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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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소설 읽기의 지독한 오독의 한 예일 수 있음을 참고 하시라


우다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의 리뷰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우다영 소설의 느낌

2 소설의 다층성은 독일까 약일까

3 개별 작품의 느낌적 리뷰 및 총평


1

우다영의 소설을 읽어나가며 막연히 든 생각은 아마 이 소설집이 처음이자 마지막 우다영 읽기가 아니겠나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소설이 재미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극히 취향의 문제다


소설에도 속도란 게 있다 치자

나는 느릿느릿 한발 한발 걸으며 보이는 주변 풍경이나 그 풍경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 같은것들, 그리고 사건과 인물들에 관한 촘촘한 소설을 원하는 독자란 걸 우다영의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 말은 곧 우다영 식의 소설을 읽고 따라가기에 내 보폭은 너무 느려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다영 소설의 속도를 말하자면 못해도 ktx 급은 되는 것 같다 고속열차를 타고 보는 창밖의 풍경 같다고 해두자 인물들은 느닷없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죽는다 단편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단편 소설 안에서 이렇게 인물들이 곧잘 죽어나가는 경우도 흔치 않은 것 같고 심지어 한 인물의 한 인생이 곧잘 담겨지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이 자리할 시간은 없고 오로지 다음과 다음을 위한 전진과 전진밖에 없어서 숨 가쁘게 읽었다는 느낌이다 거기에는 소설의 시점과 문장의 스타일도 한 몫 했다

 

이런 스타일이 단점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스피디한 스타일을 좋아할 수 있다

호불호의 영역이기 때문에 굳이 불호에 가까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을 필요는 없다

소설은 넘쳐나고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스타일 뿐만 아니라 자기 복제까지는 아니지만 반복되어 보이는 설명조와 인물들은 앞서 읽은 작품의 문장 또는 정황 아닌가 싶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고속열차 안에서 사진을 찍어보면 풍경이 수평방향으로 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와 같은 경우라고 본다 그런 사진은 어딜 찍어도 비슷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어쨌든 이런 특징들도 작가만의 개성일 것이고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내 취향과 맞지 않다보니 이렇게 궁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책 뿐만 아니라 세상에 인간이 10명 있다면 5명은 무관심 하고 3명은 싫어하며 2명은 그나마 호감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듯 내 입맛에 맞는 작가가 흔치 않은 게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독서만은 아니겠지만 독서 또한 어쩌면 싫은 것들을 가려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2

여기서 다층적이란 건 이를테면 세 번째 수록작 해변 미로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아라, 아성, 아해 세 자매가 등장하는 해변 미로는 크게 여섯 개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에서 아성은 어떤 사고로 인해 사망한다.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아성에게는 아홉 달 먼저 태어난 언니가 있었지만 그녀가 열 살이 되던 해 여름에 부모와 함께 교통사고로 죽었다. _92~93p


방금전 아성이 죽었다고 읽은 독자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식으로 이 작품은 하나의 시간이 일직선상으로 흐르지도 않고 이야기의 기본적 대전제를 뒤집어 버린다


작가는 이 소설의 제목 해변 미로처럼 독자를 미로에 넣어버리는데 만족하지 않고 이 소설집 전체를 미로처럼 만들어 놓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의 단편 속 어떤 장치가 또다른 단편 속에 등장한다거나 연결고리처럼 보이게 해놓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추천사나 해설을 쓴 양반들이 미로 운운하며 소설을 그럴듯하게 평가했지만 단순 일반독자 입장에서 느끼는 건 그냥 소설이 뒤죽박죽 이다

한 권의 소설집을 묶기 위해 작가가 사전에 큰 그림을 그려두고 각 단편들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계획이야 어찌되었건 독자 입장에서 그 큰그림의 의도까지 간파하기 위해 재미도 없는 소설 해설을 눈여겨 읽어봐야 하나 싶어 짜증이 슬슬 일어날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해설이 신통방통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런 느낌은 마지막으로 실려 있는 작품 메조와 근사를 읽는데도 느껴졌다

눈 밝고 총명한 독자는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가치를 알아채 즐거운 마음으로 읽겠지만 아둔하고 게으른 나는 도무지 소설을 읽는 재미도 즐거움도 만끽할 수 없었다


이런 류의 소설 읽기에 훈련이 안되었기 때문이라면 그런 훈련은 정중히 사절하겠다



3


메조와 근사

이 작품만이 아니라 우다영 소설을 읽으며 나는 지금까지 너무 순하고 친절한 소설만 읽어왔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일은 지나갔고 나는 괜찮아졌다.

