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전여옥
전여옥 / 현문미디어 / 288쪽
(2015. 02.20.)

 


  파올로 코엘료의 작품 '11분'에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다. "술집에서 일하는 것과 다른 직업의 차이점? 다른 직업은 일해본 경험과 햇수가 많을수록 급여가 올라가지만 술집 아가씨의 일은 그 반대라고, 화류계에 나온 경험이 전무할 때 그 값이 최고라고"말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나 한국 정치판도 비슷하다. 원대한 꿈을 안고 정당에 들어왔다. 지난 한 세월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정권쟁취를 위해 바친 이른바 간단치 않은 부상 당한 정치인은 상이용사 대접도 받기 어렵다. 대신에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정치의 때를 묻히지 않은', 포장이 채 뜯어지지 않은 '참신한' 사람들은 '인재 영입'이라는 구매 조건 아래 정치권에서 삼고초려니 사고초려를 하며 여야 불문하고 모셔오기에 정신이 없다.
(P.13)

 

  

  박근혜 후보. 내가 당에 들어와 지난 3년 동안 지켜봐 았다. 가까이서 2년을 지겨보았다. 그래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것을, 나라를 위해서 그녀가 과연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미 정해졌다.

(P.115)

 

 

  난 박근혜 의원이 잘 되기를 바랐다. 정권 교체를 위해 서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나와 박근혜 의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정권 교체'만 되면 OK였으나 그녀는 그 이상을 원했다. 그녀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했다. 나는 그런 속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설마?'했다. 마치 회사에 들어오면 다 목표가 '사장'이고 언론사 기자가 되면 '편집국장'이 목표이듯, 뭐 정치인이니까 대통령이 되고 싶겠지 라고 정치 초짜인 나는 얼추 짐작을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이었다. 박근혜의 권력의지는 대단했다. 나는 그녀를 관찰하면서 아- 저렇게 까지 대통령이 되고 싶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권력이란 매우 자연스럽고 몸에 맞는 맞춤옷 같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에는 생활 필수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박근혜에게 한나라당은 '나의 당'이었다. 대한민국은 우리 아버지가 만는 '나의 나라'이었다. 이 나라 국민은 아버지가 궁휼히 여긴 '나의 국민'이었다. 물론 청와대는 '나의 집'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바로 '가업', 즉 '마이 패밀리스 잡'이었다.
(P.118)

 

 

  정치는 말과 글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 세계는 그가 구사하는 언어의 영역을 넘지 못한다. 인간이 동물과 차별되는 가장 큰 것은 바로 언어이다. 그리고 우리가 배우는 학습 과정은 크게 보면 언어의 폭과 깊이를 풍유롭게 하는것이다. 박근혜는 늘 짧게 답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오만의 극치"...... 그런데 이런 단언은 간단명료하지만 그 이상이 없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통령에 식상했던 국민들은 한때 신선하고 신뢰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민의 오해(?)가 이제 걷힐 때가 되었다. 국민들은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뭔가 깊은 내용과 엄청난 상징적 비유를 기대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쳤다. 어찌 보면 말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지 토크'와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지도자가 소통하려면, 이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가려면 때로는 국민과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설득해야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과연 설득할 수 있을까? "김정은은 참 나쁜 애"라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이제는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오만의 극치"를 되출이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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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하)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이대우 / 열린책들 / 736쪽
(2015. 02. 20.)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2부작으로 계획한 작품 중의 첫번째 편만이 씌여진 미완성 작품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작품을 쓰고 바로 다음해 토스토예프스키가 세상을 떴기때문이다.
만약 도스토예프스키가 2부작을 완성했다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이 되었을까 상상을 해본다..
아마 너무 길어서 내가 읽기에는 더욱더 부담스러워졌을지도 모르지만... (대략 3,000페이지 정도 되지않았을까??)
한편으로 작품이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었을지 궁금증이 앞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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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여자한테는 절대 잘못해다고 비는 것이 아니란다!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여자란, 얘야, 정말 알 수 없는 존재야. 여자들에 대해 난 최소한은 알고 있거든! 어디,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 보렴. 그랬다가는 당장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게 될 테니! 솔직하고 순수하게 용서해 주는 일은 결코 없을 거야. 오히려 널 만신창이가 되도록 멸시하고 또 있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고 온갖 것을 따지고 들면서 옛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 내서는 자기 넑수리까지 덧붙여 늘어놓은 다음에야 겨우 용서해 줄 거야.
  얘야, 솔직히 말해 두지만 아무리 훌륭한 남자라고 해도 결국은 여자의 구둣발에 짓눌리게 마련인 거야. 그게 내 신념이야. 아니, 신념이 아니라 느낌이라고 해야겠지. 남자는 관대해야 하는 법이야. 그렇다고 해서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니까. 카이사르라고 해도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지!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용서를 빌어선 안돼. 절대로 안 돼. 이 철칙을 잘 기억해 두렴.
(P.1037)

