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입장들 4
배수아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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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전에 잡썰

2. 간단한 줄거리와 작품에 대한 썰

2-1 그리고 어떤 한 문장

3. 마치며 하는 잡썰

4. 책 만듦새와 오탈자에 대한 빡침 이야기



1. 들어가기 전에 잡썰


어쩌다보니 배수아 작가의 책이 12권이 되었다. 참고로 모든 책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배수아 작가의 열혈 독자냐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오해는 금지) 절판된 책을 중고로 구입한 것도 있고 신간이 나오자마자 구입한 것도 있다. 그 가운데 반 정도 읽고 반 정도 안읽은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책은 여전히 인상 깊게 남아 있고 또 어떤 책은 읽긴 읽었지만 무얼 읽었는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한편으론 단지 배수아 번역이라는 이름 때문에 구입한 번역서들도 눈에 띄고 단지 배수아 작가가 호평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 외국 작가, 이를테면 토마스 베른하르트나 제발트 그리고 페소아. 최근 읽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까지 있으니 이쯤 되면 배수아 열혈 팬 맞네 라고 하겠지만 다시 한번 거듭 말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다만 뜨뜨미지근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데에는 인정하겠다.


어떤 작가를 말할 때 마니아적인 작가라고 한다면 그런 평판은 작가에게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그와 상관없이 나는 배수아 작가가 일반적으로 두루두루 읽히는 작가는 아니라고 본다. 일군의 확고한 지지를 보내는 독자층을 가진 작가가 아닐까 하는데 왜냐하면 당연한 소리지만 그 작품들이 가지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이야기 할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역시 그러했다.



2. 간단한 줄거리와 작품에 대한 썰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고 읽고 난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과연 제대로 읽고 제대로 작가의 의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아무리 책읽기가 주관적 영역이라 해도 너무나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자꾸만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어디로 들어가고 나와야 할지 입구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코끼리를 손으로 더듬는 정도가 아니라 울음소리만 듣고 코끼리를 안다고 하는건 아닌지 싶다. 눈 밝고 귀 밝은 독자들은 부디 코끼리 등에 직접 올라타 그 느낌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이 소설은 전체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모든 기억을 까맣게 잊은채 여행지 숙소에서 잠에서 깨어난 두 남녀가 어떤 무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2부는 1부와는 상반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듯한 여자와 그의 손님으로 등장하는 남자가 서로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 한다. 3부에서는 우루라는 여자가 보고 기억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1부와 2부의 이야기들이 혼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어쩌면 1부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만 아 이게 그건가 하는 것들도 있을 것 같다.

아주아주 후려친 줄거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이 뭘 하느냐 같은 줄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굵직굵직한 서사의 줄기를 따라가며 등장인물과 사건의 전개를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어떤 문장이나 문단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 본다거나 추상적 의미 속으로 자신이 밀려가는 독서체험이 재미라고 느낀다면 소설가 배수아의 애독자가 될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꼽아본 몇 문장을 읽어보고 이야기해보는 것이 이 소설의 리뷰가 되겠다. 인용하는 문장에 대한 코멘트는 소설적 맥락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첫 번째 문장이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갈 수가 있나요?

당신은 그 사람에게 가지 않아. 그 사람을 찾지도 않아. 그 사람과 마주치는 거지. 그래서 그 사람을 알아보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의미가 없어.

_26p


굵은 글씨체는 본문에서 강조된 것이다.

나는 이 문장에서 강조된 말들 가운데 마주치는이라는 것에 생각이 쏠렸다. 이 마주침에 엮어볼만한 본문 가운데 일부를 읽어보기는 하겠지만 납득을 바라는 건 아니다.


유일한 일, 눈부신 일, 압도하는 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 비범한 일, 매혹하는 일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거나 혹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때가 되면, 불현듯 기나긴 망각을 깨고 터져 나오게 될 일, 의미 있는 일, 혹은 아무런 의미를 찾아낼 수 없는 채로, 모든 의미를 몰아내 버리는 일의미와 모순되는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일, 오직 예감으로 이루어진 일. 그 일이 지금의 나 자신과 어떤 맥락을 형성하는지 절대 알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의 존재가 그 일이 있기 위한 어떤 맥락이었음을지금 현재 분명히 직관하는 일. 그 일은 잃어버린 시간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갖는 것은 삶의 가장 놀라우며 신비한 사건에 속한다그런 일이 있었다. 낯설고 놀라운 일이. 믿을 수 없는 일이. 범상하지 않은 일이.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일이.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 일생의 달빛처럼 내 위를 희게 지나갔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나를 관통하면서 지나갔다. 그것은 내게 일어났고, 동시에 그 일은 내게서 유예되었다. 나는 그것을 모르지만그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이미 일어난 일이겠지만, 그것이 다가오는 예감을 항상 느낀다. 나는 그것을 오직 모르면서 안다. 망각으로서만 그것을 기억한다. 그러다 아주 뒤늦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지연되어 효력이 나타나는 수면제처럼, 그것이 불현듯 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유예된 효력이 언제 나타나는지, 나는 절대로 알지 못한다. 냉장고 문을 열다가, 길을 걷다가, 책을 읽다가, 양파를 썰다가, 심지어는 잠을 자던 중에도, 그것이 의식의 표면을 찢어발기며 떠오른다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모르면서 안다! 마치 어느 날 문득 마주친 어떤 사물을, 어떤 대상을어떤 느낌이나 이야기를, 스스로 이유를 모른 채 물끄러미 주시하게 되고, 그것과 연관을 맺기를 간절히 원하다가, 마침내는 그것이 세상의 다른 어떤 우물도 아닌,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나왔기를간절히 그리워하고, 상상하고, 믿고, 마침내 알게 되는 것처럼.

