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연금술사 - 뇌는 어떻게 인간의 감정, 자아, 의식을 만드는가
다이앤 애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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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대한 여행 에세이를 읽은 기분이다.

 

뇌는 신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다가도 순식간에 무기력과 절망에 굴복해버릴 수 있다.

 

 

 

에세이스트 다이앤 애커먼은 뇌를 연금술사에 비유했다.

마음의 연금술사.

뇌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몇 권 읽었지만 뇌 전문가들의 저서라서 아무리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도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거의 수박 겉핥기 식으로 뇌를 이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마음의 연금술사는 내가 좋아하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뇌를 설명한다.

그래서 마치 뇌에 대한 여행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다.

 

인간의 진화와 더불어 뇌도 그 무게와 용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버렸다.

인간의 작은 머리에 담기기 위해 뇌가 버려야 했던 수많은 것들은 무엇일지 정말 궁금해졌다.

마치 느려지고 무거워진 컴퓨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당장 불필요한 찌꺼기들과 파일들을 삭제하는 것과 같다.

어쩜 우리가 초능력이라고 하는 것들은 예전에 우리가 현실을 살기 위해 덜어낸 뇌의 버려진 용량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자아들이 유령처럼 길게 늘어서서 우리 뒤를 따라다니는 가운데 가치관, 습관, 기억은 지금의 '나'를 더욱 잘 반영하는 형태로 진화한다.

우리의 자아들은 모두 별도의 공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은 뇌가 아니다.

나는 이성과 감성으로 뇌와 마음을 분리해왔는데 여기서는 마음이 뇌에 살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런 표현들이 뇌를 좀 더 쉽게 이해하게 해주는 표현들이었다. 내겐.






누군가의 여행기는 사유가 많아서 나를 돌아 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여행기는 흥이 나서 같이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다이앤 애커먼의 마음의 연금술사는 안다고 생각했던 흔한 여행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는 여행자의 여행기다.

그래서 늘 보던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고, 늘 똑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뇌에 관한 이야기를 고급스럽지만 선뜻 집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거부감 없이 만들어 놓은 달콤한 초콜릿처럼 포장해 놓은 애커먼의 솜씨가 경탄스럽다.

아마도 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었거나 작심을 하고 공부하고 나서 자기식대로 풀어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큼의 이해와 지식을 갖춰야 가능한 건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인간은 정복자다.

우주도 정복하는 마당에 몸에 지니고 다니는 뇌에 대한 정복도 불사할 것이다.

하지만 '뇌'는 그렇게 쉽사리 정복당할 '목적지'가 아니다.

인간은 아무리 정복당해도 그것을 교모하게 이겨내고 도망가는 DNA를 탑재했으니까.

인간이 알아내면 알아낸 만큼 새로운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도 가지고 있는 '뇌'가 어떠한 능력을 가졌는지 잘 모르는 지금이 더 좋은 거 같다.

물론 가지고 태어난 나의 '뇌'를 100분의 1도 다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뭐든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도구와 편의시설을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사용할 줄 알 뿐이다.

 

인간의 독특한 뇌에 바치는 찬사에서

범죄자의 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뇌는 일반인과 어떻게 다를까?

만약 다르다는 걸 알게 되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범죄자를 미리 가려낼 수 있을까?

마지막 이야기가 내겐 그 어떤 주제보다 더 흥미로웠다.

아마도 내가 장르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은 거 같다.

 

마음의 연금술사는 '뇌'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떠날 수 있는 뇌 여행기다.

그냥 읽기만 하면 내가 장착하고 있는 '뇌'에 대한 경이로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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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워크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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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요원으로서 그는 기껏해야 평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책상에 앉으면 웬만한 요원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테리 매케일랩.

전직 FBI인 그는 심장 수술을 받고 회복 중으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배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느 날 어떤 여인이 배로 그를 찾아와 사건을 의뢰한다.

전직 수사관이었지만 현재는 아무런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지 않은 그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고 쫓아내려 했지만

그녀는 그가 거절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 심장.

그거 제 동생 거예요.

제 동생이 선생님 목숨을 구했어요."

 

 

운전도 못하고, 시간 맞춰 약도 먹어야 하고, 달릴 수도 없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절대 안 되는 상황인 매케일럽에게 그녀의 말은 폭탄과도 같았다.

장기를 기증받은 자는 기증자를 절대 알아서는 안된다.

기증자의 유가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찾아냈고, 동생을 살해한 범인을 잡아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몰랐으면 잊어버려도 되는 요구였지만 알고 나서는 도저히 모른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건이 찾아오는 방식이 꽤 충격적인 블러드 워크.

