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존 로크 정부론
이근용 / 주니어김영사 / 216쪽
(2017.03.11.)

 

 


존 로크 이전에는 국가의 최고 권력의 주권은 왕에게 있고, 그 권력은 신이 부여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로크에 의하면 왕도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부터 국가권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함으로써, 왕의 전제정치가 옳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정치권력은 어디까지나 '모든 개인의 동의'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며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나 '완전한 자유와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평등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로크는 '개인의 권리를 통치자에게 전면 양도할 것'을 주장한 토마스 홉스와는 달리 '제한된 권력을 지닌 정부'를 이야기 했습니다. 또한 부당한 전제 권력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 부분이야말로 그를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사상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습니다.
(P.8)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란 영국 의회 정치를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문서입니다. 대헌장은 1215년 당시 영국의 존 왕과 귀족들 사이에 맺어진 약속을 문서화 한것입니다.영국의 존 왕은 자신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때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고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이러한 왕의 정책은 귀족과 일반 국민의 반발을 불러왔으며, 전쟁에 패하자 이러한 반발이 더욱 커져 결국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한 존 왕은 대헌장에 서명을 하게 되었죠. 사실 대헌장은 귀족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일 뿐,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이었던 왕의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다는 경험은 근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뿌리가 되었고, 영국에서는 이 사건 이후 왕의 잘못을 지적해야 할 때 마다 '마그나 카르타'를 외치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존왕 이후 영국의 왕들은 즉위할 때마다 새로운 대헌장을 서명해야 했고, 그래서 여러 개의 원본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P.34)


  로크의 주장대로라면 소유권은 노동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고 그것을 썩지 않게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화폐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지. 로크는 노동의 가치와 사유 재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어. 로크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노동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사적인 소유권을 인정한 거야.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셈이지.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한 소유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와 같은 로크의 주장은 개인의 재산을 신성시함으로써 군주의 권리가 제한되어야 힘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어.
(P.110)


  몽테스키외는 정부의 유형을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이는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그리고 권력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따른 분류입니다.
  공화정은 주권이 국민 전체 또는 일부에게 있으며, 권력의 행사는 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정부를 말합니다. 몽테스키외는 이를 다시 민주정과 귀족정으로 나누었습니다. 민주정은 주권이 국민 전체에게 있는 정부이고, 귀족정은 주권이 소수의 귀족들에게 있는 정부입니다. 군주정이란 주권이 군주 한사람에게 있지만 권력의 행사는 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부를 말합니다. 반면 전제정은 주권이 군주에게 주어진 것은 군주정과 같으나, 권력의 행사가 법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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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 전영애 / 민음사 / 239쪽
(2017.03.03.)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P.7)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 자기들이 하느님이라도 되듯 그 누군가의 인생사를 훤히 내려다보고 파악하여, 하느님이 몸소 이야기하듯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이 어디서나 핵심을 집어내어 써낼 수 있는 양 굴곤 한다. 나는 거럴 수 없다. 작가들도 그래서는 안 되듯이. 그리고 내게는 내 이야기가, 어던 작가에게든 그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한 인간의이야기, 즉 그 어떤 가공의 인물, 있을 수 있는 인물, 이상적인 인물, 어떻든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일회적인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P.7)

 

 


  사람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기는 한다. 그리고 느끼는 만큼 수월하게 죽어간다. 나도 이 이야기를 다 쓰고 나면 좀더 수월하게 죽게 될 것이다.
  내 자신을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라고는 감히 부를 수 없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그러나 이제 별을 쳐다보거나 책을 들여다보며 찾지는 않는다. 내 피가 몸 속에서 소리내고 있는 그 가르침을 듣기 시작하고 있다. 내 이야기는 유쾌하지 않다. 꾸며낸 이야기들처럼 달콤하거나 조화롭지 않다. 무의미와 혼란, 착란과 꿈의 맛이 난다. 이제 더는 자신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모든 사람들의 삶처럼
(P.8)

 

 

 

