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샌 영화를 보면 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느 정도의 양념 같은 소소함, 그러면서도 비주얼면에서 디자인을 고려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과 연결된 대사나 상황들이 나열되다가
모험하듯 그 일상적인 누군가-그러나 어느면에서 개성적이며 그래서 매력적일 수 있는-가
상황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조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이야기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다.
-근데 사실 나의 취향이 아주 대중적이지는 않으니,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들의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의 접합 지점을 찾아내서 그 지점에서 안착하는 영화들, 판타지가 있고 일상이 있는, 근데 그 일상도 판타지도 어딘가 자본을 위한 귀속, 혹은 체계적인, 계산된 비율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영화를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지독하게 과잉된 정서, 어쩔 수 없이, 너무 숨이 차서 할 수밖에 없는, 절실함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이봐이봐 그건 좀 오버스럽잖아. 쿨하게 가자구." 영화를 보면 찍는 도중 곁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 처음 갔다. 그냥 요샌 그래도 영화를 보자는 생각이 강해서
잡지 보며 몇 개 찾아보고 간 건데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였다.
나는 기차라는 밀폐된 현장과 시베리아라는 공간의 특징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만화 <드레곤 헤드>+애니 <은하철도 999>를 상상하고 있었다.
시점이 되는 주인공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한 여자와 남자-중국에서 출발한 미국인, 특히 여자-를 시점으로 설정하고 시작된다. 그들이 6일간 시베리아 횡단 기차를 타고 가다 벌어지는 이야기.
어딘가 헐리우드 스러운 감각이 있지만 헐리우드에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각이다. 우선 인물에게 빠져들게 된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란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 속으로 빠져드는 순진한 얼굴을 한 여자 주인공이 겪게 되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들
-같은 칸에 탄 남,여와 친해진다, 우연히 남편이 기차를 놓친다, 같은 칸에 탄 남자가 추근덕댄다, 여자는 어느 정도 모험에 대한 열정 같은 게 있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 추근덕대는 남자를 따라나선다, 그 남자가 마약밀매와 관련이 있다, 그 남자와 가까워지려던 도중 갑작스레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깨닫고-이 부분에서 조차 상황에 따른다- 남자를 밀쳐내자 남자가 강제로 하려 든다, 남자와 단 둘이 고립된 외딴곳, 어쩔 수 없이 남자를 때리다 그만 남자를 죽이게 된다, 남편을 만나자 남편이 형사와 같은 칸에 타고 있다(여자는 이제 범죄자다), 이전 남자가 마약이 든 인형을 넣어놓았다, 들키면 상황이 모질어질 것 같다는 경찰에 대한 암시, 경찰이 알고 보니 밀매업자다, 밀매업자들은 이전 남자를 찾고 있다, 그래서 그 주인공과 남편을 납치해 감금한다, 빠져나와 열차를 몰고가다 다른 열차와 들이받는다-
간단하게 쓰려해도 너무 다양한 상황이다. 그래, 뭐 저러다 대충 뭔가 엮이는데 겨우 탈출할 거야 하는 순간 다시 다른 상황이 닥쳐오는 격이다. 그래서 계속 뒷통수를 때린다.
심리극인가 싶으면 서스펜스고 서스펜스인가 싶으면 헐리우드식이라
종횡무진 기차 타고 여행 하는 기분도 든다. 계속 뒷통수를 가격하는 사건들의 연속이랄까
웃다가-억지 유머가 아니라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그렇다- 깜짝 놀라고 놀랐다가 눈을 가리게 된다.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몇몇 암시적인 대사들, 러시아를 알려면 삽을 들라, 눈속을 파보면 온갖 추잡한 것들이 나온다.
이전 러시아는 어둠 속에서라도 살 수 있었지만 지금 러시아는 밝은 대낮 속인데도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들, 흘려가듯 이야기하지만 어딘가 의미심장했다.
결국 부패경찰, 마약밀매 등등도 이런 대사와 관련
이 있기 때문. 물론 영화적인 방식이지만.
------------------------------------------------------------------------------------
부천에 대한 단상
부천은 수평으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어딘가 입체적이지 않은 느낌이랄까.
시청과 시의회와 이마트와 현대백화점이 8차선(?) 도로 한 켠에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그 건너편에 네모곽에 든 종합선물세트 같은 치과, 밥집 등의 상점들이 또 죽 나열되어 있었다.
그래도 도시에 골목이 없다면 말이 안 되잖아라고 하던 찰나 걷다보니
골목 골목 대략 치킨 한 마리에 6000원 하는 치킨집들이 간간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었다.