<시인>에 이어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을 다 읽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엄청난 분량의 작품들이 있어서 어떻게 시작을 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어떤 분이 블러드 워크를 추천해 주시길래 냉큼 읽기 시작했다.

 

 

밀리의 서재를 정기구독 중이라 전자책으로 읽었다.

전자책으로 완독한 몇 안 되는 책 중에 한 권이다.

 

그는 이제부터 그 고리를 찾아 나설 참이었다. 식품점에서 완벽한 빨간 사과를 찾듯이. 그 사과를 꺼내면 사과 더미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그런 사과 말이다.

 

 

개별 사건들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매케일랩의 수사 능력은 그가 현장에서는 별다른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서류들 앞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파라는 걸 증명해 준다.

거의 모든 스릴러가 현장파 요원들을 위한 이야기지만 테리 매케일랩은 수많은 서류들 속에서 범인의 윤곽을 찾아내는 신기술(?)을 보여준다.

발로 뛰지 않아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모범 사례라고 할까?

그러니 서류 작업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얻게 되고, 이야기를 더 쫀득하게 만드는 소재이기도 하다.

사건에서 프로파일러의 중요성도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도 초창기 띵작 중 하나로 한때 모든 사람들의 영웅처럼 각광받던 수사요원이자 범인들에게는 절대 피해야 하는 공포이기도 했던 전직 FBI 요원이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에 무리가 생기면서 조기 은퇴를 하고 죽음을 준비하던 시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심장을 기증받아 기사회생했지만 현재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테리 매케일랩의 인생은 공허함 그 자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그 일상은 매케일랩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그가 이 사건에 뛰어들 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뭔가를 할 수 있고, 자신의 수사 능력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지금까지는 책에서만 봤던 감정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실제로 생겨나는 것이 느껴졌다. 싸울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를 놓고 느끼는 갈등. 모든 걸 잊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어찌나 강한지 마치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냥 모든 걸 그만두고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길은 평탄하지 않다.

그를 무시하는 LA 경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 서로 연관이 없을 거 같은 사건들이 이어져 있는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는 수사의 난항 등이 그를 방해하고, 결정적으로 그를 함정에 빠뜨린 범인에 의해 그는 주요 용의자가 된다.

 

어제의 동료가 이제는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잡기에 혈안이 되는 현실.

그가 일부러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수사를 시작했다는 가설로 그를 옥죄어 오는 FBI.

이 답답한 사실 앞에서 그가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모든 감각을 충족시켜주는 스릴러라고 말하고 싶다.

테리 매케일랩은 깊은 함정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자신을 구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지켜냈다.

모든 범죄소설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하겠지만 다 고만고만한 이야기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마이클 코넬리는 고만고만한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모두가 모티브로 삼을 만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

1998년에 나온 작품을 2021년에 읽었는데도 촌스러운 점이 없고, 답답한 전개가 없다.

<시인>, <블러드 워크> 두 편을 연달아 읽으며 이 작품들이 90년대 작품이라는 걸 느낄 수 없었다.

읽고나서도 신기했다. 자주 나오는 공중전화 장면 마저도 자연스레 21세기에 녹아드는 이 매력은 코넬리만의 '무엇' 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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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타, 이탈리아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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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까닭은 결코 다시 살 수 없는 삶을 잠시 멈춰놓고, 인생의 축소판 같은 여행으로 예행연습을 해보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친구들끼리는 일정 나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행계를 들기도 한다.

저자는 50에 찾아온 갱년기를 돌파하기 위해 앞으로의 10년을 잘 보내고 환갑 여행을 하기 위해 친구들과 계획을 세운다.

셋이서 떠나기로 한 여행은 우여곡절 끝에 58세에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 되었다.

이탈리아로...

 

이금이 작가는 동화 작가이다.

그래서인지 이 여행 에세이는 천진난만한 글체로 읽혀서 여행의 순수한 기쁨과 열정이 고스란히 읽는 이에게 전해진다.

밀라노에서 첫 여행을 시작하려던 계획은 시작부터 틀어졌다.

무슨 여행이든 아무리 계획을 철저히 세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우울할 필요는 없다는 게 이 큰언니들의 마음가짐이다.

 

금과 진

두 사람의 이탈리아 여행은 평탄한 듯 평탄하지 않았고, 계획한 듯 계획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35일간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읽고 있자면 숨 쉴 틈이 없다.

이탈리아에 가본 적도 없는데 이미 다 둘러본 거 같다.