그런 일이 있었다.

_83p


인용한 부분에는 네 번의 그런 일이 있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나 당신들 역시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딸려 나오는 어떤 일이,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표현대로 모르면서 알고 망각으로서 기억하는 일들은 굳이 몰라도 그만이고 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부지불식간에 길을 걷다가’ ‘양파를 썰다가마른 하늘에 번개가 번쩍 하고 빛나듯이 기억 속에서 튀어나오는데 그럴 때면 가던 걸음이 썰리던 양파가 모두 정지 된다.

나는 앞에서 마주치는이라는 말에 생각이 쏠렸다고 했다. 길을 가다 누군가를 마주치든 아니면 어떤 생각을 마주치든 이 마주침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왜 오는 것인지 어쩌자고 무방비로 마주쳐야 하는 것인지 같은 생각이 들 때 마다 대책은 속수무책임을 느낄 뿐이다.

그렇게 내던져질 뿐이다. 우리가 이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은 기억으로 시작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기억을 잃은 남녀로 시작해 각자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기억에 관한 소설은 아니다. 소설의 오독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앞뒤 맥락도 없이 문장을 인용하고 어줍잖은 말들을 늘어놓았는데 여기에 무슨 소설적인 줄거리와 사건이 있겠는가. 이 영상에서는 이 정도의 말들만 꺼내겠지만 한 문장을 마주치고 한 문단을 마주치고 잠시 책을 내려놓고 어떤 블랙홀 같은 세계로 빠져들면 거기에 시간이란 정지가 아니라 시간이 없는 세계가 되버린다. 생사를 넘나드는 찰나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엔 공통적으로 그 짧은 순간에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과 같은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과 사건이 전개되는 줄거리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쏙 빠지는 그런 소설도 좋겠지만 나는 딱히 그런 소설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어떤 몰입이 되었든 각자 즐기면 그만인 일이겠지만 내 안에 있는 뭔가를 건드리고 떠올리게 하거나 마주치게 하는 어떤 것들을 찾는 일 가운데 하나가 글자를 읽어대는 일 같다. 여하튼 이제 시작인데 이렇게나 지루한 말하기를 시키고 있으니 이 소설 읽기는 나름대로 대박이랄 수도 있겠다. 한편으론 흥행과는 거리가 먼 영화를 만들고 있는 대책없는 감독의 심정이 이 비스므리 한건가 싶기도 하다. (편집은 뭐 어쩌려고 이렇게도 지껄여대나)

두 번째 문장을 읽어 본다.


당신은 놀라운 일,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사실, 잘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고 손님은 대답한다.

그런데 그것은 대개 불완전한 파편의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삶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 불필요한 조각처럼 보이고, 그래서 우리의 의식은

그것이 무엇의 예감인지 알지 못하는 채 대개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 파기해 버린다.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 우리의 삶과 논리적 맥락을 이루지 못하는 이질적 파편들을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_106p


인간이 지속적으로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나가는 근원에는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이제는 과학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이 설명의 범주 안에 포함되었는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설명의 범위가 어디까지 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끝내 설명될 수 없는 미지의 영역도 남겨지긴 할 것 같다. 어쩌면 그래야만 한다. 우주의 끝의 끝을 넘어서까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그야말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해진 다음의 인간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더이상 설명할 티끌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인간은 아마 신이 되었을텐데 그땐 무엇을 할까.


일상이라고 이름 붙여지면 놀랄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연속이라하지만 연속이 아닌 한 장의 평면이다.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평면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설명의 대상은 밝혀지지 않는 것, 밝혀지고 있는 것인데 한 눈에 간파되는 평면은 설명이 불필요한 세계인 것이다.

뭐 이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릴 하게 하는 인용문장이었으므로 이 또한 만족한 독서의 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삼 세 번이라고도 했으니 지겹고 어처구니가 없어도 세 번째 문장까지는 가자.


나는 그 사진이 나 자신과 깊게, 이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더욱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관인지는 설명할 수 없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보는 순간 그냥 알게 되는, 휘발되는 향기와 같은 앎이 있다.

_121p


직관이라고 하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해와는 상관없이 그냥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휘발되는 향기와 같은 앎이라는 감탄을 부르는 표현에 역시나 소설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학습을 통하여 습득하는 지식으로 아는 앎이 아니라 살아오고 견뎌온

어떤 순간 찾아오는 예감으로써의 앎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한다면 왜 그런 앎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풍경으로 흐를까. 어쩌면 모든 예감이란 것은 다분히 결과론에 걸러지고 남은 과거의 확인일 뿐인걸까 싶다. 순식간에 휘발되는 증기를 붙잡을 수 없듯이 모든 앎이란 과거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앵콜 요청도 없지만 내 맘대로 하나 더 추가해 본다.


오래전 처음으로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를 본 다음, 우루는 그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우루는 자신이 발견했다고 믿는 어떤 아름다움에 대해 몇 줄 언급한 다음,

의례적인 작별의 인사말도 없이, 그런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하는 질문으로 돌연히 편지를 마쳤다.

/.../ 그는 우루의 질문에 대해 문득 떠오른 답을 전해 주기 위해 엽서를 보낸다고 했다.

