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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 보통의 행복, 보통의 자유를 향해 달린 어느 페미니스트의 기록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지음, 정미화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은
여성 마라토너의 이야기다.
으리번쩍한 기록을 가진
신화 같은 여성 마라토너 이야기는 아니다.
여성과 달리기 사이 가로놓인 사회가 둘러친 장벽을 책은 주로 다룬다.
저자가 어마어마한 페미니스트여서 일부러 페미니즘의 주제를 찾다 달리기에 접근한 방식은 아니다. 그녀는 그저 달렸고 달리다보니 사회가 보였다.
이전까지 전혀 관심 없던, 심지어 그다지 육체적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던 그녀가
달린 이유는 부모님의 비행기 사고 때문이었다고 기술된다.
그러나 사고=달리기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시간이 지나고 상처를 보듬고 살던 어느 날 달리기에 눈뜨며
좀 더 그 상처로부터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개인사적 이야기가 이 책의 한 뿌리를 이룬다면 다른 부분은
여성과 달리기 사이에 가로놓인 사회다.
평소 독서를 취미로 하던 저자는 오랜 문헌부터 여성과 달리기 사이의 관계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달리기를 하며 그런 사실을 깨달은 거다.
책에 따르자면 역사 속에서 여성은 쫓기거나 도망치기 위해 달린다.
육체적 자유로움, 감각을 위한 달리기, 성취 등등과 여성 달리기는 연관지어지지 않는다.
또한 여성이 달리는 순간 따르는 사회적 시선과 역사가 연결되기도 한다.
평소보다 좀 더 벗고 달리는 여성의 육체를 관람하는 내용을 다루는 '스목 시'라는 장르가 존재했으며(18세기) 현재 역시 여성 달리기는 달리는 행위 자체보다는 이외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개인적 경험과 달리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 등을 훑으며 그려나간다. 1960년대 이전까지 여성은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거의 금지되어 있었으며 그래서 어떤 여성 마라토너들은 대회에 몰래 출전하기도 했다는 것. 또한 사회적으로 혼자 달리는 여성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공식을 매스컴에서 과대포장해 여성 달리기 자체가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것 등등을 책을 보다 깨달았다. 어쩌면 당연시 했던 것, 여성은 혼자 아무도 없는 공공장소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 인식은 얼마나 우스운가. 그것은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 가해자와 가해자를 양산해낸 사회적 잘못임에도 여성들에게 짐을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저자처럼 체육 시간마다 곤혹스러워 하던 학창 시절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 타기를 즐기며 과거 나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km를 하루에 자전거로 달리기도 한다. 어쩌면 먼 훗날 달리기를 안 하게 되리라 장담할 수도 없다.
달리기는 오로지 몸으로 세상과 만나는 삶이다.
그럼에도 여기 얼마나 많은 장벽이 씌워져있는가를 보며
사회와 여성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20170704
(또 이 책은 '나이키'라는 현재 스포츠 패션의 아이콘이 된 브랜드의 탄생 등에 대해서도 밝혀준다.
1961년 조깅이라는 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일과 함께 '나이키'가 태동했다는 것. 육상코치 아서 리디어드는 심장 전문의 노엘 로이드하우스의 감독 아래 스무 명 남짓 남자들과 공원에 모여 건강 증진을 위한 달리기를 시작. 그때 동물 걷는 모양을 묘사하며 다소 예스러운 느낌을 주는 단어 'jog'를 장난삼아 써 '오클랜드 조깅 클럽(auckland jogging club)'이 탄생
1962년 오리건 대학교 수석 육상코치 빌 바우어만이 리디어드 코치를 찾아와 뉴질랜드 조깅족들과 만나고 이후 미국에서 조깅을 할 친구를 모은 뒤 1964년 친구 필 나이트와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 설립. 이후 이름을 '나이키'로 바꿈.)
"나는 절대로 너처럼 달릴 수 없을 거야." 한 친구가 말했다. "완전히 바보처럼 보일 테니까." 뚱뚱해 보일까 봐, 어색해 보일까 봐, 땀투성이처럼 보일까 봐, 흉해 보일까 봐 걱정하는 여성들의 말을 듣는다. 눈에 띄지 않고 달리고 싶은 욕구는 달리기 하는 여성의 자서전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다. 챔피언이든 취미 삼아 달리기하는 여성이든. 이런 우려들을 여성의 어이없는 허영심이나 신변 안전에 대한 과잉의식으로 쉽게 치부할 수는 없다. 세상에 보이는 방식을 두고 온갖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한 여성의 달리기 속도를 늦춰서 완전히 멈추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있는 데서 달리기를 할 때면 아무도 내가 뛰는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내 두꺼운 허벅지를 두고 귓속말을 하지 않고, 땀으로 뒤범벅된 내 얼굴은 낯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고, 조롱을 하며 놀리는 사람은 바보천치고, 아무도 나를 뒤따라오지 않는다고 나 스스로 굳게 믿어야 했다. - P160
이 모든 걱정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나약함과 위험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 달리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잊고 싶었고, 단지 앞으로 달려가면서 내 팔다리가 허공을 가르고 체중이 발 앞쪽에서 발뒤꿈치로 이동하는 것만 느끼고 싶었다. - P160
가혹하게 왜곡된 가부장적 논리에 따라 달리기가 여성에게 나쁜 소식을 의미하면서 문학작품 속 많은 여성들은 결혼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 혹은 가족들이 얼마나 잔인한지에 관계없이 달릴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고통받는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오히려 여성이 제자리를 지키도록 발목을 잡는다. 중산층 여성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 P167
여성은 쫓기고 있을 때 달리고,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약탈자로부터 달아나야 한다. 쫓기지 않는다면 여성에게 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고, 순결한 여성은 달릴 필요가 없다. 나에게 달리기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이 세상에서 내 몸이 갖는 의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나는 절망과 부동 사이의 관계를 지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에서 모두 이해했다. - P168
달리기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종착지는 변화와 탈출 그리고 회복이다. 달리기 하는 여성 대다수는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일부는 분노나 상처 또는 절망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달리기를 통해 그 고통은 지속되기보다는 중단된다. 소설가이자 마라토너인 조이스 캐롤 오츠는 이렇게 썼다. "마라톤보다 행복하고, 기분 좋고, 상상력을 키우는 활동이 있을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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