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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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땅에 묻으면서 자식 없는 딸의 유년도 막을 내렸다. 죽어가던 그 도시에서, 우리는 전부 잃어버렸다. 현재 시제의 단어들까지도.

 

무법지대가 되어 버린 카라카스.

혁명의 아이들은 가진 자의 것을 빼앗는 단계를 지나 이제는 아무 곳이나 침범하고, 아무에게나 자신들의 법을 들이댄다.

 

엄마의 이름을 물려받은 아델라이다 팔콘.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녀는 혁명의 아이들에게 집을 빼앗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옆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그 문은 잠기지 않았다.

아델라이다는 그곳에서 아우로라 페랄타의 주검을 본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살았다. 아우로라 페랄타는 주검이었고, 나, 아델라이다 팔콘은 생존자였다. 보이지 않는 실이 우리를 이어주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이어주는 뜻밖의 탯줄.

.....

사후 경직이 그녀를 슬픈 곡예사처럼 보이게 했다. 그녀를 밀었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힘껏 밀었다. 시체 처리가 아니라 출산 중이기라도 한 듯.

 

 

매 페이지마다 폭력이 숨을 쉰다.

매 페이지마다 부당함이 소리친다

매 페이지마다 죽음이 자장가를 부른다.

 

아델라이다는 아우로라가 되기로 한다.

시체를 처리하고 아우로라의 모든 것을 배운다.

그녀는 이 지옥을 빠져나갈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뼛속까지 아우로라가 될 것이니까.

 

베네수엘라는 혼란스러워 아름다웠다. 아름다움과 폭력, 그 둘이야말로 나라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자신들 고유의 모순이 만들어낸 균열과 당장이라도 국민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태세를 갖춘 풍경의 구조적 결함 위에 형성된 국가였다.

 

 

더 이상 국가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국가 안에서 숨 쉬는 것조차도 숨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잃고 집까지 빼앗긴 아델라이다.

그녀는 옆집에 살던 스페인 여자의 딸이 되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 그녀 역시 폭력을 자행하게 된다.

 

이미 죽은 죽음이지만

시체를 감쪽같이 처리해야 해야 신분 세탁을 할 수 있는 아델라이다.

밤마다 총성이 울리고 시위대와 정부군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아델라이다는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했다.

 

내 의무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살아남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조마조마하다.

금방이라도 들통날 거 같고

금방이라도 옆집까지 밀고 들어올 거 같은 혁명의 아이들이 자기 집에서 내는 소리들을 들으며 숨죽이고 있는 아델라이다의 팽팽한 긴장감이 모든 문장들 사이로 퍼져나간다.

 

나는 베네수엘라를 미인들을 많이 배출하는 나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을 뿐 사정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 수 없었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 아닌 자국민끼리의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비정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수상한 사람, 경계하는 사람이 되었고, 연대를 약탈로 둔갑시켰다.

 

 

 

첫 소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는 기자 출신답게 서슬 퍼렇고 생생한 문장들이 긴박한 상황을 전달한다.

나는 그녀가 스페인 땅을 밟을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한다.

아니, 그 스페인 땅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건 무엇일지 알지 못해 마음을 놓지 못하겠다.

 

거짓말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 이름에서부터? 몸짓에서부터? 기억에서부터? 어쩌면 말에서부터?

 

 

거짓으로 시작해야 하는 새로운 삶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자기보다 열 살 많은 삶을 연기하는 것도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종이와 펜을 놓고 요리사가 되어야 하는 삶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나는 그 여자가 아니었고 완전하게 그 여자가 될 일도 결코 없을 터였다.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베네수엘라

가보지 않고 알지 못했던 곳에 대한 무지는 이 책 한 권에 의해 그 수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암울한 시대를 건너 온 우리의 현대사가 오버랩 되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순간을 그들도 언젠간 누리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현실 아닌 현실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미래의 고전이 될 지금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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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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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은 유리가 깨지는 광경을 자주 보았지만, 그렇게 크고 깨끗하고 단단한 유리창이 깨지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은 다른 세계의 침범이었다.

 

 

아메리칸드림은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들의 발길을 모았다.

