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꿈의 바다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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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반 만에 다시 플래너건을 읽는다. 6년 전에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인상깊게 읽어 골랐던 책이 <굴드의 물고기 책>이었는데,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굴드”만 나오면 사족을 못 쓰는 경향이 있고 나도 별로 예외가 아니어서 제목만 보고 덥석 물었다가 별로 재미를 못 봤다. <굴드의…>는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플래너건이 태어난 테즈메이니아 섬을 무대로 뭔가 환경 변화에 관해 경종을 울리는 내용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확인하기 위해 다시 뒤져볼 정성까지는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소설에 생각 외로 이 테즈메이니아를 무대로 한 작품이 많다. 누가 쓴 어떤 작품인지는 딱 떠오르지 않지만 주로 영국에서 추방당해 도착한 범죄자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다시 범죄를 또 저질러 테즈메이니아의 가혹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뭐 이렇게 저렇게 출소를 하게 되고 나온 김에 어디서 정착을 하고 이런 스토리 라인이 머리 속에서 뱅뱅 돈다.


  이번에 읽은 <들끓는 꿈의 바다>는 2019년에 실제로 있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초대형 산불 시기를 뇌수종으로 생을 마감하는 단계에 처한 프랜시스 여사의 죽음의 침상과 비유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하여 대초원지역의 많은 부분을 산림으로 만들어버렸고, 새롭게 생긴 숲이 자연이 공급할 수 있는 수분보다 더 많은 양의 습기를 소비하여 극도로 건조한 환경이 되어 버렸다. 그러지 않아도 건조한 오스트레일리아 평야에서는 주기적으로 산불이 발생했지만, 나무를 비롯한 생명체도 자연현상에 의한 자연발화를 오히려 자연의 종이 건강해지는 쪽으로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리하여 주기적인 산불이 다양성을 확대시키는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 극도로 건조해진 환경에서 크게 번져버린 산불에는 속수무책, 많은 생명 종이 멸실을 향해 달음박질을 하기 시작한다. 하다못해 인간종도 해변까지 습격해온 산불을 견디지 못하고 소방대의 경종 신호가 울리면 즉시 바닷물로 들어가야 했을 정도였다고. 시드니와 멜버른의 상공엔 산불의 불씨와 연기와 미세먼지가 하루 종일 햇빛을 가렸다. 이런 현상은 테즈메이니아의 남동쪽에 위치한 주도 호바트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리처드 플래너건은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과 온난화, 이상기후로 인간세가 촉진되는 현상을 안타까워한다. 수많은 어류와 유대류와 조류가 멸종되었거나 멸종 직전까지 와 있는 것을 통탄한다.


  그리고 프랜시스. 애칭 프랜시. 프랜시는 호리와의 사이에서 맏딸 애나, 아래로 아들만 셋, 토미, 로니, 터조를 두었다. 아이들 다 괜찮게 성장했다. 이 가운데 둘째 아들 로니가 어려서부터 가장 재능이 있고 여러 방면으로 재능을 증명하며 부모는 물론이고 누나, 형제, 동네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남자 형제들은 버니에 있는 마리스트 파더스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총명하고 재능 있는 로니는 집에 돌아와 차고 대들보에 줄을 걸고 목을 매달았다. 로니의 자살 이전에 장남 토미는 후에 로니의 장례미사를 집전할 학교 신부의 사랑을 견디지 못해 열두 살 생일이 지나자 말을 더듬는 증세를 갖고 집에 돌아왔다. 나중에 토미가 말하기를 문제의 신부가 토미를 사랑하다가 로니가 학교에 입학을 하자 로니한테 사랑의 화살을 돌렸단다. 어쨌거나 이제 조금 다급하거나 긴장을 하면 여지없이 말을 더듬는 토미는 자식들 가운데 유일하게 테즈메이니아 섬에 남아 중증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고, 깊은 병에 든 어머니를 부축해 진료를 받으러 다니고, 입원해서는 병실을 지키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비록 실패한 예술가의 딱지를 달았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한 봉급쟁이였던 내가 읽기에는 안분자족 할 줄 아는, 가장 덜 불행한 삶을 영위하는 인물이다. 건축가로 성공해 해외 학회에서 강의 부탁이 쇄도하는 누나 애나, 기업체의 실력 있는 냉혈 협상가 터조한테는 만만한 동생/형이자, 화풀이 상대이자, 아무 심부름이나 시킬 수 있는 하인 대우를 받을지언정.

  그런데 이 가정의 구성원에게는 뇌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아버지 호리 씨는 비교적 젊은 시절에 치매가 와서 결국 중증 알츠하이머로 생을 마감한다. 재능이 많은 둘째 아들 로니는 틀림없이 우울증이 깊어져 자살을 했을 터이고, 맏아들 토미는 충격에 의하여 말을 더듬는다. 토미의 아들 데이비는 조현병이 있어 주기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막내 터조는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급한 성격과 고집으로 결정적인 안하무인이 되어 버렸다. 맏누이 애나는 시드니에 살면서 처음엔 한 달, 이어서 두 주일, 나중엔 거의 매주 비행기를 타고 테즈메이니어의 주도 호바트의 로열 호바트 병원에 엄마를 보러 오지만, 문학작품이니까 가능하겠으나 처음엔 손가락이 없어지고, 무릎 관절이 없어지고, 눈이 하나 없어지고, 귀도 없어지는 메타포 적 변용을 겪는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여전히 능력있는 엄마 집에서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20대 후반의 아들 거스. 이 아이가 엄마의 돈을 훔치고, 보석도 훔치고, 비싼 가구도 내다 팔고, 심지어 고가의 맥 랩탑도 내다 팔아 마약을 하면서 점차 엄마와 같은 현상인 몸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거스는 도가 심해서 차츰차츰 사라지더니 결국 마우스를 쥔 채 화면에 뜬 가상의 물체에 총격을 가하는 엄지를 포함해 세 손가락만 남는다. “나한테는 애니의 날과 애니가 없는 날 밖에 없는데, 그 중에 애니의 날만 진짜 같아.” 라는 문자를 날리는 동성 연인 메그도 나중에 손이 없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세상에 아무도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신경쓰지도 않는다. 딱 한 명만 빼고. 노랑배도라지앵무의 멸종을 예방하기 위한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테즈메이니아 대학 동물학과 교수이며 선대 가족 거의 전부가 수용소에서 가스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 유대인 리사 샨. 그러나 그건 애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리사 샨은 애나를 “솔직히 좀 이상한 여자였다”고 기억할 뿐이니까.


