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점 1979-1996
미야자키 하야오 / 황의웅 / 대원씨아이 / 560쪽
(2014. 08. 22.)
스스로 '자신이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을 위해 '5밀리라도 1센티라도 좋으니 전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낯설지 않다. 바로 몇 대를 이어가며 한 분야에 집중하는 일본의 장인의식이다. 이런 장인의식은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 한다. 매일매일 똑같은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설명대로 5밀리라도, 1센티라도 전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장인정신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그리고 그의 삶은 일본식 장인의식의 철저한 반영이다.
(P.6)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어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일 때 밖에 맛볼 수 없는 것들을 맛보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5분의 체험은 어른의 1년 체험을 이겨요. 트라우마도 그때 생기는 거고요, 그 시기에 사회 전체가 어떻게 지혜를 짜서 아이들이 얼마나 무럭무럭 잘 자라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개성이니 뭐니 하는 말들을 하는데, 개성은 그 어린 시절의 체험에서 자라는 겁니다. 처음부터 개성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개성을 키운다는 둥 얘기를 하는데, 그런 걸 멈추고 어린이들을 어른의 감시하에서 한번 해방시켜 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놀이터가 아니라도 놀 수 있어요.
(P.18)
인간이 매일 경험하는 걸 종합해 자신 안에서 부풀려가는 능력은 훨씬 어렸을 적에, 그때 경험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몸에 익혀가는 겁니다.
나무에 매달린 순간, '아 이거 부러질 것 가으니 위험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서 알게 된 건지 기억에 없죠. '여기를 밟으면 가라앉는다'거나 '여긴 질퍽거리니 밟지 않는 게좋다'는 것은 어느샌가 압니다. 그건 유아기에 많은 실제 상황을 만나며 실패도 하면서 기억한 겁니다. 그걸 최근엔 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런 판단을 만들어가는 구조도 아무래도 후천적으로 얻어가는 거라고, 경험으로 저는 생각하게 됐는데, 그걸 이 민족은 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P.25)
나의 애니메이션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신이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 그것이 나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넓다. TV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CD, 실험영화, 극장요 영화 등이 있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 내가 만들고 싶지 않은 작품은 제3자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내게는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입장에서의 애니메이션관이고, 만약 일이 되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미래소년 코난>은 나에게 '만들고 싶은 작품'이었고 기쁜 일이었다.
요컨대 애니메이션은 만화잡지도 아동문학이나 실사영화도 아니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가공, 허구의 세계를 완성해서 그곳에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을 집어넣어 하나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결론처럼 되었지만, 나에게 애니메이션이란 것은 그렇다.
(P.40)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허구'의 세계지만, 그 중심에는 '리얼리즘'이 있어야 한다. 허구의 세계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진짜 세계를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바꾸 말하면, 관객에게 '이런 세계도 있구나' 생각하게끔 하는 거짓말이다.
(P.44)
여러 가지를 얘기했지만,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물으면, 그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하는 것, 테마이다.
이런 근본적인 것을 잘 알지 못해 때로는 기술이 선행되기도 한다. 기술 수준이 높아도 표현하고 싶은 것이 애매한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작품을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반대로, 기술은 뒤떨어지더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한 작품은 완성도가 떨어져도 그 하나만으로 높게 평가하고 싶다.
(P.45)
마오쩌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창조적인 일을 이루어내는 3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1)젊을 것, (2)가난할 것. (3)무명일 것."이라고요.
(P.196)
인간은 어른이 돼도 그 안에 어린아이가 한 명씩 있어서 사랑할 때나 작곡, 회화는 - 소설은 종종 그런데, 때로는 학문도 - 그 아이가 담당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 갈 때는 어른인 자신이 행동하지만, 창조적인 일을 하는 건 아이의 역할이에요. 다만 나이를 먹으면 자신 안의 아이가 메말라 좋은 경치를 봐도 춤출 기분이 들지 않게 됩니다.
(P.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