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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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이유는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온 인터뷰 때문이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침묵'에 출연하기 위해 미국행, 대만(?)행을 감행한 한 연극배우 이야기였다. 자기가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서 하염없이 도전하는 한 남자에게 감복해 무슨 이야기이길래 궁금해졌다.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금세 극장에서 사라져버려 영화는 보지 못했고, 그 연극배우 역시 이 책에 감명해서라기에 궁금했다. 무슨 이야기일래.


지금 보니 조금 이 남자 이야기가 주인공 로드리고와 겹쳐지는 면이 있다. 전혀 될 수 없는 일에 가까운데도 도전하는…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기독교도도 천주교도도 아니다. 종교는 무교에 가깝고, 그저 이 세계는 어디서 시작해서 여기에 이르러 어디로 흘러가나 궁금한 점이 있고, 왜 그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믿을까, 그런 생각도 종종 한다. 그러나 또 한 편에서는 물질이 끝나면 이 모든 정신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혼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의 죽음이 있었을 때 실제로 그 영혼을 보았다고 믿고 있다. 어쩌면 우연이나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 것인지도 모르지만,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모든 아픔을 달래주며 함께하는 어떤 선

내가 바라보는 한 절대 눈길을 돌리지 않는 어떤 선

이 있다고

이 미천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고 죽어도 매미는 울고 파리는 나는 이 세계의 이 미천함과 함께 하는 어떤 눈길…


그러다보면 돌아가는 의문은 

바퀴벌레다. 내가 때로 죽이는 바퀴벌레

그 바퀴벌레에게는 그런 눈길이 없었던 걸까

정말 인간만 뭔가 다른 걸까




"그러나 당신은 유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가서 네가 할 일을 이루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성화를 밟아도 좋다고 말한 것처럼 유다에게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라고 말했던 것이다. 네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을 테니까."

그때 그는 성화에 피와 먼지로 더러워진 발을 내려놓았다. 다섯 개의 발가락이 사랑하는 분의 얼굴 바로 위를 덮었다. 이 격렬한 기쁨의 감정을 기치지로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는 거요.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고통스럽지 않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소."






2017 3 19일 일요일 

여기서는 밤과 고독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페레이라 신부처럼 붙잡히게 되는 걸까?"

라고 묻자 가르페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지금 나는 그런 일보다는 등을 기어가고 있는 이한테 더 관심이 있다네."

일본에 오고 나서 그는 언제나 명랑했습니다. 어쩌면 명랑한 체 하면서 저와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도 솔직히 말해서 저희가 붙잡힌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묘한 것이어서, 타인은 어쨌든 간에 자기만은 어떤 위험에서도 모면될 수 있다고 마음 어딘가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 오는 날 먼 곳을 바라보며 그곳에만은 희미한 태양이 비치고 있을 언덕을 상상할 때처럼, 자신이 일본인들에게 체포당하는 순간이나 그 모습은 전혀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는 비록 움막에 있습니다만 언제까지나 안전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왠지 모르지만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 P55

이 아이도 언젠가는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 어두운 바다에 접한 가난하고 좁은 땅에서 소나 말처럼 일하고, 소나 말처럼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름다운 것이나 선한 것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이나 선한 것을 위해 죽는 일은 쉽지만, 비참한 것이나 부패한 것들을 위해 죽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저는 그날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 P60

그것은 바로 제가 유용한 존재라는 희열의 감정이었습니다. 당신이 전혀 알 수 없는 이 지구 끝의 나라에서 저는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 P71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그러고 나서 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을 제게 보내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듣고 흘려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겁쟁이의 한탄이 어째서 예리한 바늘이 되어 제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것인지요? 하나님은 무엇때문에 이들 비참한 농민들에게, 이 일본인들에게 박해와 고문이라는 시련을 주시는지요? 아니,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다른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 P85

순교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순교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성인전(聖人傳)에 쓰인 그런 순교를, 이를테면 그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돌아갈 때 공중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천사가 나팔을 부는 그런 빛나고 화려한 순교를 지나치게 꿈꿔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보고하고 있는 일본 신도의 순교는 그와 같은 혁혁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아아, 바다에는 비가 쉴 새 없이 계속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더욱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 P93