 


  "배심원 여러분!" 검사가 말문을 열었다. "이 사건은 러시아 각지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얼른 보기에 이 사건은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으며, 그리 겁낼 것도 없지 않겠느냐는 의혹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런 충동은 우리들에게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사건에 만성이 된 인간들이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것은 이런 암담한 사건에도 오히려 그다지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한 개인의 범죄에 놀라기보다는 우리들의 이 만성화된 사고에 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건에 대한, 즉 알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우리에게 예견하는 이 시대의 상징 같은 사건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미온적인 태도는 대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의 냉소적인 태도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면, 아직 장년기에 있으면서도 이미 노쇠한 대중의 이성과 상상의 쇠퇴 때문은 아닐까요? 그것도 아니면, 우리나라 도덕성의 기초가 흔들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 국민이 도덕성이라는 것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요? 나 자신도 감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문은 실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시민들은 이 의문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마땅히 괴로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P.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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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상)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이대우 / 열린책들 / 704쪽
(2015. 02. 13.)

 


줄거리는 완전히 요즘 TV에 나오는 원조 막장 드라마이다.
가정과 자식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아버지를 닮아 난봉꾼인 큰형, 공부를 잘하고 잘생기고 자신만을 챙기는 둘째형, 착하고 항상 가족을 걱정하는 막내아들
역시나 큰형의 엄마와 둘째,세째의 엄마는 배다른 엄마이고...
큰형과 아버지가 같은 여자를 좋아하고 큰형의 약혼자를 작은형이 좋아하고....

하지만 막장드라마와 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냥 못된 놈들이 설치는 판들 구경하는 판을 치는 드라마가 아닌
막장 인물들의 마음 속 깊은곳을 들여다 보는듯한 세밀한 심리의 묘사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내면의 가장 깊은 바닥속에 있는 그 무언가들을 살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가장 극단적으로 양끝에 위치하고 있는 두 인물의 죽음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조시마 장로의 죽음과 모든 이로부터 비난의 표적이되고 있는는 표도로 빠블로비치 까라마조프의 죽음!
과연 이 둘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들 속에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느낄수 있으며,

그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들 속에서 어떤 것들 느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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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의 복음서 12장 24절)
(P.19)

 


  나의 주인공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의 일대기를 집필하면서 나는 일련의 의혹에 빠져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알렉세이 표도로비치를 나의 주인공이라 부르긴 하지만 그가 결코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 자신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알렉세이 표도로비치를 당신의 주인공으로 선택하게 만든 남다른 점은 무엇인가? 대체 그는 무슨 일을 했던가? 그는 누구에게 어떤 점으로 인해 알려져 있단 말인가? 독자인 내가 그의 생애의 행적들은 연구하는 데 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가?>하는 따위의 필연적인 의문들을 예견하고 있다.
  이 결정적인 마지막 의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도 당신은 소설 속에서 스스로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도 나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가 뛰어난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애통한 일이지만 나는 그와 같은 상황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 이렇게 이야기하리라. 그는 내게는 특별한 사람이지만, 독자에게 그것을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심각한 회의에 빠져 있다고.
(P.21)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이상한 사람이며 또한 괴짜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상하고 괴팍스러운 성격은 타인의 주목을 받기보다는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전반적인 혼돈 속에서 특수성들을 통일시키면서 어떤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괴짜란 대부분의 경우에 특수하고 고립된 존재이다. 그렇지 않은가? 
(P.22)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이나 주변에 있는 진실을 감지하지 못하며, 반드시 자신이나 타인을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으며 사랑을 멈추게 되면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찾기 위해 애정이 결핍된 상태에서 욕망과 색정을 몰두하여 자신들의 결점이기도 한 야수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모두가 타인들과 자신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 데서 비롯되지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더 모욕감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누가 그를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런 모욕을 생각해 낸 다음 그것을 채색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과장을 하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콩알만 한 것도 산처럼 부풀리지요.
(P.87)

 

 


  아름다움이란 무시무시할 정도로 끔찍한 것이란다! 무서운 것이지, 아름다움은 규정되지 않은 것이고 결코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며 신이 던진 유일한 수수께끼이니까. 거기에는 양극단이 맞물려서 온갖 모순이 공존하고 있단 말이야. 이성의 눈에는 치욕으로 보이는 것도 마음의 눈에는 끊임없이 아름다움으로 보이니까. 아름다움이란 무시무시한 것일 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것이란 사실은 정말 끔찍스러워. 거기에서는 악마가 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고 그 싸움터는 다음 아닌 인간들의 마음이지.
(P.197)

