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결국 그짓을 그만두었다. 아무리 해봤자 별 소득이 없었고 엄마도 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복통과 발작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가끔 배가 아프다. 그뒤 나는 주목을 끌기 위해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진열대 위의 토마토나 멜론 따위를 슬쩍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의 눈에 띄도록 일부러 기다렸다. 주인이 나와서 따귀를 한 대 갈기면 나는 아우성을 치며 울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셈이었다.

한번은 식료품점 앞에서 진열대 위의 달걀을 하나 훔쳤다. 주인은 여자였는데, 그녀가 나를 보았다. 나는 가게 주인이 여자인 곳에서 훔치기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내 엄마도 틀림없이 여자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달걀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주인 여자가 나왔고,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잘 끌 수 있도록 그녀가 내 뺨을 한 대 올려붙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 곁에 쭈그리고 앉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이런 말까지 했다.

“너 참 귀엽게 생겼구나!”

처음에 나는 그녀가 나를 잘 구슬러서 달걀을 도로 찾으려고 그러는 줄 알고 호주머니 깊숙이 든 달걀을 더 꼭 쥐었다. 그녀는 벌로 나를 한 대 갈겨주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서서 진열대로 가더니 달걀을 하나 더 집어서 내게 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한순간 나는 희망 비슷한 것을 맛보았다. 그때의 기분을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니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나는 그날 오전 내내 그 가게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며 서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따금 그 맘씨 좋은 주인 여자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손에 달걀을 쥔 채 거기에 서 있었다. 그때 내 나이 여섯 살쯤이었고, 나는 내 생이 모두 거기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달걀 하나뿐이었는데……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법적으로 어른이 되면 나는 아마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늙은 창녀들만 맡고 싶다. 나는 늙고 못생기고 더 이상 쓸모없는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할 것이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 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렇게 쓰고 싶다

첫번째 이야기보다 다음 것들이 더 좋다

문장이 달랑 남는 게 아니라 짙은 그림자가 남는다.

자신의 개별적인 정체성이 아닌 인간이라는 종의 정체성에 대한 천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요새 생각한다.

우리의 발화 행위란 얼마나 마음 속의 진실을 담보할 수 있을까.

지금 말한 것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해도 그 이유는 언젠가 내 마음 속에서 지워지고 남는 것은

타인에게 남게 되는 말밖에 없다.

그 순간 진실은 나의 말이다. 내가 그 말을 했던 이유와는 상관없이, 이미 내가 그 말을 하던 순간의 감정은 모두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나의 진실은 말로 남을 뿐이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잔혹한 전쟁이 훝고 간 뒤 쌍둥이의 삶을 쫓는다.

원래 3권 연작을 기획하고 작가가 작품을 쓴 것이 아니므로

1권과 2권 3권은 각각 다른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다.

게다가 제목부터 거짓말이란 함의를 품고 있으니 당연히 조금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책을 읽고 난 뒤 정리를 할 때에는.

하지만 읽는 동안은 머리 아플 필요가 없다. 그냥 읽으면 된다. 우선 간결한 문장은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는 빌미를 마련하고 1권의 두 쌍둥이의 엽기적인 행동들, 상황들은 재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공허함이다.

우리의 상상은 얼마나 또 우리를 외롭게 하는가.

나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외로운 세상을,

두 사람이 서로를, 어딘가에 있는 서로를 끊임없이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빈 틈을 인생에서 목도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끔찍하도록 생을 외롭고 바람 불게, 허하게 만들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발화 행위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이끌고

훗날 남는 것은 공허함, 거짓을 말한 것은 누구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진실이 어디 있기나 했던가 하는 공허함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책이 텅 비었다는 공허함이 아니라, 나의 생도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로 흘러가며

자꾸만 거짓을 되풀이하고 진실이 있는 곳을 잃었고 잃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어차피 진실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텀빔이다.

슬프지만 진실로 이것만은 진실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도 그렇지만 이전에도 이 좁은 땅덩이에서 사람들은 발목이 아픈 참새처럼 살았다


방금 화장실에 다녀오며 한 생각이다.


