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더 미세스 - 정유정 작가 강력 추천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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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도 몇 번이나 든 생각이었지만, 이사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까 불안해졌다. 지금까지는 윌이 말했던 산뜻한 새 출발과는 분명 달랐다.

 

 

대도시 시카고에 살다가 인구 1000명의 섬으로 이사를 온 세이디네 가족.

세이디는 이곳에 오는 걸 반대했지만 모든 상황이 이곳으로 오게끔 만들었다.

겨울 잿빛이 만연한 섬. 그 언덕 위의 집.

자살한 시누이는 그 집과 조카딸 이모젠을 남동생에게 남겼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적막한 이곳에서 온몸으로 그들을 거부하는 이모젠의 어두운 모습은 막 도착한 세이디의 마음을 할퀴어 놓는다.

 

여름 한때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동안을 제외하고는 조용하기 그지없는 섬.

섬이란 자체가 고립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곳에서 세이디는 하나밖에 없는 진료소에서 의사로 근무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아들 오토와 자신의 실수는 아니었지만 자기가 맡아야 하는 수술을 맡지 않음으로써 대신 수술을 한 레지던트의 실수로 환자가 죽게 되자 세이디는 병원 응급실을 그만둔 터였다. 게다가 윌의 외도로 인해 그들의 가정은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러모로 상황이 안 좋았던 그들은 최선의 선택지로 윌의 누나가 남겨준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적응하기는 힘들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낯선 날씨.

직장이건 이웃이건 모두 세이디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모젠은 극도의 반항을 하는 중이고 아들 오토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래도 윌은 육아와 살림을 책임지면서 학부모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러던 중 이웃 중 한 명인 모건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잘한 범죄는 있었어도 살인은 없었던 이 섬에 세이디네가 이사 오자마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세이디는 경찰이 자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일까?

 

이 이야기의 화자는 4명이다.

세이디, 카밀, 마우스, 윌.

카밀은 세이디가 윌을 만나기 전 윌을 먼저 만난 사이지만 세이디에게 윌을 빼앗기고 그녀를 질투하며 윌의 주변을 맴돈다.

마우스는 어린 소녀로 어느 날 새엄마가 나타나면서 인생이 꼬인다.

 

세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독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물론 어느 정도 읽게 되면 트릭을 알게 되고, 그래서 쉽게 단정하게 된다. 범인을.

그러다가 뒤통수 맞게 되는 것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어디를 가든 불행이 쫓아오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불행을 키우는 건 세이디가 아닐까.

늘 불안불안하고 자신감 없어 보이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는 세이디가 답답하고

너무 나대는 카밀은 뻔뻔해서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고

마우스는 너무 가엽다가도 이 아이가 새엄마를 죽이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앞선다.

윌은 자신의 외도를 용서받기 위해 애쓰는 중이지만 그게 그리 오래갈 거 같지는 않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다.

결혼으로 묶여서 가족을 이루어도 부부는 무촌이다.

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자식이라도 다 알 수 없고,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부모라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이웃은 말해 뭐 하겠는가.

 

누군가 내 가정을 파괴하려 하고, 촘촘하게 그물을 치고 조금씩 그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사람 안에 수많은 나도 모르는 내가 존재하고 그것은 저마다 모습을 바꾸어 나를 만들어 낸다.

그저 범죄 소설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묘한 감상이 남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의 학대는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가 어떻게 진화되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극복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 <극복> 이란 것도 여러 단계의 과정이 있는 법이다.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되고,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지켜주지 못할 바에는 아이들 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 옳은 거 같다.

 

사랑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마음이 남긴 미래의 일들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도 결코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시간이 미움받는 것들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켜 준다면, 그건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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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호세 홈스 그림, 김수진 옮김, 스티그 라르손 원작, 실뱅 룅베르그 각색 / 책세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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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리즈는 스웨덴의 사회파 기자이자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이 10부작으로 계획한 시리즈였다.

자신의 분신인듯한 기자 미카엘 블룸크비스트와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주인공으로 사회의 부조리함과 추악한 비밀을 밝히고자 한 추리스릴러로 기획되었으나 라르손이 3부작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출간 날짜를 얼마 앞두고 심장마비로 요절하고 만다.

