른 채, 지팡이를 짚은 옆집 할머니가 문틀에 기대 내려다보고 아들이 엄마의 손에 이마를 댄 채 졸고 있는 가운데 운명을 하고 만다. 그냥 대충 읽으시라. 여태까지는 진짜 스토리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니.
  하여튼 억만장자, 금융의 황제 로스 록하트가 그동안 독신으로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겠지? 맞다. 부동산 부자 도널드 트럼프처럼 예쁘고 젊은 고고학자 아내 아티스를 만나고 이번엔 진짜 운명 같은 사랑을 해 두 번째 결혼을 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티스한테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다발경화증이 생겨, 남은 생이 얼마 되지 않게 되어버렸다. 로스는 그동안 냉동보존에 관심이 지대해 거액을 후원하기에 이르렀던 바, 이제 두 번째 아내이자 남자 주인공 제프리 록하트의 의붓엄마인 아티스를 냉동처리하기로 결정을 하고, 아티스 역시 의학적, 기술적, 철학적으로 동의를 했지만, 로스가 일면 끔찍한 처리 당일 시술 현장에 혼자 있을 강심장은 아니라서, 혹은 작가 드릴로가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화자를 등장시키기 위하여, 외아들이자 천문학적인 자산의 법정 상속인이 될 제프리에게 함께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해 승낙을 받았다.
  그리하여 지상 최대의 화려하고 안전하고, 외진 냉동처리 보관소를 방문하고, 평상에 누운 의붓어머니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깎고, 체모는 동행이 방에서 나간 후에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은 다음, 몸에 주사액을 투여하는 것까지 직접 눈으로 본 제프리는, 이 행위가 명백한 살인일 수도 있고, 지독하게 때가 이른 조력 자살일 수도 있으며, 철학자들이 분석해야 하는 형이상학적 범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이고 이걸 어쩌나, 두 번째 아내를 그리도 사랑하던 제프리의 유일한 아버지인 로스 록하트가 자기도 아티스를 따라 가겠다고, 그래서 영생토록 함께 머물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느새 아들 제프리의 앞날, 먹고 살 모든 방법까지 이미 정해놓았다고 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은 이렇게 하지만 여태 읽은 돈 드릴로의 작품들에 비하면 읽는 재미가 덜했다. 드릴로의 특허 비슷하게 과도하게 발달한 현대문명에 의한 인간 침습을 정면으로 다루기는 했으나 이번엔 마치 길고 긴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이 강해서였을까. 드릴로는 드릴로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지, 이 책이 지루하다거나 재미없다는 말은 아니다. 근데 왜 이 길지 않은 책 한 권을 읽는데 3일이나 걸렸지? 아 몰라. 말 더 시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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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2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과 출신을 위해 그래프를 그리셨지만 더 헷갈립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10-21 10:13   좋아요 0 | URL
이런 거 몰라도 세상 사는데 전혀 불편한 거 없어요. ㅋㅋㅋㅋㅋ
걍 패스 하시면 됩니다. 이런 공식 또는 그래프 보는 순간 오호, 거 신기하네, 라고 생각하면 이과, 아이고 뭔 지랄들이여, 하면 문괍니다. ㅋㅋㅋㅋㅋㅋ

mini74 2020-10-2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ㅠㅠ 중학교를 건너뛴걸까요 ㅎㅎㅎ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항상 ~

Falstaff 2020-10-21 19:0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모르셔도 인생하고 전혀 관계 없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syo 2020-10-2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 폴스타프는 어떤 소년이었을지 격심히 궁금합니다. 저는 우주 정복을 위해 이과를 골랐습니다만, 결과는 폴스타프님보다 훨씬 희극적으로 마감되었네요 ㅎㅎㅎ

Falstaff 2020-10-22 08:48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좀 외로운 소년이었습니다. 딱 하나 친한 친구가 학교에서 짱, 요즘 말로 일진이라 악동들이 범접을 하진 않았습지요. ㅋㅋ
 
