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꿈의 바다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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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반 만에 다시 플래너건을 읽는다. 6년 전에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인상깊게 읽어 골랐던 책이 <굴드의 물고기 책>이었는데,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굴드”만 나오면 사족을 못 쓰는 경향이 있고 나도 별로 예외가 아니어서 제목만 보고 덥석 물었다가 별로 재미를 못 봤다. <굴드의…>는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플래너건이 태어난 테즈메이니아 섬을 무대로 뭔가 환경 변화에 관해 경종을 울리는 내용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확인하기 위해 다시 뒤져볼 정성까지는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소설에 생각 외로 이 테즈메이니아를 무대로 한 작품이 많다. 누가 쓴 어떤 작품인지는 딱 떠오르지 않지만 주로 영국에서 추방당해 도착한 범죄자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다시 범죄를 또 저질러 테즈메이니아의 가혹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뭐 이렇게 저렇게 출소를 하게 되고 나온 김에 어디서 정착을 하고 이런 스토리 라인이 머리 속에서 뱅뱅 돈다.


  이번에 읽은 <들끓는 꿈의 바다>는 2019년에 실제로 있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초대형 산불 시기를 뇌수종으로 생을 마감하는 단계에 처한 프랜시스 여사의 죽음의 침상과 비유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하여 대초원지역의 많은 부분을 산림으로 만들어버렸고, 새롭게 생긴 숲이 자연이 공급할 수 있는 수분보다 더 많은 양의 습기를 소비하여 극도로 건조한 환경이 되어 버렸다. 그러지 않아도 건조한 오스트레일리아 평야에서는 주기적으로 산불이 발생했지만, 나무를 비롯한 생명체도 자연현상에 의한 자연발화를 오히려 자연의 종이 건강해지는 쪽으로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리하여 주기적인 산불이 다양성을 확대시키는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 극도로 건조해진 환경에서 크게 번져버린 산불에는 속수무책, 많은 생명 종이 멸실을 향해 달음박질을 하기 시작한다. 하다못해 인간종도 해변까지 습격해온 산불을 견디지 못하고 소방대의 경종 신호가 울리면 즉시 바닷물로 들어가야 했을 정도였다고. 시드니와 멜버른의 상공엔 산불의 불씨와 연기와 미세먼지가 하루 종일 햇빛을 가렸다. 이런 현상은 테즈메이니아의 남동쪽에 위치한 주도 호바트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리처드 플래너건은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과 온난화, 이상기후로 인간세가 촉진되는 현상을 안타까워한다. 수많은 어류와 유대류와 조류가 멸종되었거나 멸종 직전까지 와 있는 것을 통탄한다.


  그리고 프랜시스. 애칭 프랜시. 프랜시는 호리와의 사이에서 맏딸 애나, 아래로 아들만 셋, 토미, 로니, 터조를 두었다. 아이들 다 괜찮게 성장했다. 이 가운데 둘째 아들 로니가 어려서부터 가장 재능이 있고 여러 방면으로 재능을 증명하며 부모는 물론이고 누나, 형제, 동네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남자 형제들은 버니에 있는 마리스트 파더스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총명하고 재능 있는 로니는 집에 돌아와 차고 대들보에 줄을 걸고 목을 매달았다. 로니의 자살 이전에 장남 토미는 후에 로니의 장례미사를 집전할 학교 신부의 사랑을 견디지 못해 열두 살 생일이 지나자 말을 더듬는 증세를 갖고 집에 돌아왔다. 나중에 토미가 말하기를 문제의 신부가 토미를 사랑하다가 로니가 학교에 입학을 하자 로니한테 사랑의 화살을 돌렸단다. 어쨌거나 이제 조금 다급하거나 긴장을 하면 여지없이 말을 더듬는 토미는 자식들 가운데 유일하게 테즈메이니아 섬에 남아 중증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고, 깊은 병에 든 어머니를 부축해 진료를 받으러 다니고, 입원해서는 병실을 지키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비록 실패한 예술가의 딱지를 달았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한 봉급쟁이였던 내가 읽기에는 안분자족 할 줄 아는, 가장 덜 불행한 삶을 영위하는 인물이다. 건축가로 성공해 해외 학회에서 강의 부탁이 쇄도하는 누나 애나, 기업체의 실력 있는 냉혈 협상가 터조한테는 만만한 동생/형이자, 화풀이 상대이자, 아무 심부름이나 시킬 수 있는 하인 대우를 받을지언정.

