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정서웅 / 민음사 / 412쪽
(2014. 09. 27.)

 

 

 

(학사)
시대에 뒤떨어져 아무 가치가 없는데도
무엇이나 되는 척하는 건 건방진 수작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핏속에 있는데
청년의 육체만큼 피가 들끓고 있는 곳이 어디 또 있을까요?
그것은 싱싱한 힘을 가진 살아 있는 피로서
생명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내지요.
거기서 모든 게 약동하고 무언가가 이루어지며,
약한 것은 쓰러지고, 유용한 것은 뻗어나갑니다.
우리가 세계의 절반을 정복하는 동안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졸고, 생각하고, 꿈꾸고, 궁리하면서 허구한 날 계획만 세웠지요.
분명합니다. 늙음이란 차가운 열병 같아서
변덕스런 고민으로 오한을 일으키어요.
누구나 나이 삼십이 지나면
이미 죽은 것이나 진배없어요.
(P.119)

 

 

(파우스트)
한 번뿐인 운명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지 마십시오.
존재한다는 건 의무입니다. 비록 순간적일지라도.
(P.254)

 

 

(근심)
누구든 내게 한번 붙잡히면,
온 세상이 쓸모 없게 되지요.
영원한 어둠이 내리덮여서
해는 뜨지도 지지도 않고,
외부의 감각이 완전하다 해도
내부엔 어둠이 자리잡게 됩니다.
온갖 보화 중 어느 것 하나도
제것으로 소유할 수 없어요.
행복도 불행도 시름이 되어
풍복한 속에서 굶주리게 되지요.
환희든 고뇌든 간에
다음날로 밀어젖히고,
그저 앞날만을 고대할 뿐
결코 아무것도 이루질 못해요.
(P.358)

 

 

(메피스토펠레스)
어떤 쾌락과 행복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변화무상한 형상들만 줄곧 찾아 헤매더니,
최후의 하찮고 허망한 순간을
이 가련한 자는 붙잡으려 하는구나.
내게는 억세게도 항거한 놈이지만,
세월 앞엔 별수없이 백발이 되어 모래 위에 누웠구나.
시계는 멈추었다.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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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정서웅 / 민음사 / 272쪽
(2014. 09. 19.)

 

 

 

시인은 무엇으로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걸까요?
무엇으로 모든 원소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가슴 속에서 솟아나와
온 세계를 다시 가슴 속으로 이끌어들이는 조화의 힘이 아닐까요?
(P.14)

 

 

내 눈에 보이는 건 그저 인간들이 괴로워하는 모습 뿐이에요.
지상에서 작은 신을 자처하는 놈들은 언제나 판에 박은 듯
천지개벽하던 그날 모양 이상하기만 합디다.
차라리 하늘의 빛을 비춰주지 않았던들
그들은 좀더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그것을 이성이라고 부르면서
어떤 동물보다 더 동물적으로 사는 데 써먹고 있지요.

(P.22)

 

 

(주님)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메피스토펠레스) 고맙습니다. 사실 난
죽은 놈들과 상대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통통하고 싱싱한 뺨을 가진 놈을 가장 좋아하지요.
(주님) 그러면 좋다. 네 재량에 맡기겠다.
그의 영혼을 그 근원으로부터 끌어내어,
만일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면,
어디 너의 길로 유혹하여 이끌어보려무나.
하지만 언젠가는 부끄러운 얼굴로 나타나 이렇게 고백하게 되리라.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군요, 라고.
(메피스토펠레스) 아무튼 좋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기에 대해선 전혀 걱정하지 않아요.
내 목적을 이루게 되거든
가슴이 터지도록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해주세요.
녀석은 먼지를 처먹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게걸스럽게.
우리 아주머니 뻘 되는 저 유명한 뱀처럼 말입니다.
(P.24)

 

 

(메피스토펠레스)
조그만 진리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조그만 바보의 세계를 이룬 인간이
스스로를 보통 전체라고 생각하지만-
소생 따위는, 처음에 전체였던 일부분의 또 일부분이랍니다.
저 빛을 낳은 암흑의 일부분이지요.
저 오만한 빛은 모체인 밤을 상대로
옛 지위, 즉 공간을 빼앗으려 싸움을 벌였지만,
아무리 애를 써봤자, 그건 안 될 일입니다.
빛이란 결국 물체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에요.
빛은 물체에서 흘러나오고 물체를 아릅답게 하지만,
그리하여 제가 바라는 대로, 오래지 않아
물체와 더불어 빛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P.80)

 

 

