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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낯선 작가다. 이이의 바이오그래피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인도 남부 벵갈루루(구 방갈로르)에서 기차로 하루 쯤 걸리는 첸나이(구 마드라스)로 이주해온 마드하바 아디가 박사와 우샤 아디가 여사 사이에서 1974년 10월에 태어난 이 범띠 사내는, 태생부터 범상치 않아 수리야나라야나 아디가 할아버지가 인도에서 열두 번째 서열을 자랑하는 카르나타카 은행의 전임 행장이었고, 외증조 할아버지 라마 라오 씨는 유명한 의료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의회에 진출한 이력을 자랑했으니, 비록 이들 가문이 북인도의 델리나 뭄바이 같은 대도시 출신이 아니었다 해도 상당한 카스트였음은 말로 할 필요도 없을 거 같다. 태어나기는 첸나이였지만 줄곧 벵갈루루, 책 <화이트 타이거> 후반에 주인공 발람이 정착해 성공하는 도시에서, 카나라 고등학교와 벵갈루루 성 알로이시우스 대학을 다녔다. 대학 재학중에 가족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로 이민을 간 아디가는 제임스 루즈 농업고등학교와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University)의 콜럼비아 대학(College) 영문과에서 사이먼 샤마를 사사하고, 1997년에 차석 졸업한다. 하여튼 검색하면 뭐든지 다 나온다. 차석. 자랑이지, 그럼 자랑할 만하지. 이외에도 지도교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허미언 리Hermione Lee 선생을 좇아 15세기 중엽에 초석을 박은 옥스퍼드의 막달렌 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화려한 학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이력은 <파이낸셜 타임스>지에서 재무 저널리스트로 시작한다. 이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제 다른 곳도 아니고 <타임스>에서 스카우트 해 남아시아 특파원으로 3년 동안 일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쓴 소설이 바로 <화이트 타이거>다. 2008년에 <화이트 타이거>로 덜컥, 부커 상을 부여잡아 전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르게 되며,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그는 2010년 현재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 주의 주도인 뭄바이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될 시간이 지났음을 감안하시기 바란다.
제목이 좀 낡아서 그렇지 재미있는 책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발람 할와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민계급 카스트 출신으로 원래는 과자를 만드는 일에 종사해야 하는 할와이 가문이지만, ‘나’ 발람의 아버지 비크람 할와이는 고향이며 깡촌인 락스만가르에서 인력거꾼으로 평생을 일하다가 백 쪽을 얼마 남기지 않고 그만 결핵에 걸려 가난한 생을 마감한다.
원래 신생독립국이 다 그렇지만,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일에는 상당히 많은 부작용이 뒤따랐다. 1947년에 인도, 한 나라로 독립한 나라가 결국 1971년에 인도와 동·서 파키스탄, 이렇게 세 나라로 분리한 것부터 시작해 가뜩이나 큰 영토와 (엄격하고 쪼잔한 계급의식에 박혀있는)인구를 가진 나라가 오랜 진통을 겪었으니 이 와중에 신생국 공통의 현상이었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했을지, 부작용을 일부 겪어본 내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와중에 비참한 수준으로 살고 있던 ‘나’ 발람은 사촌누이의 결혼 때문에 빚을 지고 그걸 갚기 위해 학교를 때려치우고 찻집 꼬마로 일할 수밖에 없는, 슬픈 과거라고 하기엔 당시에 너무 일반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학교 다닐 때 무료급식비와 교복과 무료 학습교재를 몽땅 중간에서 팔아 잡수신 담임선생 크리쉬나 씨가, 부모가 너무 무식해 이름도 지어주지 못하고 그냥 ‘아이’라는 뜻의 ‘무나’라고 불렸던 ‘나’에게 붙여준 이름이 발람이었던 거였으며, 왜 이름을 붙여주었느냐 하면, 수십 년 동안 자기가 가르친 학생 중에 거의 유일하게 힌두어를 읽고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쉬나 선생의 좋은 시절이 한 방에 훅 갈 뻔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파란 사파리 양복을 차려입고 단장까지 제대로 짚은 신사 장학사가 암행어사처럼 학교를 시찰했던 거였다. 장학사 양반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학력을 점검해보니 이게 개판이라, 아주 쉬운 문장의 뜻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였다. 그래 크리쉬나 선생이 ‘나’ 발람을 대표선수로 장학사 앞에 내세워 답을 하게 했는데, 원래 공부머리가 있던 ‘나’가 장학사 앞에서 청산유수로 떠벌떠벌 읊어내니까, 장학사가 ‘나’더러 화이트 타이거라고 칭해주었다.
