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나쁜 연애 민음의 시 118
문혜진 지음 / 민음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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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고 거칠고 원색적인 말들을 써서 한 편의 시를 써내는 의도는 무얼까
어쩌면 한 편의 시가 주는 인상을 그런 이미지이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문혜진은 서투르다, 라고 감히 나는 말한다
표창처럼 날카로운 낱말들이 한 페이지에 여기저기 박혀있지만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무늬는 희미하거나 감지하기 어렵다
하나하나의 표창들만이 불편할 뿐
뭔가 불편하게 읽히고 보기 싫은 이미지들을 구축하고자 하는게 의도라면
한번 더 걸러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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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민음의 시 131
김소연 지음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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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림망을 들고 우리는 낙조 앞에 서 있었다
어망을 던져 어망을 포획하는 고깃배와 같았다

자기 생을 낚기 위하여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꺼내어
떡밥처럼 매단 것과 같았다



행복한 봄날

너의 가시와 나의 가시가
깍지 낀 양손과도 같았다
맞물려서 서로의 살이 되는

찔려서 흘린 피와
찌르면서 흘린 피로 접착된
악수와도 같았다

너를 버리면
내가 사라지는,
나를 지우면
네가 없어지는
이 서러운 심사를 대신하여

꽃을 버리는 나무와
나무를 저버리는 꽃 이파리가
사방천지에 흥건하다

야멸차게 걸어잠근 문 안에서
처연하게 돌아서는 문 밖에서
서로 다른 입술로 새어 나오는 한숨이 있었는데
흘리는 눈물의 연유는 다르지 않았다

꽃봉오리를 여는 피곤에 대하여도
이 얼굴에 흉터처럼 드리워진
나뭇가지 그림자에 대하여도
우리의 귀에 새순이 날 때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하자



누군가 두고 간 우산처럼
공원 벤치에 앉아
저녁을 기다리자니

몸 늙는 대로
마음 늙기를 원해 보네
마음 가는 곳에 몸이 가 있어야 했던 청춘은 그러나 노예처럼



이 청승. 이 청승의 상쾌함. 가구도 없는 마루의 청승.
한밤중에 빨래를 개는 청승. 벽지에 박힌 작은 곰팡이들
이 밤하늘의 별자리로 보이는 청승. 애국가를 끝까지 듣
고는, 테레비 외부입력 푸른빛을 쬐고 앉은 이 청승. 나
는 무릎을 감싼다. 마루 끝에 앉아서. 읽었던 소설을 또
읽으며.



*시집 제일 뒤편에 실은 저자의 산문 「그림자論」 이 제일 빛나는 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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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무룩까무룩 조는 듯 인생의 한순간이 지워져간다
소박한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지난날 품었던 벅찬 느낌의 눈길로 쓰다듬어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시 나부랭이나 들추는 한량같은 시간은 어디선가
뭐가 처박히고 추락하는지 분분하기만 하다
봄끝에 꽃 다 떨어져 풀죽은 나무처럼 마음도
헛헛하게 지워져서 없어질 날만 기다리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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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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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세상 김화영 옮김 개정 1판 4쇄 발행일/1999년 4월 20일

99. 8.01
책 상단 귀퉁이는 언제인지 물을 한번 먹어서 주름이 가 있고 표지의 비닐 코팅도
주름을 드러낸 체 구겨져 있다 책 바닥을 보니 분홍색 스템프 숫자가 찍혀 있어서
구입 날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꽤나 오래 전에 구입했는데 여지껏 버려지지 않고 잘도 따라다니고 있구나 싶다
읽었다는 기억과 굵직한 줄거리를 제외하면 읽지 않은 것과 다를게 없다 아마 버리지
못한 이유가 읽었어도 읽었다는 분명한 기억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뫼르소 생각이 난 김에 구석에서 찾아내 다시 읽어 봄 

딱히 대단한 느낌 없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의 부조리에 대한 생각
뫼르소형 인간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딱히 특별할 게 없는


얼마전 모 출판사에서 아무개 번역가에 의해 뚱딴지 같은 '이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집나간 개도 웃을 일이다. 호박에 줄 긋고 수박이라고 팔아먹는 거지. 어처구니도 가지가지다.

많은 사람이 '태양' 때문에 뫼르소가 살인을 했다고 하지만 단순하게 태양만을 생각한다면
그 옛날의 멍청한 배심원들과 별다를 게 없을 것이다. 태양이라는 것이 우리 주변에서나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본다면 그의 진술은 결코 웃을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변명이든
설명이든 뭔가가 뒤따라주었어야 하지만 뫼르소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뫼르소라는 인간형을 이방인으로 보지 않을 자격이 있다.

지난 날 나의 아비를 땅 속에 묻고 오던 장의 버스가 길가의 포도가게를 지날 때 나의 시스터는
포도가 싼 것 같은데 버스를 세워 포도를 사가면 어떻겠냐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 버스 안의
분위기는 그랬다 이제 다 끝났으니 홀가분하게 집으로 가는 그런 거 말이다. 산 사람에게 죽음이란
그런거 아니던가? 아니면 이건 냉정한 한 가족의 이상한 풍경일 뿐인가. 물론 나는 아비의 영정
앞에서 시스터가 봐도 의외라 했을만큼 한바탕 통곡을 하긴 했으나 그것은 애가 아니라 극도의 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수십 년 간 쌓이고 쌓였던 증오의 폭발이었던 것이다. 여하튼 이방인에서 뫼르소를
궁지로 몰고 간 이유 가운데 한가지인 장례식을 치르는 그의 태도를 십분 이해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뫼르소는 이방인이 아닌 희미한 거울일지도 모른다.