 

그 일에 대해 구체적 언급은 없다 후반부에 가서야 갑자기 그 일을 표현하면서 또 누군가는 가차없이 자살로 표현 된다

자살이든 사고사든 어떤 죽음이 됐든 이렇게 죽음을 쉽게 가져다 쓰는 작가를 계속 읽어볼 마음은 없다 이게 무슨 장르 소설도 아니고

그리고 메조와 근사, 제목으로 쓰인 단어는 누구나 아는 것이기 때문에 주석 하나도 없는 것인가? 읽어보면 다 알아먹을 거라서 그렇다는 것인가

메조는 mezzo고 근사는 근삿값 근사치의 근사인가 아니면 근사하다의 근사일까

 

이러쿵저러쿵 처음 읽는 작가에 대해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리뷰랍시고 했다

책이란 게 특히나 소설이란게 그렇다 너무나 주관적인 취향을 많이 타는 것이기 때문에 감상은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느낀 감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을 누군가는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런 리뷰나 영상을 보고 설득되고 싶기도 하다

궁금하다면 일단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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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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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이란 하찮은 이야기, 보잘 것 없는 이야기다

정영수 작가의 소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설이란 무엇이냐같은 이야길 짧게 해보자면


일단 이 小說이라는 한자를 봐서 알겠지만 소설이란 말 자체가

우리말이 아닌 중국에서 기원한 말이고 근대 이후 우리가 생각하고 읽고 있는

서양의 novel을 소설이라는 말로 번역한 것은 일본의 소설가다

고대 중국에서의 소설이란 하잘 것 없는 이야기, 민간의 사소한 사건이나 풍속, 뜬소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영수 작가는 지금까지 두 권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그 두 권을 모두 읽어본 느낌이 딱 그렇다는 말이다

정영수 작가의 소설에서는 진짜 하찮은 이야기, 보잘 것 없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잘 쓰여졌다는 거다

바로 그런 점이 정영수 작가를 관심 작가로 정해놓고

그의 소설들을 찾아 읽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거기에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화자의 말하기 방식이 주는

작가만의 스타일도 중요한 요소라는건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기준으로 잘 쓴 소설이란 아주 하찮고 별 볼일 없는 걸

그럴듯하게 뭔가가 숨겨져 있구나 싶게 쓴 소설이다

그 반대로 뭔가 있는 것처럼 포장은 해놓았지만 정작 작품을 다 읽고나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모를 소설은 못 쓴 소설이 되는 것이다





물론 정영수 작가의 소설이 지금까지 모두 잘 쓴 소설인지는

작정하고 살펴봐야겠지만 소설을 읽는 일반적 독자의 기준으로는 정영수만의 색깔이 잘 녹아 있는 잘 쓴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게 결국 취향에 맞기 때문인 것이겠지만

서론은 이쯤 하고 최근 출간된 두 번째 소설집 이야기를 해보자


표제작 내일의 연인들을 포함해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딱 한 편을 꼽으라고 한다면

무사하고 안녕한 현대에서의 삶이다


소설을 시작하는 첫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불운한 일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_105p


단편 치고도 분량이 일곱 장밖에 안되는 짧은 이야기인데 갑자기 일어난 어떤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게 되는 주인공의 변화와 이 소설을 통해 드러내려는 의미를 잘 쓰지 않았나 한다 물론 앞쪽에 실린 세 편도 좋았지만 짧은 분량 안에 집약적으로 소설을 형상화 했다는 면에서 젊은 사람들 표현을 빌리자면 우와 개 쩐다그런 생각을 할 만큼 만족감이 높은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단편 소설의 매력이 듬뿍 녹아든 작품이 아닐까 하여 내가 편집자나 작가라면 이 작품을 제일 앞쪽에 배치했을 것 같다.

