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계절 시작시인선 43
조연호 지음 / 천년의시작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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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시집의 제목은 Mauro Pelosi의 'La Stagione Per Morire'에서 빌려 왔다. 그가 말하길, '소멸에 이르는 계절은 봄이다. 당신은 이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려 왔다'고 했다. -自 序

조연호의 첫 시집을 처음으로 읽었다. 그의 시는 이러저러하다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집들이 그렇듯이 까만 글자들이 빼곡한 시집 한 페이지들을 넘겨갔지만
각 페이지 글자들이 그려내는 장면들이 또렷하다. 그래서 선명하다. 그래서 어둡거나 채도가
낮은 삽화가 가득한 드로잉북이라고 한다면 시인에게 실례가 되는 것일까.
그런 책의 모든 페이지들을 다 보고 뒷표지를 덮을 때의 느낌이나 생각에 대해선 당신들에게
맡긴다.
좀 더 긴 이야기는 두 번째 시집 『저녁의 기원』을 본 후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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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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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개정판 5쇄 본

절망에 관한 悲歌라고 하겠다. 적의 위치에 따라 자신의 위치도 바꿔야 하는 고독한 장수의
내면일기라고 하겠다. 다만 그 사내가 '우리의 이순신'일 뿐이라 하겠다.

기자로 단련된 김훈의 문장은 짧지만 명확했다. 명확한만큼 경쾌했다. 그럼에도 절망의 무게와
깊이는 있는 그대로 전달됐다.

워낙에 떠들석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로 손이 가지 않던 작품이었다. 명작이나
고전을 잘 보지 않는 건 이런 이유같지 않은 이유다. 여하튼 y군의 강권아닌 강권에 의해 졸지에
읽게 됐다. 결과적으로 y군의 권유는 나쁘지 않았다(차마 좋았다 라고 쓰는게 내키지 않는 게
내 성격이니 어쩌랴).

왜적이라는 외부의 적과 임금을 비롯한 조정이라는 내부의 적을 목전에 둔 당대 이순신의 절망의
완성은 죽음밖에 없었을 것이다. 퇴각을 결정한 왜적을 두고 이순신 앞에 닥친 세상의 부조리와
전란의 공허를 읽으며 영화 밀양이 생각났다. 이미 용서 받았다고하는 범인에 대해 아직 용서하지
못한 이신애(전도연)가 교회에서 감정에 복받쳐 주체하지 못하던 그 장면 말이다. 세상은 언제나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고 무심하다는 것이 진리같다.

노래이긴 하나 그 노래가 무한히 슬프다면 이미 노래가 아닌 슬픔 그 자체다. 칼이 품어야 하는
무한한 슬픔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무참하게 써내려간 작품을 따라 읽어 내려 간 그분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생각해보니 이 작품은 그 어떤 위무도 담고 있지 않은 게 아닌가. 슬프면 더 슬픈
노래가 치유의 역할을 한다는 말처럼 그분 역시 무한한 슬픔과 절망을 다독이기 위해 이 작품을
읽은건 아닌가. 어디에서도 대답을 들을 수 없고 답해줄 수 없는 당신이 되신 그분이기에 뭐라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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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19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놓고 안본 책이라서, 같은 이유로 미루어두는 책인데 R의 권유로 사긴 했지만..님의 평을 읽어보니 말이죠...언젠가 읽어보고 저도 별을 세개쯤 올릴듯.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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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이 펴낸 두 번째 책을 읽었다. 첫 번째 비평서가 나름 성공적이었기에 다음 책을
기대하지 않을수 없었다. 건조하고 딱딱한 비평서가 아닌 아삼아삼한 문장으로 이뤄진
비평서이었기에 한걸음 더 가까이 대중들에게 다가간 비평가가 아니었나 싶다. 이 점 때
문에 어떤이들은 그의 비평서가 너무 물컹하다고 꼬집었다는데 어느 부분 동감한다.
그런 그의 이번 책은 '산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그의 비평서와 무엇이 다른가
의아했지만 그런 생각은 책장을 오래 넘기지 않고 해결 됐다.

간단히 말하자면 신형철이 읽고 보고 들은 음악 영화 시 소설에 관한 짧은 글들의 모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의 잣대가 아닌 개인의 '느낌'에 충실하게 적어간 글들이다.
비평가 이명원의 독서후기 같은 글들이 생각난다.

