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 읻다 시 선집
폴 발레리 외 지음, 윤유나 엮음, 김진경 외 옮김 / 읻다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2018년에 산 시집이다. 제목이 좋아 샀었지만 그 뒤로 책장에 두고 펼치지 않다 요근래 베란다에 두고 아침에 한 편씩 읽어, 어제 다 읽었다. 마지막 시는 폭류경, 저자가 없다. 이런 문장이 나온다. 


가만히 있지도 않아, 애쓰지도 않아 폭류를 건넜습니다


이 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 육조단경을 읽어 더 와닿은 것일 수도 있다. 


가만히 있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는다.


외국시를 엮어놓은 시집이다. 오랜만에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를 다시 만났다. 몇몇 시들이 좋았고 몇몇 시들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폭류경 덕에 좋아졌다. 




2022 10 12일 수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움받는 기분 문학과지성 시인선 552
백은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책을 열심히 보고 공부(?)를 하고 그랬던 게 다 그냥 소일처럼 좀 더 내게 와닿는 콘텐츠를 찾아 좀 더 공감하기 위해서였나 싶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다, 라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책을 읽는 이유가 어떤 성장이나 감동을 위해서라고 콕 집어 말하는 게 더 웃기지만, 그렇다고 교수가 되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말은 더 웃기지만, 누군가에게 아는 체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와 비슷한 말 같기도 하지만, 그럼 우리는 왜 그리 책을 읽고 밑줄을 쳤을까. 시험 문제에 나오지도 않는데. 왜 시를 배껴서 적고 그랬을까. 


며칠 전 비가 오는 날은 안도현 시인의 ‘빗소리 듣는 동안’의 제목을 도무지 알 수 없이 그 시를 좋아하던 친구들과의 기억 같은 것만을 끌어안고 있다가 ‘양철지붕에 대하여’를 보다가 이 시가 아닌데 하다가 다음날이 되어서야 내가 떠올린 그 시 제목이 ‘빗소리 듣는 동안’이라는 것을 누가 알려줘서 알았다. 이러려고 시를 읽은 걸까. 어느 순간 호명하기 위해. 하지만 너무 많은 콘텐츠 속을 허우적대는 데다 기억력은 점차로 사라져가 이제 호명하기조차 힘들어지는데, 이제 시는 왜 읽는 걸까. 


시집에 나오는 파스칼 키냐르라는 이름을 보고 그래 이런 이름을 가진 작가를 알고 있지, 누구더라 하며 찾아보니 집에도 책이 있어 (읽지 않은 채 방치된) 다음에는 이 책을 읽어야지 싶었다. 


왜 우리는 시를 읽을까, 예전에는 왜 그랬지? 밤마다 시를 한 편씩 보다 잘까 했고 거의 종종 그렇게 했다. 아침에는 외국시, 저녁에는 한국시,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고 좋은 시를 체크한 이유는 뭐였을까. 무엇을 위해?


무엇을 위해가 없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라고, 오늘 칸트 관련한 내용을 찾다 보니 그런 메모가 있어 내일 좀 더 열심히 들여다볼 계획이긴 한데, 왜 나는 그렇게 목을 맸을까. 이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에미상을 받네 마네 하는 오징어게임도 이제는 굳이 보려 하지 않는데, 무슨 차이일까. 


다음에는 시간 내서 오징어게임을 봐야하나 보다. 회사를 그만두고자 하며 ‘왕좌의 게임’, ’프리즌 브레이크’를 열심히 봤는데 그게 뭐가 되는지는 모르겠어 그런 드라마 보기도 멈췄다. 이다지도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나로 웅성대는 서점에 어제 오늘 다녀와 지금 이 콘텐츠, 심지어 자본주의의 논리를 입고 가격을 매긴 이 활자만으로 승부하는 듯 하지만 알고 보면 디자인을 입고 콘셉트 속에서 시대를 고민하는 이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는 시대, 시를 읽는 일은 무얼까. 시를 읽으면서도 알 수가 없이. 그래도 밤에 자기 전에는 영영 시가 필요할까. 나도 확신을 못하겠다. 


시는 외로운 밤을 위해 존재한다?

시는 정리되지 않은 밤을 위해 존재한다?

시는 이제 무엇을 하기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도 시는 존재하지만



좋은 시를 쓰는 사람


시 쓰기는 시대의 언어를 찾아가는 일


매일 밤마다 시를 한 편씩 보려고 한다. 쉽다면 쉬운 일이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다. 아까 10시쯤 잠이 들었는데(넘어져 무르팍이 까진 데다 날이 춥고 아침부터 나가 돌아다니다 왔다) 시를 읽어야지 하고 불을 켰다가 안 되겠어서 그냥 잤다. 시 1편을 읽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에서 시 한 편 읽는 일은 쉬운 일이다. 하루를 반성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그대로 잠들기 어렵다는 점에서 시 읽기는 어렵기도 하다. 도움 받는 기분 다음 읽고 있는 시집은 안도현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다. 오래전 시집이다. 