  구원은 전혀 예상치 못한던 쪽에서 왔다. 동시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의 삶 안으로 들어왔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계속 작용하고 있다. 우리 라틴어 학교에는 그 얼마 전에 학생이 한 명 새로 들어왔다. 우리 도시로 이사온 어느 유복한 미망인의 아들로 옷소매에 검은 디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나모다 한학년 높았으며 나이도 몇 살 더 들었지만, 곧 모든 학생들처럼 나도 그를 주목했다. 이 이상한 학생은 보기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든 것 같았고, 그 누구에게도 소년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어른처럼, 아니 그냥 어른이라기보다는 신사처럼 낯설고도 성숙하게 우리 유치한 소년들 사이를 오갔다. 인기 있지는 않았다. 놀이에 끼지 않았고 싸움질에는 더더욱 끼지 않았다. 다만 선생님들에게 맞서는 그의 자신감 있고 단호한 어조가 다른 학생들 마음에 들었다. 이름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P.36)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하여 내가 내디뎠던 걸음들뿐이다.
(P.64)

 

 

  자신을 다스리고,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내 자신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유복하게 키워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있어서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는 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하게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ㄸ,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난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있다.
(P.66)

 


  만약 네가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고 느닷없이 아주 힘을 주고 똑바로 그의 눈을 쏘아보는데도 그가 젼혀 불안해하지 않거든 포기해! 그런 사람에게서는 아무것오 이룰 수 없어. 결코! 하지만 그런 일은 아주 드물어.
(P.76)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한 것이 아니야, 바뀔 수 있는 거야. 우리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잇는지. 사실 그것은 그냥 편안함의 문제거든!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늘 그러게 마련이듯이 그런 사람은 살기가 쉬워. 다른 사람들은 운명을 자기 속에서 스스로 느기지. 그들에게는 어느 명예 있는 남자건 날마다 하는 일들이 금지되어 있어.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폄하되는 다른 일들은 허용되어 있어. 그러니 누구나 자기 자신 편에 서야 해.
(P.86)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유년은 나의 주변에서 폐허가 되었다. 부모님은 어느 정도 당황하여 나를 바라보셨다. 누이들은 아주 낯설어졌다. 익숙한 느낌들과 기쁨들을 나에게서 각성이 일그러뜨리고 퇴색시켰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 세계는 낡은 물건들의 떨이판매처럼 서 있었다. 맥없고 매력 없이. 책들은 종이였고, 음악은 서걱임이었다. 그렇게 오늘 가을 나무 주위로 낙엽이 떨어진다.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비, 태양 혹은 서리가 나무를 흘러내린다. 그리고 나무 속에서는 생명이 천천히 가장 좁은 곳, 가장 내면으로 되들어간다. 나무는 죽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P.91)



  나의 내면의 모습이 그랬던 것이다! 빙빙 돌며 세상을 경멸하던 나! 정신에 있어서 자부심이 충만했고 데미안과 생각을 함께 했던 나! 나의 모습이 그랬다, 취하고 더렵혀지고, 구역질나고 비열한 인간 페물이자 잡놈, 야비한 충동의 기습을 받은 살벌한 야수였다! 모든 것이 정결함, 광채 그리고 우아한 사랑스러움인 저 정원에서온 내가, 바하의 음악과 아름다운 시를 사랑했던 내가! 아직도 속이 메스껍고 격분한 내 귀에 자제력 없이 멍청하게 헉헉 터뜨려내는 취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게 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들을 겪는 것에는 상당한 쾌감이 있었다. 그토록 오래 내가 맹목적이고 둔감하게 웅크리고 있었기에, 그토록 오래 내 마음은 침묵하고 가난해져 구석에 앉아 있었기에 그리하여 이러한 자기 고발, 이 전율, 이 모든 영혼의 불쾌한 감정도 환영받았던 것이다. 감정이 있었다! 불꽃이 솟았다. 그 속에서 심장이 경련하였다! 나는 비참의 한가운데서 해방이자 봄 같은 그 무엇을 혼란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P.99)



  "이봐 싱클레어" 그가 천천히 말했다. "너한테 유쾌하지 않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어. 아무려나 어떤 목적으로 네가 지금 네 잔을 마시고 있는지, 그것은 우리 둘 다 알 수 없어. 하지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은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미안하지만, 난 집에 가봐야겠다"
(P.116)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개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P.123)

 

 

 

  내가 들은 철학사 강의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방랑과 똑같이 실체 없고 공장식이었다. 모든 것이 찍어낸 것 같았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하는 게 같았다. 그리고 소년티 나는 얼굴들에 어린 달아오른 즐거움은, 보는 사람이 우울할 정도로 텅 비고 기성품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자유로웠다. 나 자신을 위해 온 하루를 쓸 수 있었다. 교외의 오래된 낡은 집에서 조용하고 아름답게 지냈고, 내 책상 위에는 니체가 몇 권 놓여 있었다. 니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다. 그를 그침없이 몰아간 운명의 냄새를 맡았다. 그와 함게 괴로워했다. 그토록 가차없이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 행복했다.
(P.178)



