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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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말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 같다

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의 제목으로나 연극 홍보 포스터를 통해 들어봤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가 1952년에 쓴 희곡으로

베케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연극의 내용은 큰 줄거리랄 것도 없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라는 두 남자가 나와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번씩 고도는 언제 오느냐고 하는 게 거의 다다.

사이사이에 이어지는 이야기에 독자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작가도 자신의 작품에 의미 없는 문장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노벨상까지 타게 한 작품인데

허투로 쓰인 부분이 있을까 싶다.



초반에 나오는 한 장면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죄수에 관해 복음서에 그걸 기록한 이야기인데 그 어떤 이야기를 창작해 쓰거나 인용할 수도 있는데 왜 하필 그 이야기를 할까 짐작해 보는것도 고도를 기다리며가 가진 흥미로운 점 중 하나일 것이다.

 

이처럼 무엇인지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고도에 관한 큰 줄기만 있는 작품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Godot의 어원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려 해보았는데 이를 두고 베케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 (...) 여기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연극 관람이 아닐까 싶지만 희곡으로 만나보아도 그 의미망은 접할 수 있다.

 

나는 문학작품을 크게 나누어 볼 때 !(느낌표)를 주는 작품과 ?(물음표)를 주는 작품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물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주거나 아무것도 주지 않는 작품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물음표를 주는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 가운데 고도를 기다리며는 결국 풀리지 않는 물음표를 던지는 작품이기에 오래 기억에 남은 작품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거나 연극을 보고난 후 고도의 정체에 대해 왈가왈부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흔히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고도의 정체보다 그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그 상태에 대해 생각을 골몰하곤 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과 타자 그리고 세계를 의식하면서 시작되는 이성적인 기다림도 있겠고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기다림도 있다. 일단 먹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먹을 것이 입에 들어오기 까지의 기다림이 최초의 기다림에 관한 느낌이 아닐까 싶고 그것에서 시작해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기다림과 동거하며 산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이 그 기다림이 되기도 한다.

고도라는 이름에 그 무엇을 대입하더라도 당사자에겐 모든 것이 고도가 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고도가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우리 각자는 고도라고 부를만한 무언가를 가져야 하는가. 또는 기다려야 할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문제다.

그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존재로써 다만 존재 그 자체로써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물음표을 새겨 본다.

 

누군가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라거나 자다가 봉창 두드리고 앉았네 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고도가 오거나 말거나 고도란게 있거나 말거나 나는 씨나락이나 까면서 봉창이나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짧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작품이 가벼운게 아니다. 느낌표 가득했던 작품이라면 그 느낌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겠지만 커다란 물음표 앞에서 어줍잖은 말을 늘어놓아봤자 불필요한 말일 뿐이다.

 

책을 덮고 모든걸 잊어버린다해도 기다림이라는 화두와도 같은 생각 하나는 지워지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작품을 일컬어 불후의 작품이라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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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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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삶이란 투쟁, 지칠 줄 모르는 행동과 긍정,

세상의 벽에 뭉툭한 머리를 들이대는 의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늘 피난처, 위안

또 그래, 솔직히 인정하거니와, 아늑함, 그런 것들을 찾는

단순한 일에 흘러들어가버렸다. 이것은 충격까지는 아니라 해도

놀랄 만한 깨달음이었다. 전에는 나 자신을 단검을 입에 물고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맞서는 해적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망상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숨겨지고, 보호받는 것,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었다. 자궁처럼 따뜻한 곳으로 파고들어

거기에 웅크리는 것. 하늘의 무심한 눈길과 거친 바람의 파괴들로부터 숨는 것.

그래서 과거란 나에게 단지 그러한 은둔일 뿐이다. 나는 손을 비벼

차가운 현재와 더 차가운 미래를 털어내며 열심히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것이, 과거가 어떤 존재를 가지고 있을까? 결국 과거란 현재였던 것,

한때 그랬던 것, 지나간 현재일 뿐이다. 그 이상이 아니다. 그래도. 62p

 

어쩌면 삶의 모든 것이 삶을 떠나기 위한 긴 준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95p

 

나 역시도 당장에 떠나서는 본래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되어버릴 수 있다.

다만, 산다는 오랜 습관 때문에 죽기가 싫어질 뿐이다.

134p

 




 

2005년 맨부커상 수상 당시 "참사" 라거나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

할 책이라는 독설을 퍼부은 이도 있었다고 한다. 책읽기의 진도가

느렸기에 하는 말도, 재미가 없어 하는 말도 아니지만 읽은 사람

입장에서 절반 동의. 나머지 절반은 어떤 찬사에 동조한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것 같다.

