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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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화자 ‘나’는 몸집이 크지 않고 조밀한 체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체형을 종종 ‘단단하다’고 하듯이 성격과 입맛에 까다롭지 않으며, 위의 크기, 팔 근육, 폐, 콩팥과 췌장, 간, 시력, 복부대동맥, 방광기능 등 모든 신체조건이 정상수치로 어떤 약도 복용하지 않으며, 여행용 비상키트 품목에 생리대를 지워버린 나이지만 호르몬 주사 같은 것도 맞을 필요가 없고, 건강한 이를 가지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석 달에 한 번씩 바리캉으로 밀어버리고 다닌다. 애초에 어딘가 일정기간 머물다보면 금방그곳에 뿌리내릴 수 있게 만드는 유전자를 갖고 있지 못해 저 아시아 동쪽 끝의 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나’같은 사람더러 사주에 일컬어 역마살이 끼었느니 어쨌느니 한다고 들었다.
  물론 ‘나’는 작가 자신이 아니라 작가가 만든 화자일 뿐이라서, ‘나’가 작가처럼 바르샤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지부가 있던 건물에서 전공인 심리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공산주의 정권을 견디지 못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지금은 결혼해 자식들 낳아 다 독립시키고 뉴욕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 뉴질랜드에서 난데없이 첫사랑으로부터 이 메일을 받고 주저하지 않고 그를 만나보기 위해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바르샤바 행을 결행하기도 한다. 뉴욕과 뉴질랜드에 사는 장년의 여인이 같은 사람이냐고? 아니. 그러나 폴란드 출생 이민자인 건 같다. 이런 의미에서 화자 ‘나’이기도 하고 작가 토카르추크이기도 하다.
  인간은 정착민인가 유목민인가. 유목민이었다가 농사법을 발견한 이래 정착민으로 진화했다. 농사를 짓고부터 ‘저장’이란 개념이 생겨 ‘무한정 저장’,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개념에 충실하기 위해 이웃들과의 ‘대규모’ 약탈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큰’ 권력이 생겼으며 이리하여 국가가 탄생했던 거 아닌가. 그러니 인간은 정착지향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목, 또는 이전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호모 사피엔스가 빙하기라 수심이 낮아진 아라비아 해를 건너 유럽으로, 아시아의 끝 베링해협을 건너 저 칠레 남부까지 이동한 것이 증거이리라.
  나는 책을 읽으며 난데없이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생각났다. 거기서 한비야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평생 새장 속에서 살면서 안전과 먹이를 담보로 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할 것인지, 새장 밖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창공으로 비상할 것인지.”
  한비야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힘없는 자와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 기회의 불균형과 맞서 싸우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한비야처럼 월드비전에 속해 사는 것이나, 토카르추크의 화자 ‘나’처럼 그냥 길을 떠나 돈이 떨어지면 현지에서 잠깐, 다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여비를 벌기까지 짧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방랑을 하든지 하여튼 길을 떠날 각오를 해야 무엇이든 간에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독자들이여, 한비야나 토카르추크의 비상 또는 방랑에 주눅 들지 말자. 정착해서 착실하게 사람의 한 살이를 해내는 것도 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힘들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일지어니.
  책의 제목을 <방랑자들>이라 해놓았으니 독자는 당연히 세계각지를 여행하는 내용이리라 생각하겠지만, 정말 재미있던 건, 토카르추크의 방랑은 한 인간의 밖에 있는 공간으로의 세계와 더불어, 인체 내부의 마이크로 공간도 포함한다는 것. 이것을 위하여 작가는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이란 학문을 정의한다. 인간은 방패와 갑옷, 무기로 지어진 존재로 일종의 도시이며, 도시 안의 모든 건축물은 성벽, 방어막, 요새를 갖추어야 하듯이 인간은 기본적으로 벙커로 세워진 나라라고. 실제로 어떤 객관적인 경험을 하더라도 인간은 해당 경험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방어기재가 될 수 있는 재료로 사용하는데, 그러기 위해 사실조차도 왜곡시키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존재다. 대표적인 것이 1950년대 바야흐로 대홍수가 닥쳐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키기 바로 전에, 우주선을 타고 하느님이 내려와 선택받은 몇 명의 신도들을 데리고 극락왕생, 휴거를 약속했다고 주장하던 인간들이, 약속한 그날 자정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더니 맑은 밤하늘에 별만 총총하게 빛나면서 새벽이 다가오자 몇 시간동안 회의를 하다가, 우리의 선한 믿음으로 하느님께서 멸망을 늦추셨다고 했다는, ‘인지 부조화 이론’ 아닌가.
