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생활자 -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유성용 지음 / 사흘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결국 여행이란 삶을 등지고 죽음의 냄새를 맡으러 가는 머나먼 길이다.


_96p



소개하는 책들 가운데 가끔 절판된 책들인 경우가 있다. 지금 소개하는 책도 절판된 책이라 너무 아쉽다. 다행히 이 책은 중고서점에 어느 정도는 깔려 있다. 책을 소장용으로 구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책이란 물건이 한번 나왔다고 계속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 말이다.


지인들에게 여간해서 책을 추천하지 않는 나는 이 책을 읽고 강추한다는 말을 여기저기 날리곤 했었다. 제목을 봐서 짐작하겠지만 여행에 대한 책이긴 한데 여행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 전달의 책이 아니라 티베트와 인도, 스리랑카, 네팔 등지를 떠돌며 느낀 저자의 주관적 감상과 감성적인 글들이 폭발하는 여행서이기에 누군가는 정보가 없다며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여기서 스킵하시라. 본인이 감성적 글들을 좋아하고 잘 빠진다면 이 책을 읽어라, 두 번 읽어라.




나라는 인간은 여행을 그리 즐기는 인간이 아니다. 기껏 여행이라고 가봤자 하루 시간을 내어 지방의 어느 소도시 후미진 뒷골목이나 배회하다 오는 그 정도일 뿐이고 그것마저 수 년에 한 번 갈까말까다. 하물며 나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거기가 어디라고 가나 싶다.

그런데 여행생활자라니. 여행이 생활이고 생활이 여행이라니 이 무슨 거지발싸개 같은 소린가 싶어 책을 집어 들었고 완전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이 영상은 지극히 사적인 기분에 휩싸인 다소 우울한 영상이다

거기에 여행 자체에 대한 내용 소개는 참새 눈물 만큼도 없다.

그런게 싫은 사람은 여기서 스킵하시라.

고 나는 분명 경고 한다.


여행과 생활이라는 말은 동류항으로 묶일 수 없다.

생활의 냄새가 없는 것이 여행이고 여행이 배제되는 것이 생활이다. 그런데 여행생활자라니. 여행을 생활로 삼는 사람이라니. 하다가 곧바로 아-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했다.

지긋지긋한 생활을 정리하고 여행을 생활로 삼는것. 어떤 강단이 필요한 일인데 그런 게 없으니 내 생활은 더 졸렬하다. 떠날 수 있다면 이까짓 생활쯤이야 하겠지만 여기에 발 묶여 뒤뚱대고 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의 책을 들여다보는 순간 마음이 미쳐 날뛸 수밖에 없다.


살면서 여행 한번 안다녀 본 적 없는 사람은 드물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이든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이든. 여간해서 여행 같은 거 다니지 않는 내가 딱 한번으로 족하는 여행이 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만 하는 여행이다 그리고 나오지 않는 여행.


생활에 찌든 자들은 산정으로 올라야 하고 죽음에 찌든 자들은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분명 그 길은 넓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 길을 막아두고 자동펌프처럼 생활의 의욕만을 자꾸 밀어붙이는

사회는 참으로 무서운 사회일 것이다.

그대가 생활에 붙박여 있다면 마음속에서나마 저만의 산정 하나쯤

마련해두길 바란다. 그 곳에서 언제라도 세상 끝으로 다가가

다시금 길을 잃을 수 있도록.


_100p



저 말대로라면 나는 산정으로 가야하는 데 자꾸만 마을로 내려가는 사람의 뒤를 따르고 싶다.

'생활의 의욕'을 의무적으로 가져야 하는 여기에서 나는 자꾸만 산정이나 사막을 부질없이 상상한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을 좇아 일생을 사는 일은 그리하여

삶의 대부분을 배반하는 위험한 짓은 아닐는지.


_148p


황폐화 된 삶 위에서 이제는 사라진 그 반짝이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버티기란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 누군가는 변절하고 또 누군가는 포기하고 다른 누군가는 망각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반짝이던 그것을 보던 찰나, 참 행복했노라고, 한 줄 적을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진창이 된 인생에서 허부적 거리는 것이 오늘과 내일 그리고 끝까지 일지라도 나는 됐다. 서글퍼지지만 뭔가 한번, 하나에 눈 떠 봤으니 그것으로 남은 시간을 달랜다.


여행은 모순이다. 자유 속에서 생활을 꿈꾸는 아둔한 우여곡절이다.