최근 들어 스웨덴에서 라르손의 뜻을 가장 잘 이어갈 작가로 선정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에 의해 6부작으로 마무리되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스웨덴과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있다고 하니 밀레니엄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거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래픽노블로 만들어진 밀레니엄을 읽었다.

 

거친 그림체가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밀레니엄 그래픽노블은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인 실뱅 룅베르그에 의해 각색되고 마블 코믹스에서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호세 홈스의 손에 그려졌다.

원작을 깔끔하게 요약한 실뱅 룅베르그의 솜씨가 돋보이고, 거친 그림체로 이 이야기를 더욱 휘몰아치게 만들어 버린 호세 홈스의 실력은 마치 거친 평야를 질주하는 리스베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는 리스베트와 미카엘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세상에 알리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 같아서 더 주인공들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

 

미카엘은 밀레니엄 잡지를 창간한 기자로 부패 재벌 한스에리크 벤네르스트룀의 공금유용혐의를 고발한 기사를 쓴다.

하지만 벤네르스트룀에게 한 방 먹고 밀레니엄을 살리고자 사표를 낸다.

그런 그에게 스웨덴 재벌 기업인 방에르가의 헨리크 회장에게서 가족사를 집필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문제는 가족사를 핑계로 오래전에 감쪽같이 사라진 손녀 하리에트의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게 진짜 목적이었다.

게다가 그 사건을 재조사하는 대가로 한스에리크 벤네르스트룀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자료를 준다고 한다.

그런 한편 헨리크 방에르는 리스베트를 시켜서 미카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입수한다.

 

리스베트는 관찰대상으로 자신을 돌봐주던 후견인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악덕 변호사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

리스베트의 계좌를 움켜쥐고 그녀를 노리개로 삼으려던 변호사에게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리스베트의 모습은 속이 시원하면서도 섬뜩한 면이 있다.

리스베트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방에르 가문은 섬 하나를 차지하고 모여 살고 있다.

재벌 가문들의 가족사가 그렇듯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헨리크뿐인 거 같다.

2차대전의 나치 신봉자부터 여자를 노리개 이상으로 절대 생각하지 않는 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자가 있었다.

 

재벌 가문이라는 겉모습에 가려진 실제 그들의 모습들은 하리에트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면서 점점 드러난다.

미카엘과 리스베트는 하리에트의 실종이 그 이전부터 있었던 연쇄살인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폭력, 강간, 학대, 살인, 은폐, 실종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이 한 편의 이야기 속에 담겼다.

뭔가 뿌리 깊은 혐오와 편견들이 뭉쳐져서 거대한 살인의 행각이 이어지고 있었던 그들만의 세상.

그 세상 속에서 빠져나가기를 간절하게 원한 한 사람.

그리고 그런 행적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살아오던 헨리크는 죽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가문을 위해 그것을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미카엘과 리스베트를 통해 그것이 드러나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책을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래픽 노블을 읽으며 선명해진다.

헨리크는 죽음을 앞에 두고 모든 비밀을 파헤치기로 마음먹었던 거 같다.

그것이 자신의 가문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될지언정 가해자를 응징하고 피해자들이 세상을 보고 살 수 있도록.

 

거칠게 그려진 그림들이 프레임을 뚫고 나올 기세다.

보기 불편한 장면들도 담겨 있다.

어떤 장면은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보다는 영화로 볼 때가 더 끔찍했고, 영화 보다 이 그래픽 노블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가장 특징적인 것을 포착해서 그려내는 그림은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드러낸다.

 

처음 밀레니엄을 읽었을 때 나는 리스베트를 주인공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북유럽 소설이 처음이었고, 그때까지 내가 접한 영미 스릴러 보다 훨씬 더 잔혹했던 이 이야기에서 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여주인공을 만났었다.

그동안 여러 버전의 리스베트를 상상하고, 영화를 통해 보았지만 이 그림체의 리스베트만큼 강렬한 모습은 처음이다.

 

원작을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원작의 엑기스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이고

원작을 못 읽은 사람들에게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인 밀레니엄 그래픽노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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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테임드 - 나는 길들지 않겠다 뒤란에서 에세이 읽기 2
글레넌 도일 지음, 이진경 옮김 / 뒤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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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것이 아닌 삶을 내 삶으로 여기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길들여진 대로가 아니라 자유로운 여자로서 내 영혼으로부터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이야기는 야생성을 잊은 철창 안의 치타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사육사에게 길들여진 치타.