  전쟁의 외적이고 정치적인 목적들에 대한 물음이 표면에 그치듯이.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가 생성중에 있었다. 새로운 인간성 같은 무엇이.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으며 그들 중 어던 사람들은 바로 내 곁에서 죽었다. 그들에게는 미움과 부노, 살육과 말살이 대상에 매어 있지 않다는 통찰이 느껴졌다. 아니다. 대상들은 목표들과 꼭 마찬가지로, 완전히 우연이었다. 원 느낌, 가장 거닌 느김들도, 적에게 향하여 잇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유혈의 위업은 오로지 내면의, 그 자체 안에서 산산이 파열된 영혼의 발산이었다. 새로 태어날 수 있기 위하여 광분하여 죽이고, 말살하고, 죽으려는 영혼의 발산이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고 세계는 짓부수어져야 했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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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 예담 / 516쪽
(2016. 2. 28.)




  "세상에 좋은 게 다 한정돼 있잖아. 어차피 그 좋은 걸 모든 사람이 다 누리진 못해. 그런데 한번 가져보라고, 시도는 해보라고 기회를 주는 게 자본주의야. 세상이 사람들한테 다 덤벼봐, 그러는 거야. 얼마나 좋아. 이기면 되잖아. 그 기회를 두 번, 세 번도 줘. 진다고 바로 뒈지는 것도 아니잖아. 세상에이런 체제가 어디 있나? 사회가 끝없이 싸울 기회를 주겠다는데 난 싸우는 게 싫소,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싸우지 맙시다, 이게 말이 돼? 끝없이 싸울 기회라는 건 끝없이 이길 기회라는 말인데 말이야, 왜 안 싸워?"
(P.202)



  "질려버린 거죠. 옆집 사람이 매일 집 대문에 칼을 꽂고 욕설을 퍼부으며 살해 협박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쇼. 그러기를 수십 년인데, 그 옆집 사람이 진짜로 심각한 위협이 된 적은 별로 없다고, 그렇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고 그 옆집 사람을 이사를 보낼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사람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냥 지겨워지고,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일 자체가 싫어집니다. 짜증만 날 뿐이에요.
  우리한테 북한이 그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2, 3년에 한번씩 북한은 핵실험을 벌이거나 미사일을 쏘가나 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에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으르렁거리면 부모님이 집에 생수도사고 라면도 사놨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옛날 일이에요. 그렇게 사놓고, 유통기한 지난 라면을 버리고, 다시 사고, 그러기를 수십 년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냥 생수도 라면도 안 사게 된 거죠. 북한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신종 인플루엔자만큼도 위험하지 않은 존재예요. 실제로 얼마나 위험이 되건 말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건 말건."
(P.226)



  "형제자매가 여러 명 있다고 쳐요. 그런데 그 형제자매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다들 나가서 매일매일 대형 사고를 치는 거예요. 누구는 음주운전을 하고, 누구는 사람을 때리고, 누구는 터무니없는 빚을 지고, 누구는 물건을 훔치고......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형제자매 소식은 더 듣고 싶지 않게 될 거예요. 마음에서 지워버리게 되는 거죠, 그 형제자매를 다 햅해 놓은 게 북한이에요. 남한 사람들 대부분은 북한 소식은 듣고 싶지 않아 해요. 너무 지겹고, 감당이 안 되니까요. 하나님, 왜 저런 형제를 저에게 주셨나요, 그런 심정이에요."
(P.227)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곡 통일을 해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말레이시아는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를 얽지로 분리시켰죠. 1965년에 싱가포를 주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냈어요. 싱가포르는 원치 않은 독립이었고, 분리 당시에도 심지어 싱가포르가 말레이이사보다 더 잘사는 나라였지만, 그렇게 갈라선 결과는 말레이시아에도 싱가포르에도 좋았어요. 한 나라로 있었다면 인구의 대부분인 말레이계가 싱가포르 화교 자본에 종속된 채로 중산층이 되지 못한체 살았어야 했을 거예요. 말레이계와 화교 사이 갈등도 지금보다 훨 씬 더 심했을 거고요. 두 나라로 떨어뜨려놓고 나니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대로 똘똘 뭉쳐서 선진국이 되었고, 말레이시아도 싱가포르 없이 자기 힘으로 선진국 문턱까지 왔어요."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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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의 인간 오성론 읽기
안병웅 / 울력 / 224쪽
(2016. 2. 23.)