 

마치 언니가 여행 다녀와서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어땠고, 거기는 그랬고, 여기는 이랬어~라고 수다를 떨어주는 거 같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 않는 길'을 품은 채 살아간다. 기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길은 실패한 길이 아니다. 부서지고 무너진 채로도 무대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타오르미나 극장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여행가의 멋스러운 여행기는 아니다.

하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아직 덜 자란 마음을 품고 사는 작가님의 마음으로 본 이탈리아는 가깝고 다정하고, 아름답고, 멋스럽고, 감춰둔 이야기가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같이 웃고, 같이 조마조마하고, 같이 안타까워하고, 같이 뿌듯해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 해도

같이 여행을 한다는 건 쉽다가도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짧은 여정이 아닌 한 달이 넘는 여정이라면.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서로에게 터놓는 것이다.

 

마흔을 지나면서 오십 되면 기념 여행을 가자며 여행경비를 모으자고 한 친구들도 생각나고

친구랑 여행 갔다가 맘 상해서 한동안 삐걱거렸던 기억도 떠오르고

서로 다른 성향의 여행 감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바심쳤던 기억도 떠올랐다.

한쪽은 다 못 보더라도 천천히 감상하려 했고, 한 쪽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했었다.

이 큰언니들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읽으며 나도 다시 예전 친구와의 여행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고, 반성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기도 좋았지만 뒤에 있는 에필로그가 참 좋았다.

그야말로 몸소 겪은 여행에 대한 알토란 같은 체험의 결과가 담겨 있기에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한 후 달라진 모습들에게 여행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물론 이것은 연륜이 남긴 흔적이니 섣불리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으련다.

다만 나도 환갑 전에 여행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장거리 여행을 오랜 시간 다녀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서로를 더 잘 알아가는 시간이 될 테고, 그렇게 영글어 버린 우정은 죽을 때까지 서로의 의지가 될 테니...

 

페르마타는 이탈리아 말로 '정류장', '잠시 멈추다'라는 뜻과 '길게 늘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잠시 멈춤을 길게 늘이게 되는 것. 여행.

여행은 일상을 잠시 멈추는 것이고,

여행의 추억은 인생 내내 되새김질하면서 그때의 즐거움을 길게 늘이게 되는 것이니

페르마타 이탈리아라는 제목은 그녀들의 추억이 길게 늘어나리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여행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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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개정판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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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

 

 

'죽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잭 매커보이와의 만남은 그의 쌍둥이 형 '션'의 죽음 앞에서다.

강력계 형사였던 '션'이 자살했다.

어릴 때 눈앞에서 얼음 호수 속으로 빠져들어갔던 누나의 죽음 이후 그는 또 다른 형제의 죽음 앞에 섰다.

강력반을 드나들며 살인사건의 기사를 쓰는 잭에게 죽음은 밥벌이이자 사명감 같은 거였다.

그런 그에게도 형사의 '촉'이 잠재되어 있었을까?

 

스릴러 한 편을 읽었는데 나는 아주 대단한 문학작품을 읽은 기분이다.

'시인'이란 제목에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마이클 코넬리'라는 이름만으로 이 책을 선택했으므로

이 작품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1996년 작품이지만 2021년에 읽어도 전혀 오래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시대적 배경이 더 긴장되고 조바심을 치게 만들었을 뿐.

 

어쨌든 나는 그 미끼를 물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내 삶의 모든 것이 변했다. 누구의 삶이든 세월이 흐른 뒤 회고를 해보면 삶의 지도를 분명히 그릴 수 있듯이, 내 삶이 그 한 문장과 함께, 내가 글렌에게 형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한 그 순간에 변해버렸다.

 

잭은 기자로서 경찰 자살 사건 기사를 기획하면서 자료를 수집하다 형의 죽음과 유사한 죽음들을 만나게 된다.

 

공간을 넘고, 시간을 넘어

 

자살한 경찰들은 모두 에드거 앨런 포의 싯구를 유서로 남겼다.

이것이 단순한 자살 사건이 아니라 연쇄살인이라는 느낌을 받은 잭은 기사를 위해, 형을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마치 '션'의 감각을 장착한 것처럼 잭은 FBI도 못 알아낸 사건의 본질을 추적해간다.








"다른 범인들을 이미 봤으니까. 그놈들 눈을 들여다보고, 그 눈 뒤의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버렸으니까. 그놈들을 전부 죽여버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 같아."

 

 

잭의 이야기와 범인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나는 두 가지 어둠 속으로 침잠해들어갔다.