 

 


  <형, 정말로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 중 누구는 살 가치가 있고 누구는 그럴 가치가 없다고 결정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걸까요?>
  <그런 가치 판단의 문제를 어째서 불쑥 꺼내는 거냐? 그 문제는 그런 가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자연스러운 다른 이유로 인해 흔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결정되는 거란다. 그러나 권리에 대해 말하자면 무엇이든 희망할 권리를 갖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P.259)

 

 


  지금 나는 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한 푼 한 푼 모아 두고 있단다ㅏ.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너도 알다시피 그건 내가 끝까지 나의 추악한 세계에 살고 싶기 때문이란다. 그 점은 너도 알 거다. 추악한 세계가 더 달콤하더든. 모두 그 세계를 비난하지만 모두 그 세계에 살고 있고, 남들은 몰래 그 짓을 하지만 난 드러내 놓고 하고 있을 뿐이란다. 그런 나의 정직한 태도를 빌미로 그 추잡한 놈들은 내게 달려들고 있지. 너도 알다시피 행여 저 세상에 너의 천국이 존재한다고 해도 점잖은 사람이 거기에 간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아무것도 없는 거야. 만일 원한다면 내 명복을 빌어 주되, 그렇지 않으면 제기랄, 제멋대로 되라지. 이게 내 철학이란다.
(P.308)

 

 


  18세기에 어느 늙은 파계자가 살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지.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고안해 내야만 할 거다. 그리고 보면 사실 인간이 신을 고안해 낸 거지. 그런데 기묘하고 놀라운 것은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놀라운 것은 말이다. 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런 생각이 인간처럼 야만스럽고 사악한 동물의 머리에서 떠올랐다는 거야. 그런 생각은 그만큼 성스럽고 감동적이며 현명한 것인 동시에 그만큼 인간에게 명예를 안겨 주기도 하지.
(P.417)

 

 


  신에 대한 문제, 다시 말해서 신은 조재하는 아닌가 하는 문제는 더 더욱 그렇고. 그런 문제들은 3차원의 개념만으로 창조된 지성으로는 전혀 해결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나는 기꺼이 신을 인정할 뿐 아니라, 게다가 우리들이 도저히 간파할 수 없는 신의 지혜와 목적까지도 인정하며, 인생의 질서와 의미를 믿고 또 우리들을 하나로 합치게 할 듯한 영원한 조화를 믿기도 하며, 전 우주가 지향하고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또 그 자체가 신이기도 한 그 말씀 등등을 믿으며 종국에 가서는 무한성을 믿는 거지.
(P.418)

 

 


  "나는 악마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경 인간이 창조해 낸 것이라면,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게 창조해 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P.425)

 

 


  "내가 어제 이마를 땅에 대고 절했던 큰 형 말이다."
  "큰형은 어제 만났을 뿐, 오늘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료샤가 말했다.
  "어서 찾아봐라, 내일 다시 나가서 급히 찾아내. 만사를 제쳐 놓고라도 말이다. 어쩌면 아직은 끔찍한 일을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을 테니까. 어제 난 앞으로 그에게 닥칠 위대한 고난을 향해 절했던 것이란다."
  "그 말씀은 너무 모호해서...... 어떤 고난이 형님 앞에 놓여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궁금해 할 것 없다. 어제 내게 끔찍한 생각이 들었거든...... 어제 네 형의 눈길은 자신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어. 네 형은 그런 눈길을 보내고 있었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 일 때문에 내 가슴은 순간적으로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몰라. 사람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발견한 것은 내 평생 한두 번에 불과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의 운명 전체가 그대로 나타나 있는 듯했고, 안타깝게도 그 같은 운명이 그대로 실현되었어. 내가 너를 너희 형한테 보냈던 것은 알렉세이, 형제로서의 너의 얼굴이 그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만사는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고 또 우리 모두의 운명도 마찬가지겠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씀이 있잖니. 이 말씀을 꼭 기억해 두거라. 그런데 알렉세이, 나는 평생 너와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수없이 축복해 왔으니, 이 사실을 잊지 말아라."
(P.504)

 

 


  "난 네가 이 담장 밖으로 나가더라도 속세에서 역시 수도사처럼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많은 반대자들이 있을 테지만 그 원수들조차 너를 사랑하게 될 거야. 인생이 너에게 많은 불행을 안겨 주겠지만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것이고 인생을 축복할 것이며 결국 다른 사람들의인생도 축복하게 될 테니,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지. 너는 바로 그런 사람이란다."
(505)