  남매의 어머니 프랜시가 쓰러졌다. 새벽 두 시에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 검사를 해보았다. 치매에다가 파킨슨 의심. 날이 밝은 후에 다시 정밀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치매도 아니고 파킨슨도 아니었다. 뇌수종. 뇌에 물이 고인 현상이다. 관을 삽입해 물을 빼는 시술을 한 후 정상을 회복해 3년이 흘렀다. 이번엔 서서히 진행하는 낮은 등급의 암이 찾아왔다. 비호자킨 림프종. 비교적 순한 암이라 항암치료를 받았고, 이후에 놀라운 효과를 보였지만 프랜시 자신은 스스로를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노인 시체”라고 자조했다. 이후 5년이 더 흐르고 어머니는 86세가 됐다. 그동안 애나는 건축가로 명성을 떨치며 국내에서 여러 개의 건축상을, 해외에서도 세계적인 상을 받는 명사가 됐고 아름다운 여성과 새로운 커플을 이루었으며, 브리즈번에서 사는 막내 역시 세계를 누비며 각종 비즈니스 계약을 성공적이고 냉혹하게 체결하는 해결사로 이름을 드높였다.

  이제 어머니 프랜시에게 찾아온 것은 뇌출혈. 입원한 어머니는 조금 호조를 보이다 그만 낙상해 갈비뼈 두개가 부러졌으며, 의사들은 가족과 상담을 요청했다. 이제 괜찮은 줄 알았던 애나와 터조는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비행기를 탔고, 이들에게 의사들은 프랜시의 존엄한 죽음을 권했다. 세상에. 그렇게 정정하던 어머니한테 존엄한 죽음이라니. 대안은 없나요? 시술/수술 그리고 노인에게는 권하지 않는 신장투석 등등. 성공하지 못한 화가 토미의 의견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애나와 터조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서 무조건 치료를 주장하고, 관철시킨다. 온갖 연줄을 동원해서. 그리하여 어머니 프랜시는 길고, 길고, 너무도 긴 고통의 시간을 맞게 되고, 자식들은……. 세상이 그런 것이지. 갈 때는 보내야지. 다 산 것들의 욕심일 뿐.

  어머니 프랜시의 죽음을 향하는 고통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생명체 멸종 상황을 작가 리차드 플래너건은 연관시키려 애쓴다. 이미 멸종해버린 오스트레일리아 유대 늑대, 유대 너구리, 이제 몇 개체 남지 않은 노랑배도라지앵무새 등등.


  다 좋다. 테즈메이니아가 고향인 작가 입장에서 그곳의 동물들이 멸종하고, 멸종해가는 현상을 고발하는 건 어쩌면 의무일 수도 있다. 멸종의 직접적 원인인 인간들의 행위에 대한 고발도, 여전히 환경파괴를 동반하는 개발을 옹호하는 세계의 정치가들을 규탄하는 것도. 그런데 내내 못마땅했던 것은, 유대 늑대와 유대 너구리 같은 종의 멸종이 그렇게 비탄스럽고, 노랑배도라지앵무의 개체수 감소에 조바심을 치는 반면, 테즈메이니아 선주민을 멸종시킨 리처드 플래너건의 동족들에 대한 규탄은 왜 없는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너희 잉글랜드에서 온 백인종들은 테즈메이니아에서 선주민 완전 멸종의 위업을 이루었잖은가 말이지. 어차피 호모 사피엔스, 십만 년 정도 살았으면 제법 살았어. 다른 종이 나와 대체할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 인간세가 인간도 멸종시키겠다는데 뭐가 그리 중헌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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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없는 주검 서문문고 104
사르트르 / 서문당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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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르트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저작을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 심지어 “사르트르가 20세기 자체”였다는 영광스러운 명성을 누린다는 건 어디서 읽었다. 그러나 인연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도무지 친해지지 않더라는 것. 《무덤 없는 주검》도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더러운 손>과 더불어 작년에 사놓고 그저 장식처럼 책장에만 꽂혀 있었다. 어쩌나, 도무지 손이 안 가는 걸. 이번 설 명절 때 내가 다니는 도서관도 나흘 연속 휴관이라 집에 머물면서 백화수복에 명태전 안주해서 떡만둣국 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연휴가 하도 지루해서 엣다 모르겠다, 핑계김에 읽었다. <구토>, <말>, 지난 세기 새파랗게 젊은 시절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같은 것들이 와닿지 않은 건 이미 지난 일이니 굳이 기억할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애초에 기대감은 하나 없이 마치 해야 할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첫 장을 열었다는 걸 이야기 해야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무덤 없는 주검》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사르트르라고 하면 지구행성의 대표 실존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재작년에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은 내가 읽은 가장 재미있는 실존주의 작품이었다고, 우리나라 작품으로 국한하면 역시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이 제일 인상깊은 실존주의 소설이었다고 믿고 있는데, 이제 사르트르의 <무덤 없는 주검>이 새롭게 가장 설득력 있는 실존주의 희곡이라 주장할 것 같다. “것 같다”라 하는 이유는 사르트르의 다른 극작품을 더 읽을 것이 틀림없으며, 이 과정에서 다른 실존주의적 극작품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레 망다랭>, <무덤 없는 주검>, 그리고 <원형의 전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실존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에서 발현했다는 거 아닐까. 삶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로의 실존이 가장 우선하는 환경이 전쟁일 터이니. <무덤 없는 주검>에서 사르트르는 전쟁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와 독일 협력자들의 갈등을 그렸다.