서로 다른 문화와 서로 다른 피부색과 서로 다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할 시간을 갖지도 못한 채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허황된 바람을 안고 온 그들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 외에는 가족을 돌볼 시간도 없었다.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들

그들 보다 월등한 체격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실제로 마주한 미국 생활에서 별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더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들이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듯 동양인도 서양인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열여섯 에이바는 165센티에 60킬로였다.

자신을 도둑 취급하듯 쏘아 보는 편의점 여주인의 모습이 내내 신경에 거슬렸다.

그냥 잠시 놀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당신이 나를 보는 눈빛 그대로 행동해 주겠어!'

아이에게 지기 싫었던 여자는 아이의 멱살을 잡았고, 자존심이 상한 아이는 그 여자에게 주먹질을 했다.

그리고 겁에 질렸든, 치솟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했든 여자는 아이의 뒤통수에 방아쇠를 당겼다.

 

28년 전 그 자리에 있었던 숀은 누나의 죽음을 매일 떠올린다.

누나를 쏜 한정자는 사라졌다.

아무런 죗값도 치르지 않고.

한동안 방황하면서 분노를 터뜨리던 숀은 다시는 감옥에 가지 않기로 작정하고 자신이 가진 행복을 지키려 노력하며 산다.

 

부모를 떠난 언니 대신 아버지와 같이 약국을 경영하는 그레이스는 어느 날 퇴근길에 주차장에서 엄마가 총에 맞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엄마는 젊은 나이에 아빠를 따라 미국에 건너와 두 딸을 낳아 보살피고 열심히 일만 해온 분이었다.

누구에게 해끼칠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그냥 총에 맞았다.

그런 줄 알았다.

엄마의 과거가 까발려지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총에 맞았다. 소생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는 느낌이 뼛속에 사무쳤다.

 

그 여자는 그 어떤 자격도 없었다. 에이바는 열여섯 살에 죽었다. 에이바가 누려야 할 세월, 경험, 행복 그 모든 것이 총 한발에 사라졌다. 한정자가 그 이상을 누린다면 부당한 일이었다.

 

 

두순자 사건이 모티브가 된 이 이야기는 숀의 누나 에이바가 총에 맞아 죽은 28년 후에 두 가족은 또다시 상처를 주는 과정에서 재회하게 된다.

그레이스와 숀.

엄마의 과거를 안 그레이스는 사과를 하러 숀을 찾아온다.

하지만 숀은 그들을 용서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상황이었으니까.

 

한정자는 숀의 구역에서 살아왔다.

신분을 바꾸고 코앞에서 아주 잘 살아왔다.

숀이 느꼈을 그 반감과 분노는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가해자가 되었다.

몇 달 전 출소한 사촌 레이가 범인으로 체포되었으니까.

 

서로에 대한 이해 대신 불신을 갖고 시작한 관계는 언제나 불씨를 품고 있다.

한정자는 에이바를 불량한 흑인으로 봤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총을 쐈다.

에이바는 자신을 불량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싫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불행은 단지 그뿐이었다에서 시작되었다.

서로의 가족을 잃은 뒤에야 그들은 이해의 발판을 마련했다.

 

분노와 복수를 잠재울 방법은

용서다.

그리고 그 용서 이전에 진심으로 하는 사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두 가지가 빠지면 무질서가 된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결국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희생자가 된다.

속죄를 하고, 용서를 했더라면 달라졌을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우리 모두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이야기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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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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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죽어간다. 이건 사실이다. 나는 그 일에 얽혀 있다. 사람들과 함께 죽어갈 지구의 시민으로서만 얽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 일에 적극적으로 얽혀 있다. 일종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우주 한곳에서 깨어난 남자가 있다.

자신과 같이 온 듯한 사람들은 이미 미이라가 되어 있다.

자신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이 왜 우주에 왔는지는 기억해 낸다.

태양이 죽어가고 있다.

덩달아 지구도 죽어가고 있다.

아스트로파지라고 이름 지어진 바이러스 같은 존재가 태양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이 아스트로파지가 유일하게 먹어 치우지 못한 행성이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저 별은.... 저 별은 우리 태양이 아니다.