 

 


  질투심! <오셀로는 질투심이 강한 것이 아니라, 남을 잘 믿었던 것이다>라고 뿌쉬낀은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통찰 하나만 보더라도 위대한 시인의 심오하고 비범한 지혜는 입증되는 것이다. 오셀로의 영혼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또 모든 인생관이 흐려진 것은 그의이상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셀로라면 숨어서 염탐을 하거나 남몰래 엿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남의 말을 잘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변심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그는 스스로 실토하도록 유도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갖은 노력을 다 기울여서라도 한바탕 대결했을 것이다. 진정으로 질투심이 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법이다. 질투심이 강한 사람 대부분은 비열하고 추악한 영혼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고상한 심성과 순수한 애정, 희생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탁자 밑에 숨어서 비열한 사람들을 매수하고 염탐하거나 남몰래 엿듣는 그런 추악한 짓을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P.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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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 책
곽아람 / 앨리스 / 328쪽
(2015. 02. 12)

 


이책의 작가와 같이 내가 어린 사절 읽었던 책들을 추억해 본다.
내가 어린 시절 읽은 책들은 주로 책외판원의 마케팅 상술에 넘어간 우리 어머니의 구매로 집에 들여놓은 책들었다. 그 시절 아동서적으로 가장 유명한 출판사은 계몽사. 금성출판사 등이 있었는데, 우리집에 있던 책은 100권정도 되는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낡은 아파트 내 방에서  1권 1권 읽으며 느꼈던 독서의 즐거움이 새록새록하다

아마 지금도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어린시절 이 책들을 읽으며 느꼈던 즐거움에서 시작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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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날의 책장을 가능한 한 그대로 재구성하고, 미동 없이 책에 온 정신을 내던지고 싶었다. 부모님이 사랑과 기대를 담아 사주셨던 책들로 바깥세상과 차단된 견고한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직장에 다니고, 나이가 몇이며, 어느 정도 벌이를 하고...... 그런 세속적 기준이 아니라 단지 내가 나라는 것만으로 부모님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온전한 나'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 대신 그 시절을 간직해주고 있던 책들을 모았다.
  누군가는 '유아적 퇴행'이라며 우려했다. 그러나 내겐 30대 중반을 맞아 인생을 중간 점검할 시간이, 장이 필요했다. 전쟁 같은 주중이 지나가고 고요한 주말이 오면 집에 홀로 앉아 동화책을 읽었다. 25년후의 내가, 25년 전의 어린 내게 반갑다며 청하는 악수, 혹은 25년 전의 내가, 25년 후 어른이 된 내게 잘 살아와 고맙다며 건네는 격려 같은 시간이었다.
(P.27)

 

 

  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명작> 전집은 돌이켜보면 1980년대의 개발 도상국, 그것도 경남 소도시에 살고 있던 내게 전 세계의 문화를 가르쳐준 책이다. 몇 발짝만 나가면 개울과 논밭이 펼쳐졌던 동네, 열아홉평 주공아파트의 작은방에 가만히 앉아, 어린 나는 이 책들에 코를 박은 채 세계를 탐험했다. 일본 고단샤의 <세계의 메르헨> 전집을 번역, 출간한 이 전집의 강점은 디테일이 훌륭한 삽화다. 일본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독일, 인도네시아,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 민화를 소개하면서 각국의 복식, 인종의 생김새까지 꼼꼼하고 안벽하게 고증한 삽화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P.37)

 

 

  번화한 대도시에 살면서 문화의 세계를 직접 받아야만 안목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세상엔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고. 시골집의 작은방에서 점처럼 웅크리고 앉아 책을 통해 자신과 드넓은 세계를 연결해본 어린 독학자들의 내면에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깊고, 넓고 아름다운 세계가 성처럼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P.42)



  수십 번 읽은 책들이 있다. '수학의 정석'도, '성문종합영어'도 그 책들만큼 자주 읽진 았았다. <데미안>이나 <파우스트>같은 고전은 많이 읽어봤자 기껏 두어번이다. 거듭 읽은 책들은 오히려 유년의 책장에 있다. <디즈니 그림 명작>과 계몽사 <어린이 세계 명작>, <빨강머리 앤>, <소공녀>를 나는 수십 번씩 읽었다. 토씨 하나까지 외울 정도로 반복해 읽은 책은 연하고 어린 뇌에 화인처럼 각인됐다. 누군가 내게 '당신 인생을 변화시킨 책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동화들을 꼽겠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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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어린이에게 길을 묻다
김상욱 / 창비 / 288쪽
(2015. 02.07.)