막연한 생각이지만 이대로 읽고 말 것은 아닌 한 번은 더 읽지 않을까

하는 예감, 물론 틀린 예감이겠지만. 어떤 책은 반납하거나 팔아버

리기가 조금은 아쉬운데 이 경우가 그렇다. 또 어떤 책은 그것을

읽음으로써 단 한번도 떠오른 적 없는 기억을 상기시키거나 전혀

상관없는 예감이나 충동을 불러온다면 충분히 읽은 가치를 한 것이다.

 

 

어쩌다 정영목 번역가의 번역물이 얻어걸리곤 하는데, 그가 이견이

없는 좋은 번역가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의 번역물을 읽다보면 굳이

이런 단어를 써가며 번역을 해야하나 싶은 곳들이 있다. 그래서 나도

'굳이' 이런 걸 쓰게 된다.

2의 창작이라고 하나 번역자의 번역 문장들은 매끄러운 읽기가 첫째

조건이 아닐까 싶은데 남들이 안쓰는 단어나 특유의 표현들을 구사해

자기만의 냄새를 피워 자기를 드러내는건 번역가의 오지랖이 아닐까

나는 생각 한다. 물론 무시해도 될 문제라해도 무방하다.

실재로 국어사전을 씹어 삼켰다는 고 김소진 작가처럼 1차 창작자가

국어 고유의 결을 살려 자신만의 문체로 쓴다면 모를까 번역가라는 2

창작자는 자신의 스타일을 전달할 게 아니라 오역 없는 정직한 문장을

구사하고 자신은 그 뒤에 숨어야 한다고 본다.

오번역이 심심찮은 번역물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정영목 번역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정영목만의 특징도 아닐 것이며 제2 3의 또다른 번역가 역시

이런 번역을 하고 할 수도 있겠지. 그때마다 나는 불편을 불평하겠지.

 

참고로 이 책은 2007년에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랜덤하우스코리아)로 한번 출간된 적이 있었다. 절판된

작품이 다시 출간된 건 반가운 일이지만 아쉬운 점은

같은 번역자의 번역본이라는 점이다. 번역의 아쉬움을

토로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번역을 기대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같은 번역자가 과연 다른 번역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건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런 결정을 한

출판사 측에 실망하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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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검은 피
허연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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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으로 꽤나 고가에 거래 되기도 하는 희귀 절판 시집인

허연 시인의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20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왔다.


초판 1995620114,000

개정판 201442812,000


초판 당시 세계사에서 나왔던 것이 개정판은 민음사에서 출간 되었다.

20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책 가격도 4,000원에서 12,000원이 되었다.


절판 되었다가 재출간 되는 책 가운데 시집이 재출간 되는 경우는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최근 문학과지성사는 문학과지성 R 시리즈를 통해 절판된 시집 가운데 엄선하여 재발간하고 있기도 하다.


범위를 좁혀 재출간 되는 시집은 그만큼 시대와 세월을 건너뛰어서도

시의 생명력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고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시라는 것이다.

재발간 시집들을 찾아 읽어보면 재발간될만한 시의 힘과 매력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론이 길었다.


90년대 중반쯤 어디서 어떻게 허연 시인의 첫 시집을 구입했는지 기억이 분명치는 않다.

그것도 초판 1쇄본을. 당시만 해도 세계사 시인선은 꽤나 잘 나가던 시인선이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지금 봐도 그렇게 낡아보이지 않는 북 디자인이나 시인들의 면면이 주목할만 했다. 오래된만큼 제본 상태가 좋지 않아 낡은 티가 난다.


개정판에 대한 시집 소개글 가운데 일부를 옮겨와 봤다.


해설을 쓴 평론가는 죽었고, 시를 쓴 시인은 사라졌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시인 김경주를 비롯하여 수많은 불온한 청춘들은 이 시집을 필사하며 '돌림병'을 앓았다. ... 바로 그 전설의 시집 <불온한 검은 피>가 출간 20년 만에 부활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


바로 그 전설의 초판 시집의 자서부터 읽어 본다.


자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헛수고에 지쳤을 때

그 고통의 惡習과 매혹에 차라리 고개가 끄덕여질 때

를 썼다. 외따로 떨어진 무수한 유쾌한 말들의 조합

라는 것 - 이 내게는 面壁이나 환희에 가까웠다.

를 지나쳐버린 가족과 친구들,

나를 惡魔로 기억할지도 모를 사람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개정판의 자서도 함께 읽어 본다.