죽음의 주변에서 맴도는 잭과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두움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범인의 모습은 '아름다운 문장'들 속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표현으로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나를 끝없이 의심하게 만들고, 끝없이 오해하게 만들었다.

 

배신과 함정이 드러나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것조차도 언제 뒤집힐지 모르니까...

 

어쩌면 범인이 죽이고 싶어 하는 건 경찰관인지도 몰라요.

 

 

경찰관을 죽이기 위해 미끼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에게 FBI는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그가 포의 싯구를 인용했기에 붙은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범인의 자만심을 높여 줄 '시인'이라는 별명이 제목으로 쓰였지만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야 그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리하다 못해 영악한 범인

FBI와의 협상에서 독점 기사와 수사에 참여하기로 '딜'을 한 잭이지만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소아성애자와 다크 앱

상처받은 영혼들은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상처를 마련한다.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처럼 느껴지지만 '극복'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가지만, 누군가는 그것에 자신을 내어주고 만다.

 

마지막까지도 나는 범인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에 '경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시인'

마치 어둠의 시인 포에게 포획당한 것처럼

시인은 흔적 없는 살인사건 앞에서 고뇌하고, 좌절하고, 절망스러워했던 담당 형사들을 유린했다.

그리고 "왜?" "어째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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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분의 1은 비밀로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금성준 지음 / &(앤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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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는 N분의 1에서 분모 N이 무한대가 되겠군. 이런 식으로 몇 달만 지나면 수두룩한 인간들에게 500원짜리 동전 하나식 나눠줘야 할지 몰라."

 

 

서른아홉 살의 8급 교사 계급 교도관 기봉규와 허태구.

이들은 교도소 영치창고를 담당하고 있다.

수감자들이 들어올 때 맡긴 물건을 모아두는 영치창고.

수감자들이 퇴소할 때 맡긴 물건을 찾아가는 영치창고.

그곳에 눈먼 돈 9억이 들어 있는 트렁크가 보관되어 있다.

그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다 전근을 가거나 은퇴를 했고, 기봉규와 허태구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트렁크의 주인 김대식이 감옥에서 죽었다.

 

혈혈단신의 치매 노인 김대식은 그렇게 피붙이 하나 남겨놓지 않고 죽었고

그간 영치창고에 맡겨 둔 9억의 트렁크는 기봉규와 허태구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기봉규와 허태구는 그 돈을 자신들이 갖기로 한다.

어떻게?

조금씩 조금씩 매일 돈을 빼돌려서 밖으로 가져가 숨겨 두었다가 잠잠해지면 쓸 요량으로.

두 사람은 9억을 N분의 1로 나누어 4억 5000천만 원씩 갖기로 한다.

 

과연 그 돈은 두 사람에게 온전히 닿을 수 있을까?

 

비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둘만의 비밀은 일파만파 퍼지고 서로가 자기도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혼자서 꿀꺽하겠다는 심보로 무장한 사람도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숟가락을 들이대는 탓에 퇴근 시간에 조금씩 조금씩 현금을 옮기려던 기봉규만 속이 탄다.

있으나 마나 한 허태구와 온갖 지략(?)을 짜내지만 재수가 더럽게 없는 기봉규의 9억 옮기기 프로젝트는 아주 스피디한 전개로 이어진다.

 

온갖 인간 군상들이 숟가락을 들고 덤비는 모습이 가관이다.

입도 뻥긋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는 허당 봉규와 태구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치밀하지 않지만 치밀한 거 같고

웃긴 거 같은데 쓴맛이 나고

뭔가 한 방이 터질 거 같은데 싱겁고

싱겁다고 생각했는데 어이없는 상황이 뒷목을 잡게 한다.






마치 그림 속 상황처럼 엎치락뒤치락 9억을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징그럽기까지 한다.

9억은 어떻게 만들어진 돈이고

9억의 진짜 임자는 누구일까?

 

중요한 사안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무조건 자기 것을 만들고 말겠다는 욕심 앞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장편 소설들은 가벼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끝을 마주하고 있다.

정신없게 만들어 놓고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은데 점점이 느껴지는 무게감이 있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끝없는 무게 추를 목에 걸어준다.

한여름 밤의 꿈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9억의 임자 없는 돈.

그들은 과연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을까요?

 

나에게 임자 없는 돈 9억이 눈앞에 떨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그것을 처리할까? 를 속절없이 생각해 봤던 이야기 N분의 1은 비밀로.

잠시나마 9억을 손에 쥐고 있다가 꿈에서 깬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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