(파우스트)
오 인간에겐 완전함이 부여되지 않음을
이제 나는 느끼노라.
나를 신 가까이 이끌어가는 이 환희와 함께
그대는 내게 떼어버릴 수 없는 동반자 하나를 붙여주었다.
녀석은 냉혹하고 뻔뻔스러워,
나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고,
말 한 마디에 그대가 베푼 은혜를 무로 돌려버린다.
녀석은 내 가슴 속에 열심히 부채질하여
저 아름다운 자태를 연모하는 거친 불길을 타오르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욕망에서 향락을 향해 비척거리다가,
향락 속에선 또다시 새로운 욕망을 그리워하고 있다.
(P.177)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는 신과 악마 사이의 쟁점이 한 인간을 통해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인간은 노력하는한 헤매인다>라는 주님의 확신이 바로 이 희곡의 기본 주제요, 의도된 각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예정된 진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존재가 파우스트인데, 그는 예외적 인간으로 설정된다. 요컨대 그는 끊임없이 노래함으로써 자아의 한계를 넘어서고, 나아가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사람이다.
  학문의 힘으로도, 정령의 도움으로도 이것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그의 절망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결국 악마의 사술을 빌려서라도 초월성을 쟁취하려는 것이 파우스트의 욕망이다. 그의 운명은 예정된 것이다. 세계의 삶 속을 통과해 가면서 온갖 쾌락과 동시에 그에 따른 고통까지를 체험한다. 고귀한 사랑은 악마의 농간으로 엄청난 죄악의결과를 낳는다. 고전적 아름다움(헬레나)을 획득한 듯하지만, 이것도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통치자의 권력을 얻었지만, 이것 역시 악마의 도움에 의한 것이기에 의미가 없는 것이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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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 정문주 / 더숲 / 235쪽
(2014. 09. 03.)

 

 


  '혁명은 변두리에서 시작된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현실세계에 실현하려 한 인물, 레닌의 말이다. 그리고 지금 마르크스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혁명이 일본 변방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오카야마 현 북쪽의 가쓰야마라는 작은 마을. 이름조차 생소한 변방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고 있는 혁명에 나는 '부패하는 경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P.5)

 

 

  비참한 사회 상황을 향한 슬품과 분노야말로 마르크스가 생애를 걸고 <자본론>을 쓴 동기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나 사회는 확실히 편리해지고 물자가 넘치게 되었다. 그래도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강요되는 가혹한 환경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만 하는가? 각자의 머리로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P.43)

 

 

  노동자를 오래 일하게 하는 것처럼 자본가가 많은 이윤을 손쉽게 얻는 방법은 없다. 노동시간을 길게 해서 이윤을 느리는 방법은 자본가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내가 빵집에서 죽어라 일만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나의 노동력을 산 빵집 사장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노동시간을 철저하게 늘린 결과였던 것이다.
(P.50)

 

 

  그렇다면 애당초 어째서 노동력이 상품이 된 것일까?
  마르크스는 노동력이 상품이 되려면 두가지 중요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노동자가 '자유로운' 신분일 것, 즉 노예처럼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노동력을 타인에게 팔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이란 기계나 원재료등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 이외의 것들을 가리칸다. 노동자가 자기 소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다.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용 당하는 것이다. 
(P.51)

 

 

  '시간 도둑'이라는 캐릭터로 유명한 <모모>를 쓴 판타지 작가 미하엘엔데는 나에게 '부패하지 않는 돈'이라는 생각을 가르쳐준 장본인이나 다름없다.대학 시절 읽었던 <엔데의 유언 - 모모의 작가 엔데, 삶의 근원에서 돈을 묻는다>(키와무라 아츠노리, 갈라파고스 역간)라는 책이 계기기 돠었으니 말이다.
(P.81)

 

 

  자본주의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는 주범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돈과 경제를 '부패하게'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발효의 힘을 빌려 발효와 부패 사이에서 빵을 만드는 나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발상이었다.
(P.83)

 

 

  봉건제도부터 공산주의까지 인류가 지금껏 만든 사회 시스템 중에 현재 자본주의가 가장 제대로 된 시스템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자본주의가 중대한 결함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좋은 점도 많다.
(P.171)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은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모두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 방법이 잘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는 길이 효과적인 해결책일 될 거라고 본다.
  그 의미를 잘 표현한 것이 '소상인'이라는 단어다.
(P.185)



  개성이라는 것은 억지로 만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 진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원래 가진 인간성의 차이가 기술과 감성의 차이, 발상의 차이로 이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며, 필연적인 결과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P.210)


  마르크스도 근무시간(노동일)을 줄여야 자본주의의 미래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했다. 요컨대 자본주의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킨다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해 생산력이 높아지면 하루 십 수 시간씩 일하지 않아도 사회와 생활이 굴러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P.223)



  매일 돈을 쓰는 법을 바꿔보는 것도 경제를 부패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부패하지 않는 돈도 쓰기에 따라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돈에는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으로서의 힘이 있다.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의 한 표보다 매일 쓰는 돈이 현실을 움직이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믿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고 흙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방법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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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1813)
제인 오스틴 / 윤지관 / 민음사 / 559쪽
(2014. 08. 30.)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만함과 그 오만함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편견에 대한 이야기...
절묘한 제목 인것 같다.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살마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P.31)

 

 

  허영은 진짜 결점입니다. 그러나 오만은 진정으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라면 늘 그것을 잘 통제하기 마련이고,그건 오만이라기보다 자긍심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P.84)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러나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계획하지 않았다 해도 과오도 생기고 안 좋은 일도 일어나거든. 아예 생각이 없거나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거나 우유부단하면 그런 결과가 나타나는 거지."
(P.196)