시골 생활 풍경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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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스 오즈. 나한테는 참 난처한 작가다. 처음 읽은 아모스 오즈가 <나의 미카엘>.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작가라고 알고 있었지만 뭐 그냥 그런 것이, 꼭 집어서 언짢은 건 아니라도 그렇다고 훌륭한 것도 아니어서 ‘세계적인’ 이란 형용사가 혹시 유대인 프리미엄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 읽은 오즈는 창비에서 낸 <숲의 가족>. 이건 뭐야, 싶을 정도로 아마추어인 내 기준으로 말하자면 ‘망작’. 세 번째 오즈는 열린책들에서 낸 <여자를 안다는 것>. 이렇게 세 작품으로 나는 오즈하고 인연을 끊었다. 다시는 읽나봐라.
  세상 사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면 그게 인생인가. 몇 달 후, 나는 또 문학동네의 오즈,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읽었고, 오즈 자신의 부계, 모계 조상을 포함한 스스로의 성장소설이었는데, 이걸 읽고서야, 아, 이래서 오즈, 오즈 하는구나.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 그리하여 이번에 비채에서 나온 단편집 《시골 생활 풍경》은 기꺼운 심정으로 골라 읽을 수 있었던 것. 이 책을 읽은 감상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단편의 에센스’라고나 할까. 마음에 딱 드는 작품들이다. 혹시 진짜 오즈는 단편에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스라엘, 근데 얘네들 수도가 어디야? 예루살렘이야, 텔아비브야? 하여간 이스라엘에 있다고 하는 ‘므나세 언덕의 텔일란 마을’이란 가상의 장소를 만들어놓고, 이곳에서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넘겨보며 기록을 한 것이 이 책 《시골 생활 풍경》이다. ‘므나세’가 누군가. 이사악의 증손자요, 야곱이 가장 총애했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의 맏아들. 애초에 입에 은수저를 입에 물고 엄마 배에서 빽빽 거리며 기어 나온 아이이니 므나세 언덕의 텔일란 마을은 이스라엘의 초기 이주민들이 모여 만든 거의 최초의 촌락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오래된 시골마을이지만, ‘므나세’란 이름에 걸맞게 풍광이 수려한 아름다운 고장으로 포도밭과 백 년 된 농가들, 키 큰 사이프러스 나무 등등 척, 한 눈에 봐도 프로방스나 토스카나를 능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지의 돈 많은 사람들이 텔일란 마을의 오래된 저택들을 사들여 복층 건물을 짓는 바람에 점점 휴양도시 비슷하게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가상의 농촌 마을을 하나 만들어 농촌 구성원들의 애환과 자잘한 기쁨을 맛난 글 솜씨로 만든 바가 있으니 이문구의 단편집 《우리 동네》? 흔히들 이문구의 대표작으로 《관촌수필》을 꼽고 나도 거기에 이의가 없지만 《우리 동네》 역시 빼어난 우리 문학의 한 페이지라는 것이 내 신념이다. 《시골 생활 풍경》이 《우리 동네》와 다른 결정적인 점은, 아모스 오즈는 히브리 대학을 졸업하고 벤-구리온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인텔리겐치아라서 그런지 시골 생활 풍경이라 하더라도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아니라 도시에서 아파트를 처분하고 자신이 태어나 자란 농장으로 귀향한 부르주아 아리에 젤니크, 마을의 메디컬 펀드의 가정의학(family medicine) 의사 길리 스타이너, 전직 국회의원인 페사크 케뎀과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그의 과부 딸 라헬 프랑코, 마을의 오래된 저택을 사들여 재개발해서 돈을 더 벌어볼까 하는 돈 많은 부동산중개업자 요시 새슨과 저택의 외동딸 야르데나 등, 일단 적어도 상습적으로는 자기 손에 물 묻힐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주로 주인공을 맡는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일곱 편만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제일 마지막 짧은 단편 <다른 시간, 먼 곳에서>는 예외로 하자. 아니, 없는 걸로 치자.
  오즈가 보여주고자 하는 연령층도 참 다양하다. 아흔 먹은 어머니 로잘리아를 봉양하는, 마누라는 미국으로 도망간 늙은 부르주아 아리에 젤니크부터 자기보다 열다섯 살이 더 많은 낮엔 우체국장, 밤엔 도서관장인 아다 드바쉬를 짝사랑하는 열일곱 살 사춘기 소년 코비 에즈라까지 다양하다. 아, 유대인 열일곱 살이면 우리나이로 열여덟이나 열아홉이니까 어린 청년이라고 해두는 것이 좋을까?
  지금 이렇게 등장인물만 소개하는 건, 단편소설들이라 스토리까지 읊어버리면, 혹시라도 책을 진짜로 사서 읽을 때까지 이 독후감을 기억하신다면 틀림없이 스포일러가 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각 단편의 스토리와 구성 같은 것도 정확하게, 딱 단편소설을 위한 스토리와 갈등구도를 갖고 있다. 마치 교과서를 읽는 듯하게. 정말이다. 신생국 이스라엘 입장에서 가장 오래된 약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시골마을,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오해를 하고, 쓸쓸해하고, 고독하며, 때론 각자의 수준에 맞게 모여 노래하며 즐긴다.
  좋은 작품들을 모은 단편집이지만, 다른 독자들은 모르겠고 내가 읽기에는, 시골 땅 위에서 직접 파종하고, 김을 매고, 추수하는 진정한 땅의 주인공, 한 여름 에어컨이 없으면 젖은 수건을 배 위에 깔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구름과 비가 어울리는 즐거움을 나누는 우리의 아저씨, 아줌마들의 여러 마당, 싱싱하고 건강하고 재미있고 키득거리게 하는 《우리 동네》가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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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모스 오즈 저에게도 난처한....(재미없는 작가인데) <시골 생활 풍경>은 단편의 에센스라 하시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ㅎㅎ

