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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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뭉크라고 하면 "절규"
그렇게 등식관계가 될만큼 그 작품 이외엔 문외한인 상태에서 읽어보는 그의 작품과 인생에 대한 에세이는 생각보다 깜놀할 재미가 있었다


우선
절규의 제대로 된 제목은 "비명"이 맞겠다는 것
단순 비슷한 말의 범주로 보기엔 어렵지 않겠나 하는 저자의 설명에 동감
그러나 일반대중에게 뿌리 깊이 박힌 "절규"라는 말이 갖는 화가에 대한 이미지가 쉽게 바뀌기는 어렵겠지

둘째
절규의 그림에서 등장인물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나만 몰랐나? 외부의, 더 정확히는 자연의 비명에 귀를 막고 있는 거라는 사실
뭉크가 남긴 메모를 토대로 하자면 그게 맞다

비명을 지르던 절규를 하던 그 소리의 주체가 자연이냐 인간이냐, 내부냐 외부냐의 근본적 차이점에 관한 것이라 나는 꽤나 쇼킹한 사실의 발견이었다

저자는 노르웨이에 10여년 째 거주하고 있고 관련 연구자이기도 하니 저자의 주장을 흘려 들을건 아니겠다

절규라는 작품이 채색화로 4종 있다는것도 처음 알았고 도난 사건이 두 번 있었다는 것도, 도난 작품을 찾기 까지의 과정도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 "절규"라는 작품에 '미친 사람만이 그릴수 있는 그림이다' 라는 누군가의 낙서가 발견 되었다는 것도, 등등 재밌는 사실들이 많았다

아르테에서 100권 기획을 했다는 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는데 방송도 들을만 하고 출간하고 있는 책들의 디자인이나 만듦새도 좋은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 100권의 기획이라니 좀 무리가 아닌가 싶긴한데 내 알 바 아니니.
근간 도서 목록을 보니 헨리 제임스 김사과, 카뮈 최수철에서 눈길이 머문다. 소개하는 저자들에 더 관심이 간다는 사실.
무엇보다 팟캐 진행자 김태훈의 팬심도 한 몫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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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상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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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소설

몇 번의 실패를 하다가 여러 번 포기했다는 소설

이 책을 사놓은 건 까마득한데 읽은 건 최근이다. 그러니까 10여 년 그 이상 책꽂이에 꽂혀만 있었는데 한번씩 꺼내 초반 몇 페이지 읽다 포기했었다.



아마 제목만 보거나 골때리는 첫문장에 압도되어 나처럼 미리 포기하거나 초반의 고비를 넘기지 못한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감히 단언하는데 제목에 쫄 필요도 없고 속는셈 치고 초반만 넘기면 여느 소설처럼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따라 읽다보면 소설이 끝나가는게 아쉽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어디가서 이 소설 읽어봤다고 하면 폼도 좀 난다.

 

박상륭

194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서라벌 예대를 졸업했다. 1963사상계신인상에 '아겔다마'로 입상하였다. 1969년 캐나다 이주 후에는 병원 시신 안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서점을 운영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왔다. 출국 전날 광화문 우체국 화단의 흙을 씹어 먹으며 자신이 버린 조국을 한탄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1998년에는 소설집 평심을 발표하여 이듬해 표제작 <평심>으로 제2회 김동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서고금의 종교와 신화, 그리고 철학을 아우르는 방대한 사유체계와 우주적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거대한 스케일, 독보적인 문체로 한국문학의 지평을 확장시켜왔다. 주요 작품으로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열명길>, <아겔다마>, <평심>, <산해기> 등이 있다.

201771일 캐나다에서 향년 77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이 소설은

바닷가에서 창녀로 일하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노승의 제자가 된 주인공이 '유리'라는 공간에서 40일간 구도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생명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수도승 유리가 "마른 늪에서 물고기를 낚으라"는 화두를 놓고 40일 동안 밀교적 고행을 벌이는 내용으로, 1995년 양윤호 감독에 의해 박신양 주연의 유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격인 4부작 칠조어론은 무려 17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참고로 문학평론가 고 김현 선생은 이 소설에 대해

무정이후에 씌어진 가장 좋은 소설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아마 이 소설을 읽어봤거나 읽다 포기한 독자라도 첫문장 만큼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

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

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

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

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

,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

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

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이게 첫 문장이자 하나의 문장이다. 뭔가 좀 감이 오는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율리시즈''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앞부분만 보다가 덮어버리는

많은 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언젠간 완독하겠지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쳐다만 보는 작품. 단어 하나하나도 쉽지 않고 보기로 따온 첫 문장처럼 한 문장의 길이 또한 예사롭지가 않아서 번번히 실패를 안겨주는 박상륭 선생의 걸작.