패배한 공화국이었지만 묻어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이 시집은 어떤 시집이야 라고 묻는다면 첫 번째로 실린 시의 일부를 들려주겠다.

 

지옥에서 듣는 빗소리

 

정의는 반드시 이기지 않는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교통은 얼마나 힘겨운가. 감화되지 않는다. 함께 사는 건

함께 죽는 것 치열하고 아쉬운 것


_부분


우리는 특별한 의심 없이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교육받는다.

세상 물정 모르던 어렸을 때의 일이다. 지금 다시 한번 당신들에게 물어본다.

 

정의는 반드시 이깁니까?

 

각자 어떤 대답을 하는지는 확인하지 않겠다. 나의 대답도 들려주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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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란 무엇인가 태학산문선 102
심노숭 지음, 김영진 옮김 / 태학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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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의 글을 읽는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불우했던 한 선비의 심사心思를 읽는다.

출세를 하지도 명망을 쌓지도 못한 한 남자의 마음과 말들을

오늘에 와서 읽어봐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인지상정임을 알아간다.

 

자칫 옛 선비의 글이라 생각하고 따분하거나 지루할 것이라 여길지 몰라

책 제목이기도 한 글을 무턱대고 한 편 읽어보자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

눈에 있다고 하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한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인가?

눈에 있지 않다면, 눈물이 나오는 것은 다른 신체 부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눈만이 주관하니 눈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있지 않다면, 마음이 움직임 없이 눈 그 자체로 눈물이 나오는 일은 없으니

마음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마치 오줌이 방광으로부터 그곳으로 나오는 것처럼

눈물이 마음으로부터 눈으로 나온다면 저것은 다 같은 물의 유로써

아래로 흐른다는 성질을 잃지 않고 있으되 왜 유독 눈물만은 그렇지 않은가?

마음은 아래에 있고 눈은 위에 있는데 어찌 물인데도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

 

_ 눈물이란 무엇인가」 일부

 





처연하고 쓸쓸하다.

제목이 된 눈물이란 무엇인가편에선 완고하기만 할 것 같은 선비의 마음을 읽고

선입견 가득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어찌보면 옛 선인들의 글들을 읽는 게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데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것 역시 선입견이겠지만

요즘 사람들의 글을 읽다보면 피로감 같은게 있달까, 물론 곤궁한 선비의 글이라고

마냥 맑고 투명하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시대가 다르다보니

그것이 환기하는 지점은 어쩔수 없는 것 같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물이란 것의 속성인데 어찌 눈물만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지 모르겠다는 저자의 일갈에 아득해진다

다시 한번, 눈물은 마음에 있는 것인지 눈에만 있는 것인지의 고민에

가서는 그런 고민의 골짜기에 가있는 저자의 처지가 아련하기도 하다

덩달아, 눈물은 어디에서 우러나오는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본다

우물에서 길어 올려지는 물처럼 눈물을 이끌어 내는 일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면 어디 있는지 모를 우물 바닥이 울렁하고 철렁하는지

물렁해지는 마음을 부러 외면하려 한다. 눈물이 싫은 것이겠지 아니면

눈물 나는 일들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때론 그저 한번 펑펑 울어서

다 지워버리고 싶기도 하지않나. 울수도 안 울수도 없는 일들이 부지기 수인게 인생이다.


이런 것을 담은 동영상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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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는 것들 - 최영미 시집 이미 1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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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한 고통


내게 칼을 겨눈 그들은

내 영혼의 한 터럭도 건드리지 못했어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리멸렬한 고통이 제일 참기 힘들지



최영미 시인의 신작 시집이 나왔다

이미 뜨거운 것들(실천문학사 20133) 이후 6년 만이다.

이번 시집은 지금까지의 시집과는 제작과정의 결이 좀 다르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챘겠지만 출판사 이름이 참 낯설다. 한국의 문학 시집들이 출간되는 출판사는 몇몇 군데로 한정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어떤 출판사의 이름도 달고 있지 않다.



시인이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출간 문의를 해보았으나 그 어떤 곳에서도

수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기 때문에 시인이 직접 출판사를 등록하여

독립출판 개념으로 시집을 출간했다고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현재 최영미 시인은 어떤

시인과 법정 다툼에 있다. 그 시인과의 다툼 때문에 기존 출판사들이

출간을 꺼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건 합리적인 의심이라 할 것이다.

