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생활 풍경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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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스 오즈. 나한테는 참 난처한 작가다. 처음 읽은 아모스 오즈가 <나의 미카엘>.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작가라고 알고 있었지만 뭐 그냥 그런 것이, 꼭 집어서 언짢은 건 아니라도 그렇다고 훌륭한 것도 아니어서 ‘세계적인’ 이란 형용사가 혹시 유대인 프리미엄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 읽은 오즈는 창비에서 낸 <숲의 가족>. 이건 뭐야, 싶을 정도로 아마추어인 내 기준으로 말하자면 ‘망작’. 세 번째 오즈는 열린책들에서 낸 <여자를 안다는 것>. 이렇게 세 작품으로 나는 오즈하고 인연을 끊었다. 다시는 읽나봐라.
  세상 사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면 그게 인생인가. 몇 달 후, 나는 또 문학동네의 오즈,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읽었고, 오즈 자신의 부계, 모계 조상을 포함한 스스로의 성장소설이었는데, 이걸 읽고서야, 아, 이래서 오즈, 오즈 하는구나.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 그리하여 이번에 비채에서 나온 단편집 《시골 생활 풍경》은 기꺼운 심정으로 골라 읽을 수 있었던 것. 이 책을 읽은 감상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단편의 에센스’라고나 할까. 마음에 딱 드는 작품들이다. 혹시 진짜 오즈는 단편에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스라엘, 근데 얘네들 수도가 어디야? 예루살렘이야, 텔아비브야? 하여간 이스라엘에 있다고 하는 ‘므나세 언덕의 텔일란 마을’이란 가상의 장소를 만들어놓고, 이곳에서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넘겨보며 기록을 한 것이 이 책 《시골 생활 풍경》이다. ‘므나세’가 누군가. 이사악의 증손자요, 야곱이 가장 총애했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의 맏아들. 애초에 입에 은수저를 입에 물고 엄마 배에서 빽빽 거리며 기어 나온 아이이니 므나세 언덕의 텔일란 마을은 이스라엘의 초기 이주민들이 모여 만든 거의 최초의 촌락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오래된 시골마을이지만, ‘므나세’란 이름에 걸맞게 풍광이 수려한 아름다운 고장으로 포도밭과 백 년 된 농가들, 키 큰 사이프러스 나무 등등 척, 한 눈에 봐도 프로방스나 토스카나를 능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지의 돈 많은 사람들이 텔일란 마을의 오래된 저택들을 사들여 복층 건물을 짓는 바람에 점점 휴양도시 비슷하게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가상의 농촌 마을을 하나 만들어 농촌 구성원들의 애환과 자잘한 기쁨을 맛난 글 솜씨로 만든 바가 있으니 이문구의 단편집 《우리 동네》? 흔히들 이문구의 대표작으로 《관촌수필》을 꼽고 나도 거기에 이의가 없지만 《우리 동네》 역시 빼어난 우리 문학의 한 페이지라는 것이 내 신념이다. 《시골 생활 풍경》이 《우리 동네》와 다른 결정적인 점은, 아모스 오즈는 히브리 대학을 졸업하고 벤-구리온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인텔리겐치아라서 그런지 시골 생활 풍경이라 하더라도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아니라 도시에서 아파트를 처분하고 자신이 태어나 자란 농장으로 귀향한 부르주아 아리에 젤니크, 마을의 메디컬 펀드의 가정의학(family medicine) 의사 길리 스타이너, 전직 국회의원인 페사크 케뎀과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그의 과부 딸 라헬 프랑코, 마을의 오래된 저택을 사들여 재개발해서 돈을 더 벌어볼까 하는 돈 많은 부동산중개업자 요시 새슨과 저택의 외동딸 야르데나 등, 일단 적어도 상습적으로는 자기 손에 물 묻힐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주로 주인공을 맡는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일곱 편만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제일 마지막 짧은 단편 <다른 시간, 먼 곳에서>는 예외로 하자. 아니, 없는 걸로 치자.
  오즈가 보여주고자 하는 연령층도 참 다양하다. 아흔 먹은 어머니 로잘리아를 봉양하는, 마누라는 미국으로 도망간 늙은 부르주아 아리에 젤니크부터 자기보다 열다섯 살이 더 많은 낮엔 우체국장, 밤엔 도서관장인 아다 드바쉬를 짝사랑하는 열일곱 살 사춘기 소년 코비 에즈라까지 다양하다. 아, 유대인 열일곱 살이면 우리나이로 열여덟이나 열아홉이니까 어린 청년이라고 해두는 것이 좋을까?
  지금 이렇게 등장인물만 소개하는 건, 단편소설들이라 스토리까지 읊어버리면, 혹시라도 책을 진짜로 사서 읽을 때까지 이 독후감을 기억하신다면 틀림없이 스포일러가 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각 단편의 스토리와 구성 같은 것도 정확하게, 딱 단편소설을 위한 스토리와 갈등구도를 갖고 있다. 마치 교과서를 읽는 듯하게. 정말이다. 신생국 이스라엘 입장에서 가장 오래된 약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시골마을,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오해를 하고, 쓸쓸해하고, 고독하며, 때론 각자의 수준에 맞게 모여 노래하며 즐긴다.
  좋은 작품들을 모은 단편집이지만, 다른 독자들은 모르겠고 내가 읽기에는, 시골 땅 위에서 직접 파종하고, 김을 매고, 추수하는 진정한 땅의 주인공, 한 여름 에어컨이 없으면 젖은 수건을 배 위에 깔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구름과 비가 어울리는 즐거움을 나누는 우리의 아저씨, 아줌마들의 여러 마당, 싱싱하고 건강하고 재미있고 키득거리게 하는 《우리 동네》가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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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모스 오즈 저에게도 난처한....(재미없는 작가인데) <시골 생활 풍경>은 단편의 에센스라 하시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ㅎㅎ

