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 인간지성론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
(철학사상 별책 제3권 제12호)
김상현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98쪽
(2016. 2. 22.)
로크의『인간지성론』은 이후 버클리, 흄으로 이어지는 영국 경험론의 체계적 시작이자 동시에 칸트에게로 전승되는 비판 철학의 효시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간 지식의 한계와 범위를 확정짓고자 하였고, 또 우리가 근거 없는 태만함에 사로잡혀 월권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비록 데카르트보다 늦었지만, 데카르트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근대의 철학을 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P.i)
<『인간지성론』 해제 요약>
『인간지성론』에서 로크는 인간 지식의 범위, 확실성 그리고 한계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전체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은 본유 관념에 대한 비판, 제2권은 자신의 관념(경험관념)에 대한 해명, 제3권은 언어, 제4권은 지식과 믿음 그리고 의견에 대해 다룬다.『인간지성론』의 중심 주제는 역시 그의 관념설에 있다. 데카르트의 위시한 합리론 철학의 본유 관념설에 대해 태만함의 소치라고 생각하는 로크는 모든 지식이 감각과 반성에서 유래함으로 역설하고, 우리의 지식이 우리가 가진 관념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경험론 철학을 전개한다.
(P.11)
본유 관념설을 비판하는 제1권에서 로크는 본유적 원리를 사변적 원리와 실천적 원리로 구분하고, 이 원리들은 사실상 아무런 경험적 증거도 가질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런 연후에 그는 실체의 관념, 신의 관념, 도덕률의 관념 등 대표적인 본유 관념들에 대해서도 검토하는데, 이들 관념들은 나중에 복합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결론짓는다.
(P.12)
제2권에서는 관념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는 관념을 크게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으로 구분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관념은 단순 관념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단순 관념을 얻는 경로는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로크에게 본유관념은 있을 수 없고, 단지 경험 관념만이 있을 뿐이다.
(P.12)
제3권에서는 언어와 말에 대해서 다룬다. 여기에서 로크는 언어 또는 낱말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낱말은 소리들이나 관념들의 자연적 연결에 의한 것이 아니다. 둘째, 낱말은 관념의 감각적 표지 또는 기호이다. 셋째, 낱말(또는 낱말의 기호)은 임의적으로 정해진다.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우리는 동일한 우리의 관념을 여러 나라의 언어로 표시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로크의 주장이 상당히 일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그러므로 하나의 낱말이 단지 소리가 아니라 일정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호로 표시되어야 하지만, 어떤 기호를 사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사회적 규약에 맡겨져 있다. 반대로 적절한 사회적 규약을 따르는 소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단지 앵무새에 의해 그 소리만 모방되고 있을 뿐 어떠한 관념과도 상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언어 또는 낱말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언어 또는 낱말은 언제나 상응하는 관념의 임의적 표지이다.
(P.14)
제4권에서는 지식의 확실성의 정도, 지식의 범위 등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확실성의 정도에 따라 지식을 직관적 지식, 논증적 지식, 감각적 지식으로 구분한다. 로크가 직관적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수학적 지식이다. 수학적 지식은 두 관념들의 일치나 불일치를 오직 그 자체로 지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적 지식은 가장 높은 수준의 확실성을 보장해 준다. 수학적 지식 다음은 논증적 지식이다. 로크가 생각하는 논증적 지식은 수학적 추론이나 논리적 추론에 의한 지식을 말한다. 지식의 가장 하위 등급은 감각적 지식이다. 감각적 지식은 개별적 존재자들에 대해 감각을 통해서 관념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지식을 세 등급, 즉 직관적 지식, 논증적 지식, 감각적 지식으로 분류한 로크는 과연 지식의 확장은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우리가 관념들을 가진다는 것 이상의 지식을 가질 수 없다”(Ⅳ,3,1)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지식은 감각과 반성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P.15)
로크의『인간지성론』(1690)은 철학사적으로 데카르트에 대항해 경험주의 인식론을 정초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로크는 ‘경험’이라는 말로 답했는데, 이 입장은 그 뒤 전개될 영국 경험론의 기초가 된다. 로크는 ‘본유 관념’에 대한 데카르트의 이론을 거부하고, 인간의 마음을 ‘백지 상태’에 비유했다. 또 로크는 전통 형이상학의 실체 개념을 비판하고 이를 복합 관념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철저히 상식과 경험에 입각하여 우리의 인식의 범위와 원천을 탐구하였던 로크는 성질과 실체에 관한 논의에서 대응설로 규정할 수 있는 입장을 제시함으로써 후대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로크의 경험론은 버클리, 흄 등에게 비판적으로 계승되었으며, 프랑스의 유물론자 콩디악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그의『인간지성론』은 라이프니츠로 하여금『신인간지성론』을 쓰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칸트에게 영향을 미쳐 그가 제시한 ‘인식 능력의 원천과 범위 그리고 한계에 대한 탐구’는 ‘비판’이라는 명칭으로 계승되었다.
(P.26)
로크는 인간 지식의 범위 탐구를 위해 ① 지식의 기원과 획득 방식 ② 지식의 확실성, 증거, 범위 ③ 믿음의 본성과 근거의 고찰을 그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다.『인간지성론』은 서론을 제외한다면,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Ⅰ권은 본유 관념설에 대한 비판이고, 제Ⅱ권은 관념에 대한 로크 자신의 상론을 담고 있다. 이Ⅱ권에는 로크 인식론의 핵심적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제Ⅲ권은 낱말과 언어에 대해서 그리고 제Ⅳ권은 지식에 대해 쓰고 있다. 로크는 지식의 기원과 획득 방식에 대해서는Ⅰ, Ⅱ권에 할당하여 본유 관념설을 비판하고, 지식의 기원이 감각과 반성에 있음을 밝힌다. 두 번째와 세번째의 방법은 특히 Ⅳ권에서 다루고 있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
만, 로크는 지식이 우리가 가진 관념들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면서, 가장 확실한 지식은 관념들 간의 일치와 불일치만을 고려하는 수학적 지식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로크 자신이 제시한 방법론은 전체 책의 구성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낱말과 언어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Ⅲ권이 “낱말이 원래의 또는 직접적인 의미에서 그 낱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관념만을 나타낸다”(Ⅲ, 2, 2)고 하는 내용을 다룬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Ⅰ, Ⅱ, Ⅲ권이 모두 첫 번째 목적에 할애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P.49)
경험론자들의 마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규정은 라이프니츠가 언급한 ‘백지 상태’(tabla rasa)라는 규정이다. 라이프니츠는 ‘백지 상태’라는 말로 경험주의자들이 마음에 그 어떤 타고난(innate) 관념이나 원리는 없고, 태어나 이후 여러 가지 ‘경험’에 의해 그 백지가 채워져서 서로 상이한 그림을 가진 마음이 된다는 것(서로 상이한 관념과 지식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고 한다. 로크가 지성을 ‘암실’이라고 한 것도 색깔만 정반대일 뿐 내용상 ‘백지’와 동일하다. 인간의 마음은 본유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암실에 어떠한 색과 모양의 빛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암실의 상태가 달라지듯이, 마음이 어떠한 경험을 가지느냐에 따라 상이한 관념과 지식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 로크의 주장이다.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