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365. 미셸 트루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마왕>
둘 다 의미심장한 책. <방드르디...>는 금요일, 방드르디vendredi라는 이름의 흑인 청년이 주인공이다. 그럼 조연은? 당연히 로빈슨 크루소. 근데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고립되는 장소가 대서양인 반면에, 크루소 씨와 방드르디의 장소는 태평양인 것이 차이가 난다. 그것만? 당연히 아니지. 이 책이 흥미로워 나는 읽기를 마치자마자 예전 소년용만 읽은 <로빈슨 크루소>를 정식으로 읽어보기 위해 펭귄 시리즈를 사서 읽었을 정도다. <마왕>은 거대한 몸집을 지닌 성기 왜소증 환자가 저 동프로이센 벌판에 구름 같은 말을 타고서 아이들을 채집하는 이야기에 갖은 우화적 요소를 다 가져다 붙인 명작.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라면 당연히 <마왕>을 고르겠지만 <방드르리...>역시 빼어난 작품이다.
116, 117. 조셉 콘래드, <로드 짐>
콘래드, 하면 누구나 <어둠의 핵심>을 꼽겠지만, 나는 그리 흥미롭게 집중해서 읽지 못했다. 반면에 <로드 짐>과 대산세계문학에서 출간한 <비밀요원>은 재미있게 읽었고, 특히 <로드 짐>이 더 그랬다. 콘래드가 폴란드 태생이지만 영국 작가로 분류하듯이, 전형적인 영국 스타일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낡은 기선이 조난당할 때, 짐이라는 이름의 간부선원이 마치 세월호 선장과 간부 나부랭이 선원들처럼 승객의 안위 따위야 나 몰라라 한 채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다. 승객들? 천만 다행으로 침몰할 줄 알았다가 간신히 구조된다. 하지만 이 일로 자격증을 박탈당한 짐은 말레이 반도 정도로 짐작할 수 있는 오지에 정착하게 되는데, 원주민이 보기에 피부가 흰 것이 마치 하느님 바로 아래 수준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짐이 로드, 즉 우리의 주님load, 짐이 되는 것. 짐의 고뇌는 명예라는 것이 무엇인가로 귀착되고, 그래서 영국스럽게 풀린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재미로 읽어도 충분히 좋다.
128, 129. 헨릭 시엔키에비츠, <쿠오바디스>
이토록 재미있는 줄 모르고, 숱하게 본 크리스마스 특별 방영, KBS 명화극장을 통해 본 동명의 더빙 영화로만 만족해왔다. 내용이야 물론 영화와 다를 이유가 없지만 그깟 세 시간의 러닝타임에 불과한 필름으로 어찌 이 매력적인 콘텐츠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일독을 권한다. 나도 비기독교인, 그걸 넘어 유물론자이지만, 종교와 관계없이 대단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영화에선 로버트 테일러가 분한 주인공 비니키우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책으로 읽을 때는 약간 핀트를 바꾸어 주인공의 외삼촌이자 역사상 최초의 소설가였다는 페트로니우스의 촌철살인만 따라가도 본전을 뽑는다. 그러나 역시 종교소설이니만큼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아두는 것도 매우 좋은 일임은 분명하다.
139, 140, 141, 240. 존 바스, <연초 도매상>, <키메라>
분명히 포스트 모더니스트인데 어떻게 책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바스는 이제 소설로 쓸 소재는 다 떨어졌다고 선언하고, 이제까지 만들어진 것들을 여러 형태로 변주한 작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번역해 나온 책이 이 두 종밖에 없어서 아쉽다. 게다가 두 책이 진짜 재미있으니 말이지. 예를 들어 <키메라>에서는 셰헤라자데 왕비에 의한 천일야화도 사정없이 비틀어버린다. 당시 샤리알 왕이 왕비와 결혼하고 하룻밤이 지나면 죽여 버린다는 건 다 아시겠지만, 동생 두냐자데와 함께 왕의 침소에 든 셰헤라자데는 타임머신의 도움으로 얻은 20세기 <천일야화>를 이용해 샤리엘 왕의 광기를 말끔하게 제거해버리는데, 어떻게인지는 차마 말할 수가 없네. <연초 도매상>도 무수한 블랙 코미디 속에서 정신없이 길을 잃는 동안 순식간에 책 세 권을 다 읽어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142, 143. 조지 엘리엇,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지금 시중에 민음사가 조지 엘리엇의 <미들 마치>를 번역하고 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미들 마치>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작품이라고 영국의 영문학자들이 판단을 했다는 걸 먼저 얘기해야겠다. 그러니 만일 민음사가 정말로 출간을 한다면, 두 번 돌아보지 말고, 한 다섯 권 가량으로 나올 거 같은데 그래도 사서 읽어보시라. 나는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하나만 가지고 조지 엘리엇의 팬이 됐다. 그래 <다니엘 데론다>와 <미들 마치>까지 다 읽어 치웠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단단한 여류작가. 사람과 선함을 믿지 않으면 이런 작품을 쓰기 어려울 듯하다. 이이가 만든 물방앗간의 사람들은 강건하고 굳세고 근면하며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는 여성.
