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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호세 홈스 그림, 김수진 옮김, 스티그 라르손 원작, 실뱅 룅베르그 각색 / 책세상 / 2021년 8월
평점 :
밀레니엄 시리즈는 스웨덴의 사회파 기자이자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이 10부작으로 계획한 시리즈였다.
자신의 분신인듯한 기자 미카엘 블룸크비스트와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주인공으로 사회의 부조리함과 추악한 비밀을 밝히고자 한 추리스릴러로 기획되었으나 라르손이 3부작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출간 날짜를 얼마 앞두고 심장마비로 요절하고 만다.
최근 들어 스웨덴에서 라르손의 뜻을 가장 잘 이어갈 작가로 선정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에 의해 6부작으로 마무리되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스웨덴과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있다고 하니 밀레니엄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거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래픽노블로 만들어진 밀레니엄을 읽었다.
거친 그림체가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밀레니엄 그래픽노블은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인 실뱅 룅베르그에 의해 각색되고 마블 코믹스에서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호세 홈스의 손에 그려졌다.
원작을 깔끔하게 요약한 실뱅 룅베르그의 솜씨가 돋보이고, 거친 그림체로 이 이야기를 더욱 휘몰아치게 만들어 버린 호세 홈스의 실력은 마치 거친 평야를 질주하는 리스베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는 리스베트와 미카엘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세상에 알리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 같아서 더 주인공들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
미카엘은 밀레니엄 잡지를 창간한 기자로 부패 재벌 한스에리크 벤네르스트룀의 공금유용혐의를 고발한 기사를 쓴다.
하지만 벤네르스트룀에게 한 방 먹고 밀레니엄을 살리고자 사표를 낸다.
그런 그에게 스웨덴 재벌 기업인 방에르가의 헨리크 회장에게서 가족사를 집필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문제는 가족사를 핑계로 오래전에 감쪽같이 사라진 손녀 하리에트의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게 진짜 목적이었다.
게다가 그 사건을 재조사하는 대가로 한스에리크 벤네르스트룀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자료를 준다고 한다.
그런 한편 헨리크 방에르는 리스베트를 시켜서 미카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입수한다.
리스베트는 관찰대상으로 자신을 돌봐주던 후견인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악덕 변호사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
리스베트의 계좌를 움켜쥐고 그녀를 노리개로 삼으려던 변호사에게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리스베트의 모습은 속이 시원하면서도 섬뜩한 면이 있다.
리스베트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방에르 가문은 섬 하나를 차지하고 모여 살고 있다.
재벌 가문들의 가족사가 그렇듯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헨리크뿐인 거 같다.
2차대전의 나치 신봉자부터 여자를 노리개 이상으로 절대 생각하지 않는 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자가 있었다.
재벌 가문이라는 겉모습에 가려진 실제 그들의 모습들은 하리에트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면서 점점 드러난다.
미카엘과 리스베트는 하리에트의 실종이 그 이전부터 있었던 연쇄살인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폭력, 강간, 학대, 살인, 은폐, 실종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이 한 편의 이야기 속에 담겼다.
뭔가 뿌리 깊은 혐오와 편견들이 뭉쳐져서 거대한 살인의 행각이 이어지고 있었던 그들만의 세상.
그 세상 속에서 빠져나가기를 간절하게 원한 한 사람.
그리고 그런 행적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살아오던 헨리크는 죽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가문을 위해 그것을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미카엘과 리스베트를 통해 그것이 드러나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책을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래픽 노블을 읽으며 선명해진다.
헨리크는 죽음을 앞에 두고 모든 비밀을 파헤치기로 마음먹었던 거 같다.
그것이 자신의 가문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될지언정 가해자를 응징하고 피해자들이 세상을 보고 살 수 있도록.
거칠게 그려진 그림들이 프레임을 뚫고 나올 기세다.
보기 불편한 장면들도 담겨 있다.
어떤 장면은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보다는 영화로 볼 때가 더 끔찍했고, 영화 보다 이 그래픽 노블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가장 특징적인 것을 포착해서 그려내는 그림은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드러낸다.
처음 밀레니엄을 읽었을 때 나는 리스베트를 주인공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북유럽 소설이 처음이었고, 그때까지 내가 접한 영미 스릴러 보다 훨씬 더 잔혹했던 이 이야기에서 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여주인공을 만났었다.
그동안 여러 버전의 리스베트를 상상하고, 영화를 통해 보았지만 이 그림체의 리스베트만큼 강렬한 모습은 처음이다.
원작을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원작의 엑기스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이고
원작을 못 읽은 사람들에게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인 밀레니엄 그래픽노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