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스케치·투시도 쉽게 따라하기 - 스케치 투시도, 건축 도면 그리고 채색까지 한 번에 끝내기 더숲 건축 시리즈
무라야마 류지 지음, 이은정 옮김, 임도균 감수 / 더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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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책을 만났다.

그림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스케치인데 이 책은 그 기초부터 전문가 영역까지 활용할 수 있는 책이다.

 

대학에서 건축 투시도법을 배우면서 사진 스케치와 기법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진 스케치 방법을 응용하면 투시도법을 쉽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점을 살려 이 책을 스케치부터 건축 도면, 투시도법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내용으로 구성했습니다. 자신의 기량에 맞는 내용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스케치

건축 도면

투시도

도면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테크닉

4단계로 구분되는 이 책의 내용은 기초부터 시작하기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도 선 긋기부터 배울 수 있다.






그림이나 건축 설계의 바탕이 되는 것이 스케치이다.

이 책은 스케치에 필요한 도구부터 구도 잡기, 채색하기부터, 사진, 건물, 풍경 스케치까지 저자의 실전 경험이 담겨있다.

복잡하지 않아서 나 같은 문외한도 겁 없이 시작해 볼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사실 이 책은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설계도와 CAD를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택했다.

랑님이 나에게 CAD를 배워보라고 하기에 그건 어려워서 안된다고 딱 잘라 말했는데

이 책을 살펴보면서 나도 CAD를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은 착각(?)이 든다.

 

게다가 집을 직접 짓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스케치와 CAD를 이용한 설계도 그리기를 함께 설명하고 있기에 내 집의 설계를 직접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혼자 공부하기 좋은 참고서 역할을 해줄 것이다.

 

정확하게 그리려고 하기보다는 봤을 때의 인상을 종이 위에 표현한다는 생각으로 스케치한다. 보조선을 이용하거나 비슷한 위치에 선을 여러 개 그으면서 서서히 형태를 잡아가다 보면 필요한 선만으로 깔끔하게 그릴 수 있게 된다.

 

 

도면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그리는 것이다. 스케치와는 달리, 눈앞에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를 실체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스케치와 도면의 차이다.

느낌을 표현해내는 것이 스케치고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도면이다.

 

요즘 내 집 짓기가 소원인 사람들이 많다.

내 집을 짓는 것은 내 머릿속에 있는 집에 대한 형상을 끄집어 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걸 전문가에게 맞기더라도 대략적인 그림이 있다면 설계도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뭔가 꽤 어렵게 느껴지고 절대 나는 할 수 없을 거 같았던 분야에 대한 벽이 조금 허물어지는 기분이다.

만만해 보이지 않았던 책인데 만만하게 느껴진다.

 

요즘 책 읽기 말고도 컬러링을 자주 하고 있는데 뭔가 만족감이 덜하는 거 같았는데 그 이유를 알 거 같다.

나도 뭔가 그리고 싶은 게다.

컵 그리기부터 한 번 시도해 보고자 한다.

소싯적엔 정물화를 곧잘 그리곤 했는데 어느 순간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내 미술도구들은 동생들 손으로 넘어갔다.

좋은 취미를 잃은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내 안에서 그림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 긋기부터 연습해야겠다.

랑님의 CAD로 나도 뭔가를 그려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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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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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추적하는 것은 역사 너머의 역사다. 어떤 시대적 상황이 우리가 아는 역사적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꼬꼬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SBS 프로그램이다.

각종 사건을 세 명의 진행자가 각자의 친구들을 초대해 이야기해 주는 형식으로 꾸려가는 프로그램이다.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이렇게 세 사람이 매 회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서 그들에게 사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같은 사건의 내용을 세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주는데 세 사람 모두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들려주듯이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에서든 세 명의 화자가 나오기에 다양한 의견을 듣는 느낌으로 사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그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사건 중 일곱 편을 책으로 엮었다.

 

 

카사노바 박인수

공작명 KT 납치 사건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

서진룸살롱 살인 사건

탈옥수 지강헌 인질극

1992 휴거 소동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

 

 

이렇게 7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제목만 봐도 어딘선가 들어 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엔 우리 현대사가 담겼다.