나는 다른 태양계에 와 있다.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

나는 여기에서 죽는다.

혼자서 죽게 된다.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그에게 지구에서의 기억이 서서히 돌아온다.

단편적으로.

그는 기억에 의지해 혼자서 임무를 수행하기로 한다.

아스트로파지에게 정복 당하지 않는 또 다른 태양의 비밀을 알아내서 지구로 전송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가 두고 온 그의 아이들이 살 수 있다.

그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바로 그의 아이들이다.

 

 

앤디 위어의 글을 처음 읽는다.

우주 3부작인 마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헤일메리 중 마션을 영화로만 보았다.

기발한 소재라고 생각하면서 의외로 재밌게 봤던 영화여서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공간도 우주다.

홀로 남은 상황도 같다.

그러나 글을 처음 대하는 나로서는 정말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과학, 물리, 우주에 대해 1도 모르는 나였지만 그리고 꽤 과학적 근거에 의해 쓰여진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유머러스하고, 재밌는 글들 앞에서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기회가 없었다!

 

 

인류는 우주에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방금 우리의 이웃을 만났다.

"이런 씨발!"

 

 

그렇다.

그레이스박사는 우주에 홀로 남겨졌지만 그보다 먼저 와 있던 외계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힘을 합쳐 서로의 별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

그 노력은 과연 성공할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우주적인 작가를 만났다.

그가 창조해낸 세상이 왠지 실제 하는 거 같다.

게다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한 조각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철벽녀 스트라트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을 능가하는 매력을 뿜어내고

댄 시먼스의 일리움에 나오는 외계 생명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로키의 등장은 작품에 활기와 함께 희망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거의 끝부분에서 알게 되는 반전 때문에 그레이스 박사가 훨씬 인간적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가 희생해야 해요. 인류가 확실히 구원되도록 내가 온 세상의 죄를 뒤집어써야 한다면, 그게 내가 치러야 할 희생인 셈이죠."

 

세상에 타고난 영웅은 없다.

어쩌다 남들보다 책임을 더하다 보니 영웅이 되는 것이지...

 

 

나머지 책들이 덩달아 읽어 보고 싶다.

웃음과 감동과 함께 과학적 지식을 덤으로 얻게 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

읽고 나면 갑자기 지구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는 이야기 프로젝트 헤일메리.

 

 

우리는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주 저 어딘가에는 우리와 비슷한 누군가가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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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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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과 1938년의 대숙청 시기에 숨져간 수십만 명의 소련 농민과 노동자는 스탈린의 명확한 지시에 따른 희생자였으며, 그것은 1941년과 1945년 사이에 히틀러의 명확한 지시대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총과 가스에 희생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2차 세계대전을 떠올리면 공식처럼 새겨지는 이름들이 있다.

히틀러, 유대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2차 세계대전은 아주 많은 희생자들을 내고 많은 나라들을 고난 속에 묻었지만

최고의 희생을 대표하는 이름은 유대인이었다.

 

 

피에 젖은 땅을 읽고 난 지금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히틀러는 다른 민족을 처단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던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그의 동족을 멸했다.

정치적 이념을 들이대며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을 굶어죽게 만들고, 서로를 잡아먹게 만들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총살시켰다.

그들의 땅을 블러드랜드로 만들었다. 피에 젖은 땅으로...

 

 

히틀러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스탈린의 만행이 세상에 드러나는 시기가 왔다.

이 책 피에 젖은 땅을 통해서.

수많은 기록들을 토대로 스탈린의 행적을 짚어낸 피에 젖은 땅.

 

 

블러드랜드는 1933년부터 1945년 사이에 나치(독일)와 스탈린(소련)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곳으로

독일과 소련 사이에 있는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해 3국. 이곳에 바로 피에 젖은 땅이다.

수많은 인명이 소멸된 땅이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원혼들의 땅이다.

 

 

솔롭키는 북극해의 섬 위에 세워진 포로수용소였다. 우크라이나 농민의 마음속에 솔롭키란 고향에서 추방당하면서 느끼는 모든 고립과 억압, 고통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소련 공산당 지도부에게 솔롭키란 추방자의 노동력이 국가의 이익으로 바뀌는 최초의 성과를 나타내는 이름이었다.