160. 엔도 슈사쿠, <깊은 강>
이이는 일본인으로 천주교 신자다. 그래 <바다와 독약>, <바보>등 그의 책이 보이는 대로 읽어보았다. 작품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지만 다른 기독교인들이 쓴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종교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 전적으로 기독교 주제를 다루는 작가 가운데 내가 유일하게 줄독서chain-reading하는 사람이 엔도 슈사쿠. 그의 마지막 작품이 <깊은 강>이다. 갠지스 강. 힌두교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강이며, 죄를 사해주는 강이며, 죽은 다음에 화장을 해 뼛가루가 흘러야 하는 강이다. 이곳에 여행을 떠난 일본인들 이야기. 이이가 언제나 그렇듯이 삶과 죽음과, 행복과 유로지비스러움 같은 달관이랄까, 포용이랄까, 화해랄까, 심지어 기독교도답지 않게 윤회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사유의 한 자락을 던져준다. 앞으로도 천착해볼 만한 작가다.
171, 208, 276, 333.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 <사바나의 개미 언덕>
반식민문학의 기수인 치누아 아체베, 하면 소위 아프리카 삼부작이라 일컫는 <모든 것...>, <더 이상...>, <신의...>를 이야기한다. 삼부작은 아프리카인들이 사는 땅에 처음 백인이 도착하고, 교회를 짓고, 군대가 들어오고, 지배하고, 자식들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그들이 식민모국을 위해 일을 하며 옛 아프리카를 우습게 알다가 결국 식민지 아프리카인들의 종언을 고하는 순서가 된다. 그러다 <사바나의 개미 언덕>에 오면 드디어 해방이 온다. 식민지를 침탈하던 유럽인이 물러가기는 했지만 경제, 문화적으로 여전히 식민 상태와 다름이 없고, 느닷없이 등장한 독재정권에 아프리카는 분열하고 탄압받으면서 반half 식민지 형태로 전환한다. 이런 모습을 나이지리아에서 직접 목격하고, 비아프라 공화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해본 아체베가 정확하게 집어낸 작품.
174, 175, 181, 182.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
<분노의 포도>에서는 공산주의자 또는 강성 사회주의자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반면, <에덴의 동쪽>은 또 엉뚱하게도 기독교적 원죄에 입각한 사람살이의 어려움을 그렸다. 나는 <분노의 포도>가 조금, 아주 조금 더 좋지만 <에덴의 동쪽> 역시 수작 중에 하나라는데 다른 뜻이 없다. 때는 대공황 시기. 가뭄이 들어 오클라호마를 떠나야 하는 농부 가족이 몇날 며칠을 걸려 도착한 캘리포니아엔 숱하게 모인 유민들로 인해 생각하지도 못한 저임금의 늪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발적인 조합운동이 시작되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반공주의 나라 미국. 그러니 그 어려움이란 말로 하지 못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에 대한 애정, 즉 진정한 인류애에 입각한 가족의 지도자, 어머니가 만들어내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의 누선을 매캐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178, 235, 236. 아이리스 머독, <그물을 헤치고>, <바다여, 바다여>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아이리스 머독의 매력은, 전혀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농담, 해악, 익살, 심지어 허언까지 모두 써가며 쉬운 작품을 쓴다는 것. <그물...>에선 네 명의 남녀가 서로가 서로를 향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만 하는 짝사랑들의 난장판을 그렸으며, <바다여...>엔 이미 다 늙어 은퇴한 작자가 저 스코틀랜드 북쪽 끝 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옛 사랑, 지금은 코밑에 검은 수염이 돋은 노파가 된 여인을 좇아, 바람과 추위의 고장까지 이주해버린 이야기다. 두 편 다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책으로 분량이 많아도 그냥 후딱 읽어치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질투는 사랑과 함께 시작하지만, 사랑과 함께 죽어버리진 않는다는 것. 아는 사람은 단박에 이해하실 수 있을 터. 어뗘? 끌리시지?