 

 

 

 

<<강간을 합법화 시켰던 이상한 사회구조>>

 

 

카사노바 박인수를 통해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읽는 내내 어이가 없었다.

박인수는 해군대위를 사칭하며 고급 댄스홀에서 여자들을 홀리고 다녔는데 그 수가 오리지널 카사노바를 능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뻔뻔한 남자는 그 모든 여자들 중에 처녀는 한 명뿐이었다고 얘기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흐려놨다.

그 당시의 사회적 인식은 이랬다.

사랑(?)하는 여자를 납치 감금해서 강간했음에도 형벌을 내리기는커녕 창창한 앞날(?)의 청춘들을 위해 결혼을 중재한 재판이 비일비재했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해서 살아야 하는 여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

 

 

이것이 사건 담당 판사가 판결 후에 덧붙인 한마디라니 얼마나 깜깜했던 시절인가!

이 사건에서 언급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를 꼭 봐야겠다.

90년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강간 당할 뻔한 여자가 자신을 공격한 강간범의 혀를 물어뜯어서 혀가 잘린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는데 우리에게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가 그 당시에 있었다니 신선하다.

 

 

 

 

<<움막에 지른 불은 사법고시의 꿈을 키우던 청년의 영혼을 불태웠다.>>

 

 

무등산 타잔 박흥숙.

그의 이야기는 재방까지 두 번을 보았고, 책으로도 읽었지만 매번 가슴이 답답하고 진정이 되지 않는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흙수저 박흥숙.

사법고시로 정의로운 법조계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던 청년은 살인마가 되었다.

이 박흥숙의 이야기는 볼 때마다 박정희 정권 시대의 암울함과 억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렇게 개돼지만도 못하게 대할 수가 있냐?

우리는 사람이 아닌 거냐!

 

 

무등산 케이블카와 대통령이 좋아하는 헬기를 타고 지나갈 산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산으로 쫓겨 들어가 엉성하게 지은 움막은 보기 싫은 가난의 증표였다.

그래서 윗선은 그 움막을 철거하고 불태워서 가난을 사라지게 하려 했다.

그날의 참극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선량하게 하루하루 살려고 노력했던 청년의 눈을 돌아버리게 만든 사건은 모두 한순간 지나갈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

 

 

박흥숙의 이야기는 21세기인 지금에도 다른 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론은 진실을 외면하고 사건을 오도했다.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명도 박흥숙을 희대의 살인마로 만들기 위한 언론의 조롱이었다.

그 언론 역시 21세기인 지금에도 똑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물림이란 이런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였고,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하지 않은 채로 70년대식 철거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이 사회의 고리타분함에 분노하게 되는 이야기다.

 

 

 

 

<<진룸살롱 사건이 불러온 범죄와의 전쟁>>

 

 

어떤 일이든 시발점이 있다.

서진룸살롱 사건은 조폭 간에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이 될 수도 있었지만

노련하지 못한 신진세력이 피해 가지 않고 정면승부를 던짐으로써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와 맞물려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200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겉으로 봤을 때 이 사건은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이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그 밑바닥에 쉬운 선택의 삶이라는 그늘이 담겼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잘 자란 청년도 쉽게 돈 버는 것에 '맛'들이고 나면 결국 자신이 살아왔던 방향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금석은 역사적으로는 조폭 살인마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착한 아들이었고, 한 사람을 사랑했던 사랑꾼이었으며 어느 시골 아이들에겐 처음으로 바다를 구경시켜 준 키다리 아저씨였다.

다양한 모습의 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악인으로 기억되고, 누군가에겐 착한 사람으로 기억될 고금석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제는 거의 전설로 남을 명언.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지강헌과 함께 탈출한 탈옥수들은 이집 저집을 옮겨 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옷을 바꿔 입고 도망을 다녔다.

지강헌이 560만 원의 도둑질로 17년 형을 선고받았던 때에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76억을 횡령하고도 7년을 선고받았고 그나마도 가석방되었다.

