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 책
곽아람 / 앨리스 / 328쪽
(2015. 02. 12)

 


이책의 작가와 같이 내가 어린 사절 읽었던 책들을 추억해 본다.
내가 어린 시절 읽은 책들은 주로 책외판원의 마케팅 상술에 넘어간 우리 어머니의 구매로 집에 들여놓은 책들었다. 그 시절 아동서적으로 가장 유명한 출판사은 계몽사. 금성출판사 등이 있었는데, 우리집에 있던 책은 100권정도 되는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낡은 아파트 내 방에서  1권 1권 읽으며 느꼈던 독서의 즐거움이 새록새록하다

아마 지금도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어린시절 이 책들을 읽으며 느꼈던 즐거움에서 시작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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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날의 책장을 가능한 한 그대로 재구성하고, 미동 없이 책에 온 정신을 내던지고 싶었다. 부모님이 사랑과 기대를 담아 사주셨던 책들로 바깥세상과 차단된 견고한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직장에 다니고, 나이가 몇이며, 어느 정도 벌이를 하고...... 그런 세속적 기준이 아니라 단지 내가 나라는 것만으로 부모님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온전한 나'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 대신 그 시절을 간직해주고 있던 책들을 모았다.
  누군가는 '유아적 퇴행'이라며 우려했다. 그러나 내겐 30대 중반을 맞아 인생을 중간 점검할 시간이, 장이 필요했다. 전쟁 같은 주중이 지나가고 고요한 주말이 오면 집에 홀로 앉아 동화책을 읽었다. 25년후의 내가, 25년 전의 어린 내게 반갑다며 청하는 악수, 혹은 25년 전의 내가, 25년 후 어른이 된 내게 잘 살아와 고맙다며 건네는 격려 같은 시간이었다.
(P.27)

 

 

  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명작> 전집은 돌이켜보면 1980년대의 개발 도상국, 그것도 경남 소도시에 살고 있던 내게 전 세계의 문화를 가르쳐준 책이다. 몇 발짝만 나가면 개울과 논밭이 펼쳐졌던 동네, 열아홉평 주공아파트의 작은방에 가만히 앉아, 어린 나는 이 책들에 코를 박은 채 세계를 탐험했다. 일본 고단샤의 <세계의 메르헨> 전집을 번역, 출간한 이 전집의 강점은 디테일이 훌륭한 삽화다. 일본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독일, 인도네시아,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 민화를 소개하면서 각국의 복식, 인종의 생김새까지 꼼꼼하고 안벽하게 고증한 삽화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P.37)

 

 

  번화한 대도시에 살면서 문화의 세계를 직접 받아야만 안목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세상엔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고. 시골집의 작은방에서 점처럼 웅크리고 앉아 책을 통해 자신과 드넓은 세계를 연결해본 어린 독학자들의 내면에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깊고, 넓고 아름다운 세계가 성처럼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P.42)



  수십 번 읽은 책들이 있다. '수학의 정석'도, '성문종합영어'도 그 책들만큼 자주 읽진 았았다. <데미안>이나 <파우스트>같은 고전은 많이 읽어봤자 기껏 두어번이다. 거듭 읽은 책들은 오히려 유년의 책장에 있다. <디즈니 그림 명작>과 계몽사 <어린이 세계 명작>, <빨강머리 앤>, <소공녀>를 나는 수십 번씩 읽었다. 토씨 하나까지 외울 정도로 반복해 읽은 책은 연하고 어린 뇌에 화인처럼 각인됐다. 누군가 내게 '당신 인생을 변화시킨 책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동화들을 꼽겠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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