다만 저는 모키치와 이치소우가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신음하고 괴로워하다 마침내 죽은 오늘도 여전히 바다는 어둡고 단조롭기만 한 소리를 내면서 철썩이고 있다는 변함없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뿐입니다. 이 바다의 무서운 적막함 위에서 저는 하나님의 침묵을 느꼈습니다. 비에에 빠진 인간들의 소리에 하나님이 아무런 응답 없이 다만 말없이 침묵하고 계시는 듯한 그런 느낌을…… - P94

이것은 무서운 상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무기둥에 묶여 파도에 씻긴 모키치나 이치소우의 인생은 얼마나 익살스러운 연극인가. 많은 바다를 건너 2년의 세월을 보내며 이 나라에 다다른 선교사들은 또 얼마나 우스운 환영을 계속 뒤쫓은 것인가. 그리고 지금,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는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은 얼마나 우스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 P106

저는 사제가 되고 나서도 이 말의 참뜻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수증기 속을 기치지로와 함께 발을 질질 끌고 걸으면서 저는 이 중요한 성경구절을 제 자신에게 견주어 가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떠한 마음에서 그리스도는 은 30냥 때문에 자신을 팔아넘긴 사람에게 가라는 말을 던졌을까. 노여움과 증오 때문인가, 아니면 사랑에서 나온 말인가.‘ 분노 때문이라면 그때 그리스도는 세계 모든 인간 중에서 이 남자의 구원만은 제외해버렸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분노의 말을 정면으로 받은 유다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한 인간을 영원한 죄악으로 떨어뜨린 채 내버려 두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 P117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두 종류가 있습니다. 즉 강한 자와 약한 자, 성자와 평범한 인간, 영웅과 용렬한 자, 그래서 강한 자는 이와 같이 박해받는 시대에도 신앙 때문에 불에 태워지고 바다에 던져져도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약자는 이 기치지로처럼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느 쪽이냐?‘ - P122

그는 이 사람들에게 오두막집을 얻어 쓰고 이 농군 옷을 빌리고 음식을 받아먹고 살아왔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그들에게 뭔가를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행위와 죽음 이외에는 봉사할 것을 한 가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 P128

"정말 이 세상은 고통과 질병뿐이에요. 천국에는 그런 것은 없다지요, 신부님?"

천국이란 그대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신부는 입을 다물었다. 이 농민은 교리를 배우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국이란 심한 세금도 교역도 없는 별세계로만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꿈을 잔혹하게 무너뜨릴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 P130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었다. - P136

"그렇지만 제게도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밟은 자로서의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제가 즐거워서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 아파요. 나를 약한 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P177

성경에 나오는 인간들 중 그리스도가 찾아 다녔던 것은, 사람들에게 돌을 맞은 창녀나 가버나움의 헐루병 여인처럼 매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존재들이었다. 매력이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 색 바랜 누더기처럼 되어 버린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 P181

아까와 마찬가지로 매미가 물기 없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 울고 있다. 바람은 잠잠하다. 파리 한 마리가 여전히 날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얼굴 주위를 돌고 있다. 겉으로는 조금도 달라지 게 없었다. 한 인간이 죽었다는 사실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 P185

‘내가 죽임을 당한 뒤에도 매미는 여전히 울고 파리는 졸음을 재촉하는 날개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닐 것인가. 그렇게까지 영웅이 되고 싶은가. 네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남모르게 죽는 참된 순교가 아니라 허영을 위한 죽음인가. 신도들에게 칭송받고 기도받고, 그리고 저 신부는 성자였다는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인가.‘ - P186

그는 인간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던 것인데, 사실은 일본인 신도들이 자기 때문에 잇달아 죽어 갔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행위란 오늘까지 교리에서 배웠던 것처럼, 이것이 옳고 이것이 나쁘고 이것이 선하고 이것이 악하다는 식으로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P208

‘나는 저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끌려서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연민은 결코 행위가 아니었다. 사랑도 아니었다. 연민은 정욕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본능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신학교의 딱딱한 의자에서 이미 훨씬 전부터 배웠지만, 그것은 책 속의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 P212

그렇다. 인간들을 위해 유익하게 소용된다는 것은 성직자들의 단 한가지 염원이며 꿈이다. 신부들의 고독이란 자신이 타인을 위해 무익할 때다. - P224

"형식으로만 밟으면 되는 거요."
신부는 발을 들었다. 발이 저린 듯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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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성찰 시리즈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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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때문에 책을 읽었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세상이 어찌 이리 엉망일 수 있는가라는 종류도 담긴 불안.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파스칼, 오뒷세우스, 에이해브