 

정영수 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소설 속의 화자나 주변 인물들이 작가 자신과 지인들이겠구나 짐작하게 하는 것인데 특히나 이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주인공의 성격같은 것들이 정영수 작가 자신과 흡사한 것같아 작품에 대한 흡입력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출연한 북토크 영상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나름대로 유추해본 나만의 짐작에서 나온 결과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단편소설집일 경우 발표 순으로 배치하기도 하지만

수상작이나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 앞쪽에 실리기도 한다

이 소설집을 편집한 담당 편집자와 작가의 말을 빌려보자면 정영수 작가가 원하는 작품의 배치는 조금 달랐지만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최종 배치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봤을 때 앞쪽에 배치된 우리들’, ‘내일의 연인들’, ‘더 인간적인 말이 세 편이 가장 좋은 평을 받은 작품으로 보인다


정영수 작가를 일컬어 연애소설을 잘 쓴다거나 그런 방면에 특화된 작가가 아니냐 한다는데 작가는 그것보다 자신의 소설을 연인생활소설로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연애소설과 연인생활소설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눈치채야 한다


연애소설, 연인소설은 비슷하게 들릴 수 있지만 연인생활소설이라고 하면 이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생활이라고 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거기에는 연인과의 핑크빛 가득한 연애가 아니라 냄새나는 구정물이나 토사물과 같은 우리가 살을 부비며 맡게 되는 너무나 인간적인 냄새들이 진동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남녀가 만나 연애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알콩달콩한 장면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 갈등 양상과 끝나버린 관계에 대한 지리멸렬한 상념과 회한과 그런 것들이다

소설집의 제목인 내일의 연인들이라는 말을 한번 곱씹어 보자


오늘은 연인이고 연인일 수 있지만 내일도 연인이란 보장은 1도 없다

연인들의 헤어짐은 언제나 내일일어나는 일이다


더 인간적인 말에서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한 아내에게 든 감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나는 조금씩 그녀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느꼈다

_81


어제와 오늘까지는 말이 통하는 상대방이었는데 내일로 갈수록 서서히 말이 통하지 않게 되는 일은 너무나 흔한 경우다

단편 내일의 연인들에서 어제의 연인으로 상징되는 주인공 부모의 불화와

오늘의 연인으로 상징되는 선애 누나의 이혼 그리고 내일의 연인이라 볼 수 있는

주인공과 지원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그려지고 있다 살짝 호들갑을 떨어보자면

잘 쓴 소설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 하고 나는 흥분하고 흡족했다

소설을 읽는 맛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해설을 쓴 평론가 신형철은 앞쪽 세 편을 인생독본 삼부작이라고 평가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해설의 내용에는 동감하기가 어려웠다


소설을 다 읽고 소설집 내일의 연인들의 전체를 조망해보면

공통적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 관계의 다양한 변주를 8편의 소설을 통해 어떻게 소설로 구현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읽는 재미일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간단하게 설명해 본다




주인공인 가 있고 나의 과거나 현재의 연인이 있다

그리고 마치 짝을 이루는 듯한 친구나 지인 또는 부모 커플이 있고 주인공인 나는 그 커플들을 거울을 보듯 바라보며 자신을 반추하게 된다

좀 거칠게 큰 틀에서 설명하면 이렇다는 말이다

이 기본적 틀 안에서 변주되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좀 단순하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세상 많은 소설들은 결국 삼각 관계의 불륜소설로 싸잡아 묶을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소설 한 편 한 편은 모두 제 각각의 색깔을 띠고 있다

인간의 시각이 구분할 수 있는 자연의 색깔이 한계가 있듯 비슷해 보이는 소설은 있을지라도 같은 소설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70억 인간이 있다면 70억 개의 인생과 삶이 있는 것과 같다. 어쨌든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8편의 소설을 낱낱이 다 까발려 보는 건 어려운 일이고