 

 

  "이제 속네를 털어놓아 보세요. 제 건방진 점 때문에 제가 마음에 드셨나요?"
  "당신의 마음이 생기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건방지다고 해도 될 거예요. 거의 그랬으니까요. 실상은 말이에요. 당신은 예절이라든가, 경의라든가, 쾐스러운 친절 같은 것이 지긋지긋했던 거예요. 언제나 당신의 인정만 받으려고 말을 건네고 바라보고 생각하는 여자들에게 염증이 나 있었어요. 제가 그런 여자들하고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당신은 정신이 번쩍 나서 흥미가 생겼던 것이죠. 당신이 진정으로 상냥한 분이 아니었다면 그 때문에 절 미워했을 거예요. 스스로를 감추려고 앴는 가운데서도, 당신의 감정은 늘 고귀하고 정당했어요. 마음속으로는 당신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을 철저히 경멸했던 거지요. 자 어때요, 설명하는 수고를 제가 덜어주었지요. 정말이지 이모저모 따져보아도 저한테 무슨 좋은점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렇지만 사랑에 빠지면 그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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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 1979-1996
미야자키 하야오 / 황의웅 / 대원씨아이 / 560쪽
(2014. 08. 22.)

 

 


  스스로 '자신이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을 위해 '5밀리라도 1센티라도 좋으니 전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낯설지 않다. 바로 몇 대를 이어가며 한 분야에 집중하는 일본의 장인의식이다. 이런 장인의식은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 한다. 매일매일 똑같은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설명대로 5밀리라도, 1센티라도 전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장인정신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그리고 그의 삶은 일본식 장인의식의 철저한 반영이다.
(P.6)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어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일 때 밖에 맛볼 수 없는 것들을 맛보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5분의 체험은 어른의 1년 체험을 이겨요. 트라우마도 그때 생기는 거고요, 그 시기에 사회 전체가 어떻게 지혜를 짜서 아이들이 얼마나 무럭무럭 잘 자라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개성이니 뭐니 하는 말들을 하는데, 개성은 그 어린 시절의 체험에서 자라는 겁니다. 처음부터 개성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개성을 키운다는 둥 얘기를 하는데, 그런 걸 멈추고 어린이들을 어른의 감시하에서 한번 해방시켜 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놀이터가 아니라도 놀 수 있어요.
(P.18)

 

 

  인간이 매일 경험하는 걸 종합해 자신 안에서 부풀려가는 능력은 훨씬 어렸을 적에, 그때 경험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몸에 익혀가는 겁니다.
  나무에 매달린 순간, '아 이거 부러질 것 가으니 위험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서 알게 된 건지 기억에 없죠. '여기를 밟으면 가라앉는다'거나 '여긴 질퍽거리니 밟지 않는 게좋다'는 것은 어느샌가 압니다. 그건 유아기에 많은 실제 상황을 만나며 실패도 하면서 기억한 겁니다. 그걸 최근엔 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런 판단을 만들어가는 구조도 아무래도 후천적으로 얻어가는 거라고, 경험으로 저는 생각하게 됐는데, 그걸 이 민족은 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P.25)

 

 

  나의 애니메이션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신이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 그것이 나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넓다. TV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CD, 실험영화, 극장요 영화 등이 있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 내가 만들고 싶지 않은 작품은 제3자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내게는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입장에서의 애니메이션관이고, 만약 일이 되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미래소년 코난>은 나에게 '만들고 싶은 작품'이었고 기쁜 일이었다.
  요컨대 애니메이션은 만화잡지도 아동문학이나 실사영화도 아니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가공, 허구의 세계를 완성해서 그곳에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을 집어넣어 하나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결론처럼 되었지만, 나에게 애니메이션이란 것은 그렇다.
(P.40)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허구'의 세계지만, 그 중심에는 '리얼리즘'이 있어야 한다. 허구의 세계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진짜 세계를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바꾸 말하면, 관객에게 '이런 세계도 있구나' 생각하게끔 하는 거짓말이다.
(P.44)

 

 

  여러 가지를 얘기했지만,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물으면, 그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하는 것, 테마이다.
  이런 근본적인 것을 잘 알지 못해 때로는 기술이 선행되기도 한다. 기술 수준이 높아도 표현하고 싶은 것이 애매한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작품을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반대로, 기술은 뒤떨어지더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한 작품은 완성도가 떨어져도 그 하나만으로 높게 평가하고 싶다.
(P.45)

 

 

  마오쩌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창조적인 일을 이루어내는 3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1)젊을 것, (2)가난할 것. (3)무명일 것."이라고요.
(P.196)

 

 

  인간은 어른이 돼도 그 안에 어린아이가 한 명씩 있어서 사랑할 때나 작곡, 회화는 - 소설은 종종 그런데, 때로는 학문도 - 그 아이가 담당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 갈 때는 어른인 자신이 행동하지만, 창조적인 일을 하는 건 아이의 역할이에요. 다만 나이를 먹으면 자신 안의 아이가 메말라 좋은 경치를 봐도 춤출 기분이 들지 않게 됩니다.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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