너무나 달라서 같은 장르라 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최근에는 아침에는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를 읽고 있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을 가지고 다닌다. 시집 네 권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다 다른 언어이다. 너무 달라, 너무 달라,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한국시집 2권마저 전혀 다르다. 나는 안도현 시인의 시대를 살다(실제로 대학 동기가 선물해준 책을 이제야 읽는 거다. 쯧쯧) 21세기의 시대를 살며 21세기의 시를 읽는다. 동질감은 현재의 감각이라는 것, 정도다. 현재의 감각을 최대한 정제된 언어로 표현해 보려 한다는 것. 


시는 현재의 언어다. 모든 콘텐츠는 현재의 언어이지만, 시는 언어로만 현재의 시대에 있고자 한다. 영상도 없이,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가장 인간적인 콘텐츠라 할 수도 있지만, 


이 시대의 언어


이 시대의 한국어, 이 시대의 감성들이 모두 만나고 거기에 학문적인 접근도 이루어져야 한다. 책 좀 읽는 자들의 언어들. 회사생활 하면 이런 시 읽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나의 감정에 가장 가까울 수도 있다. 접근이 쉽지 않다. 


언제까지 시를 읽을까. 


나는 되도록 평생 시를 읽고 싶다. 당대의 감정을 알고 당대의 언어 속에 살고 싶다. 절박한 인간 언어들 속에서 진실(이라는 게 있다면, 있다고 믿고 싶으므로)에 근접해 살고 싶다. 


소비가 사회생활이 되어버린 시대, 개인의 감정은 대부분 그건 너의 이야기가 되었고, SNS에는 연예인의 사생활이 판치고, 예능으로 웃음을 퉁치는 시대, 그래도 한 사람의 살아감을 진지하게 대화해보고자 하는 


영영 남아있는 과거와 현재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언어로 발설해보는


발설하다


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야옹이나 멍멍이 아닌 


언어를 찾아서 (물론 인간도 음조만으로도 자기 언어를 계속 찾는 동물이지만) 나의 언어로 세계를 개척하고 대화하고 이를 통해 질문을 던지는


우리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우리의 과거는 어떠합니까


당신은 괜찮습니까


어떤 미래를 꿈꾸십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에 대한 답과 질문 사이를 오가는 


노래


아마도



감정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들과는 멀리하려고 한다. 사회적이라는 것은 내 감정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감정을 모르고 너는 나의 감정을 모르며, 그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렇다고 감정을 무시하거나 하는 건 아니다. 감정은 시 속에 있다. 어떤 언어로도 안 되는, 그 속에서 겨우, 발설되는 감정들이 시다. 헤치고 헤쳐나가는, 파도 같은. 그렇다고 타인에게 내 파도를 타라거나(탈 마음이 없는데) 기준 없이 감정으로 재단하며 '내가 제일 잘 나가'를 혼자 하면 같이 갈 수 없다. 그런 감정은 시 속에 있다. 그런 감정이 많다면 언어화해 시를 쓰라. 이 시인의 시집을 다음에도 살 생각이다. 혹시 읽고 싶은 시집이 없다면 이 시인의 이전 시집을 사볼 의향도 생겼다. 감정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싶다면,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뭘까. 약속, 언어, 몸짓, 표정, 눈짓, 그런 것들의 집합에 경제나 세계, 역사, 철학, 종교가 합쳐진 양태. 일대일의 관계란, 역시 약속, 언어, 이런 것들이겠지. 그 다음은…


생각 중


누구나 어찌할 수 없는 감정들 속을 산다. 그것을 시로 써서 이 정도에 이르기를. 그 감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절박한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남한테 내뱉지 말고, 성내지 말고.






...

세계의 비밀에 가까워질 수도 없는데


끝없이 두들긴다

단단해질 것도 없는데 두들긴다



보는 눈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

- 클리나멘 중 -




2022 9 13일 화요일

2

시가 없는 삶을 생각해보곤 한다. 시집 뒷편 해석을 읽다 이게 다 무슨 상관인가 싶고 그래서 시가 없는 삶을 생각한다. 그러다 실제 시를 보면 무언가 울림이 온다. 드라마가 없이 살고 뉴스나 스포츠도 없는 삶을 산다. 겨우 듣는 것은 목소리 없는 음악 정도이다. 

요즘에는 아침에는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읽고 밤에는 '정본 백석시집'을 읽고 있다. 아침부터 네루다의 정열을 이해하기는 좀 어렵지만 그래 이것도 삶이지 하기도 하고 밤에는 백석이 바라본 바깥에 대해, 시는 어쩌면 바깥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잔다. 