  필리프 페탱을 수반으로 하는 비시 괴뢰정부가 점령한 농촌 지역의 학교 건물. 상부 레지스탕스는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 도시를 점령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장이 이끄는 저항군은 도시를 습격했으나 어쩌면 당연하게 작전에 실패하여 열다섯 살 소년 프랑수아와 프랑수아의 누나이자 장의 연인인 뤼시, 서른 살 근방의 대원 소르비에와 앙리, 그리스 출신의 오십 대 카노리가 비시 프랑스측 수비대에게 포로로 잡혀 심문을 당하기 직전이다. 그리스인 카노리는 취조실에 이미 한 번 끌려가 지역 저항군 지도자 장의 소재지를 대라며 일차 고문을 당했다. 카노리는 얻어맞고 기구를 이용해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버텼다. 이들은 모두 장의 소재를 알지 못한다. 고통을 견디다 못하면 결국 애먼 사람의 이름을 댈 수밖에 없다. 알지도 못하는 정보를 자백하라고 고통을 받는 일은 이들의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포로들은 고문을 당하며 비명을 지르는 행위가 자신의 인간성을 휘발시키는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어린 소년 프랑수아는 고통을 받고 싶지도 않고 거의 틀림없이 고백을 하건 말건 내일 밤에 있을 총살을 당하고도 싶지 않다. 소년은 살고 싶은 나날들이 너무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

  비시 수비대는 먼저 소르비에를 데려가 폭행한다. 소비에르는 당연히 비명을 질렀으며 녹초가 된 상태로 돌아온다. 조금 후 열리는 감방 문. 다들 수갑을 차고 있는 상태인데 하다못해 포승으로 묶이지 않은 장이 감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인근 마을에 친구가 있어서 친구의 동네에 거주하는 청년이라고 속이고 소재를 확인하는 대로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 그러니 이제 갇힌 자들은 장의 소재를 알게 됐고, 고통/고문을 견딜 확실한 이유를 갖게 된 거다. 장이 들어온 후에도 앙리가 취조실에 끌려가 수비대원들과 언쟁도 하고 두드려 맞아 뼈가 상해 돌아온다. 이를 고통스럽게 인식하는 지휘자 장.

  당연히 장도 자신의 소재를 감추기 위하여 고문당하고 있는 대원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이들 포로들은 장과 이런 저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드디어 장이 말한다.


  “좋아! 좋아! 그대로 계속해. 자네에겐 모든 권리가 있어. 나를 괴롭힐 권리마저 자네에겐 있네. 자넨 앞질러 지불했지. 자네들은 자기 자신을 믿고 있어. 마음의 안도감을 얻기 위해서는 육체의 고통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자네는 알고 있나, 내가 자네들보다 더 불행하다는 것을?”


  나는 이 대사가 사르트르의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 차라리 죽음이 축복 같은 고통을 초래하는 고문을 바로 앞에 둔 포로들에 비해 그들의 지도자였던 장의 양심적 고통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다고 읽었다. 실제로 한 번 고문을 당했던 소르비에는 다시 끌려가 손톱을 뽑아버리겠다고 하니, 이제는 알고 있는 장의 소재를 자백하겠노라 하더니 잠깐 방심하던 수비대의 허를 찔러 창문에서 뛰어내려 두개골이 깨져 즉사하고 만다. 양심의 고통이 죽음의 고통보다 더 불행하다고? 웃기는 이야기다. 우리는 지금도 수시로 이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산다. 소위 말하는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헛소리.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는 책임질 의사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 부분이 내가 느낀 <무덤 없는 주검>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물론 절정은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한 프랑수아 소년이 자신은 고문을 당할 의사도 없고, 그걸 견딜 의지도 없어서 장에 대해 자백하겠다는 의사를 비치고, 이미 끌려가 고문 대신 집단으로 강간을 당해 삶의 의지가 사라진 누나 뤼시의 허락 아래 앙리가 소년의 목을 졸라 살해하는 장면이겠지만, 그럼에도 실존 문제는 이 언쟁 장면이 압권이다.

  뒤늦게 장은 아이디어를 내, 가까운 곳에 있는 세르바즈 동굴 옆에서 총을 맞아 죽은 피에르의 주머니에 자신의 신분증을 넣어 무기를 보관하는 동굴 속으로 끌어 놓을 테니 그곳에 있다고 자백하라 권한다. 진즉에 이런 아이디어를 냈더라면 소르비에도, 프랑수아 소년도 죽지 않았을 테지만 사람이란, 삶이란 그런 것이다. 좋은 생각은 절대로 적시에 떠오르지 않는 것. 그리고 정말로 짧은 시간이 지난 후 장은 풀려난다. 이제 포로들은 적당한 시기를 골라 가짜 장의 시체가 든 세르바즈 동굴의 위치만 자백하면 적어도 곱게 죽을 수 있게 된 것.


  이번엔 비시 프랑스의 수비대원을 보자. 란드뤼를 대장으로 하고 크로셰, 페르렌, 코르비에, 이렇게 구성된 요원들 모두 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을 고문하는 것이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정답은, 아마 그럴 걸? 느끼지 않았을 걸? 사르트르는 이 가운데 단 한 명, 정식 군인이나 레지스탕스 대원들보다 위계가 확실하지 않은 비시 수비대의 대장인 란드뤼 혼자 만일 이들이 자백을 하면 즉결처분을 하지 않고 독일군에 넘겨 소금광산, 염갱鹽坑으로 보내 강제노역을 하게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네 명 가운데 한 명이니 25퍼센트? 아닐 걸. 원래 침략자보다 더 악랄하게 현지인을 괴롭히는 것이 현지에서 침략자들에게 부역하는 인간들이다. 이건 동서와 고금에서 무수하게 증명이 된 것. 다만 이들은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달리 전쟁 전 프랑스에 대하여 대단히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가난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적당한 벌이도 하지 못하고 부랑인처럼 떠돌거나 길거리 왈패 출신들. 이들은 의과대학을 다니다 전쟁을 만나 저항군에 들어간 앙리의 팔목 뼈를 부러뜨려 버린다. 그러나 자신들의 세월도 얼마 남지 않은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결국 자기들의 행위에 걸맞은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아직 실감하지는 못한다.

  이들 네 명의 악당들은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포로 세 명을 한꺼번에 불러 자백해서 생명을 건지라고 권하고, 대장 란드뤼의 맹세를 들은 포로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그리스 사람 카노리가 그르노불가의 42번째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숲속으로 50미터 쯤 울창한 숲 속에 레지스탕스가 쓸 무기를 보관한 세르바즈 동굴을 알려준다.

  나는 결말 딱 하나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사르트르는 여기에 하나를 보태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 《무덤 없는 주검》은 표제작과 <존경 할만한 창부> 이렇게 두 편이 실려 있다. <존경 할만한 창부>는 미국 남부에 있는 도시의 인종차별에 관한 드라마이다. 성매매를 하는 리치에는 애초에 죄가 없는 흑인을 변호하기로 마음을 먹지만 결국을 사회 분위기와 습관에 굴복하는 이야기라는 정도만 소개한다.

