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와의 정원
오가와 이토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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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와 이렇게 연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리라곤 나무늘보 시절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실을, 나는 지금 내 삶을 통해 실제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동화처럼 생각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토와의 정원은 우리가 아는 모든 장르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동화처럼 시작해서 스릴러처럼 흘러가다 공포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막막함을 던져준다.

그리고 스치듯 지나가는 이야기 속의 범죄를 마주할 때의 경악스러움은 웬만한 범죄소설에 버금간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무리는 지극히 평온하다.

마치 오만가지 '맛'이 나는 해리 포터의 젤리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눈먼 소녀 토와에겐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집 밖에는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토와에겐 엄마와 살고 있는 집이 세상의 전부였다.

열 살 생일날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기 위해 딱 한 번 외출했을 때가 토와 인생에 가장 강렬한 기억이었다.

 

 

매주 수요일에 '아빠'가 식료품을 집 앞에 두고 간다.

그 아빠는 한 번도 집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토와는 아빠가 오는 날을 기점으로 시간을 가늠한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토와는 소리와 냄새로 세상을 느낀다.

 

 

나는 왜 엄마가 아이를 집안에서만 가둬 키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멋대로 상상해본다.

토와는 분명 혼외자이거나 장애가 있어서 아빠에게 내쳐진 아이라고..

그러나 이 책은 끝까지 다 읽지 않으면 그 진위를 알 수 없다.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 토와의 정원.

 

 

 

나는 "엄마"를 봉인했다.

 

 

질서가 있었던 집은 어느새 질서 없이 쓰레기가 나도는 집이 되었다.

엄마가 일하러 가는 사이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던 토와는 잠에서 깨었지만 더 이상 엄마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미뤄왔다.

방치된 눈먼 아이는 홀로 몇 번의 계절을 견디어 낸다.

토와의 정원에서 나던 나무와 꽃의 향기는 집안팎에 쌓인 쓰레기의 악취로 사라졌다.

그리고 수요일의 아빠도 더 이상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버티고 버티던 토와는 스스로 밖을 향한다.

그것만이 살길이기에...

 

 

 

공포는 자꾸자꾸 뒤따라와 내 피부밑으로 슬며시 잠긴 뒤 팽창해, 나를 뒤에서 그러안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옥죈다.

 

 

아동학대, 방치, 살인 이 모든 이야기가 뉴스처럼 지나가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토와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세상을 배워간다.

안내견 조이와 함께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 삶을 다시 시작하는 토와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잔잔한 문체로 이어진다.

 

 

눈이 안 보인다는 상황에 대한 절묘한 표현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토와의 정원.

토와의 새로운 삶이 눈부시게 찬란하게 느껴진다.

 

 

"우리, 훨씬 오래전부터 이미 아는 사이였네요."

 

 

토와의 안식처 다락방 살창을 열면 어디선가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는 토와에게 위안은 주었다.

그리고 그 피아노의 주인을 만나게 된 날 토와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생전 처음으로 초대를 받고, 진심 어린 차 한 잔을 대접받고 태어나서 가장 맛있는 튀김을 먹은 날은 마녀 마리 씨를 만난 날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세상에서

냄새와 소리로 색을 떠올리고 세상을 그리는 토와.

모진 시련 앞에서도 담담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토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알 수 없는 경건함을 갖게 된다.

 

 

이토록 꿋꿋하게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한테 이야기는, 생명의 은인이야."

 

 

어릴 때 엄마가 읽어준 책들이 토와의 양식이 되었다.

그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토와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나마의 진심이 있었다는 것이 토와를 마주하고 있는 나에게 위로가 된다.

 

 

토와와 함께 한 시간은 내내 빛 속에 있었다.

눈먼 소녀의 이야기는 어둠이 아니었다.

방치되고 버려진 토와마저도 어둠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가와 이토의 글은 처음이다.

이렇게 차분하게 모든 이야기를 다정히 얘기하는 작가는 처음이다.

살인도, 학대도, 버려지는 상황마저도 읽는 이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작가의 전작들을 모두 읽어봐야겠다.

따스함의 온기로 세상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잔잔한 수면에 떠있는 백조의 우아함을 보면서 그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백조의 발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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