이런 류의 책들을 읽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더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알게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란 말이다. 결국 몇몇 권의 책들이 벌써 온라인 서점의 보관함에
얌전히 담겨 결재 라는 절차를 학수고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 또 질러야 하는구나 =.=

마음에 닿는 부분을 옮겨보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한다.


히포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람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그중 몸에 검은 담즙이 많은
사람들은 더러 이유 없는 비애에 시달리기도 한다니까. '검은 담즙'을 뜻하는 '멜랑콜리'가
오늘날 우울증의 명칭이 된 것은 그래서다.
토성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에게도 멜랑콜리는 평생의 벗이다. 수전 손택에 의하면 비평가
벤야민이 그런 유형이었던 것 같다. 친구 숄렘은 '심오한 슬픔'이 그의 특징이라 했고, 프랑
스인들은 그를 '슬픈 사람'이라고 불렀다니까. 그런 유형은 "느리고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칼을 들고 자신의 길을 내며 가야 한다. 때로는 칼날을 스스로에게 돌려 끝을 내기도
한다."(수전 손택 『우울한 열정』) 그러니 벤야민의 자살은 어쩌면 파시즘과 토성의 합작품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담즙이나 토성 따위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그 칼로부터 안전할 수 있겠
는가. 어떤 비애는 칼이 되어 나를 겨눈다. 이 비애를 어찌해야 하나.
-99p

기적이 없는 세계에 신파라도 있어야지. -106p

이와 같이 우린 들었다. 똑똑한 년이 예쁜 년 못 이기고, 예쁜 년이 운 좋은 년 못 당한다. 성실
한 놈이 학벌 좋은 놈 못 이기고, 학벌 좋은 놈이 빽 있는 놈 못 당한다. 이것은 냉소를 가장한
자조이고, 농담을 가장한 진담이다.
-238p

"인물의 낸면을 말로 설명하겠다는 생각을 접어라. 굳이 말해야 한다면, 아름답게 말하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라. 아름답게 쓰려는 욕망은 중언부언을 낳는다. 중언부언의 진실은 하나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장악한 것을 향해 최단거리로 가라. 특히
내면에 대해서라면,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상황을 만들어라." 그리고 덧붙인다. "(레이먼드)카버를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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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집 - 한 아티스트의 변두리 생활
노석미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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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변두리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준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변두리란,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이 좀 더 많이 있는 조용하고 한가한 곳, 내가 가진 능력으로
힘에 부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되는 곳

내가 말하는 변두리라는 말에 어떤 삶에 대한 부정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상 -5p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그 변두리가 아니다.

잠시였지만 진지하게 생각했던 탈 서울하여 동해쪽 어느 곳에 가서 살면 어떨까
그것이나 변두리 생활이나 별반다르지 않겠지만 앞서 생각해봤던 건 지우고 서울 근처의 어떤
변두리 생활에 대한 생각을 곰곰히 한다.

부글거리는 마음과 속을 삭히며 하루 종일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버는 돈 보다는 못 벌겠지만
최소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나은게 아닌가? 무엇을 하며 생계를 꾸리든 인생의
의미가 뒤바뀌진 않는다. 그 의미를 어디에서 찾으려고 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지만 지금처럼 사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스스로 쓰고 지우고 반복한다.

좌충우돌, 도시 젊은이가 도시를 벗어나 겪는 일상들이 우습기도 하고 안됐기도 하고 당돌하기도 하다.
그 나이였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을까. 땅을 사고 그 위에다 집까지 지었다는 마지막 장은 이건 대반전?

"매순간을 읽고 소유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살고자 한다면 탈 서울은 기본 조건인걸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일거리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마음 성할날이 얼마나 있나 싶다. 자살 일보
직전의 마음을 질질 끌고 돌아오는 하루의 마감 앞에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내것으로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도 배부른 소리! 라 손가락질하면 할 수 없고...

현실이 아무리 초라하고 비루할지라도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헛된 인생을 사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140p

바꾸어 말한다면 비루하고 곤궁한 현실이라도 스스로의 삶에 집중한다면 참된 인생을 사는 것인데,
내 삶에 집중한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고 '참'된 인생이란 건 또 어디까지인가.
지금이 '헛'인생인건 알겠지만 참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을 아직 구비하지 못했다. 이 나이에도 말이지.

