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정서웅 / 민음사 / 272쪽
(2014. 09. 19.)
시인은 무엇으로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걸까요?
무엇으로 모든 원소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가슴 속에서 솟아나와
온 세계를 다시 가슴 속으로 이끌어들이는 조화의 힘이 아닐까요?
(P.14)
내 눈에 보이는 건 그저 인간들이 괴로워하는 모습 뿐이에요.
지상에서 작은 신을 자처하는 놈들은 언제나 판에 박은 듯
천지개벽하던 그날 모양 이상하기만 합디다.
차라리 하늘의 빛을 비춰주지 않았던들
그들은 좀더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그것을 이성이라고 부르면서
어떤 동물보다 더 동물적으로 사는 데 써먹고 있지요.
(P.22)
(주님)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메피스토펠레스) 고맙습니다. 사실 난
죽은 놈들과 상대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통통하고 싱싱한 뺨을 가진 놈을 가장 좋아하지요.
(주님) 그러면 좋다. 네 재량에 맡기겠다.
그의 영혼을 그 근원으로부터 끌어내어,
만일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면,
어디 너의 길로 유혹하여 이끌어보려무나.
하지만 언젠가는 부끄러운 얼굴로 나타나 이렇게 고백하게 되리라.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군요, 라고.
(메피스토펠레스) 아무튼 좋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기에 대해선 전혀 걱정하지 않아요.
내 목적을 이루게 되거든
가슴이 터지도록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해주세요.
녀석은 먼지를 처먹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게걸스럽게.
우리 아주머니 뻘 되는 저 유명한 뱀처럼 말입니다.
(P.24)
(메피스토펠레스)
조그만 진리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조그만 바보의 세계를 이룬 인간이
스스로를 보통 전체라고 생각하지만-
소생 따위는, 처음에 전체였던 일부분의 또 일부분이랍니다.
저 빛을 낳은 암흑의 일부분이지요.
저 오만한 빛은 모체인 밤을 상대로
옛 지위, 즉 공간을 빼앗으려 싸움을 벌였지만,
아무리 애를 써봤자, 그건 안 될 일입니다.
빛이란 결국 물체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에요.
빛은 물체에서 흘러나오고 물체를 아릅답게 하지만,
그리하여 제가 바라는 대로, 오래지 않아
물체와 더불어 빛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P.80)
(파우스트)
오 인간에겐 완전함이 부여되지 않음을
이제 나는 느끼노라.
나를 신 가까이 이끌어가는 이 환희와 함께
그대는 내게 떼어버릴 수 없는 동반자 하나를 붙여주었다.
녀석은 냉혹하고 뻔뻔스러워,
나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고,
말 한 마디에 그대가 베푼 은혜를 무로 돌려버린다.
녀석은 내 가슴 속에 열심히 부채질하여
저 아름다운 자태를 연모하는 거친 불길을 타오르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욕망에서 향락을 향해 비척거리다가,
향락 속에선 또다시 새로운 욕망을 그리워하고 있다.
(P.177)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는 신과 악마 사이의 쟁점이 한 인간을 통해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인간은 노력하는한 헤매인다>라는 주님의 확신이 바로 이 희곡의 기본 주제요, 의도된 각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예정된 진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존재가 파우스트인데, 그는 예외적 인간으로 설정된다. 요컨대 그는 끊임없이 노래함으로써 자아의 한계를 넘어서고, 나아가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사람이다.
학문의 힘으로도, 정령의 도움으로도 이것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그의 절망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결국 악마의 사술을 빌려서라도 초월성을 쟁취하려는 것이 파우스트의 욕망이다. 그의 운명은 예정된 것이다. 세계의 삶 속을 통과해 가면서 온갖 쾌락과 동시에 그에 따른 고통까지를 체험한다. 고귀한 사랑은 악마의 농간으로 엄청난 죄악의결과를 낳는다. 고전적 아름다움(헬레나)을 획득한 듯하지만, 이것도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통치자의 권력을 얻었지만, 이것 역시 악마의 도움에 의한 것이기에 의미가 없는 것이다.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