다락방 2020-10-20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의 미카엘]이 너무 좋아서 이 책도 읽었는데 뭐라고 써놨나 찾아보니 텔일란 마을의 우체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써놨더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3년의 글인데, 역시 기록은 의미 있습니다. 그럼 이만...

잠자냥 2020-10-20 15:00   좋아요 0 | URL
우아.... 근데 정말 <나의 미카엘>이 재미있었어요? 아 재밌다고는 안 하셨구나. 너무 좋았다고...음...

Falstaff 2020-10-20 15:08   좋아요 0 | URL
저한테는 역시 좀 난처한 작가입니다. 선뜻 손이 가지는 않더라고요. ㅎㅎㅎㅎㅎ
다 팔자지요 뭐.
<시골....>은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심지어 웃기까지 했어요. ㅋㅋㅋㅋㅋ
흠... 우체국보다는 밤에 일하는 도서관이.... 어떠신지요. ㅋㅋ

다락방 2020-10-20 15:09   좋아요 0 | URL
저는 무척 좋아했었어요. 나는 잊지 않는다, 는 한나의 반복되는 그 문장이 너무 좋았었거든요. 근데 2010년에 읽었던거라.. 지금 읽는다면 어떻게 느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는 잊지 않는다, 말고 기억나는 건 없어요..... 하하

테레사 2020-10-2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미카엘 읽고 나서, 이 작가는 별로군 목록에서 지워버렸던 기억이 ^^;

Falstaff 2020-10-20 15:1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충분히 이해합니다. ^^

blanca 2021-03-0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미카엘> 시도해 보려 했는데 이건 이문구 책 홍보 아닙니까?ㅋㅋㅋ 왠지 아모스 오즈가 제 취향은 아닐 것 같아 이문구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Falstaff 2021-03-05 17:37   좋아요 0 | URL
오, 이문구, 대박입니다. 훌륭한 선택! 자체입니다. ^^
 
