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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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빛나는 옷을 걸쳤어도, 높은 곳에 앉았어도 인간은 혼자만의 밤에는 모두 상처 입은 존재인 것이다.

 

 

미술학도의 꿈을 안고서 사제가 된 사람.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대학에서 그리스도교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 장동훈.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조금 가볍게 읽었는데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미술을 평하는 글도 가볍게 읽을 글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글은 더더욱 아니다.

 

그림에 담긴 시대적 역사와 종교적 관점과 함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감상이 함께 공존한다.

많이 봤던 그림도 있고, 생소한 그림들도 있다.

 

예술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도 반드시 진실과 부합하진 않는다. 현실의 요구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협할 수 없는 신념, 닿을 수 없는 이상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의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화가다.

프리다에 심취해서 리베라가 어떤 화가였는지 보다는 프리다에게 상처를 준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 디에고 리베라를 다시 들여다본다.

 

현실을 그린 리베라의 그림은 민족 해방을 모토로 삶은 오브레곤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프리다를 떠올렸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게 틀림없다는 느낌이 든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겐 프리다의 강렬함에 압도되어 디에고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의 그림은 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다.

질서정연한 느낌 아래 복잡하고 거칠고 힘겨운 삶들이 담겼다.

언뜻 정돈된 그림인데 그 안에는 온갖 혼잡함이 넘쳐난다.

리베라는 현실을 살짝 넘어선 미래를 그렸다.


 

오윤은 요절했고 민중미술은 '15년'안에 갇혀버렸다. 무릇 미술은 현실의 총체적 반영으로 현실 변혁의 동반자여야 한다는 선언과 함께 시작된 이들의 현실과의 대화는 이렇게 영영 끝나버린 것일까. 그러나 교회가 시작한 세상과의 대화는 애초에 끝마쳐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니던가.

 

 

 

 

 

우리의 미술계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나는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오윤이라는 작가의 작품과 그의 일갈도.

암담한 시대를 표현한 그림들은 그 시대에는 시대를 반영해서 빛을 보지 못했고

이후에는 시대와 맞지 않아서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남의 나라 미술은 무엇이든 가져다 포장과 가꿈을 통해 빛을 내게 만들면서

우리의 미술은 어째서 포장도 가꿈도 하지 못하고 있는지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그분들에게 빛을 비춰주었으면 좋겠다.

 

미술학도를 꿈꾸던 사람의 시선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의 시선으로

종교인의 시선으로

그리고 작가적 시선으로 기존의 미술 관련 에세이들과는 결이 다른 글들을 마주했다.

 

그림은

화가나 그림을 평가하는 사람이나 그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는 평론가의 말보다

직접 그림을 마주하고 느끼는 사람의 온전함이 바로 그 그림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그림이라도 어떤 사람이 그 앞에 서서 느끼느냐에 따라 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네 가지 색으로 읽히는 끝낼 수 없는 대화...

정말 제목처럼 이 이야기들은 끝낼 수 없는 대화다...

언제고, 어디서 건 계속 이어지는 그런 이야기가 되어야 하니까.

 

세상도 교회도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 앞에 서 있다.

팬데믹 선언 직후 곳곳에서 피어나던 인문학적 성찰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전염병의 '종식'과 '박멸'만이 모든 담론을 집어삼킨 듯하다. '어떻게'라는 방법이 '어떤 세상'이라는 철학을 압도한 모양새다.

 

한 사람의 성찰이 여러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장동훈 작가님의 말들이 점점이 새겨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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