백은선의 시도 밤에 읽었다. 뜨거운 목소리. 아마 시를 해설하는 분도 그런 의미에서 포에트리 슬램을 이야기했겠지. 그러나, 그래서, 싶다가도 결국 시가 없는 삶보다는 시가 있는 삶을 계속 살기로 했다. 

삶의 어떤 층위, 알지만 모르겠는 그것을 겨우 언어로 해보는 일, 그것을 통해 어디로 도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층위 또한 있음, 그것을 알고 있음, 어쩔 수 없음, 아마도.

2023 5 21일 일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 김누리 교수의 한국 사회 탐험기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케팅 용어로 메워진 세상이다. 


말이 어느 정도 세계를 직조한다면, 지금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선동하는 마케팅 용어가 세계를 직조하고 있다. 


어떤 단어들, 의미는 유사하나 조금씩 바뀌는 단어들, 유행처럼, 어떤 정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온도라든가 무해하다라는 단어, 그러니까 예전에는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가 분명 존재했으나 이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던 단어가 어떤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 가능한 것처럼, 마케팅 용어가 사람들 머리를 잠식하며, 선악을 넘어서 사람들 머리를 잠식하며 그것이 마치 옳은 것이 되고 있구나, 깨달았다. 거기 길들여져 있었구나. 


우리나라 교육이 정말 문제라고 늘 생각했지만, 과연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단 말인가 했는데 이 책을 보니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김누리 교수,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연을 듣고 재미있어 빌려본 책이다.


지금 세상, 어디서나 인터넷이 되고 휴대폰으로 인생을 살고 데이터가 난무하는 세상, 이것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게 답인 세상.


결국 이것을 가진 자가 제왕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구조에서 기술적으로 지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자. 


그러던 중 터진 코로나

역병


자연재해는 역병이었다. 


그 다음은


책을 읽다 보면 지금 세계가 조금 더 잘 보인다. 그동안 희끄무레하게 느낌만 있었는데 그 느낌이 왜 생겨났는지 알게 된다. 책을 계속 읽는 이유다. .


뛰어난 책들


내가 뭐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온전히 좋아할 수 없는 이유, 실은 마케팅의 논리에 따라 굴러가고 있기 때문. 매거진 B나 콘셉진 같은 잡지들, 그것을 알게 해준다. 매거진 B를 전시하고 있는 공간에서 느낀 어떤 무언가 충족되지 않던 이유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후배 중 한 명이 독문과 대학원을 다닌 뒤 독일로 유학을 갔다. 왜 독일로 간 걸까 알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알게 됐다. 이런 사람 제자로 공부하며 독일에 대해 듣다 보면 나라도 가겠다 싶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다.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독일이라는 나라는 분단이라는 현실을 안고 있는 우리가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는 많은 면을 가진 나라다. 


탁견이라는 표현은 이 책에서 읽게 된 교육체계를 비롯한 한국의 문제들과 해법에 대한 그의 의견을 위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앞으로 차이나는 클라스를 다시 열심히 봐야겠다.


며칠 전 최재천 교수님 강의를 유튜브로 보며 와 저런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니 좋다, 싶었는데 이분도 우리나라의 석학으로 있으셔서 좋다. 



2022 3 13일 일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처럼 살아간다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김현수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독립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라 해서 살까 하다가 먼저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좀 더 이 책의 말들이 와닿았을지도 싶은 생각을 하며 책을 봤다. 한 장 한 장 그림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나무의 지혜. 각각의 나무들이 가진 삶의 방식, 아마 이런 지혜가 필요한 순간에 펼쳐보면 좋을 지도. 


조금 더 나무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아쉽기도 했으나 보리수나무로 끝나 좋았다. 영적인 것들. 저 자리에 있는 저 나무의 영적인 지점들, 살아있다는 것. 산다는 것.


2022 1 28일 금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경애 전집 - 수정증보판
이상경 엮음 / 소명출판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1. 소금

21세기의 가난에 대해 생각해본다. 21세기 한국사회의 가난.