제3제국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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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라뇨 좀 읽었다 싶은 생각이 들어 세보니, <제3제국>이 여덟 번째 읽은 볼라뇨의 책이다. 한 번도 로베르토 볼라뇨를 검색해보지 않았지만 눈에 띄면 그냥 읽게 되는 작가다. 처음 읽은 볼라뇨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아메리카의 나치문학>. 느낌은 색다르고, 그래서 낯설었다. 무슨 인명사전을 그대로 복사한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쯤, 아하, 이 책에 거론되는 인간들이 실제로 생존했던 사람들도 있긴 있지만 거의 다 볼라뇨가 창작해낸 인물들이구나. 이런 것도 소설이 될 수 있구나, 하고 감탄은 했으나, ‘낯섦’의 진동이 더 커서, 그냥 그렇게 읽었다. 다음으로 읽은 것이 짧은 소설 <안트베르펜>. 이 책을 읽고 볼라뇨와 멀어진다. 도무지 무엇을 주장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 그리하여 두 해가 지난 후에 두꺼운 책 두 권으로 된 <야만스런 탐정들>을 읽을 때는 조금의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대박을 친다. 아하, 로베르토 볼라뇨가 이런 작가였구나. 그가 <아메리카의 나치문학>, <안트베르펜>을 괜히 쓴 게 아니구나, 하는 불빛이 번쩍 눈앞을 스쳤다고나 할까. 이후에야 앞서 읽은 두 작품을 다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을 먼저 말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그래서 <야만스런 탐정들>을 읽어본 이후에야 볼라뇨의 책이 눈에 띄었다 하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집어 들게 된다. 이제는 그가 불과 쉰 살에 생을 마감한 것을 애통해할 정도로 볼라뇨의 팬이 된 듯하다.
  그가 작가로서 천착한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테마는 나치즘이나 칠레의 군부정권 같은 일종의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인 것 같다. 지금 “것 같다.”라고 말하는 건 그의 작품 전부를 읽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제3제국>도 1934~1945년 사이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나치제국’을 뜻한다. 물론 그 시절을 직접 다루고 있지는 않다. 대신 2차 세계대전의 전황과 전사history를 넓게 알고 있는 볼라뇨가,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보드 게임의 독일 챔피언인 화자 ‘나’, 우도 베르거를 통해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하니, 소도구로 작품 내내 언급하는 보드 게임의 제목이 바로 ‘제3제국’이다.
  이 책은 볼라뇨 사후 7년이 흐른 2010년에 출간을 했지만 작품을 완성한 시점은 1980년대 후반이어서 시기적으로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 봐야 한다고 해설에 씌어 있다. 이 책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안트베르펜>도 1980년대에 썼지만 칠레 내 정치상황 때문에 2002년에야 출간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2008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볼라뇨의 출간 하지 않은 원고가 있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뭐 이런 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긴 하다.
  <제3제국>은 당연히 정치소설의 범주에 들어야 하겠지만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는 독일의 진짜 제3제국 시절과, 하다못해 라틴아메리카의 군사독재 같은 건 단 한 마디도 거론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99퍼센트가 바르셀로나 근처 스페인의 남동부(주의: 해설에는 ‘북동부’라고 함) 해안의 코스타 브라바 해변에 있는 여름 호텔 ‘델 마르’를 중심무대로 한다. 그러면서 또 스페인에 있었던 파시즘, 프랑코 군사독재에 대해서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소설의 형식은 화자 ‘나’의 일기로 되어 있으니 사건은 당연히 시간이 흘러가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어 좀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정도만 되도 볼라뇨치고는 매우 친절하게 쓴 수준이라 할 수 있을 듯. 작품은 오직 하나 2차 세계대전의 보드 게임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의 역사를 다시 쓰는 슈트트가르트 출신의 화자와, 출신지를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스페인 사람은 아니며 얼굴과 팔 등에 화상의 상흔을 가지고 있는 페달보트 대여점 주인인 ‘케마도’의 롤플레잉 게임에 맞추어져 있다.