이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좀 무책임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사서 보든 빌려 읽든 볼 사람은 뜯어 말려도 본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영상에서는 슬쩍 변죽만 울려도 상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첨언을 하자면 정영수 작가가 장편을 쓴다면 어떻게 쓸까 궁금해할 독자들이 나를 포함 많을 것 같은데 언제가 될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장편을 쓸 것이고 쓰고 있다고 한다


연인들의 적나라한 생활상은 어떨까 현실적 연인들의 소설은 없을까 찾는다면 이 소설집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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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일기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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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서른세 살이 되던 1915년 1월 1일부터 규칙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해, 자살하기 나흘 전인 1941년 3월 28일까지 장장 27년간이나 꼼꼼하게 일기를 적고 있다.

_해설


제임스 조이스의 부고를 듣고 쓴 1941년 1월 15일의 일기에서는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대해 '쪽마다 음란스러웠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 어떤 사람이 일기를 쓸까


가끔 몇 년 전의 오늘 나는 뭐라고 적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때면 한번씩 찾아볼 때가 있다 일기든 메모든 그런걸 써버릇 하는 대개의 사람들은 느낄것이다 과거 일기가 내가 쓴게 맞나 싶은 낯선 느낌을


그리하여 꽤나 오래전 오늘 일기를 찾아보니 나이보다 몇 개 더 많은 팔굽혀펴기나 웟몸일으키기... 뭐 그런 내가 할법도 쓸법도 아닌 걸 써놓았다

전혀 이해불가다


제임스 설터 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늙은 내가 덜 늙었던 나의 생각을 읽는 낯섦은 당연한 것인가 지금 이것도 결국 그런 하나의 일기로 남겠지


언젠가 사뒀던 울프 일기를 꺼내 나이 별 페이지에 표시를 해보았다 딱 오늘 날짜의 일기가 있다면 어떤 일기를 남겼나 궁금했다


42세인 1924년의 일기 가운데 12월 13일을 찾을 수 있었는데 시작과 끝은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전속력으로 "댈러웨이 부인" 전부를 처음부터 다시 타자하고 있다. 이것은 "출항" 때도 비슷했는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지금 쓰고 쓰고 또 쓸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느낌이다.


이것만보면 쓰고 있는한 울프는 절대 자살을 하지 않았을것 같기만한데 인생이란게 한 인간의 내면이란게 그리 단순한것만은 아니니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는 논쟁적이다 일기에 드러난 면모를 우리는 어디까지 작품으로 보고 어디부터 인간의 내면 모습이라고 인정할수 있을까


때론 작품보다 작가의 일기가 더욱 흥미로울 때가 있다 작품보다 한 인간으로써의 작가가 더욱 감동적일때 말이다 삶이 곧 작품인 인간을 만나보고자 하는 갈망을 작품 속 주인공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마음에 기껏 허구뿐인 소설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42세 울프의 12월 겨울 어느 하루는 행복했음을 확인한 오늘의 일기를 찾아볼지 어떨지 모를 언젠가의 나도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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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잴 수 없는 것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11
에밀리 디킨슨 지음, 강은교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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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게 더듬거리는 말로

인간의 가슴은 듣고 있지

허무에 대해-

세계를 새롭게 하는

힘인 허무



언젠가 헌책방에서 책꽂이를 구경하다가 빛바래보였지만 헌책 치고는 괜찮아 보여 빼보았을 때 처음 접했던 시였고 그렇게 알게 된 시인이었다

세계를 새롭게 하는 힘인 허무’’라는 표현이 좋았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어본다면 허무, 죽음, 고독의 이미지를 많이 느낄 것이다

 

많은 예술가 가운데 당대에 주목받지 못하고 사후에 유명해진 경우는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경우도 그렇다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작은 도시 애머 스트에서 태어나, 18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24살 무렵에는 가족들에게 나에게 무슨 큰일이 생기지 않는 한 절대로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만큼 외출을 삼가하고 외부인을 만나지 않으며 집에서 약 1,800여 편의 시를 썼지만 생전에 발표했던 시는 지역 신문에 실린 7편에 불과했고 시집은 출간하지 않았다.




