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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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 '나'가 '너'가 되어볼 것, 그래보려고 노력해볼 것. 타인을 상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맨날 보는 것만 보게 된다.

나는 나름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보려 한다고 자부(?)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역시 자만이었음을 깨달았다.

90년 대생의 글로 대하는 이 세상은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산 중턱에도 못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출발을 하고 열심히 올라가고 있고, 아직은 으쌰으쌰하고 있으니 정상까지 무리 없이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녀들을 코다라고 한다.

이길보라는 코다다.

그것이 바로 이길보라를 만들어냈다.

 

소리가 있는 세상과 소리가 없는 세상의 중간자.

 

이길보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나는 저 문장을 쓸 것이다.

장애가 있는 세상과 장애가 없는 세상의 중간자이기도 하다.

그것이 그녀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만들었다.

양쪽의 이익을 따질 수 있게 만들었다.

 

 

'다수'가 '소수'에게 매번 자신의 소수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믿게 된다.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자들이 속 시원하게 얘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2003년쯤 대학로 거리에서 낙태죄 방지를 위한 캠페인 같은 것이 흥사단 본부 앞에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는데 나는 받지 않았다.

그날 내 블로그에 글을 썼다. '미혼모'는 있는 데 왜 '미혼부'는 없냐고.

애는 혼자 만드냐, 같이 만들어 놓고 책임지지 않는 남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왜 여자들에게만 굴레를 씌우냐.

미혼모가 왜 생기겠냐, 미혼부가 없는 건 남자들이 모든 책임을 여자들에게만 부여하고 자신을 잘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대략 이런 글이었다.

이젠 '미혼부'라는 단어가 생겼다. 그리고 사전에도 등록되어 있다.

그때와는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길에는 이길보라 같은 사람의 '외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경험은 말을 하고 나면 명확해진다. 사라지기도 하고 더 선명해진다. 그 주위로 몸의 경험이 모여든다. 이것은 '죄'가 아니라 '권리'를 침해당한 이야기이며, 수치심과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강요당한 이야기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살자고 다짐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관심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지를 가늠해보았다.

이토록 다양하고 다방면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나에게 있었던가?

어쩜 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엔 그가 너무 한쪽의 편에서만 얘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WHY NOT?"

 

 

무엇보다 동아시아 유교국가의 예의와 질서는 지킬 만큼 지키지 않았나!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에 압도되어간다.

내가 가진 지루한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나름 열심히 깨부수며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리 용감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여성으로서 누리는 이 자유는 내가 쟁취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피.땀.눈물 위에서 만들어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기존의 언어는 '정상적인 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서사는 그 몸과 언어를 중심으로 쓰였다. 이 세상에는 기록되지 않은 몸의 이야기가, 그를 설명할 다른 언어가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몸의 서사와 그에 맞는 언어가 필요하다.

 

 

다음 세상을 위해 미래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면

바로 저 문장에 그 길이 있을 거 같다.

70년 대생으로 수많은 사회 변화를 직접 겪으며 살아온 세대로서 말하자면 미래는 우리 사회가 쉬쉬하고 금기기했던 모든 것들이 자유를 찾을 것이다.

바로 이길보라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가 고정된 원칙이라고 하는 것들이 깨어질 테니.

그 원칙들은 새로운 언어로 쓰일 것이다.

 

나는 방금 새로운 서사로 쓰일 미래의 언어를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

현재는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자꾸 거부하다가는 변화에게 송두리째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그러기 전에 열린 마음과 열린 생각을 탑재해야 한다.

 

젊은 생각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고, 너무 혁명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현실성 없어 보이고 혁명적으로 들리는 모든 것들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정체되어 있었던 감각이 깨어나는 거 같다.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에서 신선한 이야기 한 편을 읽어 낸 거 같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다.

두 번째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예술과 금융을 결합시킬 수 있는 금융예술인으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아시아 유교국가로서의 예의와 질서에도 새바람이 불 때다.