여행의 길은 그저 멀어서 먼 길이 아니고 길을 알면서도 스스로

나아가서 길을 잃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먼 길이다. 그 길은 절대의

빛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동서남북이

없는 눈부신 환한 빛 속에서 어둠을 조적해서 쌓아가는 제 속의

길이다. 여행은 드러냄이 아니고 숨김이다. 함부로 생활의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커다란 비밀을 제 속에 품을 때까지 제 몸을

숨기면서 가야 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172p


돌아올 줄 뻔히 알면서 떠난다는 것도 우습다. 뻔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다는 얇디얇은 위안으로 무엇을 덮을수 있을까. 다시 또 뻔한 일상을 시작해야 하는 것도 기쁜 일인가 아니면 허무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 인간일지 모른다.

일상을 뒤집을만한 여행이 있다면. 그런 전복을 꿈꾸기엔 여행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적합한 말이 없다면 새로운 말을 만들어서라도 여행이라는 경박한 말을 내팽개쳐야 한다.



꽃들은 자신을 가득 피워서 결국 스스로를 소멸시킨다. -301p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소멸시킨 자들이 있다. 주변 정리를 말끔히 하고 편도 티켓만 끊고 가까운 지인에게 예약 문자나 메일을 날려 그동안의 소회와 안녕을 말하는 사람. 나쁘지 않다. 주변 정 리와 청소가 귀찮아 그렇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그렇게 떠난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왜 떠나는 자가 되었을까.

그리고 이제 와서 내 입으로 할 수 있는 몇마디 말은,

상처란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나의 자리를 상처에서 비켜 다시 마련하는 일.

이 말을 의심하지 마라. 그 속에 혹은 그 밖에서 치열함을 묻지도.

_357


상처는 아물겠지만 치유된 건 아니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처는 그대로 열려 있다.

부지불식간에 쓰리고 피가 터진다. 다만 내색하지 않을 뿐.

그런 마음을 가진 얼굴로 웃는 웃음은 증오와 같고, 웃게 시키는 사람은 야비하다. 그렇다면 떠나야 한다. 징그러운 생활 따위 시궁창에 처박아 버리고. 화가 나면서 서글프다.


이 책은 여행서이지만 여행서는 아니다. 곳곳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저자의 감상들을 따라 가노라면 먹먹한 가슴이 된다. 저자를 이렇듯 고지와 오지 그리고 분쟁지역도 불사하며 떠돌게 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독자들의 그런 궁금증은 나몰라라 하며 저자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죽음 따위 애초에 작정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 같은 어중이는 각오를 한다해도 못 떠날 것이다.

생활에 무기력하게 붙들려 사는 사람이 이렇게 생활 따위에서 한 켠 비켜나 있는 사람의 이야기 책을 보면 잠시 용기백배한다. 생활을 무찌를수 있을 것 같고 그까짓거 꺼져버려, 하고 내심 큰소리도 쳐본다. 당장 생활을 등지고 여행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생활을 기만하며 살 궁리를 가능케 한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라는 부제처럼 쓸쓸하게 여기저기를 떠돌며,

휘황찬란한 대도시나 우르르 몰려 다니는 것이 아닌, 죽음의 냄새를 큼큼거리며 좇는 사람의 여행기. 참여행은 혼자 가는 것이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게 각자의 인생이듯이. 내가 당신에게 손을 건네 타클라마칸으로 가자 한다면 당신은 갈 수 있는가? 있다고 하는 사람의 뺨을 후려갈기겠다. 그건 거짓말이다. 거짓이 아니라고 해도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것이다. 갈 수 있다면 스스로 걸어 들어가라 컴컴한 사막으로, 아무 동행 없이.


두근거리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책장을 넘겼다. 먼저 대여한 누군가의 밑줄을 눈여겨 보기도 했다근자에 읽은 읽을거리 가운데 가장 흥분케 한 책이다. 이렇게 쓸쓸하고 먹먹한 것에 흥분하는 나는 무엇인가. 그것이 더 우울하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이 아니라 너의 마음이 흔들리는 거라던 고승의 일화가 아니라도 강가를 가득 채운 바람보다 더 바람만 가득한 마음을 이 한 권의 책으로 헛헛하게 위무 한다.

뒷표지에 있는 저자의 당부 아닌 당부의 글로 마무리 한다.



세상에는 차를 한 대도 팔지 못하는 자동차 외판원이 있고,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 있으며,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가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는 있다.

사랑을 잃은 자는 사랑의 흔적으로 살고,

여행이 막힌 자는 여행의 그늘 아래 살아가니

여직 길 위에 있는 사람들아,

너무 외롭거나 아프지 마라.

세상 끝에 걸쳐 눈이 눈물처럼 빛나는 그대의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사라지지 말고 이 말을 가슴에 새겨다오.

오래오래 당신은 여행생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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