  이 책은 서문문고 104번으로 1974년에 초판, 1997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역자 최성민 전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가 1920년대 중후반에서 30년대 초반에 태어나 오래 전에 작고한 양반이다. 그래서 번역체가 젊은 분들의 경우엔 읽기 어색한 부분이 간혹 눈에 띄겠지만 책값이 정가 5천원, 할인가 4천5백원, 최고의 가성비를 즐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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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6
메릴린 로빈슨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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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년생이면 여든이 넘었다. 1980년에 <하우스키핑>으로 데뷔하고 2004년에 <길리아드>, 2008년에 <홈>을 발간했다. 이 세 권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을 뿐. 나는 이 세 편의 작품만 읽고 매년 전혀 가망이 없는 노벨 문학상 후보 투표하기에 매릴린 로빈슨한테 한 표를 던졌다. 살만 루슈디가 무슬림 원리주의자에게 테러를 당해 눈 하나를 잃은 해를 빼고는. 그렇게 로빈슨의 작품들은 알게 모르게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십년의 세월이 흘러 작품의 스토리보다는 마음 속에 산산한 잔금으로 남은 유리창처럼 스산하고 쓸쓸한 광경으로. 이이가 2014년에 발표한 <라일라>가 번역해 나왔다는 걸 알자마자 희망도서 신청을 해 읽었다. 이 책 이후로 2020년에 <잭>이란 작품도 발표한 모양이다. 그것도 얼른 번역 출판했으면 좋겠다. 출판한 해로 따지면 40년 동안 장편소설 다섯 편을 발표했을 뿐인 과작의 작가. 사람의 마음 속에 든, 말하지 못할 불안을 표현하는 방면에서 탁월하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아니지만 책을 읽는 속에서는 쨍, 유리창에 금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는 이야기꾼.

  당신이 매릴린 로빈슨을 처음 읽는다면 이 책을 선택하기 앞서 <길리아드>와 <홈>을 먼저 읽어 두시라고 권하겠다. 이 두 편과 <라일라>의 무대가 아이오와의 작은 농촌 마을 길리아드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오래된 계약인 구약에 나오는 “길르앗”의 영어식 표기가 길리아드. 지금 찾아보니 “치유의 도시”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면 <길리아드>, <홈> 그리고 <라일라>를 치유 3부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사실이 그렇다. 세 작품 다 길리아드에 돌아와, 도착해 지나간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치유의 전제조건은? 아파야 한다. 상당한 상실을 포함해서. 매릴린 로빈슨의 작품을 읽는 일이 금간 유리창을 품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갖게 하는 이유이리라.


  1930년대 작은 도시의 빈민 가옥. “아이는 어둠 속에서 현관 입구에 있는 계단에 앉아 추위에 떨며 자기 몸을 껴안고 있었다.” 이렇게 작품은 시작한다. 집에 부모가 있는지, 아니면 이 집에 맡겨진 아이인지 아직 모른다. 아이는 극단의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며 잠들기 바로 직전이다. 잠에 빠지기만 하면 곧바로 편안한 죽음이 아이를 품에 안고 떠나가버릴 것이다. 주로 밤에 도착해 집의 구석 어딘가에서 대충 잠을 자는 대신 집을 청소하는 것으로 집세를 갈음하는 나이든 여인 달Doll. ‘인형’이란 뜻을 가진 doll 맞다. 역자 박산호는 이를 ‘달’이라 표기해 잦은 빈도로 나오는 달moon과 조금 헛갈리게 하지만 읽을 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얼굴에 큰 반점처럼 보이는 색이 바랜 흉터를 가지고 있는 달은 사실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날 밤 아이를 구조하고 날이 새기 전에 아이를 숄에 둘둘 말아 품에 안고 길을 나선다. 이 집에 계속 있다가는 무관심한 방치로 인해 며칠 안에 죽을 아이였으나 달이 아이를 맡기로 결심을 한 것. 하지만 달은 집안의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 부모, 또는 부모 가운데 한 명, 아니면 부모로부터 위탁을 받은 보호자한테도. 이렇게 해서 달은 아이 유괴범이 된 것이고, 얼굴에 나타나는 특징 때문에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이젠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달이 처음 향한 곳은 나이든 여자 혼자 있는 집. 그곳에서 여자의 친절을 받아 빵과 우유를 먹이고 몸을 씻긴다. 이가 득실거리는 머리카락을 삭발하고 비누칠을 꼼꼼하게 한 후, 나이든 여인은 아이에게 ‘라일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예쁜 이름을 지으면 예쁘게 클지도 모른단다.”

  여자의 집을 나와 유랑농민, 자기 토지도 없고 소작도 얻지 못해 노새가 끄는 마차에 짐을 싣고 농장 일이 있는 곳을 향해 유랑하면서 농사일을 도와 대가를 받아 먹고사는 일행에 끼어든다. 돈과 마르셀 부부와 이들의 딸 멜리, 그리고 아서와 그의 두 아들. 달과 라일라는 이들과 함께 유랑하며 함께 일하고 먹는 생활을 시작한다. 세월이 조금 흐르고 라일라도 훌쩍 커버리자, 달은 아이를 데리고 작은 마을에 정착해 라일라를 학교에 보낸다. 글을 읽고 쓰며, 더하기 빼기와 곱하기는 할 줄 알아야 세상 사는데 편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나 언제나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달은, 갑자기 라일라한테 공부는 필요한 만큼 다 했으니 다시 떠나자고 말하고 그날로 즉시 다시 돈과 마르셀 부부를 찾아간다. 라일라는 이때 즈음해서 달이 스타킹 위에 날이 바짝 선 단도를 매달고 다닌다는 걸 알았다.

  돈 일행이 정확하게 말은 안 했지만, 이제 미국에는 대공황이 밀어닥쳐 일감도 없고, 벌판엔 건조한 먼지와 황진Dust Bowl 현상이 극심해 날로 살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이 어느 날 사라졌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다. 자신의 피도 있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의 피를 뒤집어쓴 채. 스타킹에 숨겨온 단도를 휘둘렀으며, 상대한 남자가 죽었는데, 남자는 라일라의 아버지이든지, 삼촌이든지, 아니면 그들이 부탁한 사람이었다. 늙은 달은 보안관에게 체포되어 나이 덕분에 관대한 구류상태로 있다가 도망해 넓고 넓은 옥수수 밭에 들어가 행방불명된다. 옥수수밭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시라. 시카고에서 세인트루이스까지 차로 운전해 여덟 시간 이상 달려도 계속 밀밭이 늘어선 곳이 미국이다. 바로 옆 아이오와의 옥수수밭은 악명이 더 높아 그 속에 들어가 길을 잃고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라일라도 달을 찾기 위해 옥수수밭에 들어갔다가 구사일생, 우연의 힘으로 살아 돌아온다.