 

많이 아는 만큼 많이 보이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동사양의 철학과 종교적 지식이 작품안에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티벳의 사자의 서라든지 신약과 구약의 내용 그리고 불교적 내용까지. 이런 점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읽었다.

있어 보이는제목에 일단 구입했다는 어느 독자의 말대로, 제목이 주는 무게만큼 죽음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냐 하면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제목에 딴지를 걸자는 건 아니다만.

23~26일의 내용, 즉 매장 전 망자에게 해탈하는 법을 읊어주는 '티벳 사자의 서' 내용 일부를 차용하고는 있지만 작품의 일부일 뿐이다. 결국 '유리'라는 한 인간으로 대표되는 본래 인간의 번뇌에 관하여 쯤이려나.

 

관념소설이라고 해서 어렵다고만 하기에는 유리인 ''를 비롯 등장인물들이 인간적으로 너무 절절해서 이렇게 끝나버릴수밖에 없다는 게 필멸을 받아들여야 하는 심정과 같아 먹먹하기만 했다.

 

오직 읽은 이만이 고 김현 선생이 왜 벅찬 감정 가득한 감상을 실었는지 알 것이다. 그 감상에는 스포라기보단 기본 줄거리가 누설되어 해설부터 보는 편인 나는 멋모르고 봤다가 살짝 김이 피식.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끝을 알고 보니 애잔해서 책장 넘어가는게 다 안타까웠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그보다 특유의 ''의 음미도 이 소설의 매력이므로 따박따박 읽는것이 재미일 것이다.

 

후려친 한 줄 오독 요약.

마른늪이 있는 유리라는 바르도에서 40일간 머물며 고기 낚기, 그 고기의 이름은 무의미여라.

 

유리는 '바르도'이며 유리는 물고기다.

'티벳 사자의 서'에도 나와 있듯 사람이 죽은 다음 그 영혼이 잠시 머무는 중간 세계를 바르도라 하고 그곳에서 49일간 머문다 그 기간 동안 영혼의 선택에 의해 해탈을 할 수도 환생에 접어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 환생으로 빠져든다. 유리에서 '마른늪에서 고기 낚기' 즉 무의미 낚기를 터득한다면 영원한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그러므로 고기는 무의미하다.

197p

 

,,종반으로 나누어 읽을수 있는 '17' 에서, 초반은 '창세기' 31절에서 7절까지의 기사에 대한 화자의 분석과 비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반의 원죄 개념이나 삼위일체 등에 관한것은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글자 구경하는 심정으로 따라 읽었다. 묵시록 등에 관한 종반의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그럴듯해보이는 이론들의 조합에 혀를 내두를만 했다.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그럼에도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에는 이런 이론적인 이야기는 희미해지고 인물의 감정선만이 오롯하게 가슴을 적신다.

 

공즉시색이라고 유리란 사내가 내뱉듯 죽음이 곧 사랑이요 사랑이 곧 죽음이란 말도 통하는 것이니 결국 죽음으로 사랑을 하여내었고 사랑으로 죽음을 이루어내었네. 아 진작에 읽을것을, 하는 후회 반 벅참 반.

 

 

곁다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나는 유리羑里 라는 말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첫 문장에 나오는 지명으로써의 유리는

중국 은상의 군주 주왕이 주 문왕을 잡아 가둔 곳으로 지금의 하남성 탕음현의 지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이 유리이고 그 다음으로 우리가 흔히 따로 떨어지다의 뜻으로 쓰는 유리되다의 그 유리란 말이 있다. 박신양 주연의 영화 제목도 유리였다. 좀 억지스럽게 하나 더 갖다 붙여보자면 투명해서 없는 듯 하다가도 쉽게 와장창 하고 깨져버리는 성질의 유리도 생각할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결코 소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고, 작가는 어떤 의도와 의미로 유리라는 말을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절묘한 작명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두서 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뭔 소리를 하냐고 한다면

딱 한 마디만 하겠다. 잔말 말고 일단 읽어보시라!