186, 187. 조지프 헬러, <캐치-22>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주둔하던 미국 전투비행단원 이야기. 말은 이렇게 하지만 미국의 애국시민답지 않게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반전주의 작품이다. 그리고 전편에 걸쳐 노골적으로 펼쳐진 요절복통의 만찬. 병사들은 자신의 애인 이름을 붙인 전투기를 몰고 나가 이국의 하늘 위에서 아무 원수진 적 없는 엉뚱한 병사가 쏜 대공포에 맞아 홀랑 타 죽어버리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 어째 말이 좀 그렇지? 죽어버리기가 죽기보다 싫다니. 그렇다. 죽음의 공포야말로 진정한 반전의식의 씨앗이다. 그리하여 가장 호소력 있는 반전소설이 될 수 있는 법. 용감무쌍하다고 알려진 미국 공군 조종사들의 유일한 영웅은 비행기를 몰고 출격한 김에 독일 땅을 넘어서 스웨덴까지 가 직접 망명요청을 한 탈영병. 전쟁을 피하기 위해선 탈영이라도 하란 말씀. 정말 재미있고 요절복통의 도가니지만, 군대 이야기이니만큼 마초 분위기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게 흠.
190, 191, 207, 251. 랠프 앨리슨, 클로리아 네일러, 앨리스 워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쓴 작품들. <보이지 않는 인간>,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 이 세 작품, 네 권이 총 374권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자리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 민음사 전집에 이들의 다양한 작품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 이건 에밀 졸라가 쓴 루공 마카르 총서가 하나도 없다는 것과 더불어 매우 아쉬운 일이다. <보이지 않는...>은 브루클린의 좌파단체 안에서조차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흑인, <브루스터플레이스...>는 뉴욕 슬럼가의 한 빌딩에 모여 사는 흑인 여자들의 결핍된 삶 속 흑인 여자들의 페미니즘과 동성애, <그레인지....>는 누적된 흑인들의 곤고한 삶에 관한 고찰이다. 특히 글로리아 네일러의 <브루스터플레이스...>는 강력 추천.
195, 196.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벨기에 출신의 작가가 미국에서 완성한 프랑스어 작품. 자기 글에 깐깐하기로 이름 난, 그래서 학생들에겐 악명 높은 서울대 명예교수 곽광수 번역이다. 소위 옛 로마제국의 현명한 다섯 황제 가운데 세 번째 인물로, 주로 남쪽지방 원정과 미소년과의 사랑을 즐겼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의 세손, 오현제 가운데 마지막이 될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내린 가르침을 적은 책. 이렇게 얘기한다고 실화라고 믿지 마시라. 엄연하게 픽션. 유르스나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30년의 준비기간을 두었다고 한다. 물론 그동안 전부를 이 책의 준비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만일 당신이 사랑하는 자식들 혹은 손녀, 손자들에게 들려줄 것을 말을 조리 있게 할 자신이 없어 머뭇거린다면, 대신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시라. 삶과 죽음과 사랑과 세상에 관한 진지한 사유를 온전히 전해줄 수 있을 터이니. 이 책이 마음에 들면 당연히 <알렉시>도 찾아 읽으실 터. 물론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긴 하지만.
197. 198. 윌리엄 스타이런, <소피의 선택>
명배우 메릴 스트립이 타이틀 롤을 했던 영화로 유명하지만, 원작도 영화만큼 재미있다. 당연히 더욱 상세한 심리묘사와 상황설명이 덧붙어져 있어 훨씬 더 이해하기 쉽기도 하고. 노예를 두기도 했던 남부 출신 작가지망생 스팅고가 뉴욕의 한 집에 세 들어 만나고, 친해지게 되는 네이선과 소피 커플. 네이선은 유대인, 소피는 폴란드에서 유대인 말살의 이론적 배경을 만들어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교수의 딸. 배경부터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 커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광로 같이 뜨거운 사랑을 하고, 그것보다 더 뜨겁게 질투를 하기도 하면서 서로를 망가뜨리는 동시에 의지한다. 도대체 이들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을까. 이 책이야말로 읽어봐야 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책 가운데 백미는 “어떤 선택.” 나는 도저히 이것이 무슨 선택인지 가르쳐드릴 수 없다.
*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