그는 썼다.

아름다움이란 후회하는 것입니다.”

_134p



실재 인물인지 검색을 해봤다. 참고로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 는 리투아니아 계 미국인 영화 감독이자 시인으로 종종 "아방가르드 영화의 대부"로 불렸다고 한다. 192212월 출생하여 20191월 미국 뉴욕에서 사망했다.

인용한 문장의 상황이 실재인지 소설적 상황인지 확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실재로 엽서를 보내고 받았다는 것에 내기를 하라면 걸겠다. 감독의 작품 가운데 아름다움 이라는 키워드로만 짐작해보자면 2000년 작품인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가 아닐까 짐작만 해본다.


아름다움이란 후회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한참이나 붙잡고 있어 봤다.

아름다움과 후회는 일란성 쌍둥이 같은 것이겠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영원한 아름다움은 없을 테니 아름다움이 시들고 나면 아름다움의 자리엔 후회가 차지하는 거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자니 후회할 아름다움이라면 가지지 않는 게 나은 건가, 후회할 값이라도 한번 아름답게 피어보는 게 나은 건가. 해보고 후회하자 주의와 후회할 걸 왜 하냐는 주의로 나눠볼 때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서 저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가 싶었다.



2-1 그리고 어떤 한 문장


상점 깊숙한 안쪽에서 백발의 여인이 낯선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우루는 자신도 모르게 한 손을 뺨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이 악기 상점의 유리창에 비치며,

우루의 얼굴이 안에서 연주하는 백발 여인이 얼굴과 순간적으로 겹쳐졌다.

아니 처음부터 그것은, 우루가 아닌 백발 여인이 얼굴이었던가.

그리고 그날, 나는 죽는가? 이런 의문이 들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오늘은 위대한 날이므로. 희미하게 반사되는 유리창 너머로

우루는 미소지었다. 아니 그것은, 우루가 아닌 백발 여인의 미소였던가.

_132~134


이 문장만 따로 뺀 이유는 문장을 조금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왜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는지도 알 것이라 억측을 해본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별 것도 아닌 이런들 어떠리요 저런들 어떠리요인 것이다.

딱 한 마디 붙이자면 좀 오묘한 문장이란 것이다. 내 말은 여기 까지다.



3. 마치며 하는 잡썰

소설 리뷰를 빙자하여 소설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장황한 자뻑 독백을 구구절절 해봤다.

이런 것도 따지고보면 소설이 주는 영향력임은 분명하다. 주인공이 어떻고 반전이 어떻고 하는 소설이었다면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고 끝냈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썰은 풀지 못했을 것이다.



4. 책 만듦새와 오탈자에 대한 빡침 이야기


이 작품은 출판사 워크룸프레스에서 입장들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고 있는 한국문학 시리즈 가운데 4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의 책 만듦새에 관해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보는 바와 같이 이 시리즈는 앞표지에 독특한 그림만 있고 저자 이름이나 제목 조차 표시하지 않고 있다. 책등, 업계 용어로는 세네카에 그런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좀 쌩뚱맞다고 해야할까 무려 비니루!가 씌어져 있다는 것인데 난 이건 좀 아니올시다 같다.

본문의 편집도 양끝맞춤이 아닌 낱말 기준 왼쪽맞춤이다. 이런저런 디자인적인 면에 공을 많이 들이긴 했지만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같기만 해서 썩 달갑지만은 않은 시리즈이지만 네 권까지 나온 현재 나는 세 권을 구입했고 한 권은 읽다 말고 내다 팔았고 두 권을 가지고 있고 다음에 나올 다섯 번째 작가의 애독자라서 내심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선정된 작가들의 면면만은 인정하겠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분노폭발 까진 아니지만 읽으면서 짜증을 유발케 한 것은 눈 침침한 독자가 보는데도 160여 페이지 짜리 단행본 한 권에 무슨 오탈자가 8개나 발견 되는가 하는 것이다. 오탈자의 위치는 밝혀놓겠다. 한두 개는 애교로 봐주고 서너 개 까지는 뭐 그렇다 치겠다.

500 페이지 600 페이지 짜리 벽돌책이라면 이렇게 대놓고 뭐라 하지도 않겠다. 3교가 아니라 2교만 봐도 발견하고 고칠 수 있는 정도의 오자가 특히나 중후반 부에 몰려 있다는 건 그만큼 교정자가 안이했다는 것이다. 출판사를 탓해야 하나 외주 교정자라면 한 개인의 부주의를 탓해야 하나. 답답할 뿐이다. 최근에 읽은 500페이지 짜리 소설에서도 여서일곱 개 오탈자가 있던 탓에 보이는 과잉반응인가. 아 진짜.


21p 8 생각이 날거라고 더붙였다. : ->

79p 7 후추과 소금을 : ->

102p 6 산으로 올라갔다고 했요. : 했요 -> 했어요

102p 12 남아 있었고 우리를 그것을 : 우리를 -> 우리는

123p 11 역겨움으로터 : -> 부터

141p 9 우루는 승려는 따라가던 : 승려는 -> 승려를

149p 7 교실의 차들은 : 교실의 창들을 또는 교실과 차들을(확인 필요)

158p 8 소년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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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문학과지성 시인선 532
이영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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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그런건 아니지만 어떨 때 시집을 사러 가거나 읽고 싶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기승전결과 인과로 짜여진 소설의 숲 같은 빽빽함 속으로 들어가는 게

내키지 않거나 심드렁한데 그럼에도 어떤 활자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 때가 그렇다고 하겠다

단박에 어떤 상황 속으로 내던져지는 느낌이고 싶을 때라고 하겠다


소설과 같은 산문은 늪에 빠지듯 서서히 빠져들지만 시는 순식간에

허공에서 수중이라는 다른 세계로 내리꽂히는 다이빙과 같은 그런 것이다.

