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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小說이란 하찮은 이야기, 보잘 것 없는 이야기다
정영수 작가의 소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설이란 무엇이냐’ 같은 이야길 짧게 해보자면
일단 이 小說이라는 한자를 봐서 알겠지만 소설이란 말 자체가
우리말이 아닌 중국에서 기원한 말이고 근대 이후 우리가 생각하고 읽고 있는
서양의 novel을 소설이라는 말로 번역한 것은 일본의 소설가다
고대 중국에서의 소설이란 하잘 것 없는 이야기, 민간의 사소한 사건이나 풍속, 뜬소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영수 작가는 지금까지 두 권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그 두 권을 모두 읽어본 느낌이 딱 그렇다는 말이다
정영수 작가의 소설에서는 진짜 하찮은 이야기, 보잘 것 없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잘 쓰여졌다는 거다
바로 그런 점이 정영수 작가를 관심 작가로 정해놓고
그의 소설들을 찾아 읽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거기에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화자의 말하기 방식이 주는
작가만의 스타일도 중요한 요소라는건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기준으로 잘 쓴 소설이란 아주 하찮고 별 볼일 없는 걸
그럴듯하게 뭔가가 숨겨져 있구나 싶게 쓴 소설이다
그 반대로 뭔가 있는 것처럼 포장은 해놓았지만 정작 작품을 다 읽고나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모를 소설은 못 쓴 소설이 되는 것이다
물론 정영수 작가의 소설이 지금까지 모두 잘 쓴 소설인지는
작정하고 살펴봐야겠지만 소설을 읽는 일반적 독자의 기준으로는 정영수만의 색깔이 잘 녹아 있는 잘 쓴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게 결국 취향에 맞기 때문인 것이겠지만
서론은 이쯤 하고 최근 출간된 두 번째 소설집 이야기를 해보자
표제작 ‘내일의 연인들’을 포함해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딱 한 편을 꼽으라고 한다면
‘무사하고 안녕한 현대에서의 삶’이다
소설을 시작하는 첫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불운한 일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_105p
단편 치고도 분량이 일곱 장밖에 안되는 짧은 이야기인데 갑자기 일어난 어떤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게 되는 주인공의 변화와 이 소설을 통해 드러내려는 의미를 잘 쓰지 않았나 한다 물론 앞쪽에 실린 세 편도 좋았지만 짧은 분량 안에 집약적으로 소설을 형상화 했다는 면에서 젊은 사람들 표현을 빌리자면 “우와 개 쩐다”그런 생각을 할 만큼 만족감이 높은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단편 소설의 매력이 듬뿍 녹아든 작품이 아닐까 하여 내가 편집자나 작가라면 이 작품을 제일 앞쪽에 배치했을 것 같다.
정영수 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소설 속의 화자나 주변 인물들이 작가 자신과 지인들이겠구나 짐작하게 하는 것인데 특히나 이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주인공의 성격같은 것들이 정영수 작가 자신과 흡사한 것같아 작품에 대한 흡입력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출연한 북토크 영상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나름대로 유추해본 나만의 짐작에서 나온 결과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단편소설집일 경우 발표 순으로 배치하기도 하지만
수상작이나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 앞쪽에 실리기도 한다
이 소설집을 편집한 담당 편집자와 작가의 말을 빌려보자면 정영수 작가가 원하는 작품의 배치는 조금 달랐지만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최종 배치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봤을 때 앞쪽에 배치된 ‘우리들’, ‘내일의 연인들’, ‘더 인간적인 말’ 이 세 편이 가장 좋은 평을 받은 작품으로 보인다
정영수 작가를 일컬어 연애소설을 잘 쓴다거나 그런 방면에 특화된 작가가 아니냐 한다는데 작가는 그것보다 자신의 소설을 ‘연인생활소설’로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연애소설과 연인생활소설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눈치채야 한다
연애소설, 연인소설은 비슷하게 들릴 수 있지만 연인‘생활’소설이라고 하면 이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생활’이라고 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거기에는 연인과의 핑크빛 가득한 연애가 아니라 냄새나는 구정물이나 토사물과 같은 우리가 살을 부비며 맡게 되는 너무나 인간적인 냄새들이 진동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남녀가 만나 연애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알콩달콩한 장면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 갈등 양상과 끝나버린 관계에 대한 지리멸렬한 상념과 회한과 그런 것들이다
소설집의 제목인 “내일의 연인들” 이라는 말을 한번 곱씹어 보자
오늘은 연인이고 연인일 수 있지만 내일도 연인이란 보장은 1도 없다
연인들의 헤어짐은 언제나 ‘내일’ 일어나는 일이다
‘더 인간적인 말’에서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한 아내에게 든 감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나는 조금씩 그녀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느꼈다”
_81
어제와 오늘까지는 말이 통하는 상대방이었는데 내일로 갈수록 서서히 말이 통하지 않게 되는 일은 너무나 흔한 경우다
단편 ‘내일의 연인들’에서 어제의 연인으로 상징되는 주인공 부모의 불화와
오늘의 연인으로 상징되는 선애 누나의 이혼 그리고 내일의 연인이라 볼 수 있는
주인공과 지원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그려지고 있다 살짝 호들갑을 떨어보자면
잘 쓴 소설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 하고 나는 흥분하고 흡족했다
소설을 읽는 맛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해설을 쓴 평론가 신형철은 앞쪽 세 편을 ‘인생독본 삼부작’이라고 평가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해설의 내용에는 동감하기가 어려웠다
소설을 다 읽고 소설집 “내일의 연인들”의 전체를 조망해보면
공통적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 관계의 다양한 변주를 8편의 소설을 통해 어떻게 소설로 구현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읽는 재미일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간단하게 설명해 본다
주인공인 ‘나’가 있고 나의 과거나 현재의 연인이 있다
그리고 마치 짝을 이루는 듯한 친구나 지인 또는 부모 커플이 있고 주인공인 나는 그 커플들을 거울을 보듯 바라보며 자신을 반추하게 된다
좀 거칠게 큰 틀에서 설명하면 이렇다는 말이다
이 기본적 틀 안에서 변주되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좀 단순하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세상 많은 소설들은 결국 삼각 관계의 불륜소설로 싸잡아 묶을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소설 한 편 한 편은 모두 제 각각의 색깔을 띠고 있다
인간의 시각이 구분할 수 있는 자연의 색깔이 한계가 있듯 비슷해 보이는 소설은 있을지라도 같은 소설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70억 인간이 있다면 70억 개의 인생과 삶이 있는 것과 같다. 어쨌든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8편의 소설을 낱낱이 다 까발려 보는 건 어려운 일이고
이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좀 무책임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사서 보든 빌려 읽든 볼 사람은 뜯어 말려도 본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영상에서는 슬쩍 변죽만 울려도 상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첨언을 하자면 정영수 작가가 장편을 쓴다면 어떻게 쓸까 궁금해할 독자들이 나를 포함 많을 것 같은데 언제가 될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장편을 쓸 것이고 쓰고 있다고 한다
연인들의 적나라한 생활상은 어떨까 현실적 연인들의 소설은 없을까 찾는다면 이 소설집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