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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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추적하는 것은 역사 너머의 역사다. 어떤 시대적 상황이 우리가 아는 역사적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꼬꼬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SBS 프로그램이다.

각종 사건을 세 명의 진행자가 각자의 친구들을 초대해 이야기해 주는 형식으로 꾸려가는 프로그램이다.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이렇게 세 사람이 매 회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서 그들에게 사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같은 사건의 내용을 세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주는데 세 사람 모두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들려주듯이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에서든 세 명의 화자가 나오기에 다양한 의견을 듣는 느낌으로 사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그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사건 중 일곱 편을 책으로 엮었다.

 

 

카사노바 박인수

공작명 KT 납치 사건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

서진룸살롱 살인 사건

탈옥수 지강헌 인질극

1992 휴거 소동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

 

 

이렇게 7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제목만 봐도 어딘선가 들어 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엔 우리 현대사가 담겼다.

 

 

 

 

<<강간을 합법화 시켰던 이상한 사회구조>>

 

 

카사노바 박인수를 통해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읽는 내내 어이가 없었다.

박인수는 해군대위를 사칭하며 고급 댄스홀에서 여자들을 홀리고 다녔는데 그 수가 오리지널 카사노바를 능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뻔뻔한 남자는 그 모든 여자들 중에 처녀는 한 명뿐이었다고 얘기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흐려놨다.

그 당시의 사회적 인식은 이랬다.

사랑(?)하는 여자를 납치 감금해서 강간했음에도 형벌을 내리기는커녕 창창한 앞날(?)의 청춘들을 위해 결혼을 중재한 재판이 비일비재했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해서 살아야 하는 여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

 

 

이것이 사건 담당 판사가 판결 후에 덧붙인 한마디라니 얼마나 깜깜했던 시절인가!

이 사건에서 언급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를 꼭 봐야겠다.

90년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강간 당할 뻔한 여자가 자신을 공격한 강간범의 혀를 물어뜯어서 혀가 잘린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는데 우리에게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가 그 당시에 있었다니 신선하다.

 

 

 

 

<<움막에 지른 불은 사법고시의 꿈을 키우던 청년의 영혼을 불태웠다.>>

 

 

무등산 타잔 박흥숙.

그의 이야기는 재방까지 두 번을 보았고, 책으로도 읽었지만 매번 가슴이 답답하고 진정이 되지 않는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흙수저 박흥숙.

사법고시로 정의로운 법조계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던 청년은 살인마가 되었다.

이 박흥숙의 이야기는 볼 때마다 박정희 정권 시대의 암울함과 억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렇게 개돼지만도 못하게 대할 수가 있냐?

우리는 사람이 아닌 거냐!

 

 

무등산 케이블카와 대통령이 좋아하는 헬기를 타고 지나갈 산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산으로 쫓겨 들어가 엉성하게 지은 움막은 보기 싫은 가난의 증표였다.

그래서 윗선은 그 움막을 철거하고 불태워서 가난을 사라지게 하려 했다.

그날의 참극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선량하게 하루하루 살려고 노력했던 청년의 눈을 돌아버리게 만든 사건은 모두 한순간 지나갈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

 

 

박흥숙의 이야기는 21세기인 지금에도 다른 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론은 진실을 외면하고 사건을 오도했다.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명도 박흥숙을 희대의 살인마로 만들기 위한 언론의 조롱이었다.

그 언론 역시 21세기인 지금에도 똑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물림이란 이런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였고,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하지 않은 채로 70년대식 철거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이 사회의 고리타분함에 분노하게 되는 이야기다.

 

 

 

 

<<진룸살롱 사건이 불러온 범죄와의 전쟁>>

 

 

어떤 일이든 시발점이 있다.

서진룸살롱 사건은 조폭 간에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이 될 수도 있었지만

노련하지 못한 신진세력이 피해 가지 않고 정면승부를 던짐으로써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와 맞물려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200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겉으로 봤을 때 이 사건은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이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그 밑바닥에 쉬운 선택의 삶이라는 그늘이 담겼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잘 자란 청년도 쉽게 돈 버는 것에 '맛'들이고 나면 결국 자신이 살아왔던 방향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금석은 역사적으로는 조폭 살인마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착한 아들이었고, 한 사람을 사랑했던 사랑꾼이었으며 어느 시골 아이들에겐 처음으로 바다를 구경시켜 준 키다리 아저씨였다.

다양한 모습의 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악인으로 기억되고, 누군가에겐 착한 사람으로 기억될 고금석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제는 거의 전설로 남을 명언.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지강헌과 함께 탈출한 탈옥수들은 이집 저집을 옮겨 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옷을 바꿔 입고 도망을 다녔다.

지강헌이 560만 원의 도둑질로 17년 형을 선고받았던 때에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76억을 횡령하고도 7년을 선고받았고 그나마도 가석방되었다.

그들이 탈출해서 연희동으로 가려 했다고 대답했다던데 정말 거기 갔더라면 어땠을까? 삼엄한 경비를 뚫지 못하고 잡혔을 것이다.

인질들은 그들을 위해 탄원서를 냈다.

그랬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를 자꾸 곱씹어 보게 된다.





꼬꼬무에 담긴 이야기들엔 그 당시 사회의 문제들이 얽혀있다.

어느 하나도 개인의 욕심과 탐욕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사회가 그들을 만들어냈다.

 

 

사건의 이야기의 끝엔 담당 PD의 노트가 담겨 있다.

꼬꼬무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공개된 영화라면 이 책은 그 영화의 감독판쯤 된다.

 

 

사건만 본다면 잔혹한 범죄이지만

그 안에는 사회와 정치가 담겨 있다.

곪고 곪아서 터져 버린 게 바로 이런 범죄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범죄와 무관하지 않다.

 

 

지강헌의 말처럼 힘없는 자들은 자그마한 죄에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힘 있는 자들은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도 자그마한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그가 가고 세상이 그가 남긴 말을 유행어처럼 써먹고, 그 말이 명언이 되어가는 이 와중에도

그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뜻인 거 같다.

 

 

더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 주어진 한 표를 제대로 잘 던져야겠다는 다짐을 또 해본다.

 

 

무릇 영상으로 보던 것도 글로 보면 그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원작이 있는 영화가 좀체 칭찬을 받기 힘든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느낌은 흘려듣는 일이 없이 모든 걸 꼼꼼하게 읽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을 보면서 스치듯 지나간 생각들이 글로 대하니 더 견고하고 확고해지는 기분이다.

담당 PD의 기획의도도 같이 읽을 수 있어서 사건들을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꼬꼬무가 시리즈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나 자신이 범죄의 이면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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