물론 나는 다이빙대에 한번도 서본적은 없지만

시는 그렇게 단박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게 마약같은 중독성이라고 해두자





책꽂이의 시집 가운데 읽지 않은 것도 많고 읽었다 하더라도 그걸

모두 외우고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한두 번 읽었더라도

언제 읽었냐 싶은 시집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기시감을 안고 있는 책꽂이의 시집에 선 듯 손이 가지 않을 때

그럴 때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시집이나 신간 코너에서 아무거나 뽑기를 하듯 펼쳐 본다

어떤 문장이나 시 한 편이 꽂히는 시집이면 앞뒤 보지않고 그 시집을 구입한다

뒤쪽부터 보든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든 아니면 차례의 제목만 훑어 보다가

눈길이 멈추는 제목의 시부터 본다

한 권의 시집에 묶인 시들 가운데 단 한 편의 시만 좋아도 괜찮은 시집 읽기였다고 생각한다

설령 단 한 편의 시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해도 시집을 붙들고 있는 그 시간만은

나는 여기에 있지 않고 문장을 따라 어딘가를 배회하거나

나를 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말로 개이득인 것이다



무턱대고 서점에 가서 최근 발간된 이영주 시인의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이라는 시집을 발견했다

차례를 거꾸로 훑어가다가 제목에 끌려 읽은 <우물의 시간> 이란 시의 일부분을 소개해 보겠다



우물의 시간


나는 잡고 있던 너의 손을 버리고 문밖으로 나왔지. 홀로 있을 때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는데 함께 있을 때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둘이 된다.


신발을 벗고 우물을 들여다본다. 물속 깊은 그림자 속에 빠져들어 있으면 바닥이 되고 싶다. 불행은 물속으로 녹아드니까. 자신의 그림자를 죽은 자 위에 놓아두면 안된다는 옛말은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감추려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는 잠에서 흘러나와 잠으로 가는 것이니까.


_부분


전체를 모두 읽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시지만 감질맛 나라고

궁금하면 시집을 사보라고 일부를 읽었다.


그렇다면 왜 이 <우물의 시간> 이란 시에 감응했을까 하는 것을 말로 옮기는 것은

道可道非常道인 것과 같다고 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건가.

일찍이 조용필 옹께서도 이렇게 노래하셨다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_조용필


살다보면 때론 몰라도 그냥 닥치고 있어야 할 때도 있더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몇 마디 보태보자면 오래된 우물이거나

더이상 물이 올라오지 않아 입구를 닫아놓은 인적 끊긴 우물이거나

여하튼 우물가에 서서 어둡고 서늘한 우물 바닥을 내려다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우물이 등장하는 소설의 한 장면을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거나

가슴 속에 오래된 우물 하나가 있어 틈날 때마다 그 우물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괜찮겠다.

그런 경험이나 상상을 하고 있다면 이 시에 감응하지 않을까 싶지만

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읽히는 게 시라서 뭐라 말은 못하겠다.



4월의 해변


해변을 걷다 보면 내가 자꾸 떠내려온다. 발이 많으면 괴물처럼 보이지. 나는 편지를 쓰러 해변에 자주 온다. 무엇인가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 젖어버렸다. /.../

오래된 과자 봉지를 뜯으며 다 죽었는데 발처럼 많아지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너무 살려고 애쓰지 마. 물을 뚝뚝 흘리며 소녀들이 모래사장을 걸어간다.


_부분


내륙 분지 출생인 내가 바다를 처음 본 건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이었다.

탁 트인 수평선을 처음 본 꼬꼬마에게 바다는 그야말로 네츄럴 쇼크였다.

한산도를 가기 위해 탄 작은 배에서 내려다 본 검푸른 바다에서는 금방이라도

짙푸른 손이 스윽 하고 수면 위로 올라올 것 같은 무서움의 기억도 선명하다.

한편으로는 신발을 벗고 걸어본 백사장의 느낌과 쉼없이 밀려왔다 가기를

반복하는 파도와 하얀 포말의 느낌 역시 신기하기만 해서 한참을 바라봤던 것 같다.

바다에 대한 처음의 기억과 그 이후 한참이나 지나 찾아갔던 겨울바다의 상념이

어지럽게 뒤섞여 바다나 해변이라고 하면 고착된 한 장의 이미지가 되었다.

어떤 시는 오래된 기억을 굳이 끄집어내 준다. 멀어지지만 사라지지 않고

다시 가까워지는 파도처럼 잊었는가 싶은 기억을 불쑥 단박에 끼얹어 준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꾸 떠내려 온다’.