화이트 타이거. 한자말로 백호. 우리말로 하면 흰 범. 인도에서는 어떤 정글에 가더라도 가장 희귀한 짐승으로 한 세대에 딱 한 마리만 나타나는 영물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하여튼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저 시골 촌 동네 락스만가르에서 인력거나 끌다가 한 세상 말아먹은 선량한 비크람의 맏아들로 태어나, 짧은 초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발람’이 되었으며 덤으로 ‘화이트 타이거’란 별호를 얻었지만 결국 최하의 빈민 소년으로 떨어진 머리 좋은 꼬마가, 나중에 기술 및 아웃소싱의 세계적 중심지라고 주장하는 인도의 방가로르(현 지명 벵갈루루)에서 자신을 기업가인 동시에 생각하는 인간인 “화이트 타이거”라고 소개하면서,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살며 다음 주에 인도를 방문할 예정인 원지아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길고 긴 여덟 통의 편지가 바로 이 책이다.
원지아바오가 인도를 방문하는 목적. 인도는 중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열악한 사회간접자본과 환경 인프라를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중국엔 별로 없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여 이를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서란다. 이를 들은 발람이, 비록 출신은 미천하였으나 도살되어 식탁에 오르기만 기다리는 닭장 속에서 튀어나온 수탉 신세에서 이젠 위대한 인도의 화이트 타이거의 자격으로, 인도 중부 최고의 공업도시에서 세계 최고 아웃소싱 업계의 대표로 있는 자신 말고 누가 있어 감히 기업가 정신을, 인도와 더불어 앞으로 세계를 선도해나갈 강대국 중국의 총리에게 이야기할 수 있으랴, 하여 ‘나’ 발람 할와이는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경험한 모든 것을 편지로 썼다.
곤충 수준으로 살다가, 제복 입고 목에 황금색 호루라기를 걸고 다니는 버스 차장 비제이를 본보기 삼아 고초 끝에 운전을 배운다. 락스만가르에는 지주가 네 명 살았는데 가장 탐욕스러운 물소와 황새, 멧돼지, 까마귀로 불리는 가문이었다. 발람은 별짓을 다해 이 중에서 황새네 두 번째 자가용 운전사로 취직을 하고, 때마침 미국 유학을 끝내고 인도에 정착한 황새의 장남 아쇽 선생과 사모님 핑키 마담을 주인님으로 모시게 된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첫 번째 운전수가 회교도임을 밝혀내 잘라버리고 자신이 아쇽 선생을 따라 대 인도의 수도 델리로 가서 살게 되니, 월급이 무려 더블, 두 배가 되는 거였다.
그런데 델리에서 정작 발람이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극도로 부패한 인도에서 살아가는 방법과,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계급, 천민 카스트에서 탈출해(마치 시장의 닭장에서 튀어나와 도망하는 것처럼), 신분 상승을 이루는 방법이었다. 신분상승을 위하여 발람이 선택한 것은, 작품을 시작하자마자 화자 ‘나’ 발람 할와이가 직접 말하고 있으니 스포일러가 아님이 확실하다, 자신의 주인님 아쇽 선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70만 루피를 빼앗아 남쪽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였다. 그리고 화이트 타이거, 발람 할와이는 성공했던 거였다. 당당하게 중국의 총리 원지아바오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 네 명 있단다. 이 가운데 아크발이라는 작자가 있어서 그가 쓴 시 두 구절이 중요한 힌트로 제시된다. 옮겨보겠다.
“그들은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 노예로 남아있다.”
“나는 여러 해를 두고 열쇠를 찾고 있었도다. / 그러나 문을 줄곧 열려 있었던 것을.”
이 시를 통해 발람의 개안, 신분에서의 탈출과 친절한 악당인 주인님 아쇽 선생 살해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구절, 열쇠를 찾고 있었지만 정작 문은 줄곧 열려 있었다는 건 어디서 읽어본 느낌이 들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