  이 책에선 실제로 서적 영업을 하는 폴란드 사람 쿠니츠키 씨 가족이 크로아티아의 비스 섬으로 여름휴가를 갖다가, 아내와 세 살 난 아들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온갖 생체실험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발견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동안 처자식을 찾기 위해 크로아티아 당국에선 헬리콥터를 동원해 비스 섬을 샅샅이 뒤지는 난리를 겪었는데 사흘 후, 아내와 아들이 멀쩡한 얼굴로 나타났으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남편이자 아빠 마음에 당연히, 아내를 닦달하지 않겠는가 말이지. 그래서 밝혀낸 사실. 정말로 외계인에게 납치됐었느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내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하여튼 심리학자이기도 한 토카르추크가 인간 내면, 영적 내면 말고 진짜 육신의 내면에 관심을 쏟은 건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하여간 모든 인지부조화를 겪고도 인간은 자신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 참으로 오랜 세월을 궁리해왔다. 기형인의 기형부위와 심지어 천재의 뇌, 쇼팽의 심장까지 인간들은 보존을 해서 두고두고 봐야 했는데, 이젠 ‘프라스티네이션’이란 최첨단 방식으로 신경줄기 하나, 세밀한 모세혈관까지 보관, 전시할 수 있을 수준이라고 하는데, 토카르추크는 참으로 집요하게 해부학과 보존의 역사를 정리해놓기도 했다. 이를 나는 인체 내부로의 방랑이라 하고 싶다. 세계 각지로 떠나는 방랑이 나중에 해부학적 내부 탐색과 조화를 이르는 건 물론이다.
  무수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리하여 제목을 ‘방랑자들’이라고 복수형을 선택했을 것. 모든 출연진들의 방랑, 여행길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촘촘하게 박아 넣어 6백 쪽에 이르는 한 권의 장편소설을 만들었다. 길 떠난 이야기, 그들은 서로 만나면 반드시 물어보는 것이 세 가지 있단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어디서 왔나요? 어디로 갈 거지요? 그러나 모든 순례자들의 목적은 다른 순례자란다. 길을 떠나도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사람을 향한다는 의미. 사는 게 다 그렇다.



  * 민음사. 참 나. 책에는 모두 13장의 지도가 실려 있다. 본문이 끝나면 색인에 각 지도가 어떤 지도인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색인에 표시된 페이지를 열면, 어이없게도, 단 한 장의 지도도 발견할 수 없다. 책 교정하고나서, 당연히 지도가 실린 페이지가 바뀌었을 텐데 그걸 교정하지 않고 그냥 찍은 거다. 얘네, 책은 발가락으로 만드나보다. 욕을 다 먹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멀었어. 민음사 편집부 직원 두 명이 등장해서 <방랑자들> 어땠어? 좋지? 좋지? 아 좋아, 좋아, 하면서 광고 비슷하게도 찍은 거 같은데, 책이나 좀 잘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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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3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도 ㅋㅋㅋㅋ ㅋ 제 책만 파본인가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10-30 13:45   좋아요 0 | URL
진짜 요새 민음사 책 만드는 거, 고고 마운틴, 갈수록 태산입니다. ㅋㅋㅋㅋㅋ
개전의 정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