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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토 칸타빌레 ㅣ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평점 :
작은 소책자 크기의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고 난 후 든 느낌을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길지 않은 작품 속에 시종일관 유지되는 아슬아슬함이 이 소설 최고의 매력
말하지 않음으로 말해짐을 압살하는 소설
공쿠르상 수상작이기도 한 소설인 <<연인>>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1958년 작 <<모데라토 칸타빌레>>에 대한 인상이다
소설 내용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소설을 읽고 난 다음이나 할 수 있을 이야기,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근질했다.
단도직입적으로 후려쳐 물어보자면,
당신이라면,
상대방이 나를 죽여줬으면 하는 사랑, 또는
상대방을 죽여버렸으면 하는 사랑 아니면
내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사랑
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게 무슨 사랑이냐고 미친 집착일 뿐이라고 비난한다면 우리의 젊은 베르테르는 어쩌라는 것인지 싶다. 문학 작품의 주인공이든 알려지지는 않았겠지만 죽음으로 귀결된 사랑의 사례는 실재하는 것이고 나 자신이 그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사람 있을까?
물론 그런 것만이 사랑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절정 뒤의 파국으로 끝맺는 게 아니라 소설의 제목인 ‘모데라토 칸타빌레’처럼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 흘러가는 일상 속의 사랑 역시 사랑인 것이지만 인간이라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의 내면 속에 숨어있는 욕망의 폭발과 그 폭발에 자신을 투사해보는 주인공 안의 모습을 읽어가노라면 어떤 죽음이 되었든 죽음만이 궁극의 선택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 이 소설의 의미가 아닐까 싶고 이야깃 거리로 삼아보면 팽팽하게 의견이 갈리지 않을까 짐작도 해봤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결혼한지 10년이 넘은 안 데바레드는 피아노 학원에서 아들의 피아노 레슨을 지켜보고 있다
그 사이 학원 근처 카페에서 한 남자가 여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현장에서 여자를 살해한 남자가 죽은 여자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걸 보게 된다. 그 다음날 안은 아이와 함께 하는 산책길에 그 카페에 들르게 되고 카페에서 쇼뱅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그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안과 쇼뱅의 대화에 치중하지 말고 그 외의 문장들을 꼼꼼하게 살펴 가며 읽어야 작품의 맛을 좀 더 만끽할 것이라 할 수 있다. 보일듯 말 듯 끊길 듯 아슬하게 이어지는 암시의 문장들과 짧은 분량에서 오는 압축미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소설 초반 카페에서 쇼뱅과 이야기를 나누는 안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그가 여자에게 한 행동을 보면” 하고 여자는 가만가만 말을 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여자가 살았든 죽었든 별 상관이 없게 된 건 아닐까요? 절망 때문이 아니고서야 다른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될 수 있겠어요?”
내가 여기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여자가 살았든 죽었든 별 상관이 없게 된”거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정점이라고 할 마지막 문장을 가져와 본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뱅이 말했다.
“그대로 되었어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는 것이나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황 속에 처해버린 인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하며 또 그 선택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소설의 초반 안의 아들은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뜻을 다그치는 피아노 선생에게 고집스럽게 답하지 않는다. 소설을 다 읽고나서야 돌이켜보면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라는 일상의 무덤덤함을 작가는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침묵하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을까 나름의 짐작을 해본다. 그것은 곧 주인공 안의 심리상태로 읽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식으로 끼워 맞추는 독서를 해보면 이 소설이 얼마나 탄탄하고 밀도가 높은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참고로 뒤라스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밝히는 것인데,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 나는 비밀스레 겪어낸 개인적 체험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외설적이라는 평을 받을까 두려워 이 경험 주변에 벽을 쌓고 거울로 둘러놓았지요. 경험이 격렬했던 만큼 더욱 엄격한 형식을 택한 것이랍니다. 이 작품 속에는 내가 숨어 있어요. 다른 어느 작품에서보다 더욱더 말입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안과 쇼뱅은 카페에서 만나 줄기차게 와인을 마셔대는데 와인 없이 읽었던 나는 읽는 내내 와인 생각이 간절했다. 이왕이면 그들처럼 와인 한 병을 까놓고 독서를 시작하는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