한번씩 해변을 거닐어 보고 싶다는 것은 잊었다는 것조차 잊은

어떤 기억이 튀어나오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많은 페이지를 접었지만 그 가운데 두 편의 일부를 소개해 본다


우유 급식


이렇게 깊고 깊게 파고드는 날이면 연필을 깎고 또 깎습니다. 저는 이제 편지를 쓸 사람이 없네요. 제게는 도착할 편지가 없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아무에게도 쓸 수가 없는 걸까요. 너무 미안해서 죽이고 싶은 걸까요. 다른 세상은 없으니까. 다른 너도 없으니까. 미안하면 미안한 채로 이를 갈며 뜬눈으로 잠이 들어야 하니까. 여기에는 여기도 없으니까. 어두운 시간은 어두운 곳에 없고, 쌓인 편지를 어느 시간 안으로 버려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_부분



여름에는


내가 아는 밑바닥이 있다. 물이 가득하지. 나는 한 번씩 떨어진다. 물에 젖어 못 쓰게 되는 노트. 집에는 빈 노트가 너무 많다. 버릴 수가 없네. 밑바닥이 들어 있다. 자꾸만 가라앉지. 어디도 내 집은 아니지만. 첨벙거리며 잔다. 베개가 둥둥 떠내려간다. 괜찮아. 어차피 바닥이라 다시 돌아와.


_부분


이런저런 말들을 덧붙일 수도 있었겠지만 괜한 말로 감상에 방해가 될까 싶어 부분만 소개했다다음으로는 이 시집을 열고 있는 첫 시와 닫고 있는 마지막 시를 소개해 본다. 아무렇게나 시를 배치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의미 같은 걸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십대


불과 물. 우리는 서로를 불태우며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는 망해가는 나라니까. 악천후의 지표니까. 우리는 나뭇가지를 쌓아놓고 불을 붙였고, 오줌을 쌌고, 자주 울었고, 나무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_전문



연대


어둠이 쏟아지는 의자에 앉아 있다. 흙 속에 발을 넣었다. 따뜻한 이삭. 이삭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나는 망가진 마음들을 조립하느라 자라지 못하고 밑으로만 떨어지는 밀알. 옆에 앉아 있다. 어둠을 나누고 있다.


_전문


아주 간략하게 살펴본 이영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었다. 뭔가 코드가 맞다 싶다면 일독,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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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린 울만 지음, 이경아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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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보니 아버지 나이 48 엄마 나이 27

나의 엄마는 4.5번째 아내였다

최고의 영화 감독 아버지

최고의 여배우 엄마

 

린 울만의 소설 <<불안>>을 읽기 전에 몇 가지 검색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책 뒷표지에 실린 첫 문장 때문이었다

 

스웨덴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과 노르웨이 배우 리브 울만

이 위대한 예술가들을 부모로 둔 여자아이

 

물론 이 말은 사실이겠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검색해 보면 쉽게 확인이 가능한데 그의 부모는 그야말로 대단한 유명인사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바로 이 소설의 작가 린 울만이고

자신의 부모에 대해 쓴 소설이 이 작품이다

 

그렇다면 소설 <<불안>>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인데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부터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과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존 인물들-부모님이나 아이들, 연인들, 친구들, 적들, 형제들, 삼촌들, 이따금 지나치는 사람들-에 대해서 글을 쓰려면 그들을 허구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게 숨결을 불어넣는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기억하는 것은 다시 또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매번 똑같이 경탄하는 행위다. /.../ 하지만 어떤 일은 아마도 내가 지어냈을 것이다.

373~374p

 

아버지가 일정표에 내 이름을 쓰는데 손이 떨린다. /.../ N 하나, N 하나, 자 끝났다.

484p

 

참고로 작가의 이름 철자다. Linn Ullmann



우리가 소설을 읽는다고 할 때는 작품에 속아야만 한다. 속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따지고 드는 건 비평가들이나 할 짓이고 소설을 읽는 독자의 바른 자세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읽다보면 이 부분은 경험하지 않았다면 못썼겠다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이 이 소설을 읽는 맛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드러내서 좋을 게 없어 보이는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시시콜콜한 모습들과 카세트테잎 녹음 작업을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 속의 감정 부침들이 그러했다.

 

 

자식들은 부모가 전매특허처럼 쓰는 단어와 표현을 알고 있지 않은가. 자식은 부모가 입버릇처럼 쓰는 말들을 알기 마련이다.

396p

 

 

이 소설은 반전이 있다거나 하는 소설은 아니다. 줄거리라고 해봐야 어린 여자아이에서부터 아버지의 사망 후까지 양친에 대한 담담한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게 하는 힘은 사실적 기억이든 왜곡된 기억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라는 공통적 기억 가운데 다른 집 부모와 자식은 어떠했을까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소설 속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냥반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는 성격과 지위의 소유자들이다.

그 두 인물을 검색하다 본 것 가운데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지독하게 영화를 찍는 것 때문인지 악마 감독이라나 뭐라나 그런 말도 있었고 배우 리브 울만에 대해선 실생활에서 대단히 잘 웃는 놀랍도록 쾌활한 사람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소설 속에서 그 딸이 이야기하는 어머니 리브 울만은 결코 쾌활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 물론 사람은 자신의 위치마다 꺼내 쓰는 가면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부모님이 /.../ 아이를 키우는 법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크면서 깨달았다. 자식을 향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분명 사랑하셨다. 내 말은 양육에 대해서 몰랐다는 뜻이다.

396p

 

 

주인공인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나이는 마흔여덟이었고 어머니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

거기다 결과적으로 보면 내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어머니는 다섯이며 나는 여덟명의 형제 자매가 있다. 그리고 나의 친어머니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어머니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정식 결혼 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식인 것이다. 모계 성을 따르고 있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앞서 올린 책보관함 영상에서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 같은 걸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언급하며 나름 이 소설에 대한 기대 또는 나름대로 짐작한 게 있었다면 그것과는 좀 다르게 전개가 되었다. 뭔가 극적이거나 반전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주 냉소적으로 흐르거나 할 줄 알았다.