직장을 다니며 느낀 것도 모두 다 발목이 아픈 참새들처럼 산다는 것이었다고


이제는 결론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미움은 부질없고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신의 존재는 어쩔 수 없이


땅에 발을 딛지만, 가끔 우연한 기쁨으로 인생이 황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땅에 서면 발목이 아픈...


 


만일 나에게 정치적인 어떤 주의를 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나는 무정부주의를 택할 것 같다


원시시대로 돌아가 그저 배고프면 열매 따먹고 사는 생활은 괜찮지 않을까


사회에 나오며 세금에 시달려서 이런 결론을 얻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이익이 굳이 앞장서는 사회, 잘 포장된 말로 누군가를 꼬득이고


힘으로 제압하는 그런 자본주의의 욕망들, 게다가 그 욕망을 정의로 포장하는 그것이 지겨워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김영하의 '검은 꽃'은 제국주의 시대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길 무렵


멕시코로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주권이 빼앗긴 시대의 설움을 약소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나 우리가 다짐해야할 바를 적은


소설은 아니다


아주 특이한 이력의 사람들의 이야기, 그 시대에 외국으로 그것도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도 아닌 멕시코라는


라틴 아메리카, 혁명이 자주 일어나는 아주 더운 나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


는 매력적이다


막 근대로 들어설 무렵이라는 시대성과 국가의 주권을 빼앗긴 특이한 상황 속에서


김영하는 멕시코로 이민 간 우리 나라 사람들 이야기를 썼다


그들은 그곳에서도 핍박받고 어렵게, 발목 아픈 참새들처럼 산다


에네켄을 수확하는 노동자로, 도시에서 남의 나라 혁명에 참여하는 군인으로,


밀림으로 장소는 옮겨가며


점차 죽음으로 향해가는


얼핏 체게바라가 생각났다가, 얼핏 라틴 아메리카 소설의 환상성이 생각났다가


그러는 것은 나의 무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장소의 광활함, 시대의 독특함은 소설의 스케일을 아주


커다랗게, 마치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 이야기처럼 만든다


그곳에서 사건을 겪는 인물들은 세 글자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지만


마치 다른 곳 같은,


소설만의 매력을 한껏 뿜으며


 