  이제 돈 일행도 궁핍의 절정을 맞아 가족 단위별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 라일라는 이 와중에 달을 잃고 대도시 세인트루이스로 흘러든다. 한 마을의 상점 여자 주인이 준 주소와 10달러만 들고 간 곳은 세인트루이스의 윤락가였다. 그곳에서 ‘로지’라는 이름의 나이든 매춘부가 된 라일라. 길쭉하게 생기고 큰 손과 백 번도 넘게 햇볕에 탄 얼굴에 농사일로 억센 몸을 갖고 있는 라일라는 전혀 인기있는 매춘부가 될 수 없었다. 그는 그냥 그곳에서 나와 터미널에서 앉아 있는데 한 여성이 함께 타고 가지 않겠냐고, 혼자 운전해 가기엔 너무 멀리 간다고 해서 그냥 떠났고, 밤새 달려 도착한 주유소에서 내려 또다른 운전자를 만나 한 번 더 이번엔 그리 멀리 가지 않은 곳에서 내려 걸었다. 걷고 또 걷다가 그저 흘깃 본 곳에 버려진 오두막 한 채가 눈에 띄어 그곳에 자리 잡았다. 늦봄. 초가을까지는 머물 수 있을 듯. 조금 떨어진 곳에 강이 흘러 몸을 씻을 수 있고, 주변에 농가도 있고 마을도 있어 일을 해주고 돈을 받든지 음식을 얻을 수도 있을 것. 이 마을 이름이 바로 “길리아드.”

  여기까지 읽고 잠깐 정지. 책꽂이를 뒤져 이이의 전작 <길리아드>를 꺼내 들었다. 주인공 존 에임스 목사. 일흔일곱 살의 에임스 목사는 겨우 일곱 살 먹은 유일한 혈육에게 쓰는 편지. 오래 전에 아내가 딸을 낳다가 죽고 조금 후에 딸도 죽어 혼자 외롭게 살던 늙은 목사 앞에 도착한 젊은 여성. 그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아들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 같아 글로 남기는 아버지. 에임스의 아버지 존 에임스 목사. 할아버지 존 에임스 할아버지. 어려서 죽은 둘째 형 존 에임스. 목사의 가장 친한 친구 보턴. <라일라>에서는 ‘바우턴’으로 표기하는. 그래서 앞에 이 책을 읽기 전에 <길리아드>를 먼저 읽어 보시라 권했던 것. <길리아드>에서 등장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아내가 바로 라일라다. 

  라일라는 오두막에 터를 잡고 농가 일을 해주기도 하고 자비로운 그레이엄 부인의 바느질, 다림질을 해주기도 하고, 목사 사택의 정원을 가꾸기도 하며 적은 돈을 모아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늦어도 겨울이 오기 전 떠날 수 있게 버스비를 모으고 있었다. 자기 정원을 솜씨 좋게 관리하면서 한쪽에다 감자와 콩을 심기도 하는 라일라에게 호감이 가는 목사. 그는 당연히 애정도 있겠지만, 늙은 목사에게 애정이란 단어가 어색하면, 끌림이 있었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성직자의 돌봄에 이끌려 한밤중에 라일라의 오두막 근처까지 가보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야외생활에 익숙한 라일라는 오두막 근처에도 오지 않았건만 목사가 근방에 왔다가 조금 머물다 간 것까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날이 흘러가고, 다시 오두막 근방을 찾은 목사. 이때 라일라는 강에서 큼직한 생선 한 마리 낚았고, 들고 오다가 미끄러뜨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는 도중에, 단 번에 생각도 하지 않았던 말이 라일라의 입에서 불쑥 쏟아져 나오고 만다.

  “나와 결혼해야 해요.”


  인연이 되려면 된다. 그리하여 당시엔 결혼 적령기를 넘은 여성과 일흔 고개를 앞에 둔 늙은 목사는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아내는 그러나 언젠가는 길리아드를 떠나야 한다는 강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남편은 어느 날 젊은 남자가 현관을 두드린 다음 즉각 라일라와 함께 집을 나서는 광경을 떠올리지 않기가 쉽지 않다. 두 명은 서로 다른 인생사를 겪으며 세상은 언제나 위험한 얇은 유리 위에, 살짝 언 얼음을 딛고 산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이들이 겪은 상처와 아픔과 아린 기억. 이것을 치유하는 곳, 거기가 길리아드였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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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4-03-15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으면 재미없을 거 같은데 작가를 매우 상찬하시어서 매우 궁금합니다. 브라우티건 책 하나 주문하는 김에 길라아드도 주문해 보겠습니다!

Falstaff 2024-03-15 15:57   좋아요 0 | URL
옙. 재미 말고 하여간 분위기가 죽이는 작가더라고요.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소피의 일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딩링 지음, 김미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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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링. 1904년에 태어나 84년에 간 중국작가. 나는 적어도 한 편 이상 딩링을 읽은 줄 알았다. 굉장히 입에 익은 이름인데 그것 참, 뒤져보니 처음이네. 누구하고 헷갈렸을까? 얼핏 누군가가 떠오르는데 이름이 가물가물하네. 생몰연대를 보면 참 불쌍한 세대다. 청말(淸末), 군벌, 국민당/공산당, 중일전쟁 다 겪고 드디어 붉은 군대에 의한 해방 중국을 만났지만 기다리고 있던 건 대약진운동과 이어지는 문화혁명. 골로 간 세대. 딩링은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인텔리겐치아 답게 1930년에 좌익작가협회에 가입하고 날카로운 필봉을 과시하면서 스탈린문학상 2등상을 타기도 했지만 3년 후인 1955년(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 시절에) 반당집단으로 비판을 받고 1958년엔 당적을 박탈당한 후 저 멀고 먼 흑룡강성 베이다황으로 쫓겨나 무려 20년간 노동개조를 겪는다. 하여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니까? 왜 민주 공산주의는 없는 건지. 공산주의는 극소수에 의한 종신(또는 축출될 때까지 한정적) 독재를 해야 하는 건지. 그러면서 모든 예술행위를 말살시키는 건지.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셔? 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자체가 제일 큰 문제이며 암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150년 전쯤 태어났으면 무정부주의자가 됐을 거 같기도 혀, 글치?