만약 이 소설이 완전한 픽션이었다면 그게 가능했을 것 같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나 상황을 극한으로 몰아부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점과 맞물릴 수도 있는 아쉽다고 해야할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점은 <<불안>>이라는 소설의 제목이다.

 

원제 Unquiet [형용사] 침착하지 못한, 불안해하는, 동요하는

 

불안이라고 번역한 제목이 틀렸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불안이라고 하면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적 느낌의 용어 같아서 소설 제목으로써의 맛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불안이라는 말은 너무 의미가 넓고 큰 말이 아닐까 한다.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직접 불안을 언급하는 몇 문장을 옮겨와 본다

 

왜냐하면 아침이 다가올수록 더 불안해지거든. 121p (아버지의 말)

아버지는 작별 인사를 하면 밤에 잠을 이룰 수 없고, 불안과 위통이 생긴다. 129p (어린 주인공의 말)

엄마는 곧 떠날 것이다. 캐더린은 공포의 의미를 모른다. 303p (어린 주인공의 말)

물론 엄마를 잃을까봐 두려운 마음은 그대로였다. /.../ 내게 이런 일들을 억지로 시키는건 내 망상이라는 걸 나도 알았다. 314 (어린 주인공의 말)

눈앞에 떠오르는 나는 너무 큰소리로 말하고 너무 빠르게 걸으며 상대해 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불안에 집어 먹힌 여자다. 389p (중년의 주인공의 말)

 

불안의 극단까지는 아니라도 좀 더 깊은 불안의 심리나 상황들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야 제목과 어울리는 소설이 아니냐는게 내 생각이지만 제목을 지우고 읽는다면 작품의 전체적인 균형은 잘 잡았다고 본다. 자극적 소재나 대단한 반전이 당연시 되는 세상의 유행에 젖어 이거 아니면 저거여야 한다는 식으로 편향된 내 성격 탓일 수도 있겠다.

 

소설의 제목을 소홀히 여기는 작가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린 울만 역시 아무렇게나 제목을 Unquiet 로 짓지는 않았을 것인데 솔직히 나는 이 소설이 불안에 대한 소설인지 그게 아니라고 해도 불안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제목 따로 내용 따로인 소설들도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책 보관함 영상에서 제목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듯이 만약 제목이 <<불안>>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눈여겨 보지도 읽지도 않았을게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제목에 대해 투덜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으론 바로 그 제목 때문에 낯선 작가의 소설을 만났기도 했으니 잘 지은 제목인건가?(이 뭔 뜬금없는 소린지)

 

늙어가는 건 일이다. 늙어가는 육신이 뇌를 고분고분 따르도록 설득하고, 결과적으로 뇌가 그 자신에게 고분고분 따르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363p

 

총평

 

자전소설의 한계라느니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고 떠들었지만 그런 점들은 괜한 트집일 수도 있을만큼 독서욕구를 끝까지 이끌고 가주었다. 독특한 소재는 아니지만 픽션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자식이 그 부모에 대해 차분하게 써나갔다는 점이 장점이자 매력으로 읽혔다. 지독하게 깐깐하고 고집스럽던 아버지가 치매증상을 보이고 사망하기 까지 그 옆에서 지켜보는 자식의 심정을 잘 그려냈다. 그런 점에 끌리는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작품이란 것이다. 그리고 허구의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로써의 두 유명 인사의 개인사나 가족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더욱 추천할 만하다 하겠다.

 

 

오자 몇 개

 

227~228p 묵는다 묶는다 혼용

268p 밑에서 첫 줄 딱 한 번 나는 프렌치 양'' ->

301p 위에서 첫 줄 전에 한 번 들''라고 -> 들르라고

411p 밑에서 첫 줄 엄마는 내가 파리'' 가기를 원치 -> 파리''

441p 밑에서 셋째줄 돌아''기를 -> 돌아''기를

490p 위에서 10행 스위치를 킨다 -> 켠다

14행 스위치를 켠다 -> O

15행 스위치를 키면 -> 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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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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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상은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원본과 편집본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작품 내적인 이야기는 아니고 편집 과정에서 일어난 작품의 분량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원본이라는 건 작가 자신이 탈고를 마쳐서 출간한 상태의 판본이고

편집본이라함은 카버의 전담 편집자 고든 리시에 의해 수정되어 출간된 판본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우리가 읽는 소설은 작가가 쓴 최종 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일반 독자인 우리는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기회는 없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책이 있다. 지금 살펴 볼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이 바로 그것이다. 원본과 편집본이 정식으로 출간되는 경우는 진짜 희귀한 경우가 아닐까 싶은데 완전 대박인거다.(나만 그런가?)





레이먼드 카버는 단편 소설로 유명한데 그의 단편을 읽다보면 짧아도 너무 짧아서 서너 페이지밖에 안되는 것을 읽고나면 이게 뭐지 스러울 때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작스레 끝난다든가 뭔가 상황 전개가 이상하다든가 등등 설마 작가가 이렇게밖에 안썼을까 싶을때가 있는데 편집자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판본을 읽어보면 좀 이해가 된다

어느 판본의 우열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궁금하다면 직접 비교 독서를 해보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술안주거리로 참 좋을 법하다.