국내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선집이 몇 가지 있지만 주목해볼 시선집은 파시클 출판사에서 펴낸 시선집이 아닐까 한다


출판사가 이름으로 삼은 파시클이란 말은 에밀리 디킨슨은 친한 사람들에게 편지 형태로 시를 보내곤 했는데 40여 편씩 시를 묶어 직접 필사하고 편집하여 파시클이라는 시집을 만들어 두었다고 하는데 거기서 이름을 따온 것 같다


한편 이 파시클 44권이 시인의 사망 후 발견되었고 4년이 지나 첫 시집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어 그후 시선집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대부분 제목이 없다

따라서 편의상 첫문장을 제목으로 붙인 것이므로 감상하는데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난 걸었네.

천천히 조심스럽게

바로 머리맡에는 별

발 밑엔 바다가 있는 것같이.

난 몰랐네 다음 걸음이

내 마지막 걸음이 될는지

어떤 이는 경험이라고 말하지만

도무지 불안한 내 걸음걸이.


 

한편 에밀리 디킨슨에 관한 영화가 2017년에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다


조용한 열정

A Quiet Passion 2015

국내개봉 2017. 11

 

 

영화를 보지 않아 뭐라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시인에 관한 영화를 보면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영화의 한 장면 가운데 출판사 측에서 구두점을 바꾼 것에 대해 항의하는 장면이 나오는걸 볼 수 있는데 에밀리는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하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에밀리의 시를 보면 많은 대시 표를 볼 수 있는데 그 작은 줄표 조차 시인에겐 의미가 있는 것이니 시를 읽을 때 무심코 지나쳤다면 다시 한번 살펴 볼만하다 싶었다

 

그리고 구제불능인 자신에게 신이 준 유일한 선물은 시라고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거의 두문불출하며 어머니를 돌보고 그당시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었다고 하는 자신의 병을 견뎌야했던 에밀리에게 시라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구원과도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인이 생존했던 당대에 대중들로부터 인정받아 세상으로 나와 활동했다면 그게 행복이 되었을까 싶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좀머씨 이야기를 쓴 쥐스킨트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샐린저처럼 자발적 은둔자들도 있으니 그들을 세상으로 불러내는건 폭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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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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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설 왜 이래?

두서 없는 주절거림


좀 어거지일 수 있고 어그로스러울 수도 있는 리뷰

거기에다 결정적으로 소설 내용을 자세하게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도 아니다.


제목을 요즘 소설이라고 했는데 그 요즘이란 것이 어디서부터 인지에 대해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즘이 아닌 시절 그러니까 요즘 이전은 언제를 말하는거냐 할 수 있겠는데

어디까지나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나는 김애란, 황정은, 한유주 같은 작가들의 데뷔와 대략 그들의 두 번째 소설집이 출간되는 그 어디 즈음부터 출간되는 신인 작가들의 소설들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린게 아닐까 싶다 물론 사실관계를 들춰 확인해보면 전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막연하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최근 두 번째 소설집을 낸 정영수 작가처럼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작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든 작가들의 소설만 읽어온 건 아니고 그 사이 발표된 다른 작가들의 소설도 많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 읽지 않은 것도 아니란 점도 말해 둔다


흥미가 시들해진 예를 하나만 말해보자면 이렇다

2016년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가 출간되고 나름 많은 소설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렇다고 하니 나 역시 궁금해 쇼코의 미소를 읽어봤는데 나는 좀 시큰둥했다

잘 쓰여진 작품이고를 떠나 소설을 쓰는 방식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요점이 헷갈린다는 것이다. 해당 소설이 특정 사건과 관련된 걸 다루려는가 하면 그게 아니더라는 것이다. 정작 그것에 대해서는 슬쩍 냄새만 피우거나 흔적만 남길 뿐 주요 이야기는 그것들을 곁가지로 세워두고 그 주변의 이야기만 해서 김 빠지더라 뭐 그런 것이다.

