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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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 '나'가 '너'가 되어볼 것, 그래보려고 노력해볼 것. 타인을 상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맨날 보는 것만 보게 된다.

나는 나름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보려 한다고 자부(?)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역시 자만이었음을 깨달았다.

90년 대생의 글로 대하는 이 세상은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산 중턱에도 못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출발을 하고 열심히 올라가고 있고, 아직은 으쌰으쌰하고 있으니 정상까지 무리 없이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녀들을 코다라고 한다.

이길보라는 코다다.

그것이 바로 이길보라를 만들어냈다.

 

소리가 있는 세상과 소리가 없는 세상의 중간자.

 

이길보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나는 저 문장을 쓸 것이다.

장애가 있는 세상과 장애가 없는 세상의 중간자이기도 하다.

그것이 그녀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만들었다.

양쪽의 이익을 따질 수 있게 만들었다.

 

 

'다수'가 '소수'에게 매번 자신의 소수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믿게 된다.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자들이 속 시원하게 얘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2003년쯤 대학로 거리에서 낙태죄 방지를 위한 캠페인 같은 것이 흥사단 본부 앞에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는데 나는 받지 않았다.

그날 내 블로그에 글을 썼다. '미혼모'는 있는 데 왜 '미혼부'는 없냐고.

애는 혼자 만드냐, 같이 만들어 놓고 책임지지 않는 남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왜 여자들에게만 굴레를 씌우냐.

미혼모가 왜 생기겠냐, 미혼부가 없는 건 남자들이 모든 책임을 여자들에게만 부여하고 자신을 잘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대략 이런 글이었다.

이젠 '미혼부'라는 단어가 생겼다. 그리고 사전에도 등록되어 있다.

그때와는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길에는 이길보라 같은 사람의 '외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경험은 말을 하고 나면 명확해진다. 사라지기도 하고 더 선명해진다. 그 주위로 몸의 경험이 모여든다. 이것은 '죄'가 아니라 '권리'를 침해당한 이야기이며, 수치심과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강요당한 이야기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살자고 다짐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관심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지를 가늠해보았다.

이토록 다양하고 다방면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나에게 있었던가?

어쩜 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엔 그가 너무 한쪽의 편에서만 얘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WHY NOT?"

 

 

무엇보다 동아시아 유교국가의 예의와 질서는 지킬 만큼 지키지 않았나!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에 압도되어간다.

내가 가진 지루한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나름 열심히 깨부수며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리 용감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여성으로서 누리는 이 자유는 내가 쟁취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피.땀.눈물 위에서 만들어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기존의 언어는 '정상적인 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서사는 그 몸과 언어를 중심으로 쓰였다. 이 세상에는 기록되지 않은 몸의 이야기가, 그를 설명할 다른 언어가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몸의 서사와 그에 맞는 언어가 필요하다.

 

 

다음 세상을 위해 미래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면

바로 저 문장에 그 길이 있을 거 같다.

70년 대생으로 수많은 사회 변화를 직접 겪으며 살아온 세대로서 말하자면 미래는 우리 사회가 쉬쉬하고 금기기했던 모든 것들이 자유를 찾을 것이다.

바로 이길보라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가 고정된 원칙이라고 하는 것들이 깨어질 테니.

그 원칙들은 새로운 언어로 쓰일 것이다.

 

나는 방금 새로운 서사로 쓰일 미래의 언어를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

현재는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자꾸 거부하다가는 변화에게 송두리째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그러기 전에 열린 마음과 열린 생각을 탑재해야 한다.

 

젊은 생각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고, 너무 혁명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현실성 없어 보이고 혁명적으로 들리는 모든 것들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정체되어 있었던 감각이 깨어나는 거 같다.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에서 신선한 이야기 한 편을 읽어 낸 거 같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다.

두 번째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예술과 금융을 결합시킬 수 있는 금융예술인으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아시아 유교국가로서의 예의와 질서에도 새바람이 불 때다.

새로운 예의와 질서를 위해 오늘도 쓰고 또 쓰는 젊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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