참고로 여겨두어야 할 것은 원서가 아니라 번역된 판본에다가 역자 역시 다르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 한번 살살 털어보기로 하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레이먼드 카버 전집 가운데

2005년 출간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10년 후

2015년 출간된 풋내기들이 두 권을 비교해 볼 것이다.


카버에게서 원고를 받은 편집자는 원고의 거의 50%를 쳐내고 출간했다고 한다.

단순하게 책의 전체 페이지 수를 비교해봐도 알 수 있는데 각각 248p456p

거의 200여 페이지 차이가 나는데 만약 여러분이 작가라면 어떤 기분일까


다음 화면은 각 단편들마다 비교해 보고 정리해봤다

편집자본과 원본의 각 단편들의 변화된 페이지 수를 주시해보면 된다

빨간색 밑줄이 쳐진 것은 절반 이상의 차이가 나는 작품들이고

초록색 밑줄은 그보다는 차이가 적지만 무시할 수 없어서 표시해본 것이다



편집자본의 <목욕> 같은 경우는 15p인데 원본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48p 하고도 5줄이다. <목욕>의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 이후 약 25페이지 분량을 편집자가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당신이 만약 소설을 써보고 싶다면 어떤 부분이 군더더기 같은지 이런 비교를 통해 조금의 힌트를 얻을수 있지 않나 싶다. 고든 리시라는 내노라 하는 편집자가 거추장스런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했는데 삭제된 부분을 찾아봄으로써 늘어지는 정황과 표현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습작기의 소설들이 재미가 없거나 지루한 이유다. 소설을 썼지만 소설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작품을 직접 쓰는 사람은 주관적으로 몰입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거리두기에 실패하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최초 독자는 작가들의 지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타인들에게 읽혀보거나 글쓰기 수업에서 합평을 거쳐 의견을 들어보는 과정을 통해 본인은 느끼지 못하는 군더더기를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편집자본과 원본 가운데 편집자본이 항상 더 나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반드시 작품에 대한 조언이나 편집자의 의견대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두 가지를 비교해 가면서 읽어야 하느냐고 한다면 내 대답은 글쎄요 다

어느 쪽을 읽든 모두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이니까.


한가지 더 비교해 보자


<미스터 커피와 수리공 양반> <다들 어디 있지?>의 첫 문단을 비교해 본다

여섯 페이지와 스무 페이지, 이 작품도 거의 3배의 분량 차이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원서의 문장을 모르는 상태에서 역자도 다른 번역본으로 비교를 한다는게 적절한 비교는 아닐 듯 하지만 가볍게 한번 비교해 보자


번역 문장의 차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도 한번 비교해 봤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번역의 차이가 아니라 원서의 차이로 인해 다른 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금요일 정오에서 금요일 밤으로 바뀌었고

마흔넷이라는 나이가 쉰넷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오리지날 원고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오탈자를 고쳤다는 편집자 서문을 참고하면 될 문제 같다.


이런 식으로 원고의 분량을 기준으로 하는 기계적인 비교를 재미삼아 해봤다

축소 편집된 원고와 오리지날 원본과의 비교를 통해 작품 내적인 변화랄지 아니면 의미의 변화 같은

심층 분석까지 할 깜냥은 없는 사람이라 거기까진 살펴보지 못했다.

소설 읽기와 쓰기에 한층 더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비교를 통해

의외의 쏠쏠한 재미와 지식을 얻을수 있을 것 같다.

땡기는가?

땡기면 한번 땡기시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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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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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느날은 인생이 싫은 날도 있다

그럴 때 누군가는 쏘주를 마시기도 하겠고

또 어떤 누군가는 지독하게 싫은 인생에서 그만 퇴장해버리기도 한다

그 어떤 결정을 하든 인생의 주인은 각자이므로 각자의 결정이 있을 따름이다

개중에 어떤 이는 괜히 서점가를 서성이다가 시집 한 권을 들고 오기도 한다고 내게 얘기 했다


잔소리 그만 하고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라는 시를 일단 읽어 보자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항상 산다는 것이 좋았었는데늘 그렇게 말해왔는데.

내 전신을 이리저리 만지면서내 말 뒤에 숨어 있는

혀에 한 방을 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오늘은 턱이 내려와 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잠시 머물게 된 이 바지 안에서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

그리도 많은 세월이었건만 또 다른 세월이 기다린다니!’

우리 부모님들은 돌 밑에 묻히셨다.

부모님들의 서글픈 기지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형제들나의 형제들은 온전한데,

조끼 입고 서 있는 나라는 존재.


나는 산다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삶에는 나의 사랑하는 죽음이 있어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파리의 무성한 밤나무를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해야 한다.

이거와 저거는 눈저것과 이것은 이마...’

그리고 이렇게 되풀이한다.

그렇게 많은 날을 살아왔건만 곡조는 똑같다.’

그렇게 많은 해를 지내왔건만항상언제나...’


아까 조끼라고 했지부분전신,

열망이라고도 했지. ‘울지 않으려고라는 말을 거의 할 뻔했지.

저 옆 병원에서 정말 많이 아파서 고생깨나 했지.

내 온몸을 아래에서 위까지 다 훑어본 것은

기분 나쁜 일이긴 하지만뭐 괜찮아.


엎드려서 사는 거라 해도 산다는 것은 어쨌든 늘 기분 좋은 일일 거야.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그리고 많은

세월이었건만 늘언제나항상항시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니!’

이렇게 나는 늘 말해왔고 지금도 말하니 말이다.





