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이시구로의 장편 두 편을 읽고 학을 뗀 나는 세번째로 단편집을 골랐다. 미리 말하건대, 이 책이 나의 마지막 이시구로가 될 것이다. 단정하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일단 지금은 이렇게 마음먹었다. 이이의 글이 아름답지 않아서? 아니다. 오래전에 달을 떠나 지구에 도착한 키 크고 늙은 토끼 열아홉 마리가 스웨덴 한림원의 지하에 모여 추첨을 통해 수상자를 결정한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생산품을 가지고 내가 문학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따따부따 할 계제가 아니다. 단편소설 다섯 개가 실린 책에서 더 읽을까, 이쯤에서 확 내던져버릴까 신중하게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 두 개나 있었다면 다른 건 모르겠고 이 가즈오 이시구로와 나는 극적으로 합이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왜 이시구로는 작품을 이런 식으로 쓸까?
특히 두번째 실린 단편 <비가 오나 해가 뜨나>는 이시구로가 마음먹고 희극, 즉 코미디를 쓰기로 작정을 한 거 같은데, 코미디 속에서 사람 사는 모습, 물론 속물들의 속물성을 드러내 보이기는 한다. 책 속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애호가 수준의 남녀가 나오는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영어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레이먼드가 런던에 와서 대학동창 에밀리와 찰리 커플의 집에 며칠간 묵기로 했다가 바로 첫날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렸다. 에밀리와 찰리 사이에 혼외 연애에 관한 심각한 오해가 생겨 불화가 벌어진 상황에 레이먼드가 도착했고, 찰리는 업무 때문에 또 날을 맞춰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떠나버렸다. 에밀리와 레이먼드가 2박 3일을 보내야 한다. 에밀리 역시 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가버려 혼자가 된 레이먼드. 심심한 시간을 죽이다가 부엌에서 에밀리의 수첩을 발견하고, 그 속에 틀림없이 레이먼드 자신을 빗대 “징징이 왕자”라고 한 것 같아, 순식간에 열을 받는 바람에 ‘징징이 왕자’가 쓰여진 페이지를 손으로 구겨 버린다.
이후에 아차 싶은 레이먼드. 남의 수첩, 혹시 짧은 일기일지도 모를 수첩을 왜 열어봤냐고, 성질 까칠한 에밀리한테 귀퉁백이 한 방 얻어 터질까봐 전전긍긍하던 차에 공항에서 건 찰리의 전화를 받고 이웃집 부부의 큰 개 핸드릭스가 쳐들어와 한 바탕 난리를 죽였다고 변명을 하란다. 그리하여 레이먼드는 일부러 조명등을 자빠뜨리고, 화분을 쓰러뜨렸으며, 소파를 칼로 째버리라는 찰리의 의견은 좀 과격하다 싶어 무시하고, 주방에서 설탕 그릇을 엎어 놓고, 찰리의 레시피대로 집안 구석구석 개 냄새를 풍기기 위해 냄비에 정향과 냄새나는 장화를 끓이는 동안 개의 시선으로 어디가 합당하지 않은지 엎어져 탐색을 하다가 집안을 좀 더 개의 방식으로 어지럽히는 와중에 예정 귀가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한 에밀리한테 들켜버리는 순간까지. 나는 이시구로가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허구를 만들기 위해 종이를 낭비하고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의 수첩을 열어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에티켓을 장착한 남자가 그걸 은닉하기 위해 집주인이자 친구의 얼토당토 하지 않은 처방을 그대로 따른다고? 그래서 레이먼드 일생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션을 하고 있는 것을 에밀리한테 들켜버린다고? 이거 연출한 티가 너무 나지 않나? 혹시 모르겠다. 누군가 영화로 만들자고 하면 또 한 번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책에서 얼마 안 되는 분량이기는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음악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장면을 이렇게 허비하다니. 하여간 이시구로는 나하고 맞지 않는다. 이 단편에서 레이먼드의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삭제하면 할 이야기가 없었을까? 아니다. 있다.
대학에 같이 다닐 때 에밀리와 레이먼드가 음량이 작은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고 엘라 핏제럴드와 사라 본을 비교하며 같은 곡을 누가 부른 것이 더 매력적인지 속닥거리던 추억을 회상해도 충분하지 않았겠나 싶다. 다른 네 편엔 기타, 기타, 색소폰, 첼로 연주자들의 세계가 펼쳐지니 여기선 비전공 딜레탕트 또는 상당한 수준의 아마추어 감상자가 엮는 음악에 관한 날줄을 보태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이 책에는 제목 "녹턴"과는 달리 음악에 관한 진지하고 침잠하며 사색적인 모색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이렇게 하라고 강요할 권리가 없다. 창작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몫이니까. 대신 나는 (하여튼 노벨 문학상을 탔으니까) 거장이라고 일컫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읽으며, 그걸 손모가지라고 달고 다녀서 이딴 단편을 쓰고 자빠졌느냐고 푸짐하게 욕을 퍼부을 수는 있다. 스캣 시대의 두 여왕, 엘라 핏제럴드는 이난영이요, 사라 본은 최진희라고, 아무 책임없이 비교할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제작 <녹턴>도 마찬가지였다. 린디 가드너, 첫번째로 실린 <크루너>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이혼여행을 온 토니 가드너와 드디어 이혼을 감행한 아내 린디가 등장한다. 린디는 성형수술을 해 얼굴에 온통 붕대를 두른 상태에서 같은 모양인 재즈 색소포니스트 스티브와 친교를 맺고, 내일 음악관련 시상식에서 올해의 재즈 연주상을 재능이라고는 뭣도 없는 제이크 마벨이 받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천재적인 색소포니스트 스티브의 연주 CD를 듣고는 엉뚱한 일을 벌인다. 호텔의 행사장에 몰래 잠입해 올해의 재즈 연주상 수상자에게 주는 트로피를 훔쳐 스티브에게 전해준 것. 스티브는 경악을 하고 당연히 트로피를 원래 있던 장소에 다시 가져다 놓기로 해 한밤중에 둘이 다시 행사장으로 향하는데, 이런 엉망진창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이걸 코미디라고, 희극이라고 하면, 좋다, 희극이라고 하자, 그러나 아무리 희극이라도 달에서 온 늙은 토끼 열아홉 마리의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면 좀 그럴 듯해야 소설이든지 장난이든지 하는 것이지, 이건 뭐 습작 다섯 편 쓰고 간신히 “운 좋게” 등단해 이제 문단 말석에 쭈그려 앉은 신삥이나 끼적거릴 정도를 가지고 말이야. <녹턴> 역시 영화로 만들어 돈맛을 본 경험이 있는 작가의 의도를,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가 이시구로를 지극히 좋지 않게 생각하는 건 맞다. 그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에 의문을 갖고 나름대로 정당한 사유로 의심하게 됐으며 급기야 혐오를 하는 것뿐이지 (비록 뭣도 모르기는 하지만) 개연성이나 작품성 같은 것에 관한 비난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도 단편소설은 제외하기로 한다.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의 기분으로는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또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으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