 

 

스탈린은 공산주의의 이념을 내세워 농촌에 집단 농장을 만든다는 구실로 부농을 해체했고, 농민들의 식량을 수탈해서 수출했다.

다음 해 심을 곡식조차도 남겨두지 않고 차출했기에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고, 그런 상황을 알리지 않으려고 도시를 폐쇄했다.

어디로도 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 굶어 죽었다.

길을 떠난 사람도, 떠나지 않고 남았던 사람도 모두 굶어 죽었다.

죽지 못한 사람들은 시체를 뜯어 먹으며 살아야 했다.

그곳은 죽음의 땅이었고, 그곳의 참상은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았다...

전하고 싶어도 전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던 피에 젖은 땅.

 

 

수많은 기록을 참고로 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얼굴을 파헤친 기록. 피에 젖은 땅.

작가의 서문부터 미친 듯이 인덱스를 붙였다.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전쟁의 기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치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감상적인 문체로 이 끔찍한 참상을 전하고 있었다.

 








히틀러와 독일이 2차대전의 가해자로 악명을 떨치는 사이 소련과 스탈린은 그 뒤에 숨었다.

어쩜 그 악랄하고 끔찍한 참상을 말해 줄 사람들이 모두 죽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쩜 그 참상을 말하고 싶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21세기에 와서야 나는 겨우 이 책을 통해 아주 가까운 곳에 히틀러 버금가는 이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공산주의라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걸까?

아니면 유대인의 희생에만 초점을 맞춰서 상대적으로 이 피에 젖은 땅에서의 살육은 잊힌 걸까?

아니면 인종차별이 아니라서 관심을 덜 받은 걸까?

 

 

피에 젖은 땅을 읽으며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벌어진 살육의 현장도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틀러가 유럽에서 유대인을

스탈린이 자신의 조국에서 동포를 살육하는 동안

일본이 동아시아 일대에서 벌인 살육의 현장에 대한 기록도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945년 이후로 76년의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가 지나고 1세기가 가까운 시점에서야 스탈린의 만행이 만 천하에 공표되었다.

일본의 만행은 어디에서 시작 중일까?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기록이다.

피에 젖은 땅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들은 어떻게 그 많은 죽음을 설명할 수 있었을까?

 

 

식민화에서, 이데올로기는 경제와 서로 얽혀들었다. 행정에서, 그것은 기회주의 및 공포와 연결되었다. 나치와 소련의 경우 모두, 대량학살의 시기는 또한 열정적인, 아니면 최소한 일사불란한 행정 처리의 시기이기도 했다.

 

 

한 체제의 리더가

한 나라의 리더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2차 세계대전은 전쟁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이 눈 감은 덕에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우리가 이 전쟁을 계속 알아내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희생자는 애도자의 뒤에 가려져 있다. 살육자는 숫자들 뒤에 숨어있다. 막대한 죽음의 숫자를 읊조리는 것은 익명성의 흐름에 숨어 버리는 일이다. 죽은 뒤에 서로 경쟁하는 국가별 추념에 따라 명단에 실리고, 개별적인 삶을 부수적으로 다루는 숫자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 그것은 개인을 말살하는 일이다.

역사란 각 개인은 환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통계라는 숫자라도 있어서 이 책을 내가 읽을 수 있었다.

피에 젖은 땅에서 이유 없이 사라져간 그들은 숫자로, 통계로 남았다.

그 숫자가.

그 통계가

바로 그들의 역사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라도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개개인의 역사를 알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이 희생된 이유가 저 가당찮은 자들의 자기만족이었고

그 작자들 밑에서 눈 감고, 귀 막고, 입 막은 동조자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걸 숫자로만 남은 통계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왜 우리가 2차 세계대전과 관련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유대인과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전체적으로 보아야 하는 안목을 길러준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역사, 시험에 나오는 역사만 중요했기 때문이다.

 

 

피에 젖은 땅이 스탈린과 소련의 만행을 알리고 피에 젖은 땅에서 희생된 이들을 이야기했다.