  화자 우도 베르거. 당 25세. 코스타 브라바 해변과 호텔 ‘델 마르’는 십 년 전까지는 매년 여름에 가족 여름휴가차 왔던 곳이라 익숙하다. 십 년 전이라면 열다섯 살. 절정의 사춘기 시절 이후 그에겐 꿈같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기억하고 있는 엘제라는 여인이 있었으니, 십 년 전 이곳 델 마르 호텔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을 보낸 독일 여자로, 당시에 키가 크고 흰 정장을 입은 늘씬한 호텔 주인과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는 남편을 도와 호텔을 운영해왔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우도 베르거는 애인 잉게보르크와 함께 슈트트가르트에서부터 차를 운전해 단 둘이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다시 들른 것. 우도는 한 눈에 알아본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우아한 태도와 오히려 더욱 아름다워진 것 같은 외모의, 자기보다 한 열 살 정도 더 많은 것이 틀림없는 여성 지배인. 그러나 엘제, 프라우 엘제는 수많은 휴가객 가족 가운데 한 팀의 막내아들, 그것도 지난 세월동안 급격하게 변한 우도 베르거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자신이 해마다 여름휴가를 지냈던 베르거 가문의 아들이라 하니 안개처럼 자욱한 기억 속에서 희미한 존재를 꺼낼 수 있었을 뿐. 이 날이 8월 20일. 휴가지에서의 첫날. 애인 잉게보르크는 객실에서 자고 있고 ‘나’는 비록 휴가지만 휴가 기간이라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나’는 보드 게임 ‘제3제국’의 독일 챔피언이고 이제 쾰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 보드 게임을 주제로 전략, 전술, 군대의 배치 등에 관한 컬럼을 기고하여 가욋돈을 벌기도 한다. 그래 휴가 온 호텔에서도 보드게임을 설치할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필요하고, 잉게보르크가 해변에 나가 해수욕을 하고 일광욕을 해도 자신은 방에 남아 원고를 쓰거나 전략, 전술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 처지.
  이들 앞에 사건이 기다리고 있고, 사건을 위해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러하듯 의외의 사람들을 만난다. 첫째가 앞에서 말한 호텔 여자 지배인 프라우 엘제. 두 번째가 독일 오버하우젠에 서 온 연인 카를과 한나. 카를은 자기 이름을 미국식으로 ‘찰리’라고 불러 달라 한다. 찰리. 드러운 이름이다. 내가 빌어먹는 회사의 사장 이름이 찰리다. 우린 그냥 ‘찰리새끼’, 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찰리와 한나는 같은 회사의 기술자와 비서로 근무하고 있고, 한나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가 있는 이혼녀. 찰리는 신체 건강하고 스포츠라면 못 하는 것이 없는 술주정뱅이인데 그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축구하고 윈드서핑이란다. 그래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눈에 띈 것도 흰색의 서핑 보드. 나중에 알게 되지만 찰리의 진짜 취미는 아내 또는 애인의 눈가와 광대뼈 부근을 퍼렇게 멍들이고, 아내 또는 애인이 다음날 밤이 되면 찰리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폭력까지 썼다고 오해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 사람들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고, 소설 속에 흔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라틴족 사람들의 취향하고 얼핏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찰리는 호텔이나 휴가객들과 어울리는 대신 스페인 원주민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해 ‘로보’와 ‘코르데로’라는 양아치들과 함께 휴가객 전용이 아닌 원주민들을 위한 디스코텍 등을 전전하며, 이 때 애인 한나는 물론이고 ‘나’와 잉게보르크까지 안 갈 수 없게 은근한 압력을 넣어 함께 다니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연인 출신지를 알 수 없는 화상흔의 남자이자 페달보트 대여점 주인 케마도. 