 


* 오성(지성)은 깨닫는 능력을 뜻한다 (P.46)
* 오성 (Understanding , 悟性 , Verstand)(지성 知性)
  - 일반적으로는 지성ㆍ사고의 능력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감성에 대립한다는 점에서는 이성과 동일하고 때때로 혼용되기도 한다
  - 넓은 의미로는 사고능력(思考能力)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감성(感性)과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협의(狹義)로는 보다 고차적인 인식능력, 혹은 능력 일반으로서의 이성(理性) ·정신(精神)과 구별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의미로 사용되건 오성(悟性)은 저차(低次) ·고차(高次)를 불문하고 직관적인 인식능력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추리적 사고(推理的思考)에 의한 인식에 골몰하는 것이고, 인간의 유한성(有限性)의 한 표현이라고 간주되는 면이 있다.

 

  -  '사물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지성(知性)은 서양철학의 역사에 있어서 대상을 직접 받아들이는 오성(Verstand, understanding)과 추리에 의해 간접적으로 대상을 받아들이는 이성(Vernunft, reason)으로 구별되어 왔다.

 




  존 로크는 <인간 오성론>이라는 책을 통해 인간의 지성에 대한 인식론적 탐구를 시작했다. '인간의 지식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인간의 지식은 진정 확실한 것인가?'에 대한 탐구가 이 책의 주제이다.
  로크는 <인간 오성론>에서 인간의 오성(지성이나 사고의 능력)을 꼼꼼히 살펴본다. 로크의 <인간 오성론>에는 인간의 오성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들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인간 오성론>은 모두 4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 '생득관념에 대하여'에서는 인식의 기원을, 2권 '관념에 대하여'에서는 인식의 재료를, 3권 '언어에 대하여'에서는 언어의기능을, 4권 '지식과 의견에 대하여'에서는 지식의 확실성에 대한 로크의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P.10)



  로크는 <인간 오성론>을 세상에 내놓고 두 가지 별명을 얻는다. 하나는 인식론의 아버지이며, 다른 하나는 경험론의 창시자이다. 로크는 통해서 이제 철학의 문제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로 바뀐다. 로크로부터 앎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로크는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백지로 태어난다고 선언한다. 즉, 태어날 때는 관념이란 것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경험을 통해서 하니씩 인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로크의 생각은 경험론이라는 새로운 철학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로크의 <인간 오성론>은 인간 인식의 근원을 살피도록 도와주며 경험론 이론의 뼈대를 제공해 준다.
(P.10)



  생득관념: 생득관념은 일반 사람들의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관념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영혼은 세상에 나올 때 어떤 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세상에 나올 때 가지고 태어나는 관념이 생득과념이다. 예컨대 우리는 신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신의 관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때 '신'이라는 관념이 생득관념이다. 철학자들은 생득관념을 본유 관념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개념'이라는 본유관념의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로크가 <인간 오성론>의 1권에서 주장하는 바는 이러한 생득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이 모든 지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P.15)



  제1권 "생득관념에 대하여"에서 로크는 사람의 인식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이론, 이른바 생득관념을 비판하고 거부한다. 생득관념 이론에 따르면, 사변적 원리와 실천적 원리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정신 속에 이미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생득관념은 없다"라는 로크의 주장은, 이성을 지나치게 신봉하여 이성만으로 이 세상을 전부 설명할 수 있다고 본 데카르트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며, 동시에 합리적 이성의 개념을 도외시하면서 신의 실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스콜라 학파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다. 인식의 기원에 있어서 '생득관념은 없다'라는 로크의 주장은 경험만이 유일한 인식의 기원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로크는 인식에 대한 새로운 주장, 즉 경험론을 처음으로 제기하면서 근대 철학에 새로운 논쟁거리를 내놓았다. 이후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은 인식론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았고 칸트에 의해 종합되어 철학적 인식론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로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이르렀을 때, 즉 우리의 인식 능력을 뛰어넘는 곳에 다다랐을 때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간 오성론>은 인간의 지식이 어떻게 생겨나며, 얼마나 확실한지 그리고 인간은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P.45)