이후에 또 다른 2차대전의 피해자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오기를 소망해본다.

 

 

전쟁사를 이야기한 책이고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희생을 이야기한 책이지만

내겐 아직도 묻혀있는 내 나라의 과거를 더욱 생각나게 해주는 책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이전까지와는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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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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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이란, 인간 표현 행위에서 가장 강렬한 것이다. 저쪽에서 나를, 혹은 이곳을 주시한다는 무언의 액션. 중요한 건 그 강렬함을 당사자가 온몸으로 느낀다는 것일 테다. 기현도 그랬다. 그녀를 향하던 눈빛이 볼록렌즈에 모아진 햇빛처럼 집요했다고. 결국 그 집요함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태워버린 것일지도.

 

 

 

변사체.

실종자.

지적장애인.

외딴 작은 마을.

그 마을의 중심에 있는 자.

 

어디서 많이 보았던 공식이다.

추리소설 기법을 가진 이 지문이라는 소설은 섬뜩한 반전을 지니고 있다.

그 반전에 동의하는 나는 온전한 걸까?

 

가평 경찰서로 좌천된 규민에게 투신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변사체가 맡겨졌다.

단순 자살 건으로 처리될 일인데 왠지 그의 '촉'을 건드는 것이 있다.

실종자 명단에서 사체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고, 실종 신고를 한 자매를 만나게 된 규민은 이 사건을 자살이 아닌 타살로 간주한다.

 

기현의 실종 신고를 한 의현은 '성' 이 다른 자매다.

어릴 때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고 동생을 데리고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해서 그 호적에 오른 동생 기현은 그늘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엄마가 병으로 죽고 의부의 손에 남겨진 기현의 인생은 남들 눈엔 부잣집 딸로 호강하는 듯 보였지만 성폭행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이런 일엔 보통 두 가지 반응이 있다.

멀리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의 가십거리가 되고

아주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의 침묵이 된다.

 

꽃새미 마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과 장애인 착취는 그 마을 유지에게서 비롯되었다.

먹고사는 입들은 모두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었다.

경찰마저도.

 

그곳에서 성을 짓고 외부인을 차단한 채 자신만의 왕국을 이루었던 자.

자기 외엔 모두 다 아래로 보던 자.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자만하던 자.

오창기는 음지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놓고 군림했지만

 

이민흠은 소설가라는 타이틀과 교수라는 이름으로 어린 학생들을 유린했다.

 

"그 기집애, 누군지 좀 알 수 없을까요? 방송에 인터뷰한 애 말이에요. 윤 선생, 정말 짚이는 애 없어요? 지금 상황에서 내가 알아보긴 그렇잖아요. 윤 선생이 좀 알아봐줄래요?"

"그 여학생 찾아내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찾아서 요절을 낼 거예요. 저까짓 게 뭔데, 내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리냐고!"

 

그럼.

너 까짓 건 뭔데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어린 여자의 인생을 망가뜨렸니?

 

뉴스에서

소설에서

누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야기로

들어봤던 이야기는 추리소설이 되어 지울 수 없는 지문이 되었다.

 

단순한 재미로의 추리소설이 아닌

추리소설을 가장한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이야기였다.

 

지금도 음지에서 오기현과 김예나, 혹은 신명호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폭력에 시달리며 숨죽이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용기가 되길 바란. 세상과 사회가,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차츰 당신들 편에 서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처럼

이제 음지에 있던 이야기들이 햇살 아래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무관심과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로 생각했던 이들과

알고도 모른 척했던 이들과

소리 없이 분노하던 이들에게

당하기만 하던 사람들의 소리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

피해가 올까 봐, 귀찮아서, 내 일이 아니니까 외면했던 일

 

이 모든 일은

바로 내 일이 될 것이다.

 

6단계만 거치면 모두 아는 이 좁은 세상에서

폭력의 가해자를 나만 무사히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

설사 내가 무사히 피해 온 일이라 하더라도

건너건너 알아보면 우린 모두 피해자이고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한숨에 호로록 커피처럼 마셔버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타르처럼 내 안에서 굳어져 가는 커피처럼

선명한 지문을 남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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