다락방 2020-10-20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의 미카엘]이 너무 좋아서 이 책도 읽었는데 뭐라고 써놨나 찾아보니 텔일란 마을의 우체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써놨더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3년의 글인데, 역시 기록은 의미 있습니다. 그럼 이만...

잠자냥 2020-10-20 15:00   좋아요 0 | URL
우아.... 근데 정말 <나의 미카엘>이 재미있었어요? 아 재밌다고는 안 하셨구나. 너무 좋았다고...음...

Falstaff 2020-10-20 15:08   좋아요 0 | URL
저한테는 역시 좀 난처한 작가입니다. 선뜻 손이 가지는 않더라고요. ㅎㅎㅎㅎㅎ
다 팔자지요 뭐.
<시골....>은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심지어 웃기까지 했어요. ㅋㅋㅋㅋㅋ
흠... 우체국보다는 밤에 일하는 도서관이.... 어떠신지요. ㅋㅋ

다락방 2020-10-20 15:09   좋아요 0 | URL
저는 무척 좋아했었어요. 나는 잊지 않는다, 는 한나의 반복되는 그 문장이 너무 좋았었거든요. 근데 2010년에 읽었던거라.. 지금 읽는다면 어떻게 느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는 잊지 않는다, 말고 기억나는 건 없어요..... 하하

테레사 2020-10-2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미카엘 읽고 나서, 이 작가는 별로군 목록에서 지워버렸던 기억이 ^^;

Falstaff 2020-10-20 15:1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충분히 이해합니다. ^^

blanca 2021-03-0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미카엘> 시도해 보려 했는데 이건 이문구 책 홍보 아닙니까?ㅋㅋㅋ 왠지 아모스 오즈가 제 취향은 아닐 것 같아 이문구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Falstaff 2021-03-05 17:37   좋아요 0 | URL
오, 이문구, 대박입니다. 훌륭한 선택! 자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