  사람은 동물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인간이 생각을 한다는 점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개달을 수 있다. 깨달을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성은 깨닫는 능력을 뜻한다. 동물들은 오성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깨닫는 힘이 있어서 주어진 환경에 적절하게 적응하기도 하고 환경을 바꾸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이와 같이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분된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그리고 이 생각하는 능력은 과연 무엇인가? 오성의 기원과 오성의 본질에 대해 궁금해 했던 학자가 있다. 존 로크가 그이다. 존 로크는 <인간 오성론>이라는 책에서 오성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는 인간이 고귀한 이유는 오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오성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P.46)



  로크는 '어떤 사변적 원리도 생득적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사변적 원리란 생각, 즉 사고 활동을 할 때 생겨나는 원리를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이해하려 할 때 사변적 원리에 기초해서 생각할수 밖에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로크도 동의한다.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원리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사변적 원리는 생득적이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크는 모든 사고 활동의 기초가 되는 이러한 사변적 원리도 생득적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생득적'이라는 말은 태어날 때 이미 마음속에 들어 있다는 말인데, 경험해 보지도 않고 관념이 이미 마음속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변적 원리는 마음속에 미리 개념적으로 존재하기에 아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배웠기 때문에 안다는 것이 로크의 주장이다.
(P.51)



  제2권 "관념에 대하여"에서 로크는 인식의 재료 즉, 관념을 다룬다. 관념은 사람의 오성(human understandig)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로크는 여기서 관념의 기원을 연구한다. 아울러 사람의 오성에 그러한 관념이 어떻게 부여되는지를 연구한다.
  로크의 이론은 관념 이론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의미 있는 이론으로 펼쳐진다. 로코는 관념을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을 구분한다. 우리가 가진 관념들 중에서 어떤 것은 단순하며, 어떤 것은 복잡하다. 단순 관념으 복합 관념보다 더 순수하지만, 복합 관념은 단순 관념들이 모여 우리에게 드러난다.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사물들은 관념에 있어서 결합되고 혼합된 상태로, 즉 복합 관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우리의 모든 지식의 재료들은 결국 단순 관념이다. 이 단순 관념은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만 마음에 공급된다.
  우리의 오성은 단순 관념들을 무한히 반복하고 다양하게 비교하며, 관념들을 결합하는 힘을 소유하게 된다. 그 결과, 복합 관념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오성의 힘을 가지고 있어도 혹은 아무리 빠르고 다양하게 사고한다고 해도 결국은 마음이 하나의 새로운 단순 관념을 발견하고 그 단순 관념을 구성함으로써 사고는 시작된다.
(P.73)



  로크는 제2권에서 관념들에 대한 자신의주장들을 펼쳐 놓았다. 경험에 기초해서 관념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경험론의 토대를 구축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3권 "언어에 대하여"에서 언어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언어의 세계는 관념의 세계와는 다르다. 관념의 세계는 인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개념들의 세계, 즉 생각들만의 세계이다. 그러나 언어의 세계는 관념의 세게와 사물의 세계 모두에 관련성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관념을 언어로 표현하기도 하며, 동시에 언어를 표현할 때 사물의 세계를 제대로 지칭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된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사물의 세계에 잘못된 이름을 부여하면서 사용되고 있다면 이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언어의 세게에서는 관념들의 이름이 어떻게 지칭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관념들이 사물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 지가 논의된다.
(P.125)



  제4권 "지식과 의견에 대하여"에서 로크는 어떻게 오성이 관념으로부터 올바르게 지식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다룬다. 그는 오성이 관념으로부터 올바르게 이끌어 낸 참된 지식을 단순히 지식이라고 지칭하며, 올바르게 이끌어 냈다고 볼 수 없는 불확실한 지식을 의견이라고 부른다. 지식과 의견을 구분함에 있어 로크가 가장 신경 쓰는 주제 중의 하나는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역역에 대한 논증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과 이성은 상호 간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하나의 관심사이다. 신의 존재 증명을 이성이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관심사는 먼저 자식 일반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되며, 자식은 어느 정도 믿을 만한 것인지, 신의 존재 증명은 가능한 것인지, 이성과 신앙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인류가 그동안 이루어 놓았던 학문들을 세 가지로 분류해 놓고 있다.
(P.145)