음식물 쓰레기 속에 빠져죽거나 아버지가 아이를 때려 이가 나가거나 

아이들을 낳아놓고 등록도 하지 못하거나 아이를 버리는 일은

실은 다 가난이 이유일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 가난이 있을 거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시대,

그러니까 거기서 도망치려고 무조건 달리기 시작해서 

어딘가 회사에 웅크리고 내 삶을 생각하다 폰을 들여다보고 넷플릭스를 보며 남의 삶 같은 것을 잠시 꿈꾸고 다시 회사 의자에 웅크려 

잘하면 가족과 같이 여행도 다니고 하지만 그게 안 되면 그만 혼자 남겨진 

회사 의자 같은 곳들 

그런 삶이 양태가 된 한국사회


1906년에 태어난 강경애가 그린 가난은 처절하다. 남편은 공산당들에게 총 맞아 죽고 아들은 공산당이란 이유로 죽고 다른 집 애 젖먹이 간 사이 두 아이는 병이 나 죽는다. 남편이 죽는 데 책임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지주에게 겁탈당해 아이를 갖고 죽자 죽자 하다가도 결국 살겠다고 소금 장수를 하려다 그만 순경들에게 발각당해 죽기 직전, 과연 그녀의 삶에 해답이란 있느냐며 이야기가 끝난다. 


이념의 시대, 이념이라 이야기하지만 실은 삶이 목을 조일 때 각자 어떻게 살면 좋을지 생각하다 넘어선 선들 사이를 맞잡고 있는 한 가족, 이 가난의 원인은 무얼까, 하다가 넘어선 선들 사이에 가족이 찢기고…


핍진하다 

라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 이 소설에 어울리지 싶다. 남편 죽고 아이 죽고 아이들마저 죽고도 젖 먹이던 아이 생각을 하는 여자, 본능이란 무서운 거라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그걸 다 썼다. 


그리고 100년 뒤 한국사회의 가난, 이제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은 가난, 예전에는 보편이던 것이 조금 더 물러서며 좀 더 드러내기 어려운 가난,  


어쩌면 그것을 결국 자기 소재로 이용해 먹기 어려워서인지도 


지금 거기 있지 않기에, 결국 대상화되고 말기에, 


그 문제들을 생각하다


이 시대에 예술이란 뭘까


예술이 꼭 가난과 결부돼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예술이란 뭘까 소설이란 뭘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며칠 전 정지아 선생님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소설 본 게 생각나며

아마 그런 고민들이 쓰게 한 소설일 수도 있겠다 싶다. 

다른 계급들, 다른 삶들, 


여전히 대단하시다.



2. 지하촌


지독한 가난과 병


어쩌면 여전히 우리의 문제는 가난인가 싶기도 한 생각이 든 것은 이 소설을 읽어서일까


3. 어머니와 딸, 파금, 그 여자


세 작품 중 두 작품은 깨달음에 이른 주인공의 변화로 끝맺고, 한 작품(그 여자)은 철없는 부르주아 여성 마리아가 입으로만 까불다 농민들의 봉기에 맞아죽는 것으로 끝난다. 

결정적 순간을 그린 작품일까

읽는 동안은 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쓴 걸까 싶었는데, 결정적 순간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4.

이후로 월사금부터 번뇌까지 11편의 단편소설을 더 읽었다. 매일 한 편씩 읽으려고 하는 중이다. 월사금을 내지 못한 소년이 돈을 훔치게 되는 이야기(월사금), 뱃일을 하다 쫓겨난 아버지 김장사와 그의 아들 바위가 운동을 통해 깨우치게 된 현실(부자), 배다른 딸 수방이가 일꾼들을 내쫓는다는 이야기를 일꾼들에게 했다가 죽는 이야기(채전), 축구전을 위해 경마장 임시여급으로 일하는 이야기(축구전), 악몽에 붙잡힌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내용(유무), 물 뜨러 갔다 만난 매음부 여자와 그녀의 죽음, 동정에 대한 이야기(동정), 집 나와 눈 오는 날 어린 기침하는 아들을 데리고 시형네에 갔다가 쫓겨난 뒤 죽은 남편의 계급투쟁을 아들에게 잇게 하겠다 생각하는 아내의 이야기(모자), 원고료 이백원을 마음껏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갖던 중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동지들의 쓰라린 현실에 다시 눈뜨고 이를 동생에게 얘기하며 동생 또한 실천으로 참된 지식을 얻기를 바란다는 편지 형식의 이야기(원고료 이백원), 평생 노비로 일하다 해고당한 김 서방이 면서기를 때리는 이야기(해고), 계급투쟁하다 감옥에 다녀온 그가 친구의 부인 계순이에게 마음을 두며 번뇌하는 이야기(번뇌)


까지 강경애의 스펙트럼을 확인 중이다. 처절한 현실 속에서 순간의 마음을 그리는구나 싶어서. 동정이나 원고료 이백원, 번뇌, 유무 등의 이야기성은 그녀가 계급투쟁만을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세계와 만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작가 또한 자격증 같은 것일 수도 있겠구나, 세상을 글로 담아보는 자격증, 거기 담보되는 급여는 어쨌건간에 그것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자격증

그동안 나는 너무나도 환상 속에서 세계가 그려놓은 아니 실은 내가 그려놓은 환상 속에 이 작가라는 직업을 바라본 게 아닌가 싶다. 



2022 1 10일 월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