  <소피의 일기>는 1928년작. 딩링은 이 작품으로 본격적인 필명을 날렸다고 한다. 작품은 12월 24일, 소피의 사상에 입각해 이야기하자면 종교는 분명히 아편이니까 딩링한테는 전혀 의미가 없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해 다음해 3월 28일 새벽 세 시에 쓴 것까지. 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20대 초반의 베이징 청년들. 주로 경대京大, 서울에 있는 대학, 즉 베이징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들이며 연인 한 커플, 소피를 사랑하는 남자 둘. 그리고 친구 몇 명이다.

  일기를 쓰는 ‘나’ 소피는 폐병을 앓고 있다. 당시 폐결핵은 대단히 중한 질환인데 베이징의 황사를 견딜 수 있었을까? 뭐 작품 속이니까. 하여간 웨이디는 소피보다 네 살이 많지만 소피를 ‘누나’라고 곧잘 부른다. 어린 누나를 사랑하고 있다. 소피는 웨이디를 사랑할까? 거기까지는 아니고 가벼운 접촉도 할 마음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사랑은 분명히 아니다. 그냥 친한 동생 또는 오빠? 좋아, 그 정도야 뭐. 친구들 가운데 커플이 있다. 위팡과 윈린. 둘은 진짜 연인이다. 하지만 1928년. 아무리 당시의 선진국이자 문화국이라할지언정 이들은 사회의 양식에 따라 깊은 페팅조차 삼가한다. 하물며 혼전임신의 가능성이 있는 섹스야 말할 것도 없고. 소피는 이 커플을 보면서 비웃는다. 좋으면 하는 거지 뭘 또.

  이 그룹에 혜성같이 등장하는 조각같이 잘 생기고 키도 큰 남자 링지스凌吉士. 이름이 웃기다. 우리말로 발음하면 ‘능길사’. 싱가포르에 사는 화교. 베이징에 유학해 대학을 다닐 정도면 싱가포르에서 방귀 깨나 뀌는 집안이 틀림없다. 원래 결핵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인병이라고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도 해서 일종의 선망이 되기도 했다. 푸치니의 위대한 오페라 <라 보엠>과 베르디의 불멸의 작품 <라 트라비아타>를 떠올려 보시라. 이 능길사, 랑지스도 소피를 점점 사랑하게 된다. 소피 역시 웨이디 만큼 랑지스를 그냥 친구로 여기지 않아 저 뒤에 가면 부비부비 키스도 하는데 딱 그것으로 끝, 더는 진행시키지 않는다. 알고보니 잘 생긴 외모에 헌칠한 체격으로 베이징 골목마다 연인을 하나씩 숨겨두고 있다나? 확인한 바 없지만 풍문이 그렇단다.

  이게 다다. 친구들의 연애와 ‘나’ 소피의 연애, 그리고 병.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고, 베이징에서 벗어나 교외로 이사할 생각을 하고. 연애도 안 되고, 이사해봤자 병도 쉽게 낫지 않을 거 같은 1920년대 중국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젊은이들의 혼돈.


  도서관에서 발견하지 않았으면 안 읽었을 거 같다. 널럴하게 편집한 단편소설이라 본문만 98쪽에 2017년 정가가 14,500원. 1920년대엔 센세이셔널 했겠지만 지금 읽으면 뭐 별로 공감하고 말고가 없는 그냥 그런 청춘들의 고뇌, 괴멸. 당시에 쓴 작품 몇 개를 합해서 좀 두껍게 한 권을 냈으면 좋았을 듯. 그러나 그건 출판사 마음이니까, 너네 마음대로 하셔요. 책 한 권 읽는데 두 시간도 안 걸리면 문제 있는 거 아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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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14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딩링, ㅋㅋㅋ 창비에서 나온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 사두고 아직 안 읽은 거 같아요....읽은 줄 알았는데 안 읽었나 봅니다. 뭔가 배경이 답답해서 읽다가 덮었던 듯;;;; 그건 그래도 작품 수도 좀 더 있고 만원인데.....-_-;

Falstaff 2024-03-14 21:09   좋아요 0 | URL
저는 어이없게도 정말 형편없는 소설 <달팽이가 사랑할 때>의 딩모를 연상했다는 거 아닙니까. -_-;; 딩모 보다는 천 배쯤 낫습니다만.

stella.K 2024-03-14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값이 꼴값인뎁쇼? ㅎㅎ
딩링 저도 들어본 것 같은데. 제목도 그렇구요. 아, 소피의 선택과도 헷갈리겠어요. ㅋ

Falstaff 2024-03-14 21:10   좋아요 2 | URL
지만지가 자주 이런 짓을 합니다. 단편집에서 딸랑 한 두 작품 빼서 단행본으로, 그것도 비싸게 팔아먹는 거요. 아휴.... 옙. 소피의 선택도 헷갈리게 만든 거 가운데 하납니다.
근데 웃겨요, 표지 보면 ˝소피˝를 한자어로 ˝사비 여사˝라고.... ㅋㅋㅋㅋ

stella.K 2024-03-14 21:14   좋아요 1 | URL
아, 이제 보니 정말 그러네요. 웃겨요. ㅋㅋ

coolcat329 2024-03-14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총 네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내가 안개마을...>을 읽었는데 앞의 두 작품은 공산당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마지막 작품은 또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한 주인공이 나와서 작가 딩링이 격변의 시대에 얼마나 작가로서 힘들었겠는지 알겠더라구요.

Falstaff 2024-03-14 21:12   좋아요 0 | URL
20세기 초중반에 출생한 중국 지식인 계급은 정말 험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근데 말하고 보니까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유럽인들도 마찬가지이긴 하군요. 하여간 20세기란.... 윽. 우리나라도 뭐 비슷하네요.
 