이 의심이 사실이라면 진짜 좀 빡친다. 그래서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더 크기만 하다. 다다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시집은 더 특별하다고 할 수 있고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시집을 주목해야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울러 최영미 시인이 꼭

승소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최영미 시인하면 자동적으로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이 떠오를

것이다. 나 또한 그 시집으로 최영미 시인을 처음 읽었다. 그리고

돼지들에게란 시집을 통해 신랄한 시들을 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최영미 시인의 시집을 찾아 읽게 된 건 우연히

듣게 된 한 편의 시에 꽂혔기 때문이다. 우선 그 시부터 소개해 본다.



내버려둬


시인을 그냥 내버려둬

혼자 울게 내버려둬


가난이 지겹다 투덜거려도

달을 쳐다보며 낭만이나 먹고살게 내버려둬

무슨무슨 보험에 들라고 귀찮게 하지 말고

건강검진 왜 안 하냐고 잔소리하지 말고

누구누구에게 잘 보이라고 훈계일랑 말고

저 혼자 잘난 맛에 까칠해지게 내버려둬

사교의 테이블에 앉혀 억지로 박수치게 하지 말고

편리한 앱을 깔아주겠다,

대출이자가 싸니 어서 집 사라,

헛되이 부추기지 말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게 내버려둬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

제발 그냥 내버려둬



특히나


달을 쳐다보며 낭만이나 먹고살게 내버려둬

저 혼자 잘난 맛에 까칠해지게 내버려둬

집 없이 떠돌아다니게 내버려둬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

제발 그냥 내버려둬


같은 문장들이 시인이라는 이들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것 같아 좋았다.

시인이란 그런 사람들 같다 결국엔 길가에 고꾸러질걸 뻔히 알면서도

시를 짓겠다는 사람들. 미쳐야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최영미 시인은

생활고에 쫓겨 기초 수급자가 되기도 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이번 시집에는 어머니를 간호하며 쓴 시 수건을 접으며를 비롯,

1993년 발표한 '등단소감'이라는 시도 실려 있다. 물론 싸움의 중심에

서게 만든 괴물이라는 시도 수록 되어 있다.

최영미의 시는 스트레이트 잔에 따라 마시는 위스키 같다. 뭔가가

한 방에 후욱 하고 치고 들어온다. 이번 시집의 많은 시들이 그렇다.

애둘러 말하지 않는다. 쏘맥처럼 아무렇게나 말아 마셔도 좀처럼

취하지 않는 흐리멍텅한 시가 아니다.


내가 그의 삶을 알면 얼마나 알까마는 그의 삶도 스트레이트 하지

않을까 싶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겠다 싶은 삶 말이다. 이 바람에

이렇게 저 바람에 저렇게 휘어져야 사는게 편하다고, 편한대로 사는게

장땡 아니냐고 우리는 아니 나는 전전긍긍하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굽히지

않는 시퍼런 시는 우리 아니 나를 불편하게 한다. 가난은 불편한 것이지

죄악은 아니란 말이 있지만 언젠가부터 가난은 죄가 되어 우리 앞에 돌아

왔다. 가난한 시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가슴 속에 뭔가가 차올라 이내

묵지근하고 뜨거워진다. 결코 가난할 수 없다.



밥을 지으며


밥물은 대강 부어요

쌀 위에 국자가 잠길락말락

물을 붓고 버튼을 눌러요

전기밥솥의 눈금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밥물은 대충 부어요. 되든 질든


되는대로

대강, 대충 살아왔어요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쟁만큼 힘들었어요


목숨을 걸고 뭘 하진 않았어요

(왜 그래야지요?)

서른다섯이 지나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답니다!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라는 시집의 제목을 보며

나는 다시 올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다시 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서글픈 상념에 빠졌다

다시 올 수 있는 게 단 하나라도 있을까.

단 한 순간도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 시간은 모든걸 휩쓸고 갔다.

그 가운데 어떤 하나가 시간을 거슬러 다시 올 수 있을까

단 하나도 없다

그 답밖에 없다.

다시 오지 않는 순간에 대한 시인의 말을 읽어보며 영상을 마친다.

 

 

시인의 말

 

내 생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며,

정신이 사나워져 시를 잊고 살았다. 길을 가다 번뜩 떠올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주 멋진 구절이었는데, 나중에 아까워했지만…… 가슴을 두드렸던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다시 오지 않는 것들, 되살릴 길 없는 시간들을 되살리려는 노력에서 문자 예술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어느 봄날, 봉긋 올라온 목련송이를 보며 추억이 피어나고 노래가 나를 찾아왔다.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동안은 시를 영영 잃지 않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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