새로운 예의와 질서를 위해 오늘도 쓰고 또 쓰는 젊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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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스케치·투시도 쉽게 따라하기 - 스케치 투시도, 건축 도면 그리고 채색까지 한 번에 끝내기 더숲 건축 시리즈
무라야마 류지 지음, 이은정 옮김, 임도균 감수 / 더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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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책을 만났다.

그림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스케치인데 이 책은 그 기초부터 전문가 영역까지 활용할 수 있는 책이다.

 

대학에서 건축 투시도법을 배우면서 사진 스케치와 기법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진 스케치 방법을 응용하면 투시도법을 쉽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점을 살려 이 책을 스케치부터 건축 도면, 투시도법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내용으로 구성했습니다. 자신의 기량에 맞는 내용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스케치

건축 도면

투시도

도면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테크닉

4단계로 구분되는 이 책의 내용은 기초부터 시작하기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도 선 긋기부터 배울 수 있다.






그림이나 건축 설계의 바탕이 되는 것이 스케치이다.

이 책은 스케치에 필요한 도구부터 구도 잡기, 채색하기부터, 사진, 건물, 풍경 스케치까지 저자의 실전 경험이 담겨있다.

복잡하지 않아서 나 같은 문외한도 겁 없이 시작해 볼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사실 이 책은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설계도와 CAD를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택했다.

랑님이 나에게 CAD를 배워보라고 하기에 그건 어려워서 안된다고 딱 잘라 말했는데

이 책을 살펴보면서 나도 CAD를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은 착각(?)이 든다.

 

게다가 집을 직접 짓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스케치와 CAD를 이용한 설계도 그리기를 함께 설명하고 있기에 내 집의 설계를 직접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혼자 공부하기 좋은 참고서 역할을 해줄 것이다.

 

정확하게 그리려고 하기보다는 봤을 때의 인상을 종이 위에 표현한다는 생각으로 스케치한다. 보조선을 이용하거나 비슷한 위치에 선을 여러 개 그으면서 서서히 형태를 잡아가다 보면 필요한 선만으로 깔끔하게 그릴 수 있게 된다.

 

 

도면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그리는 것이다. 스케치와는 달리, 눈앞에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를 실체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스케치와 도면의 차이다.

느낌을 표현해내는 것이 스케치고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도면이다.

 

요즘 내 집 짓기가 소원인 사람들이 많다.

내 집을 짓는 것은 내 머릿속에 있는 집에 대한 형상을 끄집어 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걸 전문가에게 맞기더라도 대략적인 그림이 있다면 설계도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뭔가 꽤 어렵게 느껴지고 절대 나는 할 수 없을 거 같았던 분야에 대한 벽이 조금 허물어지는 기분이다.

만만해 보이지 않았던 책인데 만만하게 느껴진다.

 

요즘 책 읽기 말고도 컬러링을 자주 하고 있는데 뭔가 만족감이 덜하는 거 같았는데 그 이유를 알 거 같다.

나도 뭔가 그리고 싶은 게다.

컵 그리기부터 한 번 시도해 보고자 한다.

소싯적엔 정물화를 곧잘 그리곤 했는데 어느 순간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내 미술도구들은 동생들 손으로 넘어갔다.

좋은 취미를 잃은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내 안에서 그림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 긋기부터 연습해야겠다.

랑님의 CAD로 나도 뭔가를 그려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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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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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추적하는 것은 역사 너머의 역사다. 어떤 시대적 상황이 우리가 아는 역사적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꼬꼬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SBS 프로그램이다.

각종 사건을 세 명의 진행자가 각자의 친구들을 초대해 이야기해 주는 형식으로 꾸려가는 프로그램이다.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이렇게 세 사람이 매 회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서 그들에게 사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같은 사건의 내용을 세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주는데 세 사람 모두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들려주듯이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에서든 세 명의 화자가 나오기에 다양한 의견을 듣는 느낌으로 사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그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사건 중 일곱 편을 책으로 엮었다.

 

 

카사노바 박인수

공작명 KT 납치 사건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

서진룸살롱 살인 사건

탈옥수 지강헌 인질극

1992 휴거 소동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

 

 

이렇게 7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제목만 봐도 어딘선가 들어 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엔 우리 현대사가 담겼다.