철학자들과 문학 속 인물들의 여정 속에서 신을 쫓는 과정을 추적한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파스칼이 쫓았던 그 신

그 신은 아마 숨어있으리라 영영

우리는 그가 어디 있는지 모르나 계속 나아가며 그를 찾아가리라 

멈춰 서는 곳에 그가 있을지도…


2017년 2월 5일 일요일


불안은 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의미구조가 붕괴된 것이라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 P104

파스칼의 두려움은 바로
이 생성 때문에 생겨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우주 속에 있는 "인간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19) 그는 신에게서, 생성을 겪지 않는 신에게서 벗어나 있다. 신이 있는 곳이 그가 있어야 할, 있고 싶은 곳이다. "그는 그의 진정한 위치로부터 떨어져 나와서"(19) 있으므로 두렵다. "우리는 진리도 선도 소유할 능력이 없다."(62) 우리는, 존재의 진상에서 보면 우연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데, 그 우연함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 P145

신이 세계를 창조하였다는 것은 신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였다는 것이다. 신이 세계에 부여한 의미는 ‘좋음‘이다.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기, 1:31). 존재의 진상은 있음과 없음을 오가는 것이라 해도 그 과정 자체에 ‘좋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기독교다.
- P148

인간은 신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언정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신을 찾았다고 선언할 수도, 현존을 증명할 수도 없다. 파스칼은 고백한다. "하느님께서는 숨어 계시기를 원하셨다는 것. (…)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숨어 계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숨어계신다고 말하지 않는 모든 종교는 참 종교가 아니다"(팡세, 275). "참으로 당신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느님시이십니다"(이사야, 45:15)
신은 숨어 있다. 우리는 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신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다. 알지 못하니 갈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이것에서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멈춰 설 곳을 알지 못한 채 계속 나아가기만 하는 것은 비극적 전망이 아니다. 그저 가는 것이다. 꿈도 없이 희망도 없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가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비극이다. 저기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 닿을 수 없다는-그것이 슬픔 아닌가.
- P150

슬픔을 이기려면,
내가 멈춰 선 곳에 신이 있다고 확신한다. - P151

우리의 모든 탐구는 ‘숨은 신‘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그것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가는 삶의 과정에 있다. 더러는 바다를 건너가기도 하면서 더러는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때로는 오뒷세우스처럼 때로는 에이해브처럼.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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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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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집 마당에 있는 구멍에  40대 남자가 빠졌다. 말을 할 수도 없고 다리도 움직일 수 없는 마비 상태에 가까우므로 곧 이 남자는 죽음 속으로 흘러들게 될 것이다.

중산층 지식인 오기의 이야기다.

 

어쩌다 이 남자는 구멍으로 빠져든 걸까?

왜 집 마당에 사람이 들어갈만한 구멍이 있는 걸까?

이 질문은 곧 누가 구멍을 누가 팠을까? 로 이어진다.

그 답이 재밌다. 장모다.

이 소설의 백미다.

이 정도의 내용을 지인에게 듣고 흥미로워 책을 봤다.

 

사지 불구가 된 남자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 장모라는 이 설정만으로도

이야기는 솔솔 피어오른다.

주인공 오기는 바람도 더러 피고 아내와의 사이는 어느 정도 서먹하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어떤 거대한 문제를 가진 인물도 아니다.

이 가정에 유일하게 눈에 띄는 점이라면 아이가 없다는 것 즈음, 이것은 이야기의 설정을 위해 필수적이다. 아무 혈연도 없는 남자가 사지불구가 돼 의사 표현을 거의 할 수 없음에도 생각은 가지고서

제 장모와 단 둘이 집에 남겨진다는 이 설정을 위해 오기는 고립되어야 한다. 이외에는 그럭저럭 사는

지리학 대학 교수로 때로 기회주의적으로 굴기도 했으나 딱히 악할 것도 선할 것도 없는 남자는 어쩌다 그 구멍 속에서 혼자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위해 준비된 이야기들이다.

 

소설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내 얘기를 하게 된다.

꼭 소설이 아니라 영화나 전시회, 가게 등등 결국 무슨 얘기를 해도 내 얘기를 하게 되는데

결국 나와 연결된 지점을 짚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태준의 '달밤'이라는 소설을 참 좋아한다.

약간은 모자라다 할 수도 있는 황수건의 이야기를 담담히 적어내는데 참외 장사라도 해보라는 돈도 다 날려먹고 아내도 떠나버린 뒤 달을 보며 서툰 노래를 부르는 황수건의 모습 속에 담긴

어떤 아득함 같은 것 때문이다.