사람들 앞에서 재롱 떨 듯 야생성 비슷한 흉내를 내고는 철창 안으로 들어가서 마치 그곳이 내 집인 것처럼 순응해버리는 치타.

그 모습에서 자신을 본 글레넌은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세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은 바람을 피웠다.

부부관계를 개선해보기 위해 심리 상담을 받았지만 글레넌은 도저히 남편이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담사에게 남편과의 섹스가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솔직한 이야기에 대한 답은 '구강성교'를 하라는 것이었다.

글레넌은 결혼생활 내내 불성실했던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각종 중독 문제도 가지고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뭔가 자꾸 불편했다.

아마도 내가 이 글들에서 나 자신의 억압된 모습을 보게 되어서 그랬던 거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알게 모르게 지워진 사회적 규율들은 여자이던 남자이던 굴레가 되어 온몸에 동여매어진다.

마치 야생은 구경도 못한 채로 야생을 흉내 내야 하는 동물원 치타처럼.

 

 

이 글은 한 사람이 이런저런 사회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감당하고, 싸우고, 이겨내고, 쟁취한 이야기다.

짤막한 에세이들로 이루어진 소설 한 편이다.

 

책을 읽기 전 수많은 찬사가 담긴 리뷰들을 먼저 접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 인사들의 아낌없는 칭찬이 이 책에 쏟아졌다.

도대체 뭐길래?

 

책을 읽으며 내가 이런저런 굴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그 굴레를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여자이기에 감당해야 하고, 치러야 하고, 책임 지워지고, 참아내야 하는 것들의 부당함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라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거나, 어쩜 내가 뭔지도 모른 채로 그렇게 살아지도록 강요받는 것을 당연시 해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 여자들에게 <아줌마>라는 단계가 생성된 것이 바로 글레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도 엄마도 아닌 아줌마.

이 단어가 가진 강렬하고 강력한 힘은 알게 모르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자들이 자신의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이 관습적인 사회에서 그나마 숨통을 트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 어떤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되어가는 단계가 <아줌마>가 아닐까.

어디에도 없는 <아줌마>는 우리 조상들이 일구어낸 본래의 야생성이 아닐까.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누군가가 주입시킨 모습이 아닌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자는 글레넌의 이야기는

우리 여성들에게 필요한 지침서 같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낸 굴레에서 벗어나도 된다.

여자니까. 여자라서. 여자는.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서

사람이니까. 사람이라서. 사람은. 으로 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여자> 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여자이든, 여자가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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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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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어떤 이야기 보다 더 특별한 이야기.>

 

 

"수사 속도를 높여야겠어. 피해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으니, 이를 막으려면 앞질러 가는 수밖에. 자네가 미래 세계로 가줘야겠어.

 

 

시간여행자 수사관 섀넌 모스.

미래 세계에서 종말을 일으키는 터미너스로 인해 죽음 직전에 구출된 섀넌은 그 후유증으로 다리 하나를 잃는다.

그런 그녀에게 사건 현장에 참여하라는 전화가 온다.

NCIS 소속인 섀넌은 해군 가족이 몰살당한 현장에 도착한다.

그 현장은 그녀의 절친이었던 코트니가 살던 집이었다.

 

십 대 때 살해당한 코트니와의 추억이 가득한 집은 두 아이와 엄마가 참혹하게 살해된 살육의 현장이었다.

사라진 큰 딸과 그 집에 가장인 패트릭 머설트는 사라진 우주선 <리브라>호의 선원이었다.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터미너스.

시간 여행 중에 사라진 <리브라>호.

그러나 <리브라>호의 선원들은 굳건한 대지에 어떻게 돌아왔을까?

풀리지 않는 사건의 실마리를 위해 상관 오코너는 섀넌을 미래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전함이 목격하는 미래 세계란 현재 조건에 기인하는 가능 세계이며, 달리 말하면 사실상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세계에 불과하다.

 

 

시간 여행자가 방문하는 미래는 시간의 갈래상 여러 줄기 중에 하나로 시간 여행자가 방문하고 있는 그 시기에만 생성되는 세계다.