쫄지 말고 읽어보면 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재밌는 작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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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 문학과지성 시인선 527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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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의 시집이 2016년 출간된 두 시집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이후 대략 3년 만에 출간 되었다. 거두절미 하고 이 시집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보려면 우선 새 하기라는 말부터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시집의 서시라고 할 수 있는 제일 앞에 실려 있는 시의 첫 연을 살펴보자

 

새의 시집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렇다. 새하는 순서 라고 했다. 물론 새 하기라는 말은 없다.

시집에 붙는 해설은 잘 안보는 편인데 이 시집에 첨부되어 있는 해설은 한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시집을 읽어나가는 데 한결 수월할 것이다.

해설 부분을 읽어보자

 

이 시집은 새하는 시집이다. -하다 가 어떤 움직임을 말하는 것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라고 하는 명사에 하다 라는 행동이나 작용을 이루는 술어가 붙어 있는 것은 어색하다. (...) ‘의 위치가 주어도 목적어도 될 수 없거나 혹은 둘 다 될 수 있는 이 모호함이 이 문장을 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 주체와 대상 혹은 인간과 동물의 위계를 지워버리는 이 강력하고 매혹적인 수행문이야말로 이 시집을 관통하는 동력 장치이다.

 

다시 한번 첫 시를 조금 더 읽어 나가보자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신발을 벗고 난간 위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면

소매 속에서 깃털이 삐져나오는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뺨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

 

공기는 상처로 가득하고

나를 덮은 상처 속에서

광대뼈는 뾰족하지만

당신이 세게 잡으면 뼈가 똑 부러지는

그런 작은 새가 태어나는 순서

 

 

새 하기 라고 하기 전에 무엇 무엇 하기라는 걸 떠올려야 한다. 운동 하기 책 읽기 밥 먹기처럼 무엇무엇 하기 앞에 올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해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에 새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새 라는 것을 떠올리고 그 새가 나타내는 모든 것을 떠올려보면 조금 쉬울지 모르겠다

 

이 시집의 제목은 날개 환상통이다. 날개란 무엇인가. 새가 날개를 펴고 허공으로 뛰어들 때의 그 날개짓을 떠올려 보자. 그 다음 환상통이란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환상통은 있지도 않은데 있는 것에서 오는 통증이다. 그렇다면 날개 환상통이란 날개는 없지만 없는 날개가 느끼는 통증이다.

 

다시 새 하다를 떠올려 보자. 여기에서의 새는 날개가 없다 날개가 없는 새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날개 없는 새가 허공으로 뛰어든다

 

이 두툼한 시집 곳곳에 새 라는 낱말이 있는데 새 하다 라는 게 뭔지 어슴프레하게라도 느껴진다면 시 읽기는 한결 수월할 것이다. 이 시집의 첫 시 새의 시집을 유의해서 읽어봐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 시 역시 주의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별부터 먼저 시작했다 라는 시의 2연을 읽어보자

 

 

 

300페이지에 육박하는 왠만한 소설책 분량의 시집을 이런 짧은 영상으로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 모른다. 아주 극히 일부분 코끼리의 꼬리 정도를 더듬거려 보았을지 모른다.

다른 영상에서 말한적 있듯이 시를 이해하려 든다면 오리무중에 빠질수도 있다. 물론 모든 시가 그런건 아닐 것이다. 이 두툼한 시집 한 권을 나역시 얼마나 제대로 느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중요한건 오독이 되더라도 한 편 한 편 천천히 읽어나가보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시집 덕분에 새 하다 라는 어색한 문장이 품을수 있는 범위와 그 느낌을 처음 대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무엇이 되었든 이 시집을 읽는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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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규리 아포리즘 2
이규리 지음 / 난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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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너무 컸나. 추스려야할 글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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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아침달 시집 10
조해주 지음 / 아침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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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는 것은 설레임일 수도 있고 두려움 또는 걱정스러움일 수도 있다