그들이 탈출해서 연희동으로 가려 했다고 대답했다던데 정말 거기 갔더라면 어땠을까? 삼엄한 경비를 뚫지 못하고 잡혔을 것이다.

인질들은 그들을 위해 탄원서를 냈다.

그랬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를 자꾸 곱씹어 보게 된다.





꼬꼬무에 담긴 이야기들엔 그 당시 사회의 문제들이 얽혀있다.

어느 하나도 개인의 욕심과 탐욕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사회가 그들을 만들어냈다.

 

 

사건의 이야기의 끝엔 담당 PD의 노트가 담겨 있다.

꼬꼬무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공개된 영화라면 이 책은 그 영화의 감독판쯤 된다.

 

 

사건만 본다면 잔혹한 범죄이지만

그 안에는 사회와 정치가 담겨 있다.

곪고 곪아서 터져 버린 게 바로 이런 범죄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범죄와 무관하지 않다.

 

 

지강헌의 말처럼 힘없는 자들은 자그마한 죄에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힘 있는 자들은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도 자그마한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그가 가고 세상이 그가 남긴 말을 유행어처럼 써먹고, 그 말이 명언이 되어가는 이 와중에도

그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뜻인 거 같다.

 

 

더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 주어진 한 표를 제대로 잘 던져야겠다는 다짐을 또 해본다.

 

 

무릇 영상으로 보던 것도 글로 보면 그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원작이 있는 영화가 좀체 칭찬을 받기 힘든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느낌은 흘려듣는 일이 없이 모든 걸 꼼꼼하게 읽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을 보면서 스치듯 지나간 생각들이 글로 대하니 더 견고하고 확고해지는 기분이다.

담당 PD의 기획의도도 같이 읽을 수 있어서 사건들을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꼬꼬무가 시리즈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나 자신이 범죄의 이면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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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섬 웅진 모두의 그림책 41
다비드 칼리 지음,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이현경 옮김, 황보연 감수 / 웅진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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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름 없는 숲속에

<<소원의 늪>>과 <<잃어버린 시간의 폭포>> 사이에 자리 잡은 <<꿈의 그늘>> 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엔 왈라비 박사라는 뛰어난 의사가 있습니다.

왈라비 박사는 '악몽'을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숲속에 사는 많은 동물들은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왈라비 박사를 찾아와 자신들이 꾼 악몽을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발에 짓밟히고,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괴물이 나타나고, 시커먼 어둠에 밤새 추격 당하고, 사나운 고함 소리에 고통을 받죠.

이런 악몽을 꾸는 동물들의 괴로움을 아는 왈라비 박사는 악몽 사냥에 나섭니다.

믿음직스러운 딩고와 시리오와 함께.

 

어느 날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가 찾아왔습니다.






"꿈을 꾸면, 텅 비어 있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깊고 깊은 곳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어둠만 보여요."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의 악몽은 왈라비 박사도 모르는 꿈이었어요.

과연 왈라비 박사는 이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의 악몽을 치료해 줄 수 있을까요?

 

다비드 칼리의 글과 클라우디아 팔마루치의 멋진 그림이 펼쳐지는 그림책은 단순히 악몽에 대한 꿈이 아니다.

악몽이라는 이름으로 왈라비 박사를 찾아오는 동물들은 멸종 위기에 놓이거나 멸종된 동물들이다.

 

간결한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페이지마다 담겨 있다.

동물들의 악몽의 의미를 알고 나면 그동안 지구상에서 인간에 의해 사라진 수많은 동물들에게 죄스러워진다.

아름다운 그림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을 이해하고 나면 그들이 왜 그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을 처음 펼치면 많은 동물들의 그림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또 다른 동물들의 초상이 나온다.

그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는 동물들이다.

 

인간의 편의에 의해

인간의 욕심에 의해

인간의 무관심에 의해

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사라졌다...

 

코로나19가 인간의 삶을 많은 부분 정지시켜 놓은 이 시간에

이 그림책이 주는 울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구하자는 이야기를 백날 해봐야 굳어진 문구와 말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이렇게 멋진 그림과 간단하지만 정곡을 찔리는 글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각인시킨다.