너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너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한 가치도 없어.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
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
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또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
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너도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
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
들어버리는 거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너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 그런 것이 내게 무
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더불어 너처럼
나의 형제라고 하는 수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너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네가 살인범으로 고발되
었으면서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1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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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치약 거울크림 문학과지성 시인선 401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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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집『당신의 첫』보다 대부분의 시가 호흡이 길어졌다라고 해야하나
특히나 2부의 마지막 시「맨홀 인류」는 100~134쪽에 이른다 긴 호흡의 비명은
있을수 없듯이 비명 이후의 정황들이라고 해야할까 여전히 어둡고 쥐들이 들끓는
세계에서 길어올리는 시를 읽어나가기란 즐겁지 않다 하긴 즐겁고 유쾌하자고
시를 읽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고통스러운 짧은 행간들 속에서 비슷한 고통에 대한
동료의식으로 순간이나마 위무를 받는다고하면 되려나
눈과 마음에 들어오고 침착된 부분을 무작위로 조금 옮겨와 본다




빗이 거울을 부르고 거울이 빛을 부르고 빛이 나를 부르고
나는 방에 갇혀 있는 거울에 갇혀 있는 나의 슬픈 눈동자에 갇혀 있는
나에게 거울크림을 바르고 천천히 지워져갔다



그리하여 내 몸이 몇 개인지
몇 개가 더 죽을 수 있는지
땅은 물렁물렁하고 발걸음은 건들건들하고
공기는 끈적끈적하고 가슴은 우글우글하고
당신의 유령이 거미줄처럼 내 영혼을 채가는 곳

내가 나에게 명복을 빕니다
나는 죽은 몸들을 타고 앉아
남은 몸 몇 개를 재워보네
그리움도 자고 의심도 자고
아직 열지 못한 목구멍도 자고 다 잠들라

너는 죽어서 무엇이 되고 싶니?
나는 죽어서 테두리 없는 것이 될 거야!



구멍의 건축을 둘러싼 이 괴상망측한 구조물이 덜그럭덜그럭 걸어간다. 나는 암소나 암캐처럼 두 손으로 땅을 짚지도 않고 이렇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걸어간다. 나는 '없음'이라는 주형에 들이부어진 반죽이다, 직립한 사운드다. 불안이 침범하기 쉬운 취약한 구조다. 마침내 승리할 '없음'을 위해 나날이 경배하는 나여! 나의 살이여! 인도 사람들은 '그대 안의 신에게' 나마스테라고 인사한다. 누가 이 주형에서 지금 막 떠진 내 몸에 고리를 걸어 슬픔의 방아쇠를 당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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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는 둥둥 창비시선 265
김승희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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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를 읽는 일은 괴로운 즐거움이다 김승희의 시를 읽어나가는 것은 명쾌한 심해로 하강
하는 일이다 그는 뚜렷한 장면을 선사한다 그가 벼르고 별러 직조한 시들을 읽어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를 읽어야만 한다 더 깊고 어둔 것들을 보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는 아직 푸르스름한 깊은 곳에 머무를 수 있는 까만 무거움을 견디고 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랩소디 인 블루

언젠가 나는 죽어 있다
오랫동안, 나는 죽어 있는 데 익숙하다
나는 내가 있는 어디에서든
수년간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든
내가 죽어 있다는 데
동의한다
수천년 뒤 텍사스의 어느 사막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으로 나는 되돌아온다
나의 시선은 그 커다란 하늘과 지평의 사막에다
무궁한 랩소디 인 블루를 그린다
그러한 우울의 무궁동
수천년 같은 랩소디 인 블루를 그려야만 할
우울과 비애가 나에게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언젠가 나는 죽어 있고
언젠가 나는 그렇게 죽어가면서 살아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하늘이나
마르크 샤갈의 거꾸로 선 신부의 환상 속 기절에서나
그런 곳에서부터
갑자기 블루는 굴러떨어지고
횡격막 아래 부상을 입은 비애의 첼로처럼
부상당한 블루를 질질 끌면서 절름대며 점 점 점
푸른 깃털을 떨어뜨리며 둔주하는 담쟁이덩굴
랩소디 인 블루
블루 속에 묘혈을 점 점 점 식목하며
진정한 시인이란 도망가는 사람이라고
진정한 사랑이란 도망뿐이었노라고
나의 가슴은 모든 어둠의 토지
빛과 나의 핏줄은 끊어지는 법이 없는 것
나의 가슴은 그렇게 모든 어둠의 토지
수천년의 랩소디 인 블루가 끌고 가는 힘겨운 상승 완만 곡선




심장딴곳증(ectopia cordis)

인어가 물 밖으로 나와 걸어가는 것처럼
우리가 땅 위를 걸어갈 때
물 밖으로 나와 방울방울 피를 뿌리며 걸어가는 모든 해저의 것들에 대해
안에 있지 못하고 밖으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던
기막히게 아픈 심장 같은 것에 대하여
나는 노래하고 싶다
심장은 결국 하트 모양이 아니었고
차라리 피투성이 근육덩어리였다
어딘지 정육의 냄새가 풍겼다,
터널처럼 내 육체는 그만 아픈 심장을 견디다 못해 방출하였고
밖으로 쫓겨난 심장은
이제 비밀한 단 한사람조차 숨겨줄 수 없게 되었을 때
구태여 물 밖으로 나와 걸어가는 인어라든가
샤갈의 그림 밖으로 끌려나와 바위에 머리를 박고
여지없이 중력에 추락하는 푸른 신부라든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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