뭐가 뭔지 잘 몰라서 횡설수설이다


좀 더 공부하고 다시 생각해볼까


내가 과연


어쨌든 재미있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 중위의 여자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프레스21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The French Lieutenant's Woman", John Fowles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한 번은 도서관에서 출판된 지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책을 빌려다 놓고 읽지 않은 적도 있다.
김영하의 에세이에서 본 이 책에 대한 평이 꽤 괜찮아 처음 관심을 가졌고 그 이후로도 계속 읽어야지 했던 상태였다.
김영하의 평에서 이 책의 주인공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최초의 진보적인 여성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진보적인 여성이란 말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여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시대가 요구하는 관념, 정결함에 대한, 정직에 대한, 순수에 대한 모든 의무를 지우고 '프랑스 중위의 여자' 사라 우드러프는 찰스를 꼬시기 위해 계략을 짜고 그대로 행동한다
물론 이 사실이 밝혀지는 건 거의 끝부분에 가서이다. 책은 대부분 찰스를 뒤쫓는 편이기 때문에.
시대는 1860년대 영국 빅토리아 시대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도록 하려고 일부러 다른 남자와 잤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여자란 아무래도 김영하의 소설에 등장해도 좋을 법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그리도 매력을 느꼈는지도.
나는 어느 정도 이 소설이 매력적인가 하면 어느 정도 그렇지 않기도 한
알 수 없는 상태랄까... 그렇다
우선 작가의 박식함, 책 뒷편의 설명에서 보자면 프랑스 누보로망 같은 작가의 의견 개입과 소설 형식의 해체 등등은 내가 보기에도 꽤 재밌었고 좋았다.
허나 마지막은 약간 맥빠지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사라 우드러프는 결국 찰스의 애를 낳아 키우고 있으며 그가 결혼하자는 제의를 거부한다. 그에게 돌아갈 것도 거부한다. 단지 그녀는 순간적인 자신의 욕망, 남성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었을 뿐이라는 태도 정도로...
나는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 여자는 애를 낳아야 하는가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 정도...
어쨌든 책을 너무 더디게 읽었다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긴 하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소설가들은 글을 쓸 때 나름대로 설정된 계획을 갖고 있어서, 제1장에서 예견된 미래는 언제나 정확한 경로를 밟아 제13장에 이르러 실현될 것이라고. 그러나 소설가들은 저마다 다른 숱한 이유들 때문에 글을 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부모를 위해, 친구들을 위해, 애인들을 위해. 허영심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호기심 때문에, 즐거움 때문에. 목수들이 가구 만들기를 즐기듯, 술꾼들이 술을 즐기듯. 그 갖가지 사연들만 가지고도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연들은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진실일 것이다. 모두의 진실은 아닐지라도. 우리들 소설가에게 공통된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우리는 실재하는(또는 실재했던) 세계만큼 사실적인, 그러나 그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미리 설계할 수 없는 까닭이다. 창조된 세계는 기계가 아니라 유기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순수하게 창조된 세계는 그 창조자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설계된 세계-그 형태와 구조를 평면도에 미리 드러낸 세계-는 이미 죽은 세계다. 우리의 인물들과 사건들은 우리한테 반항하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발상은 내가 아니라 찰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여겨졌다. 그는 이제 자율성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를 현실적 존재로 만들고 싶으면, 내가 신과 비슷한 입장에서 그를 위해 세워놓았던 모든 계획을 무시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나는 찰스만이 아니라 티나와 사라, 심지어는 저 밉살스러운 풀트니 부인에게도 각각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신에 대한 좋은 정의가 하나 있다-'다른 자유들도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자유.' 나는 이 정의에 따라야 한다.
소설가는 여전히 하나의 신이다. 소설가는 창조하기 때문이다(가장 전위적인 현대소설조차도 작가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그 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소설가가 이제는 더 이상 빅토리아 시대적 이미지, 즉 전지전능한 이미지를 지닌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소설가는 권위가 아니라 자유를 제일 원칙으로 삼는 새로운 신학적 의미를 가진 신이다. 

-오늘날 같으면 라디오와 텔레비전, 값싼 여행 따위로 메꿀 수도 있는 이 같은 거리감, 그 모든 심연들이 전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상대를 모르는 만큼 서로에게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개인적인 공기를 숨쉴 수 있었다. 단추를 한 번 누르거나 채널을 한 번 돌리면 전세계를 볼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은 이상했고, 때로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야릇함을 지니고 있었다. 인류에게는 더 많은 교류가 유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단자라서, 고립 상태에 있던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의 우리보다 더 넓은 공간을 누렸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는 부러울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세계가 문자 그대로 너무 벅차다.

-우리는 누구나 시를 쓴다. 시인은 다만 언어를 가지고 시를 쓸 뿐이다.

-오늘날 어떤 의사가 고전 음악을 알 수 있으며, 어떤 아마추어가 과학자와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두 사람의 세계는 전문성이라는 폭군이 없는 세계였다. 그리고 그들은 진보와 행복을 혼동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생명의 대등함을 깨달았다. 진화는 완전함을 향한 수직적 상승이 아니라, 수평적 이동이다. 시간은 중대한 오류였다. 존재에는 역사가 없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이고, 언제나 같은 악마적 기계에 사로잡혀 있다. 현실이 눈에 뜨이지 않도록 인간이 세운 그 화려한 장막들-역사, 종교, 의무, 사회적 지위-은 모두 환상, 아편에 중독되었을 때 보이는 환각에 불과하다.

-인생은 난해한 기계, 불길한 점성술, 태어났을 때 내려져 항소조차 할 수 없는 판결, 모든 것을 압도하는 무(無)였다.

-행위는 날마다, 시간마다,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순간마다, 못은 어딘가에 박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석희 옮김, 프레스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