 

 

 

 

<<강간을 합법화 시켰던 이상한 사회구조>>

 

 

카사노바 박인수를 통해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읽는 내내 어이가 없었다.

박인수는 해군대위를 사칭하며 고급 댄스홀에서 여자들을 홀리고 다녔는데 그 수가 오리지널 카사노바를 능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뻔뻔한 남자는 그 모든 여자들 중에 처녀는 한 명뿐이었다고 얘기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흐려놨다.

그 당시의 사회적 인식은 이랬다.

사랑(?)하는 여자를 납치 감금해서 강간했음에도 형벌을 내리기는커녕 창창한 앞날(?)의 청춘들을 위해 결혼을 중재한 재판이 비일비재했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해서 살아야 하는 여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

 

 

이것이 사건 담당 판사가 판결 후에 덧붙인 한마디라니 얼마나 깜깜했던 시절인가!

이 사건에서 언급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를 꼭 봐야겠다.

90년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강간 당할 뻔한 여자가 자신을 공격한 강간범의 혀를 물어뜯어서 혀가 잘린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는데 우리에게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가 그 당시에 있었다니 신선하다.

 

 

 

 

<<움막에 지른 불은 사법고시의 꿈을 키우던 청년의 영혼을 불태웠다.>>

 

 

무등산 타잔 박흥숙.

그의 이야기는 재방까지 두 번을 보았고, 책으로도 읽었지만 매번 가슴이 답답하고 진정이 되지 않는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흙수저 박흥숙.

사법고시로 정의로운 법조계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던 청년은 살인마가 되었다.

이 박흥숙의 이야기는 볼 때마다 박정희 정권 시대의 암울함과 억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렇게 개돼지만도 못하게 대할 수가 있냐?

우리는 사람이 아닌 거냐!

 

 

무등산 케이블카와 대통령이 좋아하는 헬기를 타고 지나갈 산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산으로 쫓겨 들어가 엉성하게 지은 움막은 보기 싫은 가난의 증표였다.

그래서 윗선은 그 움막을 철거하고 불태워서 가난을 사라지게 하려 했다.

그날의 참극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선량하게 하루하루 살려고 노력했던 청년의 눈을 돌아버리게 만든 사건은 모두 한순간 지나갈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

 

 

박흥숙의 이야기는 21세기인 지금에도 다른 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론은 진실을 외면하고 사건을 오도했다.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명도 박흥숙을 희대의 살인마로 만들기 위한 언론의 조롱이었다.

그 언론 역시 21세기인 지금에도 똑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물림이란 이런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였고,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하지 않은 채로 70년대식 철거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이 사회의 고리타분함에 분노하게 되는 이야기다.

 

 

 

 

<<진룸살롱 사건이 불러온 범죄와의 전쟁>>

 

 

어떤 일이든 시발점이 있다.

서진룸살롱 사건은 조폭 간에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이 될 수도 있었지만

노련하지 못한 신진세력이 피해 가지 않고 정면승부를 던짐으로써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와 맞물려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200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겉으로 봤을 때 이 사건은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이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그 밑바닥에 쉬운 선택의 삶이라는 그늘이 담겼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잘 자란 청년도 쉽게 돈 버는 것에 '맛'들이고 나면 결국 자신이 살아왔던 방향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금석은 역사적으로는 조폭 살인마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착한 아들이었고, 한 사람을 사랑했던 사랑꾼이었으며 어느 시골 아이들에겐 처음으로 바다를 구경시켜 준 키다리 아저씨였다.

다양한 모습의 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악인으로 기억되고, 누군가에겐 착한 사람으로 기억될 고금석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제는 거의 전설로 남을 명언.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지강헌과 함께 탈출한 탈옥수들은 이집 저집을 옮겨 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옷을 바꿔 입고 도망을 다녔다.

지강헌이 560만 원의 도둑질로 17년 형을 선고받았던 때에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76억을 횡령하고도 7년을 선고받았고 그나마도 가석방되었다.