  로크는 사람들에게 전제정치의 유일한 대안은 무정부 상태일 것이라는 두령무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전제정치를 감내할 필요가 없다고 로크는 생각하였다. 로크는 정부의 부당한 권력행사에 대한 저항권의 차원에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힘을 가진 정부의 잘못을 규탄하는 방법이 단지 켐페인의 수준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그 정부를 전복시킬 수 없다는 것이 로크의 지적이다. 로크의 이러한 저항권 이론은 이후 유럽으로 넘어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게 된다.
(P.195)



  로크의 경험적 방법들을 비판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흄이다. 흄은 세게에 대한 사람의 인식 문제에 관하여 심리적인 설명을 시도함으로써 인식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흄은 로크의 경험철학을 논리적으로 발전시켜 결론을 내린 사람이다. 그는 로크의 경험 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인과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과관계는 단지 우리가 어던 경험을 반복해서 행했기 때문에 생겨난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내일 아침에도 동쪽에서 떠오를지 확신할 수 없다는 흄은 결국에는 회의론으로 빠졌지만, 로크의 백지설, 즉 "마음은 백지와 같다"는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생득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끝까지 견지해 나간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P.215)



  <인간 오성론>은 인식에 대한 물음을 다루는 책이다. 인식을 다룬다는 의미는, 우리가 어떤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어떻게 알았는가?"라는 질문은 "무엇을 알았는가?"라는 질문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이다. "무엇을 알았는가?"는 내용에 대한 질문인데, 이 질문을 진정 참다운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어떻게 알았는가?"라는 인식의 물음에 답해야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물음은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문들을 밝히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존 로크이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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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 인간지성론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
(철학사상 별책 제3권 제12호)
김상현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98쪽
(2016. 2. 22.)


 

  로크의『인간지성론』은 이후 버클리, 흄으로 이어지는 영국 경험론의 체계적 시작이자 동시에 칸트에게로 전승되는 비판 철학의 효시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간 지식의 한계와 범위를 확정짓고자 하였고, 또 우리가 근거 없는 태만함에 사로잡혀 월권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비록 데카르트보다 늦었지만, 데카르트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근대의 철학을 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P.i)

 


<『인간지성론』 해제 요약>
  『인간지성론』에서 로크는 인간 지식의 범위, 확실성 그리고 한계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전체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은 본유 관념에 대한 비판, 제2권은 자신의 관념(경험관념)에 대한 해명, 제3권은 언어, 제4권은 지식과 믿음 그리고 의견에 대해 다룬다.『인간지성론』의 중심 주제는 역시 그의 관념설에 있다. 데카르트의 위시한 합리론 철학의 본유 관념설에 대해 태만함의 소치라고 생각하는 로크는 모든 지식이 감각과 반성에서 유래함으로 역설하고, 우리의 지식이 우리가 가진 관념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경험론 철학을 전개한다.
(P.11)

 


  본유 관념설을 비판하는 제1권에서 로크는 본유적 원리를 사변적 원리와 실천적 원리로 구분하고, 이 원리들은 사실상 아무런 경험적 증거도 가질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런 연후에 그는 실체의 관념, 신의 관념, 도덕률의 관념 등 대표적인 본유 관념들에 대해서도 검토하는데, 이들 관념들은 나중에 복합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결론짓는다.
(P.12)

 


  제2권에서는 관념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는 관념을 크게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으로 구분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관념은 단순 관념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단순 관념을 얻는 경로는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로크에게 본유관념은 있을 수 없고, 단지 경험 관념만이 있을 뿐이다.
(P.12)

 


  제3권에서는 언어와 말에 대해서 다룬다. 여기에서 로크는 언어 또는 낱말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낱말은 소리들이나 관념들의 자연적 연결에 의한 것이 아니다. 둘째, 낱말은 관념의 감각적 표지 또는 기호이다. 셋째, 낱말(또는 낱말의 기호)은 임의적으로 정해진다.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우리는 동일한 우리의 관념을 여러 나라의 언어로 표시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로크의 주장이 상당히 일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그러므로 하나의 낱말이 단지 소리가 아니라 일정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호로 표시되어야 하지만, 어떤 기호를 사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사회적 규약에 맡겨져 있다. 반대로 적절한 사회적 규약을 따르는 소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단지 앵무새에 의해 그 소리만 모방되고 있을 뿐 어떠한 관념과도 상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언어 또는 낱말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언어 또는 낱말은 언제나 상응하는 관념의 임의적 표지이다.
(P.14)