따라서 시간 여행자가 떠나면 그 세계는 사라지고 만다.

그것을 아는 미래 세계 사람들은 시간 여행자를 발견하면 자신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간 여행자를 붙잡아 두기도 한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떠난 섀넌은 미래에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코트니의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머설트와 불륜 관계였던 니콜을 찾아 그녀가 말하지 않은 머설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몇 달 동안 공을 들인 섀넌은 드디어 니콜에게서 진실을 듣게 되는데...

 

나는 앞으로 어떤 테러가 여전히 일어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그것이 굳건한 대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추적하러 떠난다. 그래야 하일데크루거가 이 굳건한 대지에서 무슨 일을 벌일 계획인지 예측할 수 있고, 막을 수 있다.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SF 소설의 단골 소재이지만 그 빤한 이야기를 이렇게 색다르게 만들어 낸 작가의 세계관이 경이롭다.

굳건한 대지는 현재이고 미래에서 몇 달이나 몇 년을 살다 오든 현재의 시간은 멈춰있다.

하지만 시간 여행자는 미래의 세계에 머물다 온 만큼 나이를 먹는다.

현재의 시간에서 섀넌은 점점 늙어가고, 미래의 세계에서는 세월을 먹지 않은 젊음을 가졌다.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은 그녀의 달라진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의 그들은 그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온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어떤 세상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섀넌.

그녀가 미래를 다녀올 때마다 점점 더 빨라지는 지구의 멸망.

결국 굳건한 대지 현재까지 터미너스가 따라오고 섀넌은 그것을 막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다.

과연 그녀는 이 지구의 멸망을 막을 수 있을까?

 

나는 하나의 웜홀을 항해했다. 각각의 웜홀은 별개의 미래 세계로 향하는 다중우주로 이어지는 터널이다. <그레이 도브>호가 사납게 요동치는 수많은 갈래의 거품 속에서 어떤 웜홀로 나올지는 오로지 우연의 문제였다.

 

 

머릿속에서 모든 장면들이 저절로 재생되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야기의 끝을 향해 갈수록 전 세계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뜻은 같았지만 자기희생은 하고 싶지 않았던 하일데크루거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지구의 멸망을 구원하기 위해.

하지만 섀넌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면 비로소 이 책의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이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자, 섀넌, 일어나. 다른 사람이라면 그만뒀겠지만 넌 할 수 있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섀넌의 말이 힘겹지만 포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한다.

눈앞에 닥친 지구 멸망 앞에서도 나는 그녀가 해낼 거라는 걸 안다.

지구는 섀넌이 있기에 멸망하지 않을 거라는걸.

 

고독한 수사관이자 어느 세계에서도 이방인이 되었던 섀넌 모스.

사라진 세계로 사라진 섀넌 모스.

그리고 무한하게 이어지는 시간의 갈래들.

우리는 그 어느 갈래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섀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어떤 삶에서도 포기를 모르는 집념으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어느 한 가닥의 시간에서만이라도 섀넌이 평범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이야기의 강렬함은 책을 다 읽고 나서 점점 커져만 간다.

영화보다는 이야기로만 남아서 자꾸 곱씹어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특별한 이야기에 굶주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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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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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신작 4편이 담긴 <피가 흐르는 곳에>

4편의 이야기 모두 은근한 광기와 오싹함과 믿지 못할 세계를 담았다.

 

 

 

나는 그날 그렇게 안아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만약 그날 엄마처럼 나를 안아준 사람이 있었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적한 할로 마을에 갑부인 해리건씨가 은퇴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이사를 온다.

해리건씨는 크레이그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하고 그에게 기념일들마다 복권이 담긴 카드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해리건씨가 보내준 복권에 3000달러가 당첨된 크레이그는 그에게 아이폰을 선물한다.

모든 신문물을 경계하던 해리건씨는 의외로 아이폰에 관심을 가지고 애용하게 된다.

노환으로 죽은 해리건씨의 장례식에서 크레이그는 몰래 아이폰을 관속에 넣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 못 할 일들이 생겼을 때 해리건씨에게 전화를 건다.

 

 

환상특급 같은 이야기인데 생각할수록 뭔가 오싹한 분위기가 스멀스멀 퍼지는 이야기다.