출판사에서 내건 카피가 완전 부적절한 건 아니라고 해두자. 그렇다고 딱 그렇다고도 말하긴 어렵다.
뭐가 됐든 당돌한 사람들은 스스로가 지침이 될 뿐이다.

2-30대엔 방을 전전하며 돌아다니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40대엔 방 대신 '집'을 누려야하겠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은 대한민국 특히 서울살이다. 방이든 집이든 기본기만 충실하다면 한 개인이 거주하기엔
따질 필요는 없다.

출판사 블로그에서 미리 보고 어떤 지푸라기 같은 위안이 있을까 설레며 구입하고 읽었다.
위안 보다는 설명을 해줬다랄까, 그렇다. 그게 아니라 설명 받았다. 같은 말이긴 하지만.
그리고 낙서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담배연기처럼 책을 보는 내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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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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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어떤 의무감으로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드는 막연한 찜찜함과 정체불명의
불안에 우왕좌왕할게 뻔한 일이었는데 느즈막히 눈을 뜬 오늘은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오히려 나가지 않고 처박혀 있어야만 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이런 주말 오전이
자전거를 탄 이래 과연 있었나 싶을 만큼.
오늘은 하루종일 이부자리도 그냥 둔채 그 속에서 책장이나 넘기고 싶은 그런 날이다.

여행기를 잘 보지도 않지만 본다고 해도 사진만 건성으로 넘기다가 마는데, 그것은
어딜가면 뭐가 맛있더라 어디는 뭐가 멋지더라와 같은 내가 살짝 경멸하거나 증오해
마지않는 것들에 대해 열광하는 모습들이 싫기 때문이다. TV에서도 저녁 시간만 되면
맛있다고 난리들을 치는 일명 '맛집'프로그램들 투성인데 도대체 그렇게 찍어대면
콩자루만한 남한에 맛없는 집이 남아나기나 할까? 도대체 혓바닥을 자극하는 맛이란게
얼마나 맛있을수가 있을까? 맛에 집착하는 모습들이 가히 좋아보이지도 않고 오버를
유도하는 카메라의 시각도 극히 혐오스럽다. 인간은 적당히 좀 처 먹고 살아도 된다.

이런 생각이 가득한 사람이 보기에 이 책은 꽤나 마음에 든다. 많은 여행기를 읽어본
건 아니지만 어쩌면 처음으로 저자의 동선을 따라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곳곳에서 들춰내는 이야깃거리들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수 없다. 저자가 말하는 책들을
찾아보고 찜해놓는다. 어디가서는 어떤 영화를 이야기해 주고 어떤 곳에서 이야기해
주는 책들은 당장이라도 질러야할것 같은 조바심 마저 든다면 이 책은 내 꽈가 확실하다.

누군가 충실한 안내자가 있다면 꼭 한번 프라하에 가서 카프카의 집이나 그가 산책했다는
골목을 걸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이런 것도 뭘 알아야 보이는 것이라서 무턱대고
일단 가고보자는 식의 여행은 끔찍하게 싫기 때문에 그냥 쫄쫄쫄 따라다니면서 안내받는
그런 싱겁고 재미없는 여행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까지 뭐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며 이국의 골목을 배회하는 건 질색. 이러니 절대로 외국 여행을 갈 수가
없지.
즐기고 놀자판으로 가는 동남아나 중국은 질색이고 저어기 춥고 습한 이미지가 물씬 풍기
는 북유럽이나 동유럽이라면 다녀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왁자지껄하고 관광객 투성이인
파리나 런던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우산을 상비하고 다녀야 하는 변화무쌍한 런던의
날씨는 한번쯤 조우해 보고 싶기도 하다만 그래도 뭐 그냥 그닥.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끊임없이 뭔가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바쁜 현대인들은 마음이
허해서 더더욱 먹거리에 열중하는 건 아닐까. 한 이틀 죽으로 끼니를 대신해서 그런지 오늘 하루
끊임 없이 이것저것을 먹어댔다. 일단 뭔가 채워졌다는 포만감이 허기를 지우고나서야 없던 여유
가 생기는 건 확실히 먹는다는 게 얼마나 기본적인 조건인지 확인시켜준다.