  제4권에서는 지식의 확실성의 정도, 지식의 범위 등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확실성의 정도에 따라 지식을 직관적 지식, 논증적 지식, 감각적 지식으로 구분한다. 로크가 직관적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수학적 지식이다. 수학적 지식은 두 관념들의 일치나 불일치를 오직 그 자체로 지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적 지식은 가장 높은 수준의 확실성을 보장해 준다. 수학적 지식 다음은 논증적 지식이다. 로크가 생각하는 논증적 지식은 수학적 추론이나 논리적 추론에 의한 지식을 말한다. 지식의 가장 하위 등급은 감각적 지식이다. 감각적 지식은 개별적 존재자들에 대해 감각을 통해서 관념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지식을 세 등급, 즉 직관적 지식, 논증적 지식, 감각적 지식으로 분류한 로크는 과연 지식의 확장은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우리가 관념들을 가진다는 것 이상의 지식을 가질 수 없다”(Ⅳ,3,1)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지식은 감각과 반성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P.15)

 

 

  로크의『인간지성론』(1690)은 철학사적으로 데카르트에 대항해 경험주의 인식론을 정초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로크는 ‘경험’이라는 말로 답했는데, 이 입장은 그 뒤 전개될 영국 경험론의 기초가 된다. 로크는 ‘본유 관념’에 대한 데카르트의 이론을 거부하고, 인간의 마음을 ‘백지 상태’에 비유했다. 또 로크는 전통 형이상학의 실체 개념을 비판하고 이를 복합 관념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철저히 상식과 경험에 입각하여 우리의 인식의 범위와 원천을 탐구하였던 로크는 성질과 실체에 관한 논의에서 대응설로 규정할 수 있는 입장을 제시함으로써 후대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로크의 경험론은 버클리, 흄 등에게 비판적으로 계승되었으며, 프랑스의 유물론자 콩디악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그의『인간지성론』은 라이프니츠로 하여금『신인간지성론』을 쓰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칸트에게 영향을 미쳐 그가 제시한 ‘인식 능력의 원천과 범위 그리고 한계에 대한 탐구’는 ‘비판’이라는 명칭으로 계승되었다.
(P.26)

 


  로크는 인간 지식의 범위 탐구를 위해 ① 지식의 기원과 획득 방식 ② 지식의 확실성, 증거, 범위 ③ 믿음의 본성과 근거의 고찰을 그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다.『인간지성론』은 서론을 제외한다면,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Ⅰ권은 본유 관념설에 대한 비판이고, 제Ⅱ권은 관념에 대한 로크 자신의 상론을 담고 있다. 이Ⅱ권에는 로크 인식론의 핵심적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제Ⅲ권은 낱말과 언어에 대해서 그리고 제Ⅳ권은 지식에 대해 쓰고 있다. 로크는 지식의 기원과 획득 방식에 대해서는Ⅰ, Ⅱ권에 할당하여 본유 관념설을 비판하고, 지식의 기원이 감각과 반성에 있음을 밝힌다. 두 번째와 세번째의 방법은 특히 Ⅳ권에서 다루고 있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
만, 로크는 지식이 우리가 가진 관념들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면서, 가장 확실한 지식은 관념들 간의 일치와 불일치만을 고려하는 수학적 지식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로크 자신이 제시한 방법론은 전체 책의 구성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낱말과 언어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Ⅲ권이 “낱말이 원래의 또는 직접적인 의미에서 그 낱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관념만을 나타낸다”(Ⅲ, 2, 2)고 하는 내용을 다룬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Ⅰ, Ⅱ, Ⅲ권이 모두 첫 번째 목적에 할애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P.49)


  경험론자들의 마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규정은 라이프니츠가 언급한 ‘백지 상태’(tabla rasa)라는 규정이다. 라이프니츠는 ‘백지 상태’라는 말로 경험주의자들이 마음에 그 어떤 타고난(innate) 관념이나 원리는 없고, 태어나 이후 여러 가지 ‘경험’에 의해 그 백지가 채워져서 서로 상이한 그림을 가진 마음이 된다는 것(서로 상이한 관념과 지식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고 한다. 로크가 지성을 ‘암실’이라고 한 것도 색깔만 정반대일 뿐 내용상 ‘백지’와 동일하다. 인간의 마음은 본유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암실에 어떠한 색과 모양의 빛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암실의 상태가 달라지듯이, 마음이 어떠한 경험을 가지느냐에 따라 상이한 관념과 지식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 로크의 주장이다.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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