  그런데 이 가정의 구성원에게는 뇌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아버지 호리 씨는 비교적 젊은 시절에 치매가 와서 결국 중증 알츠하이머로 생을 마감한다. 재능이 많은 둘째 아들 로니는 틀림없이 우울증이 깊어져 자살을 했을 터이고, 맏아들 토미는 충격에 의하여 말을 더듬는다. 토미의 아들 데이비는 조현병이 있어 주기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막내 터조는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급한 성격과 고집으로 결정적인 안하무인이 되어 버렸다. 맏누이 애나는 시드니에 살면서 처음엔 한 달, 이어서 두 주일, 나중엔 거의 매주 비행기를 타고 테즈메이니어의 주도 호바트의 로열 호바트 병원에 엄마를 보러 오지만, 문학작품이니까 가능하겠으나 처음엔 손가락이 없어지고, 무릎 관절이 없어지고, 눈이 하나 없어지고, 귀도 없어지는 메타포 적 변용을 겪는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여전히 능력있는 엄마 집에서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20대 후반의 아들 거스. 이 아이가 엄마의 돈을 훔치고, 보석도 훔치고, 비싼 가구도 내다 팔고, 심지어 고가의 맥 랩탑도 내다 팔아 마약을 하면서 점차 엄마와 같은 현상인 몸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거스는 도가 심해서 차츰차츰 사라지더니 결국 마우스를 쥔 채 화면에 뜬 가상의 물체에 총격을 가하는 엄지를 포함해 세 손가락만 남는다. “나한테는 애니의 날과 애니가 없는 날 밖에 없는데, 그 중에 애니의 날만 진짜 같아.” 라는 문자를 날리는 동성 연인 메그도 나중에 손이 없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세상에 아무도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신경쓰지도 않는다. 딱 한 명만 빼고. 노랑배도라지앵무의 멸종을 예방하기 위한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테즈메이니아 대학 동물학과 교수이며 선대 가족 거의 전부가 수용소에서 가스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 유대인 리사 샨. 그러나 그건 애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리사 샨은 애나를 “솔직히 좀 이상한 여자였다”고 기억할 뿐이니까.


  남매의 어머니 프랜시가 쓰러졌다. 새벽 두 시에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 검사를 해보았다. 치매에다가 파킨슨 의심. 날이 밝은 후에 다시 정밀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치매도 아니고 파킨슨도 아니었다. 뇌수종. 뇌에 물이 고인 현상이다. 관을 삽입해 물을 빼는 시술을 한 후 정상을 회복해 3년이 흘렀다. 이번엔 서서히 진행하는 낮은 등급의 암이 찾아왔다. 비호자킨 림프종. 비교적 순한 암이라 항암치료를 받았고, 이후에 놀라운 효과를 보였지만 프랜시 자신은 스스로를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노인 시체”라고 자조했다. 이후 5년이 더 흐르고 어머니는 86세가 됐다. 그동안 애나는 건축가로 명성을 떨치며 국내에서 여러 개의 건축상을, 해외에서도 세계적인 상을 받는 명사가 됐고 아름다운 여성과 새로운 커플을 이루었으며, 브리즈번에서 사는 막내 역시 세계를 누비며 각종 비즈니스 계약을 성공적이고 냉혹하게 체결하는 해결사로 이름을 드높였다.

  이제 어머니 프랜시에게 찾아온 것은 뇌출혈. 입원한 어머니는 조금 호조를 보이다 그만 낙상해 갈비뼈 두개가 부러졌으며, 의사들은 가족과 상담을 요청했다. 이제 괜찮은 줄 알았던 애나와 터조는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비행기를 탔고, 이들에게 의사들은 프랜시의 존엄한 죽음을 권했다. 세상에. 그렇게 정정하던 어머니한테 존엄한 죽음이라니. 대안은 없나요? 시술/수술 그리고 노인에게는 권하지 않는 신장투석 등등. 성공하지 못한 화가 토미의 의견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애나와 터조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서 무조건 치료를 주장하고, 관철시킨다. 온갖 연줄을 동원해서. 그리하여 어머니 프랜시는 길고, 길고, 너무도 긴 고통의 시간을 맞게 되고, 자식들은……. 세상이 그런 것이지. 갈 때는 보내야지. 다 산 것들의 욕심일 뿐.

  어머니 프랜시의 죽음을 향하는 고통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생명체 멸종 상황을 작가 리차드 플래너건은 연관시키려 애쓴다. 이미 멸종해버린 오스트레일리아 유대 늑대, 유대 너구리, 이제 몇 개체 남지 않은 노랑배도라지앵무새 등등.


  다 좋다. 테즈메이니아가 고향인 작가 입장에서 그곳의 동물들이 멸종하고, 멸종해가는 현상을 고발하는 건 어쩌면 의무일 수도 있다. 멸종의 직접적 원인인 인간들의 행위에 대한 고발도, 여전히 환경파괴를 동반하는 개발을 옹호하는 세계의 정치가들을 규탄하는 것도. 그런데 내내 못마땅했던 것은, 유대 늑대와 유대 너구리 같은 종의 멸종이 그렇게 비탄스럽고, 노랑배도라지앵무의 개체수 감소에 조바심을 치는 반면, 테즈메이니아 선주민을 멸종시킨 리처드 플래너건의 동족들에 대한 규탄은 왜 없는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너희 잉글랜드에서 온 백인종들은 테즈메이니아에서 선주민 완전 멸종의 위업을 이루었잖은가 말이지. 어차피 호모 사피엔스, 십만 년 정도 살았으면 제법 살았어. 다른 종이 나와 대체할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 인간세가 인간도 멸종시키겠다는데 뭐가 그리 중헌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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