그들이 탈출해서 연희동으로 가려 했다고 대답했다던데 정말 거기 갔더라면 어땠을까? 삼엄한 경비를 뚫지 못하고 잡혔을 것이다.

인질들은 그들을 위해 탄원서를 냈다.

그랬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를 자꾸 곱씹어 보게 된다.





꼬꼬무에 담긴 이야기들엔 그 당시 사회의 문제들이 얽혀있다.

어느 하나도 개인의 욕심과 탐욕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사회가 그들을 만들어냈다.

 

 

사건의 이야기의 끝엔 담당 PD의 노트가 담겨 있다.

꼬꼬무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공개된 영화라면 이 책은 그 영화의 감독판쯤 된다.

 

 

사건만 본다면 잔혹한 범죄이지만

그 안에는 사회와 정치가 담겨 있다.

곪고 곪아서 터져 버린 게 바로 이런 범죄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범죄와 무관하지 않다.

 

 

지강헌의 말처럼 힘없는 자들은 자그마한 죄에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힘 있는 자들은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도 자그마한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그가 가고 세상이 그가 남긴 말을 유행어처럼 써먹고, 그 말이 명언이 되어가는 이 와중에도

그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뜻인 거 같다.

 

 

더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 주어진 한 표를 제대로 잘 던져야겠다는 다짐을 또 해본다.

 

 

무릇 영상으로 보던 것도 글로 보면 그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원작이 있는 영화가 좀체 칭찬을 받기 힘든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느낌은 흘려듣는 일이 없이 모든 걸 꼼꼼하게 읽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을 보면서 스치듯 지나간 생각들이 글로 대하니 더 견고하고 확고해지는 기분이다.

담당 PD의 기획의도도 같이 읽을 수 있어서 사건들을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꼬꼬무가 시리즈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나 자신이 범죄의 이면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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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섬 웅진 모두의 그림책 41
다비드 칼리 지음,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이현경 옮김, 황보연 감수 / 웅진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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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름 없는 숲속에

<<소원의 늪>>과 <<잃어버린 시간의 폭포>> 사이에 자리 잡은 <<꿈의 그늘>> 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엔 왈라비 박사라는 뛰어난 의사가 있습니다.

왈라비 박사는 '악몽'을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숲속에 사는 많은 동물들은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왈라비 박사를 찾아와 자신들이 꾼 악몽을 이야기합니다.

거대한 발에 짓밟히고,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괴물이 나타나고, 시커먼 어둠에 밤새 추격 당하고, 사나운 고함 소리에 고통을 받죠.

이런 악몽을 꾸는 동물들의 괴로움을 아는 왈라비 박사는 악몽 사냥에 나섭니다.

믿음직스러운 딩고와 시리오와 함께.

 

어느 날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가 찾아왔습니다.






"꿈을 꾸면, 텅 비어 있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깊고 깊은 곳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어둠만 보여요."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의 악몽은 왈라비 박사도 모르는 꿈이었어요.

과연 왈라비 박사는 이 테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의 악몽을 치료해 줄 수 있을까요?

 

다비드 칼리의 글과 클라우디아 팔마루치의 멋진 그림이 펼쳐지는 그림책은 단순히 악몽에 대한 꿈이 아니다.

악몽이라는 이름으로 왈라비 박사를 찾아오는 동물들은 멸종 위기에 놓이거나 멸종된 동물들이다.

 

간결한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페이지마다 담겨 있다.

동물들의 악몽의 의미를 알고 나면 그동안 지구상에서 인간에 의해 사라진 수많은 동물들에게 죄스러워진다.

아름다운 그림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을 이해하고 나면 그들이 왜 그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을 처음 펼치면 많은 동물들의 그림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또 다른 동물들의 초상이 나온다.

그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는 동물들이다.

 

인간의 편의에 의해

인간의 욕심에 의해

인간의 무관심에 의해

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사라졌다...

 

코로나19가 인간의 삶을 많은 부분 정지시켜 놓은 이 시간에

이 그림책이 주는 울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구하자는 이야기를 백날 해봐야 굳어진 문구와 말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이렇게 멋진 그림과 간단하지만 정곡을 찔리는 글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각인시킨다.