사라져간 수많은 동물의 초상 앞에서 언젠간 이곳에 그려질 인간의 초상을 생각해 본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결국 인간도 동물 종이니 언젠가 천적이 생기면 멸종될 운명이다.

인간의 천적은 무엇일까?

기계화되는 인공지능의 세상이 바로 인간의 천적이 아닐까?

그때가 되면 이 그림책에 담긴 사라진 동물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까?

 

그림체에 혹해서 호기심에 즐겁게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름다운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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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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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도시와 같아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전체를 거부할 순 없다.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이나 교외 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다른 장점이 그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미련스럽다.

 

그때 그랬더라면 지금은 이렇지 않았을 텐데...

그때로 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거야.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후회를 안고 사는 삶은 만족스럽지 않다.

노라의 선택지는 돌이킬 수 없었고, 많은 관계들을 잘라냈다. 인생에서.

결혼 이틀 전 결혼을 취소했고, 음반회사와 계약을 앞두고 밴드를 탈퇴했다.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고양이 하나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길에서 죽게 만들었다.

게다가 직장에서 해고되고, 일주일에 하루 한 시간 하는 피아노 레슨에서도 짤렸다.

하나뿐인 오빠는 그녀와 단절했고, 친구들과도 모두 사이가 멀어졌다.

 

어디 하나 마음 붙일 곳이 없는 노라는 죽기로 결심한다.

 

갖가지 초록색 책들이 즐비한 도서관에 발을 들인 노라.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자신을 삶을 '맛' 보게 된다.

노라는 그 여정에서 만족할만한 삶을 발견했을까?

 

노라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내가 후회하는 선택들을 생각했다.

그때 그랬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텐데... 하던 후회들.

 

 

"여기 있는 책들,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전부 너의 다른 삶이야. 이 책만 제외하고. 이 도서관은 네 도서관이거든. 널 위해 존재하지. 사람의 삶에는 무수히 많은 결말이 있어. 이 서가에 있는 책들은 모두 네 삶이고, 같은 시간에 시작해. 바로 지금. 4월 28일 화요일 자정에. 하지만 이 자정의 가능성이 모두 똑같지는 않아. 비슷한 삶들도 있지만 아주 다르기도 해."

 

 

후회하는 모든 삶을 나도 살아 볼 수 있다면 나는 어느 삶에서 만족하게 될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지금 내 삶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후회들과 선택들은 결국 지금의 나니까.

지금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바로 내 잘못이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언제든 사람은 그 순간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결정을 하게 마련이다.

포기하고, 희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결정들 역시 그 당시에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내가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그걸 시간이 지나서 후회한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좋은 작품이다.

내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꿔주었으니.

노라의 여정을 따라가며 나도 후회되는 삶들을 다시 살아봤다.

지금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내가 고치지 못하는 나의 습관들이다.

그것들을 고칠 수 있는 건 바로 나뿐이라는 걸 또다시 각인하게 된 작품이었다.

 

 

지금 당신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나요?

지난 과거에 선택하지 못한 결정들을 후회하고 있나요?

그럼 노라와 함께 그 후회의 책을 펼쳐 보세요.

당신이 후회의 책을 읽게 되면 지금 당신의 모습이 훨씬 괜찮게 느껴질 겁니다.

 

이 책은 삶의 비밀을 알려준다.

내가 깨달은 비밀은 비밀도 아닌 비밀이다.

모든 건 바로 내 마음에 있고, 내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불만이 쌓인다는 것.

지금 이 순간도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다.

그러니 삶이 힘들어서 죽음이 생각난다면, 그 죽을힘으로 나를 바꾸는 노력을 하면 어떨까?

 

하루에 한 가지

내가 평소에 선택하지 않았던 선택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그렇게 하나씩 나를 바꿔 나가다 보면 나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내가 원하는 나로 살게 될 것이다.

노라가 내게 그걸 알려주기 위해 그렇게 고생스러운 여행을 한 거 같다.