2017년 가을 어느날, 더 정확히 말하자면 98일 그날의 날씨는 좀 흐렸거나 다소 쌀쌀했다. 시집의 제목만 보고 냅다 서점으로 달려가 시집을 구입하고 찾아간 카페에서 허기진 듯 여기저기 페이지를 훑어봤던 기억이 고스란히 sns에 남아 있다.


산다는 것이 항상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때론

자기를 향해 한 방 쏘고 싶을만큼 인생이 싫은 날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가하면

엎드려 사는 거라 해도 사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어찌되었건 저 앞에서 세월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고도 하니까

이 시를 어떤 시선으로 읽을지는 독자의 마음에 따라 달렸다

이렇게 읽어도 되고 저렇게 읽어도 된다

살기 싫을 때 읽어도 되고 살아볼만하다 싶을 때 읽어도 된다


시인 세사르 바예호는 1892년 페루 광산촌 산티아고 데 추코 출생이다

첫 시집으로 검은 전령이 있고 대표작으로는 트릴세가 있다.

파블로 네루다와 동시대 시인이기에 두 사람은 곧잘 비교 되기도 했는데

네루다는 바예호에게 바치는 송가에서

하늘과 땅, 삶과 죽음에서 두 번이나 버림받은 내 형제라고 바예호를 추모했다.

193846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는데 어쩌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 했는지 모른다


흰 돌 위의 검은 돌이라는 시에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파리에서 죽겠다 /.../

어쩌면 오늘 같은 가을날 목요일일 거다 


라고 했는데

1938415일 목요일 파리에서 의식불명 상태가 되며 금요일에 사망했고 비가 내렸다고 한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선집은 1998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시집의 개정증보판이다. 그당시 외환위기의 국내 사정을 생각해 그나마 밝은 제목으로 정했다고 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역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나 이번 개정판에서는 스페인 내전을 가장 생생하게 그린 시집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의 전편을 번역하고 수록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한다.


다음은 첫 시집 검은 전령에 수록된 아가페라는 시를 소개해 본다


아가페


그 누구도 오늘 나에게 물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이 오후에 그 아무것도 내게 청하지 않았습니다.


찬란한 빛의 행렬 아래에서

단 한 송이 묘지의 꽃마저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 너무도 조금밖에 죽지 못했음을 용서해주세요.


이 오후에, 모든 이들은

내게 묻지도, 청하지도 않은 채 지나갑니다.


저들이 잊은 것이 무언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손에서는 남의 것처럼 이상합니다.


밖으로 나갔습니다.

모두에게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어서요.

여러분이 잊은 거, 여기 있어요!


이 인생의 오후에는 사람들이 왜 내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리고 내 영혼은 남의 것이 됩니다.


그 누구도 오늘 제게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후에 나는 너무도 조금밖에 죽지 못했습니다



책 뒷표지에 체 게바라의 유품 녹색 노트에 가장 많이 필사된 시인이라는 카피가 눈길을 끌면서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띠지 카피 또한 와닿는다.

한편 미국 소설가이자 시인인 찰스 부코스키는 바예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우리는 대부분의 예술에 넌더리가 난다. 바예호는 예술가로써 쓰지 않는다.

그는 한 인간으로 쓴다.


다음은 사후에 출간된 유고 시집 인간의 노래에 수록된 시다



파리, 193610


이 모든 것에서 떠나는 유일한 존재는 나.

이 의자를 두고 떠나리. 바지도 두고,

나의 위대한 상태, 나의 일도 접어두고,

산산조각이 나서 갈라져버린 숫자도 두고.

이 모든 것에서 떠나는 유일한 존재는 나.


엘리제 궁전 앞의 거리, 달나라의

이상스러운 거리를 한바퀴 돌면서

내 주검은 떠난다, 내 요람도 떠난다.

사람들에 에워싸인 나처럼 생긴 인간은

혼자, 멀찍이 떨어져서 한바퀴 돌면서

그림자를 하나씩 둘씩 떠나보낸다.


나만 모든 것에서 떠난다. 나머지 모두는

알리바이 때문에 남아야 한다.

내 구두, 구두의 입, 구두에 묻은 진흙,

단추가 채워진 내 셔츠의

접힌 소매까지도 그대로 남아야 한다.



가까운 지인이나 누군가의 죽음으로 우리는 부재라는 느낌을 알게 된다.

그 부재의 대상을 바로 자신으로 상정해보면 이 시에 한발짝이라도 더 다가가는 읽기가 될 것 같다. 특히나 마지막 연의 두 행


단추가 채워진 내 셔츠의

접힌 소매까지도 그대로 남아야 한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얇은 종이에 살을 베이는듯한 그런 서늘하면서도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걸치고 있는 옷가지에서 몸만 유령처럼 빠져나가고 남은 옷가지가

텅빈 벽에 걸려 있고 시인의 시선은 주인없이 접혀진 소매자락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해보자면 죽음이란 그리고 부재라는 상황을 이렇게 선명하게 쓸 수가 있나 싶다.


시 한 편이나 시집 한 권의 물질적 환산 가치가 얼마나 될까 하면

아무렇지 않게 사마시는 커피 한 잔보다 훨씬 못하다거나 그것도 양호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도 맞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곱만큼의 물질적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괜한 시간 낭비 인생 낭비라 해도 시를 읽는 사람은 읽는다. 제목처럼 인생이 뭣 같은 날 그 어떤 시집이 되었든 시집 한 권을 골라 들고 아무 쪽이나 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다고 뭣 같은 인생이 더 뭣 같아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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