사라져간 수많은 동물의 초상 앞에서 언젠간 이곳에 그려질 인간의 초상을 생각해 본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결국 인간도 동물 종이니 언젠가 천적이 생기면 멸종될 운명이다.

인간의 천적은 무엇일까?

기계화되는 인공지능의 세상이 바로 인간의 천적이 아닐까?

그때가 되면 이 그림책에 담긴 사라진 동물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까?

 

그림체에 혹해서 호기심에 즐겁게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름다운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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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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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도시와 같아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전체를 거부할 순 없다.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이나 교외 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다른 장점이 그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미련스럽다.

 

그때 그랬더라면 지금은 이렇지 않았을 텐데...

그때로 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거야.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후회를 안고 사는 삶은 만족스럽지 않다.

노라의 선택지는 돌이킬 수 없었고, 많은 관계들을 잘라냈다. 인생에서.

결혼 이틀 전 결혼을 취소했고, 음반회사와 계약을 앞두고 밴드를 탈퇴했다.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고양이 하나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길에서 죽게 만들었다.

게다가 직장에서 해고되고, 일주일에 하루 한 시간 하는 피아노 레슨에서도 짤렸다.

하나뿐인 오빠는 그녀와 단절했고, 친구들과도 모두 사이가 멀어졌다.

 

어디 하나 마음 붙일 곳이 없는 노라는 죽기로 결심한다.

 

갖가지 초록색 책들이 즐비한 도서관에 발을 들인 노라.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자신을 삶을 '맛' 보게 된다.

노라는 그 여정에서 만족할만한 삶을 발견했을까?

 

노라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내가 후회하는 선택들을 생각했다.

그때 그랬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텐데... 하던 후회들.

 

 

"여기 있는 책들,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전부 너의 다른 삶이야. 이 책만 제외하고. 이 도서관은 네 도서관이거든. 널 위해 존재하지. 사람의 삶에는 무수히 많은 결말이 있어. 이 서가에 있는 책들은 모두 네 삶이고, 같은 시간에 시작해. 바로 지금. 4월 28일 화요일 자정에. 하지만 이 자정의 가능성이 모두 똑같지는 않아. 비슷한 삶들도 있지만 아주 다르기도 해."

 

 

후회하는 모든 삶을 나도 살아 볼 수 있다면 나는 어느 삶에서 만족하게 될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지금 내 삶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후회들과 선택들은 결국 지금의 나니까.

지금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바로 내 잘못이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언제든 사람은 그 순간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결정을 하게 마련이다.

포기하고, 희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결정들 역시 그 당시에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내가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그걸 시간이 지나서 후회한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좋은 작품이다.

내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꿔주었으니.

노라의 여정을 따라가며 나도 후회되는 삶들을 다시 살아봤다.

지금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내가 고치지 못하는 나의 습관들이다.

그것들을 고칠 수 있는 건 바로 나뿐이라는 걸 또다시 각인하게 된 작품이었다.

 

 

지금 당신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나요?

지난 과거에 선택하지 못한 결정들을 후회하고 있나요?

그럼 노라와 함께 그 후회의 책을 펼쳐 보세요.

당신이 후회의 책을 읽게 되면 지금 당신의 모습이 훨씬 괜찮게 느껴질 겁니다.

 

이 책은 삶의 비밀을 알려준다.

내가 깨달은 비밀은 비밀도 아닌 비밀이다.

모든 건 바로 내 마음에 있고, 내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불만이 쌓인다는 것.

지금 이 순간도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다.

그러니 삶이 힘들어서 죽음이 생각난다면, 그 죽을힘으로 나를 바꾸는 노력을 하면 어떨까?

 

하루에 한 가지

내가 평소에 선택하지 않았던 선택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그렇게 하나씩 나를 바꿔 나가다 보면 나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내가 원하는 나로 살게 될 것이다.

노라가 내게 그걸 알려주기 위해 그렇게 고생스러운 여행을 한 거 같다.

 

나의 자정의 도서관에 있는 후회의 책이 얇아지도록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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