성 도밍고 섬의 약혼 서문문고 17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지음, 박종서 옮김 / 서문당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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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시절을 잘못 만나 하필이면 괴테와 실러의 전성기 때 작품활동을 하는 바람에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거나 공연하지도 못한 불운한 (극)작가 클라이스트. 군인의 아들로 자신도 근위대 연대에 들어갔다가 잠시 제대해 수학과 물리 공부를 했으나 뭔 병이 있었든지 요양을 위하여 산천초목 경계 좋은 뷔르츠부르크에 갔다가 산세 수려함에 반해 오래 억눌렀던 창작의 불꽃을 피운 작가. 그러면 뭐 하나. 아리따운 약혼녀, 장군의 딸인 미네 아가씨한테 파혼도 당하고 나폴레옹은 조국 땅을 초토화시켜, 군인 가계의 형제 가운데 한 명인 클라이스트는 몸과 마음이 번다했던 19세기 초엽. 이때 한 모임에서 재색을 겸비했지만 병이 깊어 늘 우울한 유부녀 헨리에테를 알게 되고 1911년 포츠담에서 헨리에테와 함께 모습을 감춘 클라이스트는 호숫가에서 이미 숨이 넘어간 연인의 시신 옆에서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김으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니 당년 34세. 그는 몰랐지. 불과 1년만 기다리면 1812년, 프랑스 군은 러시아에서 수십만 명이 굶어 죽고 얼어 죽는 큰 패배를 당해 14년에는 부오나파르테가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야 할 예정인 건. 그래도 백년이 더 지나 20세기 최고의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란츠 카프카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라고 선언해주니 지하에서라도 조금의 기쁨을 누리기를.

  대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라고 하면 창비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미하엘 콜하스>를 연상할 듯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클라이스트는 극작가로 더 유명한 것 같다. 책방을 뒤져보면 희곡 작품이 소설보다 단연 많다. 하지만 당대의 독일어 권 지역에선 거의 신격화 수준이었던 괴테한테 찌그러져 별로 공연도 해보지 못했다 하니 거 참. <깨진 항아리> 같은 건 꽤 괜찮은 데 말이지. 내가 읽은 클라이스트는 전부 다 유럽, 독일 지역을 무대로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도 이번에 알았지만, “성 도밍고 섬”이 어딘가 하면, 서인도 제도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는 섬이다. “산토도밍고”는 아시다시피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이다. 그러나 작품의 무대는 도미니카보다 아이티 쪽.


  모두 세 편의 중단편을 실은 작품집이다. 이 중에서 표제작품 <성 도밍고 섬의 약혼>에 대해서.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산토도밍고 섬의 한 시절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섬을 차지한 프랑스의 큰 고민 하나가 점령한 이후에 원주민들을 노예 이하, 짐승 수준의 노동을 강요하고 동시에 픽션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폭력과 학대와 학살을 서슴지 않아, 사실상 아이티 뿐만 아니라 서인도제도의 원주민은 멸종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가동시키려 하는데 농장일을 할 일손이 있어야지. 그리하여 당시 서인도제도를 점령한 영국, 프랑스, 스페인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대규모로 노예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 버릇 개 주지 못한 유럽 백인들은 과거 원주민한테 했던 정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폭력과 학대와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과 노동, 그리고 성폭력을 저질러 흑인들의 불만이 꼭대기까지 쳐 올라왔다. 고통이 극단까지 치달으면 무는 법이다. 세상의 모든 민란과 마찬가지 경우로 서인도제도의 거의 모든 섬에서도 흑인에 의한 폭동이 자주 발생했다. 이들이 프랑스인, 영국인, 스페인인을 가릴 수 있지 못하여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표식인, 흰 피부를 가진 종족이 보이면 가차없이 죽여 없앴다. 마리즈 콩데의 소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를 비롯해 숱한 소설 속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19세기 초, 흑인들이 백인을 학살한 산토도밍고 섬의 프랑스 영토 포르토프랭스의 기욤 폰 비누브 씨 농장. 이곳에 콩고 호앙고라는 이름의 늙은 흑인이 살았는데 아프리카 황금해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 노예선을 타고 왔다. 평소 성격이 착하고 정직한데다가 주인과 함께 쿠바 섬으로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가 불어 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주인 비누브 씨의 목숨을 건져주었다. 이 일에 감격한 주인은 당장 호앙고에게 자유를 부여했으며 집안과 농장 일체의 관리를 맡겼다. 그는 여전히 성실하고 정직해 셈이 흐트러지지 않아 더욱 호의를 품은 주인은 방대한 농토의 총 관리자로 임명하고 전처의 먼 친척뻘인 혼혈녀 바베칸을 아내로 맡게 하였다.

  호앙고가 60세가 되자 적지 않은 퇴직금을 주어 은퇴를 시키고 비누브 씨가 죽은 후에 유산의 일부로 연금도 배당하게 해주었으니 세상에 이런 주종이 없었다. 그러나 황금해변 출신의 강건한 전사의 피는 속일 수 없어서, 식민지 내 프랑스 국민회의의 경솔한 결정에 반대하는 흑인들의 복수가 농장마다 요원의 불길처럼 휘몰아치자 모든 호의와 배려에도 불구하고 비누비는 콩고 호앙고의 총구를 피할 수 없었다. 비누브 씨의 머리통은 호앙고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이 처음으로 닿은 곳이었다. 비누브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백인들과 피신했는데 호앙고는 기어이 그 농장까지 쫓아가 불을 지르고 건물을 파괴했으며 백인들의 씨를 말려버렸다. 이제는 흑인들이 몇 명씩 단위를 이루어 백인 여행자를 습격하고, 멀리 까지 가서 집 안에 틀어박혀 숨을 죽이고 있는 백인들도 습격해 죽이는 일이 늘 발생했다. 호앙고는 백인 격멸을 위하여 아내를 닮아 피부색이 연한 열다섯 살 먹은 딸 토니까지 이 일에 끌어들였다. 구 비누브 저택이 길가에 있어서 여행하는 백인들을 콩고 호앙고의 무리가 도착할 때까지 안심시키고 방비를 느슨하게 만드는 역할이었다. 이를 위해 친엄마 바베칸은 딸 토니에게, 직접적인 교접을 제외하고 백인이 시도하는 모든 애무를 허용하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1803년 경을 무대로 한 1811년 작품이다. 흑인들에 관한 인종 의식을 지금 수준으로 기대하면 곤란할 듯하다.