합해서 여덟 명. 주인공 커플, 찰리와 한나, 스페인 양아치들인 로보와 코르데로, 그리고 프라우 엘제와 케마도. 제일 먼저 정말 있었는지 아니면 짐작인지 독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건 찰리-로보-코르데로가 한나를 성폭행 했느냐 아니냐, 또는 다른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수영 실력에 관해서는 말이 필요 없는 만능 스포츠맨인 찰리가 보드를 타고나가 바다에서 익사한 사건이 자살인가, 사고사인가, 하는 것. 그렇다. 사람이 한 명 죽어나간다. 성폭력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지만 책에서 슬쩍 흔적으로 보여주는 성폭력은, 만일 있었다면 그건 다중에 의한 윤간의 형태다. 그리고 찰리의 사망은 자신이 진짜로 즐겨하는 취미생활 때문에 만들어놓은 한나의 퍼런 눈두덩과 성폭행에 기인한 자살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대소설에서 이런 거는 딱 알려주지 않으니 애초부터 결론이 나기를 바라는 건 허튼 짓이려니.
  ‘나’ 우도 베르거에게는 그러거나 말거나 첫날부터 특별하게 신경을 잡아끄는 시설이 있었다. 낡은 페달보트 대여점. 보트들은 대개 일렬종대나 이열종대로 배열해 놓는 것이 보통이지만 호텔 앞의 대여점엔 페달보트가 이상한 진陣 형태로 놓여 있어서 마치 진지나 성citadel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주인인 케마도는 보트를 쌓아 만든 가로세로 2미터, 높이 1.5미터 정도의 공간에서 생활하고. 어쩌다가 우도는 케마도에게 호감을 느껴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보드게임을 설명해주고 급기야 객실로 불러들여 게임의 방법을 일러준 다음 정식으로 둘만의 게임을 진행한다. ‘나’는 독일인이라 나치 군대를, 케마도는 연합군과 소비에트 적군을. ‘나’는 2차 세계대전의 과정에 박식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승리를 예견하지만, 이게 웬일, 케마도가 만만하지 않다. 원래 좋은 지능을 가진데다가 옛 추억의 여인 프라우 엘제의 남편이 틈틈이 훈수를 두는 모양이다. ‘나’는 제3제국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쏟고, 케미도 역시 온갖 것들을 연구하여 점점 ‘나’ 우도 베르거를 압박하는데, 어떻게 될까? 우도에게는 게임일 뿐이지만 케마도는 전쟁게임에 진짜 목숨을 걸고, 한쪽이 승리한 후의 전범재판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걸 우도는 몰랐다.
  결론은 책에 씌어있지 않다. 그러나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다. 볼라뇨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니까. 화끈하게 일러드린다. 제3제국으로 대표하는 집단 광기의 파시즘은, 일찍이 막스 프리쉬의 <안도라>에서 봤듯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재현될 수 있다는 경종. 이미 알게 모르게 인류의 머릿속에 파시즘을 펼칠 수도 있고 파시즘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볼라뇨는 암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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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16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볼라뇨의 참맛을 모르겠던데.... 오호! <야만스런 탐정들>을 읽어야 하는 것이군요! 이 두꺼운 책 사놓기만 하고 있는데 언제 읽나 *발동동*

그나저나 폴스타프 님이 읽으신 볼라뇨 작품하고 제가 읽은 볼라뇨 작품하고 겹치는 것이 거의 없는 거 같은데(전 주로 단편을 읽어서)...... 저는 그나마 <아이스링크>는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Falstaff 2020-10-16 17:27   좋아요 1 | URL
ㅎㅎㅎ 흥미로운 작가긴 한데 취향 상 극과 극이예요. 백퍼 만족은 아니고 뭐 하여튼 그렇더라고요. 아이스링크는 꼭 기억해두지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