해리건씨의 영혼이 크레이그의 고민들 때문에 영면에 들지 못했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아무에게도 관심 없을 거 같았던 갑부 해리건씨는 사실 세심하게 자기 사람들을 돌봐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묘한 반전으로 남는다.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구.

인터넷은 끊긴지 오래고 갑자기 싱크홀이 생겨나고, 연료도 바닥나고, 전기도 언제 끊길지 모르고

식량도 곧 그렇게 될 처지에 놓은 지구.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고마웠어요. 척! 이라는 문구는 온 세상을 도배한다.

그러나 그 '척'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누구일까?

 

 

빅토리아풍 주택의 다락방에 숨겨져 있는 건 시간 터널일까?

가까운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공간.

그 미래를 본 사람은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가 그 미래를 바꾸려고 했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4편의 이야기 중에 가장 아리까리했던 작품.

 

 

 

"이제는 비행접시에서부터 킬러 광대에 이르기까지 뭐든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2의 세계가 실제로 있거든요. 그게 존재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이에요."

 

 

피가 흐르는 곳에.

전작 <아웃사이더>를 읽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 이야기에서 만났던 비슷한 존재를 또다시 느낀 홀리.

절대 악.

사람들의 고통과 공포를 먹고사는 그것.

언제나 재난의 현장에 젤 먼저 달려와 피 맛과 공포와 고통을 흡수하는 그것이 이제는 스스로 재난을 일으키고 있었다.

홀리는 홀로 그것을 추적하고, 홀리와 마찬가지로 평생 그것을 추적하며 살아온 90 넘은 노 형사는 집념의 기록물을 홀리에게 넘긴다.

그것과 담판을 지으려는 홀리의 계획은 무사히 진행될까?

홀리는 아끼는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그 절대 악을 해치울 수 있을까?

 

 

빌 호지스 시리즈에서 파생된 홀리 기브니는 그래서인지 평범한 사건들보다는 뭔가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따라오는 모양이다.

4편 중 가장 긴 이야기 피가 흐르는 곳에.

홀리의 곁엔 호지스가 늘 함께 하는 거 같고, 항상 형사들이 그녀를 도우며 똑똑하고 다정한 제롬까지 홀리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어서 기쁘다.

호지스 씨가 그리웠는데 피가 흐르는 곳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어서 더 아련해진다.

스티븐 아저씨~ 호지스 씨를 그렇게 보내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아쉬우셔서 자꾸 이름이라도 등장시키시는 거죠?

 

 

 

뭐 어때? 드류는 생각했다. 그냥 가상의 질문이잖아. 그것도 꿈속에서 듣고 있는.

"그렇다면 제안을 받아들이고 소원을 빌겠어." 드류는 말했다.

 

 

대가를 치르는 소원은 함부로 빌면 안 된다.

당신은 그 죄책감을 죽어서도 짊어지고 갈 테니.

그것이 곧 죽을 사람의 목숨이라도...

 

 

단편으로만 살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족적은 남기고 싶었던 드류 교수님.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라 장편을 써보겠다고 아버지의 오두막으로 떠난 그는 폭풍우를 만난다.

그리고 그날 거의 죽어가는 쥐 한 마리를 끝장내지 않고 불쌍히 여겨 난로 앞에 둔다.

따뜻하게 죽으라고.

그러나 쥐는 죽지 않고 드류에게 작품을 멋지게 끝내게 도와준다고 한다.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소원의 대가였다.

 

 

드류는 소원을 빌었다.

완성된 작품은 드류의 작품인가? 쥐의 작품인가?

 

 

 

어떤 이야기를 써도 독자를 푹 빠지게 만드는 스티븐 킹.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진 이야기의 킹.

짤막한 그들이 뿜어내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현실.

 

 

우리는 모두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삶은 모두 선택의 기로에 있고 그 기로에서 우리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항상 무언가의 도움을 받는다.

그 무언가는 쥐일 수도 있고, 해리건 씨 일 수도 있고, 척일 수도 있고, 절대 악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저마다 선택한 길에서 받은 도움에 대가를 치른다.

그리나 절제를 아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제어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4편의 주인공들이 모두 맘에 든다.

그들은 멈출 줄을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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