그런 첫,이 지나고 난 후에는

안도 만족 아니면, 난감 실망 일 것이다

 

오늘 소개할 시집은 아침달 출판사에서 10번째 펴낸 조해주 시인의 데뷔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이야기 하면 안되고 이 시집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출판사의 시집이지만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김소연 김언 유계영 시인을 보자면 믿고 볼 수 있는 출판사라 생각한다

 

처음 보는 낯선 시인의 데뷔 첫 시집을 읽는다는 일은 늘

설레는 일이다

최소한 첫 시집을 읽고 난 다음 난감하거나 실망하기란 어려운 일에 속한다

왜냐하면 어떤 기대감 없이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며

경제적 시간적 측면에서 따져봐도

만원 안팎의 비용과 며칠의 시간으로 만끽하는 이만한 일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1993년 출생의 젊은 시인의 시를 읽는다

시인 조해주의 첫 데뷔 시집을 읽어 봤다

어떤 기대 이상으로 흡족한 시집 읽기였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지만

다음 시집도 기꺼이 읽어봐야겠다 생각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문장들, 젊음만이 누리고 맡을 수 있는 장면장면을

곳곳에서 만나는 일이 즐겁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시 한 편을 소개해 본다

 

환생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고

내가 그 자리에 앉는다

 

방금 전의 그는 반듯한 이마를 가지고 있고

나도 반듯한 이마를 가지고 있다

 

그와 나는 이 식당의 손님이다

나와 그는 아슬아슬하게 스쳐간다

 

어깨를 부딪치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사과를 나누기도 한다

 

오늘은 무엇으로 할까

나는 식사를 주문한다

어떤 확률

그가 먹던 음식을 먹는다

 

접시의 고기를 잘게 썬다

고기는 금세 여러 개가 된다

흥건한 핏물 위로 턱받이 한 얼굴이 비친다

 

고기를 써느라고

테이블 위의 물 한 잔이 흔들린다

물 한 잔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영혼이 빠져나가기 직전의 순간이다

 

_부분

 

이 시가 인상적으로 읽혔던 이유를 내 식대로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제목에 따라오는 첫 문장 때문이다.

 

제목을 가리고 첫 문장을 보면 평범해 보일 수 있는데

제목 다음에 오는 이 첫 문장으로 인해 제목과 첫 문장 모두가

효과적으로 감응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연들도

환생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보면 적절한 연출이 되고 있다.

 

첫 문장 그러니까 1연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빈 자리에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 앉는다는 장면은 환생을 떠올리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요란한 비유 없이 친근한 일상의 한 장면으로 나타내는 것

이런 게 시인들의 특성이 아닐까 싶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미덕

 

환생이나 전생 인연 같은 특정 종교의 관념을 믿고 안믿고를 떠나

이 시 전체적으로 그려지는 장면들이 일상의 순간을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고

그 찰나를 포착하고 끌어온 시인 특유의 감각이 잘 살아 있는 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하듯이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에 이미 환생과 관련된 관념이나 오랜 생각들이 들어앉아 있어서

이 시가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을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좋아하는 시나 시인, 시풍이 다른 것이기도 할 것이다

좀 과격하게 말해서 누군가에겐 쓰레기 취급받는 시가 내겐 애정하는 시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사례도 비일비재 하니까

 

다시 환생이라는 시로 돌아와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첫 문장 1연 뿐만 아니라

다른 연의 곳곳에서 어찌보면 너무나 뻔한게 아니냐 할 수도 있는 정황들이

조금만 한 발 물러나 들여다보면 착착 들어맞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다른 많은 시 가운데 이렇게 소개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 눈에 안경일 뿐이므로 와닿지 않으면 패스하면 그만이다

 

 

오지랖에서 나오는 말이겠지만

여기에 소개 한다고 이 시집에서 최고의 시겠거니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시는 얼마든지 숨어 있는 법이다 당신이 시집을 읽는다면 말이다

어디까지나 취향의 영역일 뿐이다.

 

한 편의 시집 리뷰에 되도록 많은 시를 다루는게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시집이든 책이든 적극적인 독서의욕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게 되어 있으니까.

땡기면 보시라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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