작가의 작법이 그렇다면 할 말은 없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안읽으면 그만인 문제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금희 작가의 복자에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김금희 작가의 작품에 별 관심이 없다 어떤 이유가 있어 한번 읽어보자 하게 되었고 소설을 읽기 전에 작가의 말이나 해설을 먼저 읽는 편이라 평균 이상의 길이로 쓰여진 작가의 말을 우선 읽어 보게 되었다


소설 복자에게뒤편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 일부를 옮겨와 본다


복자에게는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사건과 그 소송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개 과정은 각색 되었거나 허구이며 특히 복자라는 인물은 창작된 인물임을 밝히고 싶다. 그럼에도 그 산재 인정을 위해 무려 팔 년간 싸워온 분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가져와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짚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 사건을 알고 나서야 제주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열의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 작가의 말만 믿고 너무 기대가 컸거나 아니면 그 기대 때문에 오독을 한 것은 아닌가란 생각을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했다.

일단 저 옮겨온 작가의 말만 보면 복자에게란 소설은 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 사건과 그 투쟁과정 그리고 그에 따르는 여성 노동자의 권리가 소설의 주를 이루는 소설이어야 할지 모른다. 물론 그 사건이 모티프라고는 했지만 말이다.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 소설 안에서 앞서 언급한 것들이 얼마나 소설화 되었는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

전체 230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무식하게 무 자르듯 전후반으로 나눠볼 때 전반부는 거의 이영초롱과 복자의 이야기에 머무르고 있다. 의료원 산재 사건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밀도는 부족하다 느낀다.


제주에 대해 써보고 싶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소설적 공간이 제주가 아니라 다른 도서 지방에서 일어난 산재 사건이라면 소설은 어떤 모습이 될까? 꼭 제주여야 하는 필연적 요소는 무엇일까? 솔직히 제주가 가진 역사적 피해와 그 그늘에서 살아오고 제주를 지켜온 제주도민의 삶을 그렸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굳이 제주를 언급할 필요가 있었냐 그 말이다.


소설을 보는 관점에 따라 판단은 하겠지만, 이렇게라도 제주를 언급하고 작가의 말대로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짚어봤다는데 점수를 줄 독자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거기에 대해 강한 부정적 입장이라는 것이고.


복자에게라는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작가가 이 소설을 왜 썼을까 하는 생각만 남는다.

2017년 이탈리아 대표 문학상인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같은 소설을 바란 건 아니다.


어떤 실패도 삶 자체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모든 넘어짐을 보듬는 작가 김금희의 가장 청량한 위로


위 문장은 이 소설의 띠지 카피 문장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작가의 말 일부를 옮겨와 본다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쓰게 된 모티프가 무엇이 되었든 모티프는 그 발화점으로 남겨두고 일단 불 붙이는데 성공했다면 그 불을 더 키워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하는 것이다.

이영초롱의 입장에서 복자라는 어릴적 친구와 함께 지나왔던 과거를 전개하고, 그리고 현재의 복자가 처한 상황의 배경으로 의료원 산재사건이 배경처럼 깔리는데 그 사건으로써의 제주도 배경은 소설의 초점만 흐리는 게 아닌가 싶다.


작가의 말에서 무엇무엇 누구는 허구이며 어디는 가상의 섬이다 라고 했다. 나는 이것 역시

작품에 대해 안개를 둘러친 보호막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은 취재 파일의 나열이 아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라는 걸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알고 있다. 굳이 안해도 될 말을 붙여 놓는 건 내 소설에 대한 일종의 안전 장치일 수 있는데 이 안전 장치 없이 작가는 더 뻔뻔하게 철판을 깔거나 더 확실한 위장을 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쉬운 소설이었다


소설의 모티프는 의료원 산재사고로 시작 되어 결국엔 일상적 실패가 있더라도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는 아니길 바라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나처럼 투덜대는 독자도 있겠고 격려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판단은 각자 하는 것이니 이쯤에서 투덜투덜은 그만하기로 하자.


이런 이야기는 반대 의견을 가진 상대방과 물고 뜯고 씹고, 치고 박는 난상토론을 해야 재미가 있는데 일방적 주장만을 전달한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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