  콩고 호앙고가 약탈, 학살, 강도 업무차 출장을 간 시기의 한밤. 이 집의 현관을 두드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엄마 바베칸이 나가보니 백인 남자다. 백인은 흑인 남자들이 집에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계를 멈추지 않는다. 바베칸과 토니는 그를 집으로 끌어들여 주민등록 조사를 먼저 한다. 그랬더니 프랑스 군인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스위스인 장교. 구스타프 폰 데어리트. 포르도 항에서 내려 포르토프랭스를 향해 가는 중이란다. 흑인 군대를 거느린 데살린 장군이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하기 전에 가야 하는 명령을 받았지만 어느 곳에서 흑인들의 공격을 받을 지 몰라 밤에만 이동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단다. 근데 혼자가 아니다. 점잖은 나이 많은 아저씨와 부인, 그리고 아이들 다섯, 하인 몇 명과 하녀. 다 합해 열 두어 명. 지금 1마일 떨어진 갈매기 늪 근방의 동굴에 숨어 있다고. 이들 모두 몹시 배가 고픈 상태여서 음식물을 급히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고 주문을 한다. 바베칸 노파는 마치 동정심 많은 순박한 시골 농부처럼 위장해서 구스타프를 옛 주인인 비누브 씨의 방에 들여 푹 쉬게 해주고 음식물도 아이에게 들려 갈매기 늪으로 보낸다. 그러면서 시간을 끌 속셈. 늦어도 내일 밤까지는 콩고 호앙고 일당이 도착할 테니까 그때가 되면 일은 끝난다.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구스타프에게 발 씻을 따뜻한 물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 열다섯 살 먹은 딸 토니. 얘가 문제다. 흑인들도 피부색이 진하고 옅은 차이에 따라 우월이 있는 모양이다. 토니 자신이 보기에 자기는 백인의 후예라서 지금 집에 있는 흑인들하고는 당연히 차별을 둘 만큼 다른 신분으로 착각하고 있다. 구스타프가 봐도, 원래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마치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다는 것처럼, 전혀 희지 않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토니가 뇌쇄적으로 어여뻐 보여 순간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한다. 토니 생각에도 조금 후, 길어도 내일 밤이 되면 또 수 십 명의 피가 튈 터이니 감자기 에스트로젠이 분비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들은, 했다. 하고 나니까, 이게 원래 그런 건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또는 사랑한다고 오해하는 감정이 폭발적으로 넘쳐난다. 가뜩이나 피곤했던 구스타프는 곧바로 깊은 잠에 빠지고, 내일 밤이 아니라 오늘 밤에 난데없이 콩고 호앙고가 들이 닥친다. 토니는 깜짝 놀라 구스타프의 방에 가보니까 노끈이 벽에 걸려 있어서 그걸 이용해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는 구스타프의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 내버려두었으면 싸우려 들고, 그러면 여지없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이렇게 포로로 잡힌 구스타프. 그러나 늙은 삼촌과 아이들이 도착하는데, 자세하게 보면 “늙은” 삼촌의 아이들이라 해도 스무살에 육박하는 장정들이다. 폰 데어트리 집안이니 귀족 떨거지 자제들이었을 테고, 그러면 총칼 다루는데 아주 익숙할 것.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눈치를 탁 채고 오히려 콩고 호앙고 일당을 제압해버린다. 그리고 토니와 함께 구스타프가 묶여있는 이층 방에 올라가니 눈이 뒤집힌 구스타프는 묶이 손이 풀리자마자 피스톨을 들고 토니의 가슴을 쏴버린다.

  1811년의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그는 영낙없는 낭만주의자였다. 이 시기 소설 속 주인공들은 총을 심장에 맞아도 할 말은 다 하고 죽는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안 알려줌.


  이 작품 외에 1807년작 <칠레의 지진>과 1808년 작 <O 후작부인>이 실려 있다. 다 수준 이상의 작품이다. 다만 번역한 박종서 전 고대교수가 우리나라에 독일문학을 번역 소개한 공로가 지대한 양반이긴 하지만 생몰이 1922~1983이다. 그러니 번역하고 적어도 40년 이상이 지났다. 다른 번역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젊은 분의 경우 읽다가 조금씩 어색한 곳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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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3-12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창비세계문학에 클라이스트의 중단편 소설집 <미하엘 콜하스>가 있는데 이 책에 세 작품이 다 있어요. 한 번 찾아보시길요.

<미하엘 콜하스> 볼 때마다 그냥 지나쳤는데 어떤 분위기인데 알겠네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03-12 16:39   좋아요 1 | URL
앗 그렇습니까? 저도 창비 <미하엘...> 읽었는데 전혀... ㅋㅋㅋㅋ 오래 전이라서 그랬나요? -_-‘‘

coolcat329 2024-03-12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미하엘 콜하스>를 가지고 있네요! 🤣🤣

잠자냥 2024-03-12 09:28   좋아요 2 | URL
창비 <미하엘 콜하스> 엄청(?) 재미나요. 번역이 뭔가 박력 넘쳐서 전 더 재미나게 읽었는데, 번역 문장 아무튼 아직도 칭찬하고 싶습니다. ㅎㅎ (진짜 진짜 아니 번역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신기& 감탄!)

coolcat329 2024-03-12 11:00   좋아요 1 | URL
오! 재미에 번역도 좋다니 사두길 잘했네요. 다음 읽을 책으로 찜!

Falstaff 2024-03-12 16:40   좋아요 0 | URL
음... 한 번 다시 읽어볼까.... 하다가, 안 그럴 거 같네요. 흑흑...

stella.K 2024-03-12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도 번역이지만 서문당 출판사가 아직도 있군요. 역자가 독일어 번역 1세대였을테니 그 공로는 인정할만 하지만 역시 혁신이 필요하긴 하겠네요. 저도 기회되면 창비걸로 읽어보겠슴다.

Falstaff 2024-03-12 16:42   좋아요 1 | URL
옙. 아직 연명은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에휴... 생로병사가 다 그렇지요.

그레이스 2024-03-13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하엘 콜하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까지 생각나는 연쇄반응!

총을 맞고도 할 말 다하고 죽는...낭만주의! 그렇네요!^^

Falstaff 2024-03-13 16:24   좋아요 1 | URL
앗, 애너벨 리까지 연결이 되는군요!
라 트라비아타에선 20분 후에 죽어갈 비올레타가 극강의 고음으로 악을 악을 쓰기도 하는 걸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