카프카의 글은 행간마다 슬픔이 비비적대는 문장들이 마음을 할퀴어서 좋다. 슬픔의 끈질긴
점성은 도리 없이 매혹적이다.


카프카를 읽은 건 달랑『변신』한 작품 정도인데 카프카를 제대로 읽어봐야하지 않나 하는 열망이 불끈!

"밥 같은 건 먹지 않고 공기로만 어떻게 살아갈 수 없을까."
-쥘 르나르 『홍당무』


내 마음을 이토록 적확하게 표현해 주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말이든지... 정말로 이렇다면 식량으로 인한 엄청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신이 있다면)신은 어찌하여 인간으로 하여 먹어야 하도록 했을까?

내게 행복은 본디 여집합이다. 감당해야 할 것들을 감당하고 견뎌야 할 것들을 견디고
났을 때 그제야 존재감을 얻는 것, 그래서 황송하기 짝이 없는 것. 그런데 어떤 사람에
게는 그것이 그저 쉽기만하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행복 꽃가루는 내 몸속에 행복을 전
염 시키는 대신 이물질이 되어 나를 가렵게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 많은 대로변보다 누가 각혈을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적적한 골목길이
더 좋았다. 때로는 막다른 골목도 무방하다. 골목은 세상으로부터의 이지메가 아니라 배려이
다. 너만의 시간을 도려내 호주머니에 넣어도 좋다는 배려.

삶에 감탄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둔하고, 삶을 두려워하기만 하는 사람은 우울하다.


후자에 가까운 사람으로써 그렇다하더라도 어쩔수 없는 게 아닌가... 감탄 보다는 두려움이
더 가득한 게 현실의 냉혹함이라고 체득한 사람이라면. 감탄만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이 행복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대전제를 향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돌진하고 있다.
행복만 하다면야 뭐... 그런 생각들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인간에 대하여 인간임을 트집 잡을 수는 없다.

살아 있음이 수모이고 잡식의 습관이 수치다. 버릇이 된 생존본능과 알량한 허무가
매일매일 육박전을 벌인다. 못할 짓이다.


아지랑이의 별, 화내는 별, 갉아먹히는 별, 호기심의 별, 운명이 갈리는 별, 지금부터의 별….
지금부터의 별은 모든 것이 '지금부터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별이다. 어쩌면 가
능할 것이다. 몇몇 사람들의 끝없는 갱신 의지가 정말로 우리 삶의 터전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백은 자신의 결벽적인 자아를 주체하지 못하고 타인을 고문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먹고 놀고 사진찍기 바쁜 여행서의 저자들은 놀기 바빠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단지 보여주기만으로 이야기 하기를 대체해버린다. 여행을 하면서 나올수 있는 자기 이야기는 없고
조그만 수고만 하면 다 아는 사실만 열거하기 바쁘다. 그런 여행서는 재미도 감동도 없다. 어쩌면
여행서를 통해 그 여행자의 인간적인 여행이야기가 더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실용적인 여행서 보다
딴 이야기를 하는 이런 여행서를 쓴다면 그런 여행이야말로 떠나봐야 하는 여행이 아닐까.
어찌보면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어투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홀려 단숨에 읽어내려 간것 같기도 하다할
만큼 저자의 입담 또는 필력이 매력적이다. 번역가라는 생업이 한몫 하기도 했겠지만 그것만이라
하기엔 저자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진정성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일상의 생활인에서 벗어나 여행지를 떠다니는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질퍽한 현실에서 발을 빼
현실이라는 땅바닥에 발을 딛지 않고 사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여행을 갈망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동경하지만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진흙발인 채로
날마다 같은 발자국을 찍으며 같은 거리를 왕복하고 있다. 쇼윈도의 마네킹과 온갖 공산품들을
보면서 TV화면에서나 보는 여행지를 동경하면서.
진흙 범벅이 된 발을 씻고 새하얀 발에 신발을 신기고 가는, 떠날 수 없는 여행을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해본다. 그런 설레임을 가지기에 이 책은 충분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간만에 그런 설렘을
가져 봤다. 물론 나는 떠나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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