 

 


  우리네 삶은 길고 지루한 일상만으로 잔뜩 메워져 있지만도 않습니다. 누구나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물녘 별이 하나둘 돋아나듯, 빗차는 순간들이 내 삶에도 깊이 아로새겨져 있음을, 그 순간은 비록 짧게 스치고 지나가기만, 삶 전체의 의미를 뚜렷하게 밝혀줍니다. 마치 어둔 밤 한줄기 번개가 산과 강, 들판과 마을을 짧게 , 그러나 한꺼번에 비춰 보이듯이. 저는 삶이란 길고 지루한 일상과 섬광처럼 빛나는 아주 황홀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거듭 느낍니다. 그 순간이 삶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에, 그 순간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끈히 한 생애를 힘주어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영화나 드라마가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미 스치고 지나간 그 순간을 오래도록 응시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P.16)

 


  정작 영화나 드라마는 어느 정도의 장삿속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만만치 않은 제작비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진정한 표정을 담고 있는 빛나는 순간들을 드러내 보일 때조차 상업적인 기획은 교묘하게도 우리가 마주치는경험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미화함으로써 왜곡합니다. 삶의 진정성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져야만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조작된다면 그것은 우리들 자신이 겪는 생의 충만한 고통과 기쁨이 아니라, 한번 걸러진 보편적인 경험이 될 따름입니다.
  결국 생의 빛나는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다른 예술에 기대야만 합니다. 무릇 모든 예술, 모든 진정한 예술은 생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순간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아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한 예술가의 눈으로 이 탐구를 진척시켜 나갑니다. 아도르노라는 독일의 미학자가 말한 대로 "서정성에 깊이 닻을 내리면 흔쾌히 서사성과 마주치게 된다"는 것도 이러한 의미일 것입니다. 한 예술가의 독특하고 구체적인 느낌으로 표현되는 서정성이 어느새 모든 살아가는 사람들의 느낌과 아름답게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의 구미에나 맞는 보편적인 틀을 먼저 설정하고, 여기에 억지로 구체적인 느낌을 담아낸 장삿속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의 본질인 것이지요.
(P.17)

 

 

  좋은 작품이 바꾸어놓는 아이들의 삶은 사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갑작스러운 변화는 다만 변화된 몸짓일 따름이다. 참으로 진정한 변화는 나무가 자라듯 보이지 않게 조금씩 바뀌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삶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P.31)

 

 

  그림동화란 글과 그림이 함께 제시되어 있는 동화다. 물론 일반적인 동화에도 글과 그림이 함께 있다. 그러나 이들 동화에는 그림이 독자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며, 다만 글의 이해를 돕는 부차적인 기능, 곧 삽화라는 말 그대로 이해를 돕기 위해 덤으로 끼워진 그림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림동화의 그림은 글의 보조장치가 아니라 독자적인 풍부함과 구체성을 지니고, 서사를 진행하거나 장면을 제시하는 기능을 감당한다.
(P.78)

 

 

  그림동화의 중요성은 그 예술적 특성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림책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아주 특별한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림동화에는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보내는 무한한 애정과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그림동화를 통해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앞질러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아주 이른 시기부터 어린이들은 그림책이라는 독특한 예술과 마주침으로써 삶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며, 삶에 스며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향유하게 된다.물론 좋은 그림동화에 한정된 말이기는 하지만. 더욱이 그림동화는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책이다. 그것은 곧 가장 먼저 만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림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은 앞질러 세상을 만나고, 무엇이 소중하며 아름다운지를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된다. 처음 세상을 만날 때의 그 경이는 누구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일 것이다. 하물며, 그 세상이 아름다운 색채와 형상으로 충만하기에 어린이들의 정서 속에 더 깊이 닻을 내릴 것임은 분명하다.
(P.81)

 

 

  그림동화는 다른 동화책과 달리, 책꽂이에 꽂기가 영 성가시다는 점이다. 다른 책들은 가지런히 꽂히는데, 그림동화들은 들쭉날쭉하며 여간 거치적거리는 것이 아니다. 이리저리 채여 귀퉁이가 망가지기 쉬운데도 왜 그림동화들은 판형이 서로 다를까? 그것은 무엇보다 담아내는 세계가 그림미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P.94)

 


  현실은 동화 속 세상보다 언제나 더욱 힘겨운 곳이다. 그러나 동화 역시 그 어려움에 견고하게 밀착되지 않으면 안된다. 현실과 동화 속 세상은 나란히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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