 

나의 자정의 도서관에 있는 후회의 책이 얇아지도록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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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와의 정원
오가와 이토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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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와 이렇게 연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리라곤 나무늘보 시절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실을, 나는 지금 내 삶을 통해 실제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동화처럼 생각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토와의 정원은 우리가 아는 모든 장르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동화처럼 시작해서 스릴러처럼 흘러가다 공포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막막함을 던져준다.

그리고 스치듯 지나가는 이야기 속의 범죄를 마주할 때의 경악스러움은 웬만한 범죄소설에 버금간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무리는 지극히 평온하다.

마치 오만가지 '맛'이 나는 해리 포터의 젤리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눈먼 소녀 토와에겐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집 밖에는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토와에겐 엄마와 살고 있는 집이 세상의 전부였다.

열 살 생일날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기 위해 딱 한 번 외출했을 때가 토와 인생에 가장 강렬한 기억이었다.

 

 

매주 수요일에 '아빠'가 식료품을 집 앞에 두고 간다.

그 아빠는 한 번도 집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토와는 아빠가 오는 날을 기점으로 시간을 가늠한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토와는 소리와 냄새로 세상을 느낀다.

 

 

나는 왜 엄마가 아이를 집안에서만 가둬 키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멋대로 상상해본다.

토와는 분명 혼외자이거나 장애가 있어서 아빠에게 내쳐진 아이라고..

그러나 이 책은 끝까지 다 읽지 않으면 그 진위를 알 수 없다.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 토와의 정원.

 

 

 

나는 "엄마"를 봉인했다.

 

 

질서가 있었던 집은 어느새 질서 없이 쓰레기가 나도는 집이 되었다.

엄마가 일하러 가는 사이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던 토와는 잠에서 깨었지만 더 이상 엄마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미뤄왔다.

방치된 눈먼 아이는 홀로 몇 번의 계절을 견디어 낸다.

토와의 정원에서 나던 나무와 꽃의 향기는 집안팎에 쌓인 쓰레기의 악취로 사라졌다.

그리고 수요일의 아빠도 더 이상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버티고 버티던 토와는 스스로 밖을 향한다.

그것만이 살길이기에...

 

 

 

공포는 자꾸자꾸 뒤따라와 내 피부밑으로 슬며시 잠긴 뒤 팽창해, 나를 뒤에서 그러안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옥죈다.

 

 

아동학대, 방치, 살인 이 모든 이야기가 뉴스처럼 지나가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토와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세상을 배워간다.

안내견 조이와 함께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 삶을 다시 시작하는 토와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잔잔한 문체로 이어진다.

 

 

눈이 안 보인다는 상황에 대한 절묘한 표현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토와의 정원.

토와의 새로운 삶이 눈부시게 찬란하게 느껴진다.

 

 

"우리, 훨씬 오래전부터 이미 아는 사이였네요."

 

 

토와의 안식처 다락방 살창을 열면 어디선가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는 토와에게 위안은 주었다.

그리고 그 피아노의 주인을 만나게 된 날 토와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생전 처음으로 초대를 받고, 진심 어린 차 한 잔을 대접받고 태어나서 가장 맛있는 튀김을 먹은 날은 마녀 마리 씨를 만난 날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세상에서

냄새와 소리로 색을 떠올리고 세상을 그리는 토와.

모진 시련 앞에서도 담담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토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알 수 없는 경건함을 갖게 된다.

 

 

이토록 꿋꿋하게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한테 이야기는, 생명의 은인이야."

 

 

어릴 때 엄마가 읽어준 책들이 토와의 양식이 되었다.

그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토와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나마의 진심이 있었다는 것이 토와를 마주하고 있는 나에게 위로가 된다.

 

 

토와와 함께 한 시간은 내내 빛 속에 있었다.

눈먼 소녀의 이야기는 어둠이 아니었다.

방치되고 버려진 토와마저도 어둠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가와 이토의 글은 처음이다.

이렇게 차분하게 모든 이야기를 다정히 얘기하는 작가는 처음이다.

살인도, 학대도, 버려지는 상황마저도 읽는 이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작가의 전작들을 모두 읽어봐야겠다.

따스함의 온기로 세상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잔잔한 수면에 떠있는 백조의 우아함을 보면서 그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백조의 발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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