 

내게 ''을 얘기한 이는 이 소설을 보면

인간이라는 것의 하염없는 비루함에 몸서리치게 된다 하였으나

나는 아주 그렇지는 않았다.

아마 어떤 성향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나빴다는 말은 아니지만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남자라면 아내가 떠나고 달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황수건에게서 더 하염없는 비애감을 느꼈다.

달밤이 덜 극적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인생은 덜 극적인 채로도 충분히 비애에 젖어 하늘을 바라보게 되므로

 

 

2016. 12. 2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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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자 정의 사제 - 함세웅 주진우의 '속 시원한 현대사'
함세웅.주진우 지음 / 시사IN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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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무슨 예언서 같기도 하다. 2016년 말 화가 나서 이것저것 역사책을 뒤적이다 함께 보게 된 책인데 재밌게 읽다 정치뉴스에 온 마음을 빼앗겨 한동안 멀리하다 오늘(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2017. 6. 6) 다 봤다. 책을 읽던 때만 해도 박근혜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빛 한 줌 들지 않는 터널을 걷다 이대로 숨 못 쉬게 되는 게 아닐까 했는데 예언서처럼 상상도 못하던 탄핵이 일어나 정권이 바뀐 역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 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탄핵'이란 단어는 정말 현실과 연관이 없었으나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현실이 되었다. 


책은 함세웅 신부님과 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대화로 전국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를 돌며 토크쇼 한 기록을 묶었다. 각 지역별 역사적 사건과 함께 '역사', '정치', '민주', '통일', '신념'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며 청중들의 목소리도 함께 실어 현장감을 더한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함세웅 신부님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묵묵히 자기 길을 걸으며 이 땅의 민주화와 함께한 신부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미래에서 다시 현재를 바라보자 생각한다. 쉽지는 않지만, 예상치 못한 탄핵으로 답답한 시간이 끝났듯 기다리고 차근히 힘을 보태면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증명된 시간을 걸어왔으므로. 


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미래를 상상하는 겁니다. 내가 미래에 살고 있으면 지금을 과거로 어떻게 얘기할까, 하면서요. 미래와 대화하는 사람이 되면 현실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 P57

어디에 살든지 초심으로, 또 초심을 기초로 초지일관 아름다운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저희를 재촉해주시고 이끌어주소서. 늘 기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이웃을 변화시키기 위해 더 뜻을 세우고 노력하겠습니다.
하느님, 친일 잔재 청산, 독재 잔재 청산, 유신 잔재 청산, 분단 세력 청산, 부패 세력 청산, 신자유주의 청산과 합의제 민주주의 실현의 원리들을 되새기며 아름다운 미래를 꿈꿉니다. 우리의 꿈이 모두의 꿈이 되고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노력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 P126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2050년의 일기를 써보라구요. 2050년에 일기를 쓴다면 "2015년 역사교과서를 불법으로 바로잡겠다던 박근혜 그 여인은 참 나쁜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줄로 요약되는 게 역사예요. 이런 시각으로 우리가 접근해야죠. 역사는 항상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뜻밖의 사건으로 바뀌게 되어 있어요.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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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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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것은

삶의 후미진 데를 파고드는 악취미


모든 삶은 실은 후미진 데가 있나

지나치곤 하지만 실은 지나쳐지지 않는 

틈새

그 틈새라는 게 원래 사람한테는 있기도 하다고

만나서 살다 보면 그렇기도 하다고


회사에서 만나는 멀쩡한 사람들도 실은 후미진 데를 안고 살고 있는 거라고


불가해한

세상의 표정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p.42


내게 있지 않음인 이들을 떠올려본다

없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

또한 잊지도 않음

그러니까 한 시절을 함께 견디며 

어떤 형용사로도 맞지 않게 

지내던 그들

그들이 있다가 

있지 않음이 되기까지

헛되지는 않았다고

후회하거나 미워하거나 

하지 않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느 시간 동안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노라고

아마도

함께 참 많은 거리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던

같은 방향으로 가다가 결국 제 길로 가야해 서로 갈 길을 가게 될 때까지


모든 사랑은 다 제각각이라 

어떤 식으로도 규정될 수 없으므로

그러니까 모든 사랑이 그리워지는 

글들이었다.



2016 10 16일 일요일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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