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산문집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1966) 가운데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수 있는 글들을 뽑아 정리한 것으로, 책 곳곳에서 이덕무의 인품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중 한 구절을 소개한다.


명예와 절개를 세울 수만 있다면, 비록 바람과 서리가 몰아치고

파도가 밀려와 거의 죽게 된다고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인간 세상의 쌀과 소금같이 자질구레하지만 사람을 얽매는 물건에 대해서도

거의 초탈하여 깨끗이 벗어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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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비교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드는 이덕무라는 선비의 이미지는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시인 백석의 모습이 오버랩 되더란 것이다.

물론 터무니 없는 것일수도 있으나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의 한구절을 옮겨와 본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이덕무는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가난해서 반 꿰미의 돈도 저축하지 못하는 주제에 이 세상의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고, 어리석고 둔해서 한 권의 책도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하는 주제에

오랜 세월이 담긴 경전과 역사책과 이야기책을 다 보려고 하는구나. 이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바보다. , 이덕무야! 아아, 이덕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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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논어로 병풍과 이불 삼아 한겨울 밤을 나는 것이나

영양실조로 여동생을 일찍 보낸 그의 가슴속에 어떤 감정이 실려 있었는지

감히 짐작조차 어렵겠지만 막연하게나마 상상해 보기도 했다.

서얼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와 그로 인한 빈한함에서 오는

장남으로써의 책임감을 다하지 못하는 자괴감이 그 자신 속에 숱한 응어리를

쌓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일생은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당당하고 꿋꿋했다.


이덕무는 평생 읽은 책만 2만 권이 넘었고, 직접 베낀 책만 해도 수백 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책을 사랑했고, 책을 벗 삼아 일생을 보냈다. 그런 그의 독서에 관한 생각은 조금 남다른데가 있었으니 한번 새겨들어보자.

 

일과로 책을 읽으면서 네 가지 유익한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는 지식을 넓히고

깊게 알아서 옛일에 통달하고 뜻과 재주에 도움이 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첫째, 조금 배가 고플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두 배로 낭랑 해져서

책 속에 담긴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니 배고픔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둘째, 조금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몸 안으로 흘러들어와

편안해져 추위도 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와 함께

하나가 되고 마음은 이치와 더불어 모이게 되니,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버린다.


넷째, 기침이 심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막히는 것이 없게 되니

기침 소리가 순식간에 그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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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책읽기로 하나의 도를 터득했다고 할만하지 않을까. 우리는 책 한 권을 읽더라도 거기에서 꼭 뭔가에 통하는 법을 얻지 못하면 시간 낭비만 한 것처럼 전전긍긍하지 않나. 물론 몇백 년 전 선비의 책읽기와 현대인의 책읽기는 개인적 상황이나 시대 상황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다르긴하지만 어떤 필요와 목적성에 치우친 독서라면 한번쯤 돌이켜 볼만할 것 같다.


벗에 대하여


이덕무는 스스로를 평가할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세상 물정에 어둡고 처세에 졸렬한 나같은 사람을 이해해주는 이를 만나면,

산수를 논하고 문장을 이야기하며 민속과 가요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되풀이하며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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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러 서얼 출신과 교우했던 이덕무의 친구에 대한 글을 한 편 소개해 본다


나를 알아주는 벗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고 1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오색실을 물들일 것이다. 10일에

한 가지 빛깔을 물들인다면 50일이면 다섯 가지 빛깔을 물들일 수 있으리라.

이것을 따뜻한 봄볕에 내놓고 말려서 여린 아내에게 부탁해 백 번 달군 금침

바늘로 내 벗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그런 다음, 고운 비단으로 장식하고

예스러운 옥으로 막대를 만들리라. 이것을 가지고 뾰족뾰족하고 험준한 높은

산과 세차게 흐르는 물이 있는 곳, 그 사이에 펼쳐놓고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 때면 품에 안고 돌아오리라.



요즘 사람들의 인간관계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좀 오버스런 면도 있겠지만

출신의 한계에서 오는 교유하는 사람의 폭이 넓을 수 없었던 이덕무에겐 그만큼 주위 친구라는 존재가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흔히 동호인이라 말하는데 그런 동호인들이 모이면 공통의 관심사가 대화의 소재가 된다. 그런 이야기로는 몇 날 며칠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 책이야기, 커피 좋아하는 사람 커피 이야기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 자전거 이야기... 나 역시 자전거 타는 사람들과 만나면 어제 그제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해도 시간 가는줄 모른채 몇 년을 그렇게 보내기도 했으니까.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지극한 즐거움이 드문 것인가. 이러한 즐거움은 일생에 단지 몇 번 찾아올 뿐이다.


가만 돌이켜보면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세상에 많다고 그 사람들을 모두 만날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하더라도 자의든 타의든 사람들은 늘 떠나고 오기를 반복한다. 그 가운데 주위에 남아 관심사를 오래 논하는 사람을 얻기란 이덕무의 한탄처럼 일생에 단지 몇 번 찾아오는 진귀한 일이 맞다.


책과 쓸쓸함에 대하여


책을 읽는다는 일은 따지고보면 쓸쓸한 일이다.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고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덕무는 이 책읽는 쓸쓸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 오는 새벽이나 비 내리는 밤에 다정한 벗이 오지 않으면,

누구와 마주 앉아 이야기할 것인가. 시험 삼아 내 입으로 글을 읽으면 듣는 것은 내 귀요,

내 손으로 글을 쓰면 구경하는 것은 것은 내 눈이라.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았으니 이제 다시 무엇을 원망하랴.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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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 따위의 감정은 헌신짝 버리듯 버려서

갖추고 있어선 안되는 것인냥 하는데 어쩌면 쓸쓸함이나 혼자됨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책읽는 행위와 친해질 수 없을지 모른다. 어찌보면 책읽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책 읽는 고독한 시간이 오히려 수많은 미지의 사람들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일처럼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되겠지만 사람들 속에 있어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나 책과 함께 책 속으로 들어가 쓸쓸하지 않는 것이나 선택은 각자의 취향과 사정에 따라 하게 될 것이다.

갈수록 책과 멀어지는 시대에, 당장 이 유튜브로 책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아이러니 같은데 이런 시대에 책에 미친 바보 선비를 소개하는 것도 좀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세상에도 이덕무처럼 인생을 건너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가 다 바보라고

손가락질하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이백여 년 전을 살다간 한 선비와 같은 발자취를

흉내라도 내는 누군가를 만나는 건 실낱 같은 희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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