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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초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09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이후지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2월
평점 :
- 초인에 대하여
‘초인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기를 초극해 나아가야 할 목표이고, 영겁(永劫)으로 회귀(回歸)하는 운명을 참고, 신을 대신하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풍부하고 강력한 생(生)을 실현한 자이다. 이에 대하여 말인은 자기 초극의 의지(意志)도 힘도 창조적인 생명력도 잃어버려 평균화하고, 더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쾌락에만 빠지는 하찮은 인간이라는 것이다.’(초인 [overman/superman, 超人] (두산백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아직 읽지 못한 나는 아직 초인의 의미를 검색을 통해서 겉핥기 식으로 파악하고 있다. 완전한 인간. 인간, 말인의 의미와는 반대로 강한 생명력(life-force)를 지닌 이상적인 인간이다. 극 중에 존 테너는 이런 초인에 대한 이상향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자본주의자 램즈던에게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자신의 이상향을 설파하기 위해 ‘혁명가의 핸드북이자 휴대용 동반자’를 만들어 배포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가 자신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구나 라고 느낀다. 또한 어린 시절, 공허하고 탐욕적인 열정을 쫓다가 어느 순간 도덕적 열정이 생기면서 영혼이 생겨난다고, 그러면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라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에게는 아직 탐욕적 열정만이 있고 도덕적 열정이라는 것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자책을 느꼈고, ‘살고자 하는 맹목적인 노력 속에서 나 자신을 죽이지 않기’위하여 삶 자체를 관조하는 더 큰 능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에 삶 자체를 관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음을 느꼈다. 연인 간의 사랑과 친구 간의 우정 등 로맨스가 풍부한 희곡이었지만 오히려 니체의 책에 대한 입문서와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는지 왜 우리는 초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강제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신을 대신’하고 ‘강력한 생을 실현’한다라는 멋드러진 말로 초인의 의미를 설명하기에 초인이 좋구나라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왜 쾌락을 넘어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초극을 향해서 단련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단순히 쾌락만을 추구하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태어난 목적을 위해서인가? 초인이 되는 것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일까? 현재에 나에게 있어 초인이 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 연속되는 모든 질문에 답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왕성한 활동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 이것만이 결국 나 자신을 초인으로 이르게 할 것 같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풍부함을 얻고 자기성찰을 통해 발전 방안을 생각해보는 것이 젊은 나에게는 최적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약간은 정적으로 살아왔었는데 이제는 더욱 더 왕성하고 풍부하게 살 수 있도록, 더 큰 독서모임에도 나가고 사회활동도 해보고 이번 년도를 불태워야겠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초인이 되기 위해서.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처음엔 단순히 이 사람 묘비명 재밌게 썼네 라고 봤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도 어쩌면 초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흔적, 그리고 그 후회를 묘비명으로 남겨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초인이 되기 위해 주위의 비난도 감수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존 테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간의 시선, 평가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었기에 우물쭈물하게 되었고 결국은 초인이 되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한 것이 그의 생일